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전국 도처에 지자체끼리 경쟁하듯, 경연대회하듯 만연하는 '마을 만들기 운동 또는 사업'은 쉽지 않다. 법, 정책, 제도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사람이 없고 조직이 없는데 '마을만들기사업'이 잘 될 리 없다. '마을만들기'를 하려면 마을공동체를 책임지는 사업조직으로서 '마을기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 사업조직의 관리와 운영을 책임질 '잘 학습되고 훈련된 민주적 마을시민'이 필수 전제조건임을 말할 필요가 없다.

이런 마을시민과 마을기업이 준비된다면 법, 정책, 제도가 없어도 '사람 사는 마을, 사람을 살리는 마을' 즉 '살림마을'은 내발적으로, 창조적으로, 저절로 만들고 꾸릴 수 있다. 이렇게 이룩된 살림마을에서는, 도시민 체험관광객 등 외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구경거리나 놀이터를 만드는 '마을 만들기'를 하지 않는다. 마을은 상업적인 관광지나 공원 등 유흥의 공간이 아니라 인문적이고 사회적인 생활과 휴양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살림마을은, 원주민, 귀농인 등 내부인의 생활과 생존을 위한 삶의 질을 높이는 '마을 살리기' 또는 '마을 살이'를 실천하는 마을이다. 한마디로 '마을시민'과 '마을기업'을 중심으로 주체적이고 사회혁신적으로 실천하는 지속발전가능한 농촌‧지역공동체마을을 뜻한다. 앞으로 벌이는 마을공동체사업의 모델은 이런 방향과 가치를 지향해야 한다.   

무주 초리넝쿨마을의 ‘마을회의’에서 농촌주민들은 ‘마을시민’이 된다.
▲ 초리넝쿨마을 무주 초리넝쿨마을의 ‘마을회의’에서 농촌주민들은 ‘마을시민’이 된다.
ⓒ 정기석

관련사진보기


마을시민, 마을기업, 살림마을의 '세마을' 해법

이는 '세(3)마을 해법'으로 정리할 수 있다. 굳이 전근대적이고 국가통제적인 '새마을운동'의 정책이나 방식과 의도적으로 각을 세우기위해 이렇게 명명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마을시민들이 함께, 마을기업을 세우고 꾸려, 살림마을에서 먹고 살아가는 방법'이다.

'마을시민'은 '사회민주적 농민 또는 농촌주민'을 뜻한다. 농사짓는 농민과 귀농인, 농사짓지 않는 귀농인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마을기업을 창업하고 운영하는 사업주체가 된다. '마을기업'은 '사회경제적 농업'의 법적, 윤리적 책임주체를 의미한다. 여기에 농업 외에 그 전후방 연관산업까지를 아우른다. '마을시민들이 마을공동체를 위해 함께 설립하고 운영하는 농업․농촌경영체'를 일컫는다.

'살림마을'은 '사회생태적 농촌'에 다름아니다. 외부인의 구경거리나 놀이터로서 전시행정용 또는 경연대회용 마을이 아닌 내부인의 생활품격, 삶의 질을 높이는 마을이다. 지역공동체의 거점 또는 허브(Hub)마을로 기능한다.  

지난 십수년동안 농식품부, 행자부 등 정부에서 지원하는 '마을 만들기' 사업의 정책모델에사는 '마을시민'과 '마을기업'이 부재했다. 오로지 1년에서 5년 정도의 사업기간 동안 성과를 나타내기 위해 천편일률적인 '전시용, 경연용 마을'만 붕어빵 찍어내듯 양산됐다. '마을시민'과 '마을기업'이 준비되지 않는 마을에서 벌이는 '마을만들기'는 모두 실패한다. 원래 거짓말이었다.

함양의 ‘마을시민’들이 모이는 지역공동체의 허브(Hub) ’카페 빈둥‘
▲ 카페 빈둥 함양의 ‘마을시민’들이 모이는 지역공동체의 허브(Hub) ’카페 빈둥‘
ⓒ 정기석

관련사진보기


전문가 필요 없이, 행정은 간섭 말고, 주민 자력으로

마을만들기 같은 마을공동체사업의 과정과 결과를 책임져야하는 3대 주체는 행정, 주민, 전문가로 나뉜다. 어쩌면 현실의 현장에서는, 전전문적이 않은 '행정과 주민'이 풀지 못하는 문제를 '용역비'을 받고 대신 해결해주는 역할의 '전문가'가 가장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마을공동체가 벌어지는 전국의 지역과 사업현장마다 평판이나 성과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다.

심지어 마을공동체사업을 맡아 할 용역업체를 선정하는 입찰경쟁 과정에서 일을 잘 할 수 있는 업체보다 입찰경쟁에서 이기는 기술과 방법론이 뛰어난 비전문업체들이 득세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 십수년동안 전문가의 위상과 신뢰는 개선되거나 호전되지 않았다.  이제 마을주민들도 불만을 터뜨리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비싼 사업비를 들여가며 '전문가'를 꼭 우리 마을공동체사업 판에 끼어들여야 하는가"하고.

