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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영화홍보회사에 다니는 딸아이를 데리고 완주군에 내려왔어요. 친구들은 다 반대를 하더군요. 남들은 애들을 서울로 보내려고 난리인데 서울에 있는 아이를 데리고 올 이유가 없다는 거예요.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시골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시골에서 다니고 30년 넘게 서울에서 살아보니 서울보다는 시골에서 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지방에서 살면 서울처럼 치열하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게 가장 좋은 점이지요. 물론 치열하지 않다는 것이 게으름이나 나태함 혹은 대충 살아간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제가 말하는 치열함은 죽기 살기로 혹은 아등바등 하는 삶을 말해요. 정말 서울에서는 옆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앞만 보고 죽기 살기로 달려야 했거든요.

저는 아이들이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전후좌우 바라보며 살기를 바라요. 꽃이 피는 계절엔 꽃을 바라보며 감탄도 해보고, 가을엔 낙엽을 밟아볼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았으면 해요. 눈이 부시게 푸르른 하늘과 별빛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누리고 살았으면 해요. 시골에서는 이런 마음의 여유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딸에게 귀촌을 권했어요.

조금만 노력하면 의외의 아이템들이 있으니 시골은 틈새가 많은 블루오션이라 생각해요. 뜻하지 않은 곳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지요. 대박으로 큰돈을 벌지 않아도 충분히 누리며 살 수 있는 곳이 시골이니까요. 더욱이 완주는 청년들을 위한 다양한 정책들이 있고 귀농, 귀촌한 청년들도 많아서 아이가 잘 적응하리라 생각했어요.

마침 3월에 "완주 크리에이티브 스타트 청년창업 지원사업"이 있어서 딸아이가 지원했고 서류심사와 면접을 거쳐 지원대상자로 선정되었어요. 크리에이티브 스타트 청년창업 지원사업이란 완주군에 거주하는 만 35세 미만의 청년들이 창업할 수 있도록 돕는 완주군청의 프로그램이예요.

창업을 희망하는 청년들에게 필요한 실전지식을 교육해 주고 창업자금도 지원해 준답니다. 거기다 창업에 필요한 컨설팅까지 받을 수 있으니 딸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기대해요.

창업교육을 받기위해 딸아이는 이서 혁신도시로 출퇴근을 해야 하는데 적당한 대중교통이 없어서 기사노릇을 해야만 했어요. 그런데 이 길이 참 좋습니다. 아침에 교육장이 있는 이서 혁신도시에 아이를 데려다 주고 오는 길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뚝방 벚꽃길이거든요.

출퇴근 길에 만나는 벚꽃길. 이길을 지날 때마다 어릴적 꽃비에 대한 추억으로 미소 짓는다.
▲ 삼례 뚝방길의 벚꽃 출퇴근 길에 만나는 벚꽃길. 이길을 지날 때마다 어릴적 꽃비에 대한 추억으로 미소 짓는다.
ⓒ 손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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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례 뚝방길의 벚꽃
 삼례 뚝방길의 벚꽃
ⓒ 손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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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터널을 지날 때마다 저도 모르게 감탄사가 터져 나옵니다. 진해 군항제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이지역의 벚꽃은 오래되었고 아름다워요. 더구나 젊은 날의 기억을 추억으로 누리게 하기에 더 행복하답니다.

제가 어렸을 적부터 전주, 익산, 군산을 잇는 전군가도는 벚꽃으로 유명하였어요. 대학 4년 동안 익산에서 전주로 통학을 하였는데 항상 중간고사 기간에 벚꽃이 절정이었어요. 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시험공부를 하다가 지친 몸을 이끌고 마지막 버스를 타곤 하였는데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라 주변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깜깜한 어둠 속에 버스의 헤드라이트만 한줄기 빛으로 달리고 그 빛 속에 벚꽃들이 흩날리면 그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환상적이지요. 그것을 바라보며 마음으로 다짐을 해요. '시험이 끝나면 내 기필코 꽃구경을 떠나리라.' 그러나 시험이 끝나면 꽃은 지고 잎이 돋아 그 몽환적 아름다움은 이미 먼 이야기가 되어 버렸어요.

엄마와 같이 있고 아무리 경치가 아름다워도 피 끓는 청춘에게 시골살이는 더욱이 대중교통이 불편한 시골살이는 지루하고 따분하지요. 딸아이도 시간이 지날수록 힘들어 하기 시작했어요. 더구나 집에 텔레비전도 없으니 귀가하면 아니, 해가 지면 정말 할 일이 아무 것도 없어요.

삼례 뚝방길
 삼례 뚝방길
ⓒ 손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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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례읍 뚝방 벚꽃길
 삼례읍 뚝방 벚꽃길
ⓒ 손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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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에 완주지역 청년들의 커뮤니티인 '플래닛 완주'를 알게 되었어요. 귀농 귀촌한 청년들과 완주 출신 청년들 그리고 우석대 학생들이 모이는 모임인데 매주 화요일 10여 명 정도 모여 저녁식사를 해요. 지루하고 따분한 시골생활에 활력이 될 수 있겠다 싶어서 나가보길 딸에게 권했어요. 또래를 만나 이야기 하고 놀다보면 적응이 쉬울 거란 판단을 내렸거든요.

첫 모임이 있는 날 모임 장소까지 아이를 데려다 주고 언제 데리러 가야할지 문자를 넣었더니 바로 오라는 거예요. '재미가 없었나? 왜 벌써 오라하지?' 괜히 보냈나? 별별 생각이 다 들더군요. 아이를 데리고 오며 재미없었냐고 물었어요.

너무 재미있었다는 대답이 돌아왔어요. 의외의 대답이었어요. 재미없어서 일찍 오라는 줄 알았거든요.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너무 좋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다행이지 뭐예요. 다시 서울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기 시작했고 따분함을 힘들어 하던 때에 좋은 모임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감사했어요.

완주에는 청년들을 위한 지원 사업이 많이 있더군요. 이런 행정적 지원을 통해 청년을 위한 일자리들이 마련되어지고 '플래닛 완주'같은 청년들의 커뮤니티가 활성화 된다면 청년들이 시골을 떠나지 않고 남게 될 것이라 생각했어요. 어쩌면 시골생활을 즐기기 위해 뜻있는 청년들이 찾아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스물여섯 피 끓는 청춘인 딸아이는 한고비를 넘기고 시골생활에 한걸음 더 다가갔고, 아이와 저는 이렇게 한걸음씩 천천히 시골생활에 적응하고 있는 중입니다.

완주군 삼례읍 뚝방길
 완주군 삼례읍 뚝방길
ⓒ 손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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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http://wanjublog.com/220996634549
완주군 공식블로그에 5월 2일 올린 글입니다.



태그:#벚꽃엔딩, #꽃비에대한추억, #청년귀촌, #플네닛완주, #화요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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