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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농촌에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다. 사람도, 돈도, 희망도 없는 사막같은 공간이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인구 밀도가 낮고 생산인력이 부족한 이런 농촌에서 어떤 사업이라도 벌이는 건, 새로 기업을 설립해 창업을 하는 건 어쩌면 무모한 실험일 것이다. 농촌은 이미 높은 시장 실패의 위험이 상존하는 비생산적, 비창조적 벽지로 전락한지 오래이다. 오늘날 공동화, 형해화된 농촌지역의 특성상 구조적, 환경적으로 충분한 규모와 지속가능한 기간의 상권형성은 사실상 어렵다.

그렇다면 농업 비즈니스, 농촌 창업이란 모두 기만이고 거짓말인가. 이런 의심이 든다면, 기업부도와 시장실패의 위험을 예방하거나 최소화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을 택하면 된다. 마을시민들이 힘을 모아 '마을기업'을 함께 세우고 꾸리는 것이다. 그것도 농촌의 주민들이 협업을 통해 생산·소비협동조합을 결성한다면, 나아가 소득과 일자리 목표에 매몰되지 않는 사회적 협동조합 같은 '사회적 마을기업'은 농촌지역에서도 자립, 자조 가능한 유력한 자구책으로 작동할 수 있다.

이런 사회적 마을기업을 통한 '협동적, 연대적, 자조적 지역사회 발전 전략은 주민의 삶의 질 향상, 지역사회 내부역량 증진 등의 '사회적 효과'를 가져온다. 행정, 주민 등 지역사회 발전의 추진주체들은 소득이라는 경제적 지표보다는 지역사회 다수 주민의 편익을 우선 추구하기 때문이다. 특히 그 지역사회의 구성원 절대다수가 참여하는 '지역사회 또는 지자체 단위의 협동조합'을 조직할 수 있다면, 개별 농민 또는 지역주민 구성원의 개별적, 개인적 욕구보다는 지역사회 공통의 공동선이라는 가치관까지 공유하고 분배할 수 있다. 소득, 일자리라는 정책의 실리는 물론 명분까지 확보할 수 있다.

특히 협동조합은 '사회적 마을기업'을 이루는 실질적 방법론이다. 또 지역사회의 사회적 자본(Socail capital)을 생산하고 축적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 지역사회 주민들이 협동조합 발기인으로, 임원으로, 조합원으로, 이용자로 참여, 협동조합의 발전과정, 조합원 역할, 리더십 등을 경험하고 공유하는 과정에서 신뢰, 규범, 네크워크 등의 사회적 자본이 형성되는 것이다.

 ‘칠곡인문학마을 협동조합’이 벌이는 칠곡인문학마을 마을공동체사업
▲ 칠곡인문학마을 ‘칠곡인문학마을 협동조합’이 벌이는 칠곡인문학마을 마을공동체사업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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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의 삶의 질과 지역의 품격을 높이는 '사회적 마을기업'

'사회적 마을기업'은 농촌주민의 삶의 질을 높인다. 지역사회의 품격을 올린다. 영광의 '사회적 마을기업' 여민동락 공동체를 보면 그 효과를 실증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2011년 <마을을 먹여 살리는 마을기업>을 통해 마을기업을 마을마다 세워 형해화, 공동화된 농촌마을 공동체를 복원하고 재생하고자 제안했다. 마을기업을 지역마다 꾸려 파편화되고 사막화된 지역 사회에 활력과 희망을 불어넣자고 호소했다.

당시 우연히 눈에 들어온 여민동락은 벌써 그러한 마을기업의 표상이자 전범으로 삼기에 충분한 외형이자 내실이었다. '더불어 모시고 나누는 옳은 사회복지원'이라는 별명을 붙이기에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 여민동락의 사람들은 '여럿이 함께 만드는 즐거운 세상'이라는 '여민동락(與民同樂)' 이름 그대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역주민의 자주성과 지역사회의 공생성 강화를 위한 농촌디자인을 꿈꾸며'라는 설립취지는 마치 새로운 독립국가를 건설하려는 강령이나 헌법처럼 비장한 진정성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특히  국가의 보조, 외부의 시혜적 지원은 받지 않는다는 철칙을 고수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미래의 블루오션이라 할 수 있는 농촌에서 새로운 공동체 실현지를 만들고, 결국 공동체들이, 횡으로, 유기적으로 묶이고 엮이는 전국적 네트워크 모델을 만들고 싶다"며 여민동락을 설립한 주역, 강위원 투게더광산 나눔문화재단 상임이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왜 그런 고집을 부리는지 금방 이해가 되고 각성을 했음은 물론이다. 