다만, 전문가를 자처하는 용역업체의 역량 부족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용역업체로서는 아무리 성실하게 열심히 업무에 임해도, 일을 잘 할래야 잘 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근본적으로 국가기간산업으로서 공익행위인 농업도 그렇지만 농촌 일도 사사롭게, 아무나 뛰어들면 안 된다. 마을공동체사업에서 전문가 시장이란 일개 민간 사기업들이 성실함과 진정성을 잃지 않으면서 수지타산도 맞추기에는 적절한 시장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수익성보다 공공성을 우선할 수 있는 공공에서 책임지는 게 맞다.

무엇보다 생태, 환경, 조경, 관광, 건축, 도시계획, 농학, 임학, 식품공학, 농경제학, 농업경영학 등 학교 안에서의 전공, 학점과 학위보다 학교 밖에서 현장 경력이 더 소용이 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외부 전문가의 역할을 내부의 주민이 맡아하는 건 어떤가. 그 마을과 지역을 가장 잘 아는 전문가는 바로 그 지역과 마을의 주민이 아닌가. 계획서 등 서류를 만드는 방법, 교육을 하는 방법은 가르치면 될 일이다. 주민들이 모여 협동조합 방식의 중간지원조직을 세워 교육, 계획, 컨설팅, 연구과제 등을 함께, 스스로 감당한다면 효율적이고 효과적일 것이다. 이때 또 하나의 사업주체인 행정은 EU의 농업회의소처럼 예산은 지원하되 간섭과 통제는 하지 않는 '팔길이의 원칙'만 잘 지키면 된다.

대구 북성로 도시재생사업의 성과물 ‘공구박물관’
▲ 북성로 대구 북성로 도시재생사업의 성과물 ‘공구박물관’
ⓒ 정기석

관련사진보기


마을공동체를 묶고 엮는 '지자체 협동경영체' 모델로

이렇듯 기존에 마을이나 권역단위의 범위와 규모로 이루어진 마을공동체사업이나 농촌지역개발사업은 근본적 한계와 구조적 취약점을 안고 있다. 바로 주민 역량의 한계, 적정 사업조직 구성 역부족, 규모의 경제 부적합 등의 실패 요인이 내재, 상존하는 것이다. 일단 마을, 권역 단위로는 적재적소에 배치할만한 기본적인 업무인력이나 역량 있는 경영자, 기획자, 관리자 조차 구하기 쉽지 않다. 마을시민과 마을기업을 준비할 수 없는데 '살림마을'을 제대로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사업의 범위와 규모를 최소한 '지자체 단위'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이른바 '지자체 협동경영체'를 마을공동체사업의 센터와 허브 역할로서 중심에 놓으면 어떤가. 이는 기초지자체 단위로 지역주민들이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서로를 위해, 그리고 마을과 지역공동체를 위해 설립한 공동사업체의 모습이다. 일종의 '지역단위 네트워크형, 사회적 경제조직 방식의 공동사업체'를 뜻한다.

전북 진안군의 진안마을주식회사는 이른바 '지자체형 협동경영체'의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로컬푸드 사업을 목적으로 진안군 21개 마을과 11개 단체, 농업인 등이 공동출자, 2011년 농업회사법인으로 설립한 '진안군민이 주인인 주식회사'다. 기존 마을공동체사업의 성과를 종횡으로 묶고 엮은 네트워크로 진화한 셈이다. 마을단위 사업의 선도 사례지인 임실 치즈마을도 자연마을과 행정리를 넘어 지역으로 사업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2015년 치즈마을의 마을운영위원회가 대주주로 참여하는 '농업회사법인 임실치즈레인보우 주식회사'라는 출자 회사를 새로 설립한 것이다.

진안마을주식회사나 임실치즈레인보우주식회사나 모두 일개 마을이나 기업이 목표로 하는 사익이나 욕심을 내려놓은듯 하다. 대신 앞으로는 지자체와 군민들과 더불어 공존하고 공생하겠다는 공익의 가치를 확고히 다졌다. 기존의 마을단위 사업이 안고 있던 사업성의 한계를 뛰어넘어, 지역공동체를 기반으로 '규모와 범위의 공익경제'를 구현하려는 현실인식과 목표의식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가령 마을공동체 단위에서는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고 가공식품을 기획하는 고민까지만 하면된다. 부가가치를 높여 가공하고 홍보하고 마케팅하는 나머지 어려운 일은 지자체 협동경영체에 떠맡기면 된다. 그렇게 믿을만한 '마케팅 에이젼시'가 지자체마다 버티고 있다면 사람도, 조직도 부족한 마을에서도 안심하고 마을공동체사업을 벌일 의욕과 용기가 생길 것이다. 마을공동체끼리 서로 묶이고 엮이는, 서로 채워주고 나누는 이상적인 네트워크형 지역사회 발전 모델로 진화할 것이다.   

세종시 전의면민들은 전문가없는 마을공동체사업을 위해 ‘전의면민사회적협동조합’을 준비하고 있다.
▲ 전의면 세종시 전의면민들은 전문가없는 마을공동체사업을 위해 ‘전의면민사회적협동조합’을 준비하고 있다.
ⓒ 정기석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 마을학개론(an introduction to Communology/ 마을에서 먹고 사는 법) : 귀농을 하거나 자발적 하방을 해서 마을에서 먹고 살려면, 사람답게 살아가려면, ‘마을이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마을, 공동체, 마을시민. 마을기업, 대안마을, 대안농정, 그리고 대안사회를 열심히 공부해서 체화해야 한다. 그러면 마을에서 사람답게 먹고 살 수 있다.



태그:#마을학개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 詩人(한국작가회의)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