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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공개된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출연한 유시민 작가.
 지난 5일 공개된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출연한 유시민 작가.
ⓒ 한겨레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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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대선이 끝나고 뭘 할 건지에 대해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시는데 저는 공무원이 될 생각이 없어요. 제가 진보 어용 지식인이 되려고요, 진보 어용 지식인요."

유시민 작가의 '진보 어용 지식인'론이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지난 5일 공개된 '한겨레TV'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출연한 유 작가는 정권 교체, 즉 문재인 후보 당선을 전제로 정권 교체 이후를 전망했다. 대선 기간 일각에서 끊이지 않고 제기되는 '입각설', '총리설'을 일축한 유 작가는 차기 정부에서 예상되는 문제점을 진단했다. 그러한 문제점들을 타파하기 위해 자신은 '진보 어용 지식인'이 되겠다는 것이다.  

"불안한 것은 (정권 교체 후에도)대한민국은 아무것도 바뀌는 게 없다는 점이에요. 사람들은 야권이 집권하면 권력을 잡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에요. 고작 정치권력만 잡은 거예요. "언론 권력, 재벌경제 권력, 그다음에 기득권층을 중심으로 광고 시장을 통해 언론과 유착된 재벌들, 거기서 나오는 돈 받아먹고 프로젝트하는 지식인 집단은 그대로 있잖아요. 개혁한다고 해서 (기득권층이) 순수하게 협조하지 않아요.

한국 사회는 복잡하고 여러 층위의 권력들이 있는데, 바뀌더라도 청와대 권력 딱 하나만 바뀌는 거예요. 국회도 과반수가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일제히 반격하기 시작하면 금방 (다음 정부의) 입지가 축소될 것이라고 봐요. 그리고 진보 지식인들은 언제나 권력과 거리를 두고 고고하게, 깨끗하게 지내야 하잖아요. 아무리 진보적인 정권이더라도, '내가 진보 지식인으로서 권력에 굴종하면 안 되지' 이런 마음으로 사정없이 깔 거라고요."

조기 대선인 만큼 차기 대통령은 인수위원회 기간이 없이 바로 국정 운영에 임해야 한다. 유 작가는 이 점이 차기 대통령이 개혁을 추진하는 데 있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환영하면서도 우려를 거두지 않았다. 아니,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의 정책에 비판적이었던 언론·지식인층의 비판을 환기시키며 "악몽이 되풀이되면 99% 망한다"고 경고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유 작가의 말은 더 들어 보자.

"참여정부 악몽이 되풀이되면, 거의 99% 망한다고 봐요"

"지금까지 선거 과정에서 (문재인 후보를) 편들어 줬던 여러 세력들도 또 자기 논리에 의해서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으면 공격할 거예요. 그러니까 10개의 사안에서 9개를 지지하더라도 1개가 자기 마음에 안 드는 것 있으면 다 때려요. 저는 지금도 그것이 제일 무서워요. (참여정부의) 그 악몽이 또 되풀이되면 거의 99% 망한다고 봐요.

무릇 지식인이나 언론인은 권력과 거리를 둬야 하고 권력에 대해 비판적이어야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정권이 교체돼도) 모두 다 그대로 있고 대통령만 바뀌는 거예요. 대통령은 권력자가 맞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거든요. 대통령보다 더 오래 살아남고, 바꿀 수도 없고, 더 막강한 힘을 행사하는 기득권 권력들이 사방에 포진하고 연합해서 대통령을 괴롭힐 거예요."

동의하시는가. 지극히 한국적인 언론·학계의 지형을 고려할 때, 유 작가의 예상과 경고는 분명 곱씹을 만한 대목이 적지 않다. '공무원'이 되고 싶지 않다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는 유 작가는 현재 정의당의 평당원이다. 그는 문재인 정부 이후 "야권 정당들이 서로 손잡고 연정을 하지 않겠나"라고 전망했다. 그런 지형 속에서 '진보 어용 지식인'이 더 필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제가 참여정부에 있을 때, 또 여당에 있을 때 제일 힘들었던 것은 편들어 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평가나 비판을) 해 주는 지식인, 언론인이 너무 없었다는 거거든요. 제가 무조건 (문재인 정권을) 편드는 사람이 되겠다는 것이 아니에요. 정권 바뀌고 나면 (<썰전>에서) 전원책 변호사님은 공격수, 제가 수비수가 될 것 아니에요. 그럴 때 정말 사실에 의거해서 제대로 비판하고 옹호하는 사람이 그래도 한 명은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김대중노무현' 10년과 '이명박근혜' 10년을 돌아보라

SBS의 '문재인 세월호 인양' 관련 보도 화면.
 SBS의 '문재인 세월호 인양' 관련 보도 화면.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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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작가가 말한 '편', 그러니까 지식인, 언론인 그룹은 사실 보수나 진보 진영을 구분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과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의 대언론 지형을 비교하면, 향후 펼쳐질 시나리오는 예상 가능하다. 김대중 정부는 자율개혁을 주창하면서도 언론 길들이기의 유혹을 완벽히 떨쳐내지 못했고, 보수언론과의 적대적 관계는 넘지 못할 산이었다.

