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런던 프라이드>

영화 <런던 프라이드> ⓒ 파테


Pride: 1. 자랑스러움, 자부심, 긍지 2. 자랑거리 3. 자존심 (네이버 사전)

2017년 5월 1일 노동절을 맞아, <런던 프라이드>(Pride, 2014)를 보았다. 영화를 보기 위해 관련 정보를 제대로 찾아보는 편이 아니라, 영화 포스터에서 예상되는 청춘들의 고민은 그저 '성정체성'에 대한 사회적인 저항, 정도로 지레짐작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영화는 내게 '연대 (solidarity)'의 힘에 대해 끝없이 얘기하고 있었고, 결국은 사회에서의 수많은 차별과 배제의 문제가 어느 한 영역으로 규정될 수 없음을 '마음'으로 전달하고 있었다.

"요즘엔 집회에 나가서도 별로 맞지도 다치지도 않아. 왜 그런지 이상하지 않아?"

평소와 다름없이 '성소수자의 권리'를 위한 행진을 마치고 난 어느 날, 모임을 이끄는 마크가 이와 같이 질문을 던진다. 갑자기 이유가 궁금해지는데, 결론은 너무나 명쾌했다. 1984년, 당시 영국의 수상이던 마가렛 대처와 대립하고 있던 광부 노동조합에게 경찰력을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뜬금없긴 하지만, 그들은 '그들에게 지금까지 가해졌던 폭력을 지금의 광부들이 받고 있다'는 이유로 동질감과 연대의식을 느끼게 되고, 급기야는 광부들을 위한 모금운동을 진행하며 'LGSM (Lesbian and Gay Support Miners, 광부를 지지하는 동성애자모임)'을 조직한다. 사회로부터의 냉대와 폭력을 '당해봤기에 그들을 이해한다'는 단순하지만 명쾌한 이들의 접근은, 하나의 사안에 대해서도 몇 개의 층위와 이해관계를 고민하는 나의 모습과 겹쳐져서 부끄러웠고 의아했다.

하지만, 때는 1984년. 그들은 'LGSM'의 연대와 지지를 전달할 광부 노조를 찾아보지만, 그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순간 모두 외면당하고 만다.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웨일즈 탄광촌의 광부들과 연결이 되었고, 그들을 만나기 위해 런던을 찾아온 노동조합의 간부인 다이의 첫 대면은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그들에게 지지의사를 표명한 단체가 '성소수자들'의 연대임을 알게 된 그는, 순간적으로 주저하나 그들이 자신들에게 '용기있게' 내민 손을 피하지도 외면하지도 않는다.

'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게이를 만났습니다. 이 순간이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들의 연대와 지지에 진심으로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저희는 오래된 투쟁으로 지쳐있습니다. 당신들이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 준 것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전쟁터에서 누군가의 등에 의지할 수 있다는 든든함을 느끼게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그들은 친구가 되었고, 수많은 갈등을 '연대'의 공감으로 함께 이겨낸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그들을 찾아온 젊은 성소수자들을 대하는 모습을 관찰하는 것도 무척이나 즐거운 경험이었다. 우리 사회의 '어르신'들에게 쉽게 발견되는 완고함과 저항이 그들에게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사회의 통념이 심어둔 공포는 소수자 집단 사이의 깊은 '공감과 연대'로 이겨내고야 만다. 백발에 두꺼운 돋보기를 낀 할머니가 '채식주의자'인 레즈비언 커플을 위해 요리를 배워 선물하는 장면을 보고 있자니, 그들이 단순히 머리로만 연결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영화 <런던 프라이드>

영화 <런던 프라이드> ⓒ 파테


'노동의 문제에 대해서는 고민하면서, 여성의 문제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다는 게 이해가 되요?'

영화를 보는 동안, 어쩔 수 없이 지난주 우리를 토론과 갈등의 장으로 이끌었던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논쟁이 떠올랐다. LGSM의 광부(Miners)라는 단어가 '소수자(Minors)'와 겹쳐지는 것도 묘한 느낌이었다. 결국, 우리가 '차별'과 '배제'에 대해 사회적인 고민을 시작하는 순간, 우리가 마주해야 하는 것은 수 많은 '소수자'들이 겪고 있는 문제이다. 우리가 그 동안 외면해 왔던 '다수가 아닌 그들'에 대한 고민 말이다. 어쩌면, 영화에서 (성소수자들이) 광부들을 돕겠다 결심한 것도, (광부들이) 성소수자들의 지지를 받아들인 것도, 그들 모두가 같은 '소수자'로서의 공감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아닌가.

민주주의가 의견 수렴을 위해 선택한 '다수결'의 원칙은, 사회에서 '다수(Majors)'의 권리를 보호하기에 적합한 제도이기에 공격을 받는다. 게다가, 우리가 다수를 위한 정책에만 관심을 갖게 되면, 사회의 '소수들'은 세상이 원하는 '다수의 길'을 가도록 선택을 강요받거나 이를 인정하지 못하면 '차별의 대상'으로 사회에서 '배제'되어 왔다. 차별의 영역은 어디든 가리지 않는다. 여성이어서, 장애인이어서, 지방에 살고 있거나 서울에 살고 있지 않아서, 소득이 낮아서, 결혼하지 않아서, 아이를 낳지 않아서, 맞벌이를 포기하지 않아서, 정규직이 아니라서. 일일이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다만, (이것들도 다 해결되지 않았는데) 지금부터는 이보다 더 민감한 문제들과 맞닥뜨리게 될 것임을 우리는 이미 지난주에 확인했다.

정의당 포항유세에서의 성소수자 지지 피켓 지난 4월 30일. 포항 죽도시장에서 있었던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유세 중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입니다. 대선후보의 선거유세에서, 그것도 보수의 심장이라는 대구경북의 한 가운데에서 가능한 풍경으로는 믿어지지 않지만, 이것이 2017년의 대한민국입니다.

▲ 정의당 포항유세에서의 성소수자 지지 피켓 지난 4월 30일. 포항 죽도시장에서 있었던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유세 중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입니다. 대선후보의 선거유세에서, 그것도 보수의 심장이라는 대구경북의 한 가운데에서 가능한 풍경으로는 믿어지지 않지만, 이것이 2017년의 대한민국입니다. ⓒ 이창희


개인적으로 이번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동성애'이슈가 이렇게 불거질 것은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기회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표면으로 끌고 올라오게 된 것은 사회의 진보에 대한 명확한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힘들게 얻어낸 논쟁의 기회를 바탕으로, 우리의 '연대'가 모든 '소수자에 대한 차별'로 영역을 넓혀갈 수 있기를 바란다. 광부들의 문제가 오직 광부들에 머물러 있지 않았기에 영국은 1985년 성소수자의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고, 그들의 '연대의식'은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강한 '노동당'을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현 영국 노동당 당수인 제레미 코빈의 '투표독려' 메시지를 전달하며 글을 마친다. 자부심(Pride)은  미래를 위해 연대한 '우리'의 것이고, 수치심은 '그들'의 것이어야만 한다.

"이번 선거는 기득권과 노동자 사이에서의 선택이다. 우리에겐 21세기의 미래를 위한 정부가 필요하다. 우리는 소수의 기득권이 아닌 다수의 '우리'를 위한 국가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 영국 노동당 당수 제레미 코빈 페이스북 (2017.04.22)

오늘날의 영화읽기 런던 프라이드 성소수자 사회적 연대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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