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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탑 꼭대기에 올라가 있는 노동자들. 맨 앞이 오수일씨.
 광고탑 꼭대기에 올라가 있는 노동자들. 맨 앞이 오수일씨.
ⓒ 박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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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무게 달아보니까 8kg이 줄었어요. 광고탑이 좁고 위험하죠. 일어서면 현기증이 많이 나서 광고판 꼭대기 위에 올라가는 횟수도 많이 줄었어요. 힘은 없지만 아직은 견딜 만 합니다."

곡기를 끊고 물과 소금만 먹으며, 40m 광고탑 꼭대기, 쇳덩어리 사이에서 22일째 살아가고 있는 6명의 노동자 중 한 명인 오수일씨(46)는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다. 이인근 지회장은 4일 밤부터 심한 복통과 함께 목, 어깨 통증이 심해져 밤새 고통에 시달렸다. 5일 아침 긴급하게 의료진이 올라가 진단한 결과 농성을 지속할 수 없어 119구조대를 통해 병원으로 후송했다. 나머지 5명도 상황은 좋지 않지만 버티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부산 사람이다. 부산에서 태어나 학교를 다녔다. 식육점과 커피숍을 운영했고, 회사에 사람을 대주는 파견(용역)업체 일도 했다. 자영업은 쉽지 않았다. 경북 구미로 옮겨 다시 장사를 시작했지만 집안 살림은 좀체 나아지지 않았다.

2013년이었다. 아사히글라스라는 일본계 회사에서 사람을 뽑았다. 텔레비전, 휴대폰, 노트북 등 전자제품 엘시디(LCD) 화면에 들어가는 유리를 만드는 회사로 업계 1위라고 했다. 연 매출액이 1조 5천억 원에 이르고, 복지도 좋은 회사라고 했다. 그는 장사를 그만두고 입사원서를 냈다.

그런데 그는 정규직이 아니었다. 그의 작업복에는 아사히글라스가 아니라 GTS라는 하청업체 이름이 박혀 있었다. 그는 어떻게 다른지 몰랐다. 노동자에 대해 전혀 몰랐을 뿐만 아니라 노조는 강성, 귀족노조고 빨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가족, 친척들이 모두 그랬다. 지난 대선에서도 그와 가족, 친척들은 모두 박근혜를 찍었다.

노조는 빨갱이, 대선에선 박근혜 찍은 부산 사람

향린교회 조헌정 목사님이 광고탑에 올라와 연대를 약속하는 사진. 왼쪽이 오수일씨
 향린교회 조헌정 목사님이 광고탑에 올라와 연대를 약속하는 사진. 왼쪽이 오수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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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업무는 가로×세로 2m가 넘는 유리 원판을 현미경으로 검사해 기포나 이물질이 있는 부분을 오려내고, 나머지 유리를 사이즈에 맞게 잘라 다음 공정으로 보내는 일이었다. 3교대로 하루 8시간 근무를 했다. 1시간 40분 근무하고 20분 쉬는데, 그 시간에 담배도 피우고 화장실도 가고 점심때는 밥도 먹어야 했다.

하루 8시간은 그렇게 일할 수 있는데, 문제는 하루도 쉴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한 조가 일요일에 쉬면, 나머지 두 조가 12시간 맞교대로 근무를 해야 했다. 하지만 조원 중에 결혼식이나 상갓집 등 애경사가 생겨 연차를 내면 일요일 쉬는 조에서 때워야 했다. '땜빵'이 없는 일요일이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1년 365일 돌아가야 하는 공장의 특성상 4조3교대, 또는 4조2교대로 일해야 안정적으로 쉴 수 있다. 아사히글라스는 정규직을 4조3교대로 운영해 3일 일하고 하루 쉴 수 있게 했다. 그런데 돈을 더 벌기 위해 비정규직은 3조3교대로 돌렸기 때문이었다.

2014년 1년 365일 중 명절, 공휴일, 일요일 등을 모두 포함해 그가 쉰 날은 5일이었다. 그의 동료들이 쉰 날도 평균 10일 미만이었다.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355일×8=2896시간이었다. 세계 2위인 한국 노동시간(연간 2113시간)은 물론 세계 1위인 멕시코의 노동시간(2246시간)보다 594시간, 74일을 더 일했다.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노동시간 비교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노동시간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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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아사히글라스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2015년 독일 노동자의 연간 노동시간보다 두 배 넘게 일했다. 선진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긴 노동을 시켰는데, 고용노동부는 주당 68시간을 넘지 않는다고 무혐의 처분을 했다.