미디어비평 전문지 <미디어오늘>은 김대중 정부의 전반부 언론 정책을 두고 "투명한 대응을 공언하면서도 음지에서의 개입 유혹을 떨쳐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일관성이 없다고 할 것이며, 언론개혁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개혁의 칼날을 들이대지 못했다는 점에서 유약하다 할 것이다"라고 평가한 바 있다. 

국민의 정부를 계승한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는 잘 알려진 대로 보수언론과 훨씬 더 전투적(?)인 관계를 형성했다. 반면 인터넷 언론이 융성했고, KBS와 MBC 양대 공영방송의 자율성도 지금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다. 반면 '이명박근혜' 시대의 언론·방송 지형은 참담한 수준이었다. 대표적으로 방송을 보자. 방송통신위원회를 장악한 이명박 정부는 MBC를 망가뜨리고, YTN에 낙하산 사장을 내려보냈고, 종편을 탄생시켰다.

급기야 대선을 앞둔 2012년 MBC를 비롯한 방송사 언론노조의 장기간 파업이 이어졌다. 그 수혜를 박근혜 정권이 입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세월호 보도 통제'와 같이 노골적인 방송 개입이 이뤄졌고, '기레기'라는 신조어가 탄생했다. 박근혜 정권이 4년 동안 콘크리트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로 종편의 약진과 전방위적인 측면 지원이 꼽힐 정도다.

유시민 작가의 경고는 이렇게 민주정부 10년과 비교해 훨씬 더 악화된 언론·방송 환경만 놓고 봐도 설득력을 얻을 수밖에 없다. 조기대선 국면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선거 유세 동안 대놓고 공세를 펼친 대언론 관련 발언이나 최근 SBS와 문 후보에 대한 공격 역시 유 작가의 경고와 본질 면에서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홍준표의 대언론관과 SBS 오보가 가리키는 것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7일 오후 울산 중구 문화의거리에서 유세를 펼치고 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7일 오후 울산 중구 문화의거리에서 유세를 펼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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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집권을 하면 어떻게 하려고 이 지랄을 하는지 모르겠다."

공포정치가 따로 없다. 언론과 방송을 참 만만하게 보는 오만한 태도다. 지난 6일 경기 고양시 일산문화공원에서 유세에 나선 홍 후보의 발언 중 일부다. 또 같은 날 페이스북을 통해서는 "과거 우파들이 하고 있던 선거 때 관권개입, 언론장악을 지금 좌파들이 하고 있다"며 "그러나 종래 좌파들이 하던 밑으로부터의 혁명을 홍준표가 하고 있다"고 적었다.

워낙 막말을 많이 내뱉고 있긴 하지만, 홍준표 후보의 주장은 귀 기울일 여지가 충분하다. 역으로 해석하면 간단하다. "지금 언론, 여론조사기관 전부 좌측으로 기울었다"는 그의 주장이야말로 그렇지 않다는 방증이다. "문재인 후보 측은 대통령이 되면 이 나라를 5공 시절처럼 '땡문뉴스'로 도배할 집단"이라는 주장 역시 박근혜 정권하의 KBS와 MBC가 '땡박뉴스'였다는 사실을 스스로 자임하는 꼴이다.

SBS의 '문재인 세월호 인양' 오보 역시 상징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결국, SBS 박정훈 사장까지 사과와 해명에 나섰지만, 자세한 진상과 진의는 SBS가 약속한 자체조사 결과를 두고 봐야 할 것이다. 언론의 선거 개입인지, (선의로 해석해) 게이트 키핑 과정의 실수인지 말이다.

하지만 이 오보 이후 국민의당과 자유한국당은 정치 공세를 멈추지 않았고, SBS의 보도 화면이 포함된 가짜뉴스가 기승을 부렸다. SBS의 오보로 상처를 입은 쪽과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쪽이 누구인지 유권자의 판단에 맞기기에 석연치 않은 점이 한 둘이 아니다.

홍 후보는 이 SBS 세월호 보도와 김성준 본부장의 5분여의 사과에 대해서도 "그게 언론이냐. 이제 3일 만이라도 언론이 공정하게 해 달라"며 "문재인 후보가 (해수부라는)관권, 언론을 끼고 다 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보도 직후인 지난 3일 부산 유세에서는 "집권하면 SBS 뉴스를 없애겠다"고 발언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홍 후보의 행보를 보면 유 작가의 경고는 더 생생해진다. 과거 군부독재 시절의 '언론 장악'을 시도했던 '이명박근혜' 정권의 언론관과 새로운 대통령의 언론관은 달라져야 하고,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다시 참여정부 시절의 혹독한 비판에 시달려야 하고, 일부 편파적인 보도와 논조도 견뎌내야 한다. 더욱이 '가짜뉴스'까지 횡행하는 시대 아닌가.

섣부른 예단? 아니다. 왜 이명박 정권이 그리도 MBC를 망가뜨리려 했는지, 종범 출범에 사활을 걸었는지 복기할 때다. 더군다나 유시민 작가의 말마따나 한국 사회를 점령한 기득권층의 권력은 '박근혜 구속' 이후 변한 게 하나도 없다.

촛불광장에서 국민들이 요구한 개혁입법은 아직 시작조차 못 하지 않았나. 5월 9일 조기 대선을 하루 앞둔 지금, "진보 어용 지식인 되겠다"며 정권 교체 이후를 전망한 유시민 작가의 다짐이 한층 생생하게 다가오지 않는가.   


태그:#유시민, #홍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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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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