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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으로서 다른 차별은 느끼지 못했다. (중략) 그렇게 크게 불만을 가지고 있지 않다."

배우 김민희가 67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후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한국 영화계에서 여성 배우로서 차별을 느끼지 않았냐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한 것이다. 이 발언을 두고 누리꾼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었다.

다른 배우들이 영화계의 남녀 차별 관행을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눈치 없이 찬물을 끼얹었다는 비판적 의견부터, 자신이 느낀 대로 말한 걸 비난하는 건 김민희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옹호 의견까지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

김민희가 영화계에서 단 한 번도 성차별을 느끼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비난 받을 일은 아니다. 다만, 김민희의 발언을 그저 '운이 좋은 여성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보고 '사소하게' 넘기기에는 좀 석연치 않다.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홍승은 페미니즘 에세이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홍승은 페미니즘 에세이
ⓒ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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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에세이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를 쓴 홍승은이라면 이런 상황을 보고 아래처럼 말하지 않았을까.

"한 번도 타인의 삶을 상상해 보지 않은 사람은 페미니즘에 가닿을 수 없다."(156쪽)

나는 오랫동안 페미니즘을 모르고 살았다. 대학 졸업 후 번역회사에서 근무하다 프리랜서 번역가로 독립해 일하면서 딱히 성차별을 겪을 일이 없었다. 그래서 페미니즘을 알아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언젠가 회사 생활을 하는 친구가 회식 후 남자 상사와 같은 차를 타고 돌아가는 길에 성추행을 당했다는 얘기를 털어놨다. 그 얘기를 들으며 내심 나는 프리랜서라 그런 일 겪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또 친구에게 겉으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그러게 애초에 왜 술을 먹고 상사와 같이 차를 탔냐고 속으로 질책했다.

내가 성차별이나 성추행 같은 걸 당하지 않으니 다른 여성들이 어떤 부당한 일을 겪는지 관심 자체가 없었다. 예능 프로 <1박 2일>에서 복불복 게임을 할 때 자주 듣는 단골 멘트 "나만 아니면 돼"라는 심보라고나 할까. 아니, 한 번도 타인의 삶을 상상해 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최근에서야 페미니즘 이슈가 계속 터지면서 관심을 갖고 관련 책을 읽기 시작했다. 치미만다 은고지 아디치에가 쓴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가 시작이었다. 이 책을 통해 페미니즘에 대한 나의 편견과 오해를 조금 깰 수 있었다. 이전에는 '페미니즘'이라고 하면 '남녀 평등을 외치며 남자를 배척하는 극단적인 운동'이라는 이미지가 먼저 떠올랐다.

"오늘날 젠더가 기능하는 방식은 대단히 불공평합니다. 나는 화가 납니다. 우리는 모두 화내야 합니다. 분노는 예로부터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었습니다."

치미만다 은고지 아디치에의 이 말을 읽고, 왜 페미니스트들의 언어가 공격적으로 보였던 건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됐다. 뒤이어 읽은 이민경이 지은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입이 트이는 페미니즘>에서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아닌 건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는 것을.

이민경은 "관용과 사랑을 베풀어서 우리 모두 더 나은 사회를 이룩해야 한다. 남성과 여성이 똑같이 책임이 있다"라고 예쁘게 포장된 말을 경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혼자 느긋하게 위와 같은 '예쁜 헛소리'를 늘어놓는 사람들은 느긋해도 살 수 있는 권력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런 권력자들과 맞서려면 각자 언어를 찾아야 한다는 게 이민경의 주장이다.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를 쓴 홍승은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존재는 불편함을 주지 않는다. 우리가 무언가에 불편할 수 있는 건, 어떤 존재가 눈에 걸리적거릴 때이다.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은 침묵됨으로써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존재가 스스로 목소리를 낼 때, 세상은 딸꾹질한다. 나는 내가 속한 가족, 학교, 연인 관계, 사회에서 경험하고 느꼈던 이야기를 썼을 뿐인데 어느새 페미니스트라고 불리고 있었다."(15쪽)

홍승은은 페미니즘을 먼저 공부해서 페미니스트가 된 게 아니다. 개인적인 아픔과 슬픔을 털어놨을 뿐이다. 여성으로서 살아가며 가정과 사회와 일터에서 일상적으로 당했던 성차별, 성추행과 성폭력에 노출되었던 경험, 혼자 감당해야 했던 낙태 경험까지. 왜 나는 홍승은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읽는 내내, 같이 분노하고 아파하고 자책했던 것일까.

홍승은은 아는 게 편하기만 하면 소용없다면서 무언가를 공부하고 알아가는 건 부끄럽고 수치스럽고 화가 나는 일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이 가담해왔던 세계를 직면하면, 자신도 모르는 새 저질러왔던 폭력이 선명해지면서 자책과 후회, 부끄러움이 밀려온다는 것.

