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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부동산은 소득과 부의 양극화, 주기적 불황, 지역격차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해 왔습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부동산 불패신화와 토건국가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부동산공화국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토지+자유연구소는 부동산공화국을 해체하고 공정국가의 길을 열지 않고서는 새로운 대한민국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에서 연재 글 5편을 기고합니다. 이 글은 그 네 번째입니다. [편집자말]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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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제 일처럼 기억한다. 참여정부 시절 진행된 부동산 투기와 이를 잡기 위한 대책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들을. 백가쟁명의 대책들이 쏟아진 가운데 주된 논쟁의 축은 보유세 강화와 분양제도 개선 사이에 형성됐다.

창궐하는 부동산 투기를 진정시키는 데 보유세 강화와 분양제도 개선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중요하고 선차적인가를 둘러싼 논쟁이었다. 보유세 강화가 더 중요하고 선차적이라 생각했던 나는 그 논쟁의 한복판에 있었다. 당시 나는 분양원가공개 및 분양가상한제 등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아 투기가 기승을 부린다는 학자와 경실련 등의 시민단체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분양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아 투기가 창궐한다는 이들의 생각은 대략 이런 것일 것이다.

'분양가 자율화가 시행된 이후 아파트 분양가가 가파르게 상승했다. 이렇게 상승한 분양가가 끌어 올린 부동산 가격은 다시 고분양가 책정의 기반이 된다. 따라서 분양원가를 공개해-이는 필연적으로 분양가 상한제 도입을 수반한다-건설사들이 마음대로 분양가를 높여 시장을 왜곡시키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러면 투기는 사그라든다.'

그런데 부동산 시장이 정말 이렇게 움직이는 것일까? '분양원가 공개 및 분양가상한제' 프레임이 지닌 치명적인 한계는 시장에서 가격이 형성되는 매커니즘을 오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 시장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은 매우 다양하고 복합적이다.

우선 인구수와 분포, 도시화 정도, 산업구조의 변화 등의 요소, 거시경제(금리, 환율, 무역수지, 경제성장률, 1인당 실질구매력, 실질 GDP 등)지표, 수급 등이 큰 틀에서 부동산 (주택)가격을 결정한다.

물론 정부의 부동산 정책- 공급(공급량-공급유형과 로케이션 등, 분양방식-원가공개, 후분양제, 청약제도 등)정책, 수요(세제-보유세 및 양도세, 실질주택보급율 등)정책, 금융(주택담보대출-LTV 및 DTI- 관리)정책, 주거복지 정책, 개발이익환수장치(개발부담금, 재건축 규제 등)정책 등-도 부동산 가격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분양원가 공개 및 분양가 상한제' 프레임은 이런 사정을 간과한 채 신규아파트를 공급하는 공급자가 분양가격을 임의대로 결정할 수 있다는 비현실적인 가정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한 업체가 공급을 독점하는 상품이 아닌 한 그와 같이 극단적인 공급자 우위의 시장은 형성될 수 없다.

참여정부 내내 지속된 고분양가 행진이 가능했던 이유는 분양원가 공개 혹은 분양가 상한제를 전면적으로 시행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투기적 가수요의 창궐로 말미암아 부동산 가격이 버블 세븐 위주로 상승했고, 그 결과 공급자들이 기존의 분양가는 물론이거니와 주변 시세 보다 한참 높은 가격에 주택을 분양해도 이를 시장에서 구매할 수요가 형성되었던 때문이다. 즉 주변시세보다 터무니없이 높은 분양가는 투기적 가수요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이를 혼동해서는 곤란하다.

예를 들어, 부동산 시장이 안정된 상황에서 공급자가 주변 아파트의 시세보다 30~50% 정도 높은 분양가로 아파트를 분양하려 할 경우 대량의 미분양이 발생할 것이 분명하다. 개별 공급자의 힘만으로 시장의 가격 매커니즘을 결정할 수 없기 때문에 이는 당연한 일이다. 부동산 시장이 안정된 상황에서 신규아파트의 분양가는 주변 시세에 신규라는 장점이 더해진 수준에서 결정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분양원가 공개'는 건설업계의 부패 근절 및 투명성 제고 차원에서는 유효한 정책이겠으나, 이를 부동산 문제 해결의 해법으로 생각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것이다. '분양원가 공개 및 분양가 상한제' 없이는 부동산 시장을 정상화시킬 수 없다는 주장은 폭리를 취하는 건설업체를 희생양(?)삼아 대중들의 분노를 촉발시키는 데에는 효과적일지 모르나, 부동산 문제의 해결과는 별 상관이 없다.

한편 건설사의 이익에 복무하고 소비자들의 정보 및 이익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선분양제 역시 후분양제로 대체되는 것이 옳다. 하지만 후분양제가 부동산투기억제 대책이라고 할 수는 없다. 후분양제는 소비자 대책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대부분의 부동산 투기는 부동산 불로소득을 노리고 창궐한다. 따라서 부동산 불로소득을 환수하지 않고 투기를 진정시킬 길은 전혀 없다. 이를 위한 최적의 정책수단이 보유세다. 보유세만으로 투기를 완벽히 잠재울 순 없지만 보유세 없이 투기를 잡을 순 없다. 더구나 보유세는 형평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최고의 세금이기도 하다.

정리하자. 보유세 강화와 분양제도 개선은 같은 레벨의 정책이 아니다. 보유세는 부동산 대책과 조세제도의 중핵 중 중핵이다. 분양원가 공개, 분양가상한제, 후분양제 등의 분양제도 개선은 부동산 정책 중 하위 파트에 해당한다. 보유세는 본에 해당하고, 지극히 무거우며, 선차적이다. 반면 분양제도 개선은 말에 해당하고, 가벼우며 강조하거니와, 후차적이다.


태그:#보유세, #분양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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