영화 <특별시민>의 캐릭터 포스터. 변종구는 잔뼈가 굵은 정치인이다.

영화 <특별시민>의 캐릭터 포스터. 변종구는 잔뼈가 굵은 정치인이다. ⓒ (주)쇼박스


언제부터였을까. 정치인 변종구(최민식 분)에게 구린내가 배어든 건. 3선 서울시장을 노리는 변종구 캠프 선대위원장 심혁수(곽도원 분)는 선거를 가리켜 '똥통에서 진주를 찾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정치인이 펴고자 하는 정치가 진주라면 그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지나쳐야 하는 정치판의 현실은 똥통이라는 것이다. 그의 논리에, 영화가 그리는 현실에 따르면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 역시도 온갖 불법이 횡행하는 똥통에 불과하다.

영화 <특별시민>은 사람에게 구린내와 피비린내가 배어드는 과정을 그린다. 정치인 변종구와 기자 장제이(문소리 분), 변종구 캠프 홍보전문가 박경(심은경 분)이 주역으로,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초심을 잃어버렸거나 잃어가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그들의 초심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영화가 비추는 그들의 현실은 그들 각자가 바랐던 초심으로부터 멀어졌음이 분명해 보인다.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리 정치인, 특종을 좇으려 사람과 가치를 돌아보지 않는 속물 기자, 자신이 미는 후보를 당선시키고자 온갖 불법을 저지르는 광고전문가의 모습이 그들 각각의 초심이었을 리는 만무한 일이다. 그래서일까. 변종구는 자신이 진짜임을 알아주는 듯한 무속인의 말에 동요를 감추지 못하고, 장제이는 자신을 속물로 보는 박경의 말에 발끈하며, 박경은 영화 내내 고민하고 괴로워한다. 그러나 그렇다 해서 그들의 초심이 초심 그대로 지켜지는 것은 물론 아니다.

수없이 많은 장소에서 반복되었을 초심을 지키겠다는 약속은, 그 당시의 결기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잊히거나 무너지게 마련이다. 초심을 지켜야 할 시점의 나는 이미 초심을 지키겠다고 약속한 나나 초심을 품었던 시절의 내가 아니다. 내가 그때의 나일 수 없으므로 내 마음 역시 그때와 다르다는 것인데 성공적인 경력을 쌓아온 정치인이나 기자와 같이 삶의 과정이 역동적인 경우엔 초심을 지켜내기가 더욱 어려울 게 뻔한 일이다.

초심이 타락하던 그 순간

 주인공 박경(심은경 분)의 대학선배이자 잔뼈 굵은 정치부 기자로 활동하는 장제이(문소리 분)의 모습. 문소리는 직업정신이 투철한 듯 하면서도 일신의 영달만 추구하는 이기적인 기자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냈다.

주인공 박경(심은경 분)의 대학선배이자 잔뼈 굵은 정치부 기자로 활동하는 장제이(문소리 분)의 모습. 문소리는 직업정신이 투철한 듯 하면서도 일신의 영달만 추구하는 이기적인 기자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냈다. ⓒ (주)쇼박스


변종구라고 초심이 없었겠는가. 공장 직공으로 일하던 어린 시절과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청년 시절, 시험에 합격하고 법조인으로 활약하며 삼선 국회의원으로 출세 가도를 달리던 시절, 마침내는 서울시장에 당선되고 재선까지 성공하며 차기 대망론의 주인공이 되기까지 그에게도 매 순간 초심이라 할 만한 게 있었을 테다. 하지만 초심이 욕심과 마주쳐 조금씩 퇴색되고 깎여나가다 오늘의 모습이 되고 말았을 뿐이다.

초심과 초심이 아닌 것 사이에는 생각만큼 높고 커다란 장벽이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보다 초심을 간직한 듯 보였던, 그래서 관객이 공감할 수 있을 법했던 영화 속 박경의 변화는 초심이 어떻게 타락하는가를 이해하기 쉽게 보여준다. 공개행사에서 서울시장을 향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 순진한 사회초년생은 변종구 캠프에 들어온 직후 고의로 동영상을 조작·배포해 상대 캠프에 타격을 입히고 TV 토론회를 앞두고 상대 후보 몰래 질문지를 입수해온다. 그녀는 불법행위에 몸을 담그며 정치판의 생리에 깊이 관여하다 마침내는 스스로 경멸한 기자 장제이로부터 "너는 (구린내가 나는 게) 아닌 거 같니?"하는 질문을 받기에 이른다.

변종구라 해서 박경과 태생부터 다른 악한이었을까. 영화는 무속인을 찾은 자리에서 변종구가 "사람들이 네가 진짜라는 사실을 몰라"라는 말을 듣고 급격하게 동요하는 모습을 강조해 보여준다. 이 장면은 변종구의 내면 가운데 적어도 일부는 진짜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비록 그 진짜가 두꺼운 가짜에 뒤덮여 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할지라도 말이다.

한때는 진짜였지만 끝내 타락하고 만 정치인 변종구와 현실과 부닥쳐 순수를 위협받는 청년 박경의 모습을 교차시키며 영화가 던지고자 한 질문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모두가 그렇게 한다는, 이것이 정치의 생리라는 판단으로 박경이 변종구와 같은 길을 걸을지, 혹은 영화가 깊이 있게 다루진 못했으나 변종구의 상대 후보 캠프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 임민선(류혜영 분)이 그러했듯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려 전혀 다른 결단을 내릴지는 오롯이 관객 각자의 해석으로 남겨진다.

그렇다면 당신의 생각은 과연 어떤가. 박경은,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난 우리는 영화의 마지막에 어떤 결단을 내렸을까?  우리는 과연 어떤 후보에게 투표해야 하는 것일까?

 초심을 잃고 타락한 정치인 변종구(최민식 분)와 그의 아내(서이숙 분)가 투표하는 모습. 영화는 변종구의 아내를 복장과 헤어스타일, 제스처 등을 통해 박근혜씨와 유사하게 꾸몄다.

초심을 잃고 타락한 정치인 변종구(최민식 분)와 그의 아내(서이숙 분)가 투표하는 모습. 영화는 변종구의 아내를 복장과 헤어스타일, 제스처 등을 통해 박근혜씨와 유사하게 꾸몄다. ⓒ (주)쇼박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노숙인 자활을 돕는 잡지 <빅이슈>와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특별시민 (주)쇼박스 박인제 빅이슈 김성호의 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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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오마이뉴스 스타팀에서 방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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