"상부나 외부에서 보조나 지원을 받게 되면 복지시설은 관청의 하부시설로 전락할 위험이 있고 시혜자 입장에서 시설이 일방적으로 운영될 우려가 있다. 자조적이고 자치적인 복지모델이라야 지속가능할 수 있다. 또 제도적 복지 안에 갇힌 폐쇄적 복지에서 벗어나 농촌과 농업을 살리는 지역복지운동으로 확대하려면 관 주도 복지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칠곡군은 2015년 지역의 대표적 주민프로그램이자 전국적 마을공동체사업의 명품이 된 인문학마을 만들기 운영주체인 인문학마을협의회를 '칠곡인문학마을 협동조합'으로 전환했다. '마을과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삶의 가치를 높이고 소통과 공감을 늘리는 사업목적의 칠곡인문학마을협동조합은 지역의 14개 마을로 구성, 인문학마을 문화 교육사업, 인문학마을축제, 지역개발사업 등 인문학사업을 주민 중심의 지속가능한 사업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지역사회를 먹여살리는 영광 여민동락공동체의 지난 10년의 기록
▲ 여민동락 지역사회를 먹여살리는 영광 여민동락공동체의 지난 10년의 기록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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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농촌'이려면 '마을교육공동체'부터 다시

춘천 고탄리에는 교육을 테마이자 목표로 정한 사회적협동조합이 꿈틀대고 있다. 농촌유학센터와 지역아동센터를 복합적으로 운영하는 별빛산골유학교육센터이다. 운영주체인 법인은 '춘천별빛산골교육 사회적협동조합'은 교육부의 승인을 받았다. 농촌유학을 시작하기 전 마을의 송화초등학교는 재학하는 아이들이 20명이 채 안됐지만 이제 50명이 넘어 폐교 위기를 걱정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마을과 마을학교를 좋아하니 따라 들어온 귀농가족도 이어지고 있다. 자연스레 마을주민과 귀농인의 일자리도 창출됐다. 농촌유학센터와 지역아동센터에서 일하는 생활교사, 아동복지교사, 급식도우미, 방과후 프로그램 강사 등 20여명의 마을주민과 귀농청년들이 일하고 있다. 농촌지역개발사업, 산골마을119라는 마을자치 복지프로그램 등도 협동조합이 나서 책임지고 벌이고 있다. 이른바 학교와 마을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마을교육공동체'의 실천모델이라 평가할만하다. 

경기도 교육청에서 핵심사업으로 추진하는 '마을교육공동체'의 중심에도 '사회적 마을기업' 협동조합이 놓인다. 한마디로 학교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학생교육을 지향하고 있다. 지자체, 교육청, 시민사회, 주민 등 지역의 모든 교육적 자원을 동원해 학생들의 인격과 지성의 성장을 이끌어 마을 전체를 큰 학교로 만들어보겠다는 계획이다. 그러자면 협동조합 같은 조직을 중심에 세워야 지역사회가 학교에 참여하고 협력하는 마을교육공동체가 가능하다는 수행전략이다. 구체적으로 학교 정규과정에서 마을교육과정 실시, 학교협동조합 구축, 마을학교 축제, 사회적협동조합 방과후학교 지원센터 설립, 혁신교육지구 사업의 마을교육공동체 사업 전환 등을 시행하고 있다.

춘천이나 경기도의 사례처럼 '협동조합 중심의 마을교육공동체'야말로 '사회적 마을기업'의 건강한 육묘장이자 이상적인 실천현장이 아닌가. 마을학교, 마을교육공동체에서 길러진 민주시민들이 결국 마을기업을 세우고 꾸릴 '마을시민'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교육을 중심으로 학교, 마을, 자치단체가 역할을 분담, 공동의 가치를 실현하고 있다. 한 명의 아이를 기르기 위해서는 마을이 학교가 되고 주민이 교사가 되는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을 개발하고 있다. 협력과 나눔의 공동체 문화를 배우고 건강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하기 위한 '지역사회학교'라 할 수 있다.

지역의 협동과 연대가 강조되는 이같은 '지역사회학교'는 결국 마을・지역공동체 재생과 활성화를 위해 학생과 교사가 지역 활동에 참가함으로써 사회발전에 공헌하고 학교에 의해 지역사회의 교육기관·교육활동을 조정하고 지원할 수 있다. 무엇보다 지역사회학교에서는 지역사회의 문제를 주민 공동의 힘으로 발견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게 되며, 농어촌 학교가 직면하고 있는 교육적 문제 역시 지역 주민과 함께 풀어가야 할 공동의 과제라는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 학교와 마을이, 학생과 선생, 그리고 마을주민들이 서로 배우고 가르치며, 돌보고 보살피는 '마을교육공동체'야말로 바로 '사회적 마을기업'의 표본이다.

