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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 위키백과(퍼블릭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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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을 존경한다. 1월 20일의 취임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이 점이 부각되었다. 트럼프가 취임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레이건 스타일을 고려하고 있다는 게 지인들의 입을 통해 언론에 보도된 것이다. 이에 따르면, 트럼프는 국민들에게 동기 부여를 제시하는 방식에서는 케네디 스타일을 적용하되, 외형적인 연설 방식에서는 레이건 스타일을 적용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위대한 미국'의 기치를 내걸고 있다. 한국어로 번역된 저서 <불구가 된 미국> 제4장에서도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라며 "그 사실을 말하기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트럼프가 존경하는 레이건도 비슷했다. 1980년 11월 대선에서 승리한 레이건도 '위대한 미국 정신의 재현'을 기치로 내걸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그는 취임 초부터 전략방위구상(SDI)을 준비하다가 1983년 이를 공식 천명했다. 이 구상은 '악의 제국' 소련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우주 공간에서 파괴하는 것이다. 마치 별들의 전쟁을 연상시킨다 하여 '스타워즈 계획'으로도 불렸다.

레이건은 배우 해리슨 포드처럼 영화 <스타워즈>에 출연하지는 않았지만, 악의 제국을 상대로 스타워즈를 실제로 현실화시키려 했다. 트럼프로서는 이래저래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다.  

레이건 존경했던 트럼프

트럼프는 외모를 유별나게 언급한다. 공화당 경선 중인 2015년 11월 2일 블룸버그TV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그날 아침 MSNBC 방송에 보도된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을 언급하면서 "아침에 누가 나와서 아양을 떨며 그가 잘생겼다고 했다"며 "하지만 내가 루비오보다 더 잘생겼다"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트럼프는 자기의 외모뿐 아니라 부인 멜라니아의 외모도 노골적으로 자랑한다. 트럼프는 자기 부인이 세상 최고의 미인인 듯이 말한다. 이 정도로 그는 외모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 이런 그의 눈에는 영화배우 출신인 레이건의 외모도 멋지게 보였을지 모른다. '위대한 미국'을 추구한 레이건의 대외정책뿐 아니라 그의 얼굴도 마음에 들었을지 모른다.

로널드 레이건.
 로널드 레이건.
ⓒ 위키백과(퍼블릭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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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레이건의 열혈 팬이었다는 점은, 그가 레이건 임기 때부터 대통령의 꿈을 공개 표출했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트럼프가 공화당 경선 참여를 최초로 고려한 시점은 1987년이다. 레이건의 두 번째 임기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대통령 출마를 생각했던 것이다. 

당시 마흔두 살이던 트럼프는 약 10만 달러를 써서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보스턴 글로브>에 의견 광고를 실어 자신의 국가 비전을 피력했다. 이때 했던 이야기는 지금 하는 이야기와 거의 비슷하다. 일본·사우디 등의 동맹국들한테 돈을 받아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트럼프는 레이건을 존경하며 레이건 같은 대통령이 되고 싶어 한다. 미국의 힘을 전 세계에 과시하고 동맹국들한테 그 점을 주지시키고 싶어 한다. 그런데 동맹국과의 구체적 관계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트럼프한테서 레이건과 다른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다. 한국과의 동맹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트럼프는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한국에 좀 더 많이 전가하고 싶어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재협상해서 한국에 대한 수출액을 증가시키고 싶어 한다. 또 이번 파문에서처럼 사드 비용도 한국에 떠넘기고 싶어 한다. 

지난달 30일 맥매스터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동맹국들의 비용 분담에 대한 미국 국민들의 여망을 염두에 두고 일반적 맥락에서 말한 것"이라며 트럼프의 사드 비용 발언을 진화하려 했다. 하지만, 트럼프의 스타일을 볼 때 언제라도 또다시 이 문제를 재론할 소지는 충분하다.

트럼프의 동맹 운용방식, 레이건과는 달라

바로 이런 대목에서 트럼프는 레이건과 다르다. 말로는 레이건의 대외정책을 따르겠다고 하지만, 동맹관계를 운용하는 구체적인 방식에서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레이건은 전임자인 지미 카터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론을 백지화시키면서 한미동맹을 이전보다 훨씬 더 강화했다. 하지만 트럼프처럼 한국에서 돈을 뜯어내려고 하지는 않았다. 도리어,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금전적 이익을 얻는 것을 지켜봤다. 이 점은 레이건 집권 기간에 한국이 미국과의 무역에서 흑자 폭을 크게 늘린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1977~1992년 한국의 대미 수출입 액수.
 1977~1992년 한국의 대미 수출입 액수.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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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는 한국무역협회가 운영하는 무역통계 사이트(http://stat.kita.net)를 토대로 작성한 것이다. 차트에는 카터 정부, 레이건 정부, 부시(아버지 부시) 정부 때 한국이 미국과의 무역에서 기록한 수출입 액수가 표시되어 있다. 파란 선은 한국의 수출액, 빨간 선은 한국의 수입액이다.

