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만 모르는 상황을 설정하고 누군가를 속이는 일에는 묘한 쾌감이 있다. 공식적으로 거짓말을 해도 되는 만우절 같은 날이 생긴 것도 그런 카타르시스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 상황이 아니므로 속이는 사람은 속는 사람의 반응을 보며 즐기고 웃을 수 있다. 그래서 '몰래 카메라'는 세계 어떤 방송사에서건 한 번쯤은 시도해봤을 만한 콘텐츠다. 진실이 아니라는 지점에서 어떤 심각한 상황도 웃음으로 결론지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 포인트다.

지나치게 손쉬운 접근 방식

 '몰카'를 주재료로 만든 예능,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바뀐 시대상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

'몰카'를 주재료로 만든 예능,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바뀐 시대상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 ⓒ MBC


한국에서도 이경규로 대표되는 몰래카메라 콘텐츠는 상당히 오랫동안 예능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이경규의 몰래카메라는 1991년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처음 방송된 이래, 수차례 리메이크됐다. 이경규를 내세운 MBC뿐 아니라 다른 방송사에서도 연예인뿐 아니라 일반인들의 반응을 보는 몰래카메라 콘텐츠는 관찰 카메라, '스타 이런 모습 처음이야' 등의 이름으로 숱하게 활용되었다. 또한 <런닝맨><무한도전><1박 2일> 등 어느 예능에서든지 몰래카메라를 부분적으로 이용하며 출연자들의 반응을 보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이렇게 2017년 현재까지 몰래카메라는 가장 손쉬운 예능의 접근 방식이다. 그래서일까. <진짜 사나이>가 종영한 후 방영되고 있는 <은밀하게 위대하게>(아래 <은위>)는 몰래카메라를 전면에 내세웠다. 현재의 예능 트렌드는 몰래카메라를 이용하여 활기를 불어넣는 수단으로 사용은 할 수 있어도 그런 형식을 전면에 내세워 목적으로 삼지는 않는다. 그러나 <은위>는 기승전결이 모두 '몰카'라는 형식 속에서 이루어진다. 속이지 못하면, 프로그램 자체가 성립이 되지가 않은 것이다.

1991년 이후 16년이 지났지만 <은위>가 보여주는 몰카 프로그램의 세상은 그때와 비교해 더 나아진 것이 없다. 스타를 섭외하고 그 스타에게 황당한 상황을 던져주고, 그 스타의 반응을 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몰카임을 알려주는 것. 이야기는 뻔하고 새로운 것이 없다. 이경규가 출연을 거절한 이유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더 큰 문제는 그 뻔한 이야기를 상쇄할만한 긴장감이나 소재도 없다는 점이다. 이야기는 고조되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돌다가 종료되고 의표를 찌르는 의외성은 기대하기조차 어렵다.

몰카를 바라보는 '은밀'한 시선은 가학적

 상황은 밋밋하지만, 몰카를 바라보는 시선은 충분히 가학적이다.

상황은 밋밋하지만, 몰카를 바라보는 시선은 충분히 가학적이다. ⓒ MBC


그러면서도 <은위>는 몰카의 전형성이라고 할 수 있는 가학적인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동생이 사기 계약서에 사인하는 상황에 동석하거나(산다라 박 편), 병에 걸려 생업에 지장을 받는다는 친구의 거짓말이 펼쳐지거나(박정현 편), 실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은 후, 선배 앞에서 당황하는 모습을 관찰하거나(홍진영 편) 하는 식이다. 다른 연예인들의 몰카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스토리로 흘러간다.

이 안에서 연예인들의 성품은 주목받는다. 친구를 위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거나, 주어진 일을 끝까지 해내거나, 황당한 미션들을 수행하는 장면들은 그들의 순수성을 목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다. 그러나 이 순수성은 조작된 것이다. 그들의 진심이 조작된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황당한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을 만들고 그 안에서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은 상대적인 약자로 비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상황 자체를 미리 알고 있거나 중간에 눈치채지 못했다면 그들이 황당한 일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은 진실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느끼는 당황스럽고 슬프고 때때로 화가 나기까지 하는 감정들은 이 한마디로 정리된다.

"미안, 장난이었어."

어떤 상황이든 조작된 상황에서 그들이 적극적으로 어떤 일을 해야만 결론이 나는 상황에서 발을 뺄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억지스러운 상황에 사람을 던져놓고 그 반응을 구경거리 삼는 것은 관음증에 바탕을 둔 재미며 가학적인 행동이다. 몰카를 예능에 활용할 수는 있겠지만, 그 자체가 목적이 될 때 그 가학성은 더 주목받는다. 몰카를 통해 어떤 스토리가 설명되거나 예능의 흐름이 자연스러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속였다'는 쾌감만이 있는 <은위>의 기획은 지나치게 구시대적이다.

설득하지 못하는 몰카, 예능의 흐름을 거스르다

 황당한 상황을 견뎌낸 뒤 돌아오는 허무함.

황당한 상황을 견뎌낸 뒤 돌아오는 허무함. ⓒ MBC


우리는 <은위>를 보면서 몰카를 기획한 목적을 설득당하지 못한다. 몰카의 목적이 단순히 속이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그 속이는 과정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그저 그들이 저런 황당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반응할까에 대한 변태적인 시선에 불과하다. 다른 목적이나 신선한 이야깃거리 따위는 없다. 그렇다고 몰카의 준비성이나 기획 방식 자체가 특별하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제작비가 여의치 않은 듯, 상황은 몇 명의 엑스트라를 동원한 작은 세트로 이루어질 뿐이고 그런 소박함은 몰카의 재미마저 몰락시킨다.

차라리 몰카의 세심한 이야기 구조로 기승전결을 만들어 몰카의 스펙타클함을 살렸다면 모르나 그저 가짜 오디션, 가짜 점쟁이, 가짜 후원 방송 등의 상황만을 던져주고 예상 가능한 범주에서 일어나는 몰래카메라는, 우리가 그동안 친구에게 쳤던 장난 이상의 희열을 선사하지 못한다. 굳이 주말 예능 채널에서 그런 장면을 봐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어떤 방식을 택하든, 몰카가 주가 되는 시대는 갔다. 바야흐로 캐릭터의 시대다. 요즘 예능에 필요한 것은 단순한 이야기 구조라도 그 구조 속에서 캐릭터가 발견되고 그 캐릭터로 인한 웃음이 창출될 수 있는 환경이다. <아는 형님>의 김희철과 <은위>의 김희철이 다른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면 답은 나온다. <은위>에는 착하고 순수해 보이는 연예인들은 있어도, 예능에 적합한 캐릭터 따위는 없다. 그것이 바로 몰카의 한계다. 예능의 성공은 섣불리 담보할 수 없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의외의 대박이 터지기도 하지만 의외성이 전혀 없는 예능에서는 그런 일을 기대할 수 없다. 시작한 지 5개월이 지났지만, 일요일 황금시간대에도 불구하고 <은위>의 저번 주 시청률은 5.2%에 불과했다. 제작진은 부인했지만, 폐지설이 나오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우동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 윤종신 이국주 김희철 몰래카메라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