전국 최초의 교육협동조합 '진안교육협동조합'이 마을교육공동체로 되살리고 있는 진안 백운면 소재지 풍경
▲ 진안 백운면 전국 최초의 교육협동조합 '진안교육협동조합'이 마을교육공동체로 되살리고 있는 진안 백운면 소재지 풍경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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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공동체와 사회적경제를 융합하는 '사회적 마을기업'

그런데 '사회적 마을기업'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마을공동체과 사회적경제가 서로 겉돌지 않고 하나로 긴밀히 어울려 돌아가야 한다. 2015년 9월 개소한 아산시 공동체지원센터(커뮤니티 비즈니스센터)는 마을공동체, 사회적경제, 도시재생 분야를 통합한 지원 체제를 구축했다.

지역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마을만들기, 사회적경제, 도시재생사업 등 세 분야를 통합 지원하는 게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주민과 행정기관 간 협력과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민관협치(거버넌스)의 방식으로, 행정은 지원은 하지만 간섭은 하지 않는 이른바 '팔길이 원칙'을 채택한 게 고무적이다.

오늘날 우리 농촌공동체 현장에는 마을 만들기, 농촌관광 등 농촌지역개발사업, 농식품 가공, 로컬푸드 직거래 등 6차산업화, 마을기업,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 등이 '따로 또 같이' 혼재되어 동시다발적으로 병행 추진되는 양상이다. 결국 이같은 제반 정책사업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목표지점에서는 '농촌마을공동체의 재생 및 활성화로 수렴된다고 볼 때, 각 사업 총합의 효용과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사업별 개념, 목적, 그리고 각 사업들 사이의 진행 단계와 체계 등을 보다 상호연결성 있게, 유기적으로 재설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농가소득 제고 및 일자리 창출을 주목적으로 하는 '6차산업화'는, 마을공동체 사업을 실행하는 '효과적 도구나 방법'의 1단계 정책과제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또 협동경영체 조직화 및 민주화를 주목적으로 하는 '사회적 경제'는, 마을공동체사업 수행을 위한 '최선의 수단과 과정'이면서, 마을공동체 사업을 벌이는 '최적의 가치와 명분'을 설명할 수 있는 2단계 정책으로 자연스레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1단계 6차산업화, 2단계 사회적 경제 등 주로 '생업(경제)' 문제를 선결하는 선행 정책과제 및 사업의 성과를 바탕으로 마침내 '생업과 생활이 하나되는 공공 공유의 공간'으로서 '마을 및 지역사회 공동체'는 '궁극의 목적이자 지상과제'로서 3단계 정책으로 추진하는 게 합리적이고 효과적일 것이다.

다만 이때, 1단계 6차산업화, 2단계 사회적 경제를 거쳐, 3단계 마을 및 지역사회 공동체까지 각 단계별 과제가 성공적으로 수행되기 위해서는, 1단계 진입 이전에 각 사업마다 공통된 가용자원(resource)이자 지원 토대(platform)로서 '인적·물적 유·무형의 사회적 자본'부터 갖추는 게 중요하다. 마을공동체와 사회적경제가 융합된 중간지원조직이 그같은 지역의 사회적 자본을 생산하고 활용하도록 하는 '사회적 자본 제작소 및 발전소' 역할에 걸맞는 최적의 항법장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마을공동체와 사회적경제가 융합된 중간지원조직이야말로 '사회적 마을기업'의 정점이자 총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을공동체와 사회적경제를 융합, 지역을 재생하고 있는 ‘사회적 마을기업’ 아산 배방도시재생지원센터
▲ 배방도시재생지원센터 마을공동체와 사회적경제를 융합, 지역을 재생하고 있는 ‘사회적 마을기업’ 아산 배방도시재생지원센터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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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마을학개론(an introduction to Communology/ 마을에서 먹고 사는 법) : 귀농을 하거나 자발적 하방을 해서 마을에서 먹고 살려면, 사람답게 살아가려면, ‘마을이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마을, 공동체, 마을시민. 마을기업, 대안마을, 대안농정, 그리고 대안사회를 열심히 공부해서 체화해야 한다. 그러면 마을에서 사람답게 먹고 살 수 있다.



태그:#마을학개론, #사회적 마을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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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 詩人(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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