그동안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의심하게 되자 내 주변을 둘러싼 세계가 통째로 흔들렸다. 나는 성차별과 성폭력에서 자유롭다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나 역시 온갖 부당한 일에 노출돼 있었다. 공기처럼 날 둘러싸고 있어서 내가 미처 인지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런 사실을 하나둘 깨달으니 잠자고 있던 고통의 세포들이 깨어났다. 입 밖으로 불편함을 호소하면 타인의 호의를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낙인찍힐까 마음속에 묻은 일들이 많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앞서 말했듯, 나는 프리랜서라서 여러모로 편안한 점이 많았다. 무엇보다 조직 내에서 상사나 동료 및 거래처 사람들과 부딪칠 일이 없으니 스트레스 지수가 직장인들보다는 훨씬 낮았다. 그렇다고 사회와 완전히 단절돼 고립된 생활을 하는 게 아니니,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영향을 주고받는다.

집안에서 컴퓨터 모니터만 보며 일하다 보니 외로울 때가 많다. 한때는 외로움을 잊으려고 사람들을 만나며 교류를 하려고 부단히 애썼다. 기회가 될 때마다 술자리에도 자주 참석했다. 밤새도록 술잔을 기울이다 새벽에 귀가하는 날도 잦았다. 성인으로서 내가 어디서 뭘 할지는 전적으로 나한테 달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남자 후배가 뜻밖의 말을 던졌다.

"누나는 언제까지 그렇게 철없이 살 거야? 밤새 술 마셔도 남편이 뭐라고 안 해? 지금이야 아이가 없으니까 이렇게 자유롭겠지만, 계속 그럴 수 있겠어?"

한번은 남자 번역가와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내가 프리랜서 번역가라 밤낮 없이 일해야 하니까 남편에게 제때 밥을 차려 주지 못한다고 하자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반문을 하는 것이다.

성인 남녀가 결혼해서 함께 사는데 꼭 아내만 남편에게 밥을 차려 줘야 하나? 남편이 아내에게 밥을 차려 주는 건 이상한 일인가?라고 내가 반박하자 상대방은 끝까지 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또 한번은 글쓰기 모임에서 알게 된 남자 선배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동기들에게 그 사실을 털어놨다. 그중 한 남자 후배가 나보고 프리랜서로 혼자 일하다 보니 순진한 것 같다고 웃으며 별일 아닌 듯 넘기려고 했다.

그 후로도 이런저런 모임에서 성차별적 일을 당할 때마다 내 의견을 피력하다가 예민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 주변 사람이나 사회를 변화시킬 힘은 나한테 없으니, 애당초 갈등이 생기지 않게 나 자신을 단속하기로 했다. 가급적 술자리에 참석하지 말 것이며, 취하지 말 것이며, 자정 전에 집에 일찍 귀가할 것, 누구에게도 절대로 빈틈을 보이지 말 것.

하지만 나 혼자 행동을 조심한다고 문제가 다 해결될까. 이는 마치 미세먼지가 심해지자,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는 것과 같다. 미세먼지 자체를 없애지 않는 한, 그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 마스크 하나만으로 내 건강을 보장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이 사회에 차별과 폭력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다. 오늘 아무 일도 당하지 않았다면, 단지 운이 좋아서이다. 훗날 나한테 어떤 불행이 닥칠지 알 수 없다.

그래서 홍승은은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라고 강조한다. 내가 왜 불편한지, 왜 아픈지 말하고 또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처를 드러내야 비로소 상처가 치유된다. 동시에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불편하더라도 들어 줘야 한다.

저자의 글을 읽으며 계속 마음이 불편했다. 타인의 상처를 날것 그대로 들여다본다는 게 힘들었다. 그 다음, 저자의 상처에 나의 상처가 겹쳐지며 나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그동안 타인의 상처에 무관심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나도 모르는 새에 타인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줬을지 반성하게 됐다.

사람에 따라 책 제목에서 '불편'이 먼저 눈에 들어와 읽기도 전에 질책을 받는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은 여성뿐 아니라 성소수자, 노동자, 탈학교 청소년 등 소외된 모든 이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라고 힘을 북돋워 준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위로의 손을 내민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저자가 내미는 손을 덥석 잡을 수밖에 없다. 상대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상처를 보듬어 주고, 함께 울어 줄 수 있는 사람... 저자 홍승은에게 그런 신뢰가 쌓인다.

"점점 죽어가는 몸, 영원할 수 없는 관계, 불확실한 삶에서 어쩌면 눈물은 필수다. 독방에서 울 것인가, 광야에서 울 것인가. 어디에서든 울어야 한다면 나는 광야를 선택할 것이다. 적어도 나처럼 울고 있는 누군가가 보이는 곳에서 함께 울고 싶다. 그때 나는 인간이, 내 존재가 조금은 나아질 수 있다고 믿으니까."(296쪽)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홍승은 지음, 동녘(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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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하며 글 쓰며 세상과 소통하는 영상번역가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2021년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2019년 성교육 전문가와 함께 하는 대화집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2017년 그림책 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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