유리에 베여서 살이 찢어지고 미세한 유리 가루를 마시면서 일하는 고된 일을 한 달 내내 하고 집에 가져간 돈은 200만 원이 전부였다. 네 가족이 먹고 살 도리가 없어 아내가 맞벌이를 나갔다.

"너무 억울하더라고요. 아, 그래서 사람들이 노조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 했죠."

2015년 봄, 동료들과 모여 노조를 만들기로 했다. 하지만 아사히글라스는 그가 속한 하청업체 GTS와 계약을 해지했고, 하청업체는 170명을 희망퇴직으로 내보냈다. 하루아침에 그는 해고자가 되고 말았다. 박정희의 도시 구미에서, 그가 대통령으로 뽑아준 박근혜 정권 하에서 그는 '개돼지'처럼 일하고 일회용 컵처럼 버려졌다.

비정규직은 1년 중 10일도 못 쉬고 일해

광고탑에 오른 노동자들이 쉬는 장소.
 광고탑에 오른 노동자들이 쉬는 장소.
ⓒ 박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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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생활 2년, 오수일씨는 구미와 서울을 오가며 억울한 사연을 알렸다. 하지만 사람들은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삿대질을 하며 차가 막힌다고 데모를 그만하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그가 자영업을 할 때 조끼 입고 구호 외치는 사람들을 적대했던 것처럼.

억울한 사연을 가진 노조가 모여 공동투쟁을 하기로 했다. 모이면 힘이 나고, 좀 더 목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투쟁을 하면서 박근혜 정권과 재벌이 비정규직 세상을 만들려고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에 천막을 치고 박근혜 정권 퇴진을 외쳤다.

사람들의 시선은 여전했다. 노동자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철통같은 정권이 무너지겠느냐고 했다. 가난한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이 싸우고 있는데 '귀족노조'라고 비난하기 일쑤였다. 그가 부산에서 노조를 향해 '빨갱이'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2016년 10월 광화문에 첫 촛불이 켜지고, 숨죽여있던 박근혜 퇴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10만 명의 촛불이 50만 명, 100만 명으로 늘어났다. 그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드디어 우리가 이야기한 박근혜 퇴진 투쟁이 벌어지고, 정리해고 비정규직의 문제도 알려지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박근혜 퇴진 광장에서 노동의 목소리는 아주 작았다.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 석방을 요구하자 "촛불에 숟가락 얹지 말라"는 비아냥이 들려왔다. 해고노동자들에게 손을 내미는 시민도 많았지만, 외면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촛불 연단에 올라 노동자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게 제일 억울하고 아쉽다고 해야 할까요? 이번 촛불로 적폐 청산이 되어야 하는데, 대통령만 감옥에 갇히는 것으로 끝났어요. 적폐가 그 자리를 유지하고, 노동자들의 소리나 민중들의 절박한 삶을 대변해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고공농성을 하기로 결심했죠."

고공 농성의 장소로 촛불이 타오른 광화문 네거리를 택한 것도 그 이유였다. 하지만 시민들은 정권교체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심상정 후보와 박원순 서울시장만 광화문 고공농성장을 찾았다. 문재인, 안철수 후보는 광화문 광장에서 유세를 하고도, 농성장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사라졌다. 회사에서 교섭하자는 연락도 없다.

"올라왔는데도 달라진 게 잘 보이지 않아요. 조직된 노동자들의 움직임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하나가 되는 게 보이지 않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정치권에서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고, 하물며 제가 속한 금속노조 위원장도 오지 않는데, 누가 신경을 쓰겠어요?"

하지만 그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말없이 찾아와 연대하고 응원하는 많은 노동자 시민들이 있기 때문이다. 같은 처지에 있는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이 노동악법 철폐를 요구하며 함께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들의 응원도 고맙다. 페이스북을 통해 아빠가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큰 아들이 전화를 걸어와 아빠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며, 제발 건강하게만 내려와 달라고 했다. 노동조합 행사에도 찾아와 도와주고, 남편을 대신해 돈벌이는 하면서도 남편을 응원하고 있는 아내도 고맙다.

수일씨는 대학생과 고등학생인 두 아들이 얼마 후면 세상에 나갈 텐데, 아들들이 살아갈 세상은 비정규직 설움이 조금이라도 줄어든 세상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싸워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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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박점규 시민기자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입니다



태그:#비정규직, #고공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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