차트에 나타나듯이 레이건 때는 전임자인 카터나 후임자인 부시 때와 달리 한국의 흑자 폭이 갑자기 대폭 늘어났다. 파란 선과 빨간 선의 차이가 상당히 크다는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처럼 레이건 때는 한미동맹이 강화되고 미국의 영향력이 확장되는 한편으로, 한국의 무역흑자가 크게 늘어났다. 미국은 주도권을 늘리고 한국은 무역 이익을 얻는 속에서 한미동맹이 강화됐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미국이 한국을 고분고분하게 만드는 대가로 무역적자를 감내했던 것이다. 

레이건 정부가 한국의 금전적 편의를 봐줬다는 점은, 1983년 일본을 움직여 40억 달러의 경제협력 차관을 한국에 제공하도록 한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2010년 2월 비밀 해제된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비망록에 따르면, 1981년 2월 2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전두환 대통령은 '일본이 한국과 미국 덕분에 공짜 안보를 누리고 있으니, 그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일본이 한국에 경제 지원을 하도록 도와달라'고 요구했다. 미국이 이 요구를 받아들임에 따라 한·일 간에 차관 제공 협의가 진행되었다고 한다.

이 대목이 4월에 발간된 <전두환 회고록 2> 제7장에도 언급되어 있다. "내 말이 끝나자 레이건 대통령은 예상치 못했던 나의 제안을 흥미롭고 유익한 내용이라고 받아들였는지 큰 몸짓으로 웃음을 터뜨렸"다고 전두환은 회고했다.

이렇게 레이건은 자국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대신, 상대방한테 어느 정도의 경제적 이익을 보장했다. 레이건을 존경한다고 말하면서도, 한국에 이익은 못 줄망정 도리어 뺏으려 하는 트럼프와는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이다.

레이건과 트럼프, 농경민족과 유목민족 차이?

두 사람의 모습은 옛날 동아시아 사람들의 눈에도 상당히 대조적으로 비쳤을 것이다. 트럼프는 자신과 레이건을 동일시하려고 애쓰지만, 과거 동아시아인들의 눈에는 두 사람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났을 것이다. 레이건은 농경민족 황제처럼, 트럼프는 유목민족 대칸(황제)처럼 비쳤을 것이다.

중국 한족 같은 농경민족이 동아시아 패권을 잡고 있을 때와 흉노족·몽골족 같은 유목민족이 패권을 잡고 있을 때, 동아시아 국제질서에는 현격한 차이가 나타났다.

황제국이 한족 같은 농경 국가일 때는 신하국들이 황제국과의 무역에서 대체로 흑자를 봤다. 신하국이 조공 형식으로 무역상품을 보내면, 황제국은 회사(回賜, 답례) 형식으로 무역상품을 보냈다. 황제국이 농경 국가일 때는 신하국들이 조공으로 바치는 것보다 회사로 받는 게 일반적으로 더 많았다. 농경민 출신 황제국이 일부러 무역적자를 본 것은 신하국을 자국의 패권 아래에 묶어두기 위해서였다. 

조선 초기에 정도전 정권은 명나라를 상대로 "1년에 3회 조공하겠다"고 우기고, 명나라 정부는 "3년에 1번만 조공하라"고 우겼다. 이 때문에 무역분쟁이 심각했다. 이런 분쟁이 발생한 것은 명나라가 농경민 출신의 패권국이었기 때문이다. 명나라에 조공하면 더 많은 회사를 받아낼 수 있기 때문에 정도전이 조공을 더 많이 하겠노라고 우겼다.

이에 비해 유목민이 패권을 잡을 때는 정반대 양상이 나타났다. 유목민 출신의 패권국들은, 조공은 많이 받고 회사는 적게 주려고 했다. 유목민 패권국은 농경민 패권국보다 군사력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그래서 굳이 무역적자를 봐주지 않더라도 신하국들을 거느릴 수 있었다. 대외관계에서 이들의 철학은 '사랑은 주는 게 아니라 받는 것'이었다.

조선은 명나라가 있을 때만 해도 1년에 3회 혹은 그 이상으로 조공 사절단을 파견했다. 그랬던 조선이 유목민 출신의 청나라가 패권을 잡은 뒤로는 1년에 1회밖에 조공 사절단을 파견하지 않았다. 주는 사랑이 아니라 받는 사랑을 실천하는 청나라의 특성을 고려해서 무역 규모를 축소했던 것이다.

이런 문화를 경험한 옛날 동아시아 사람들이 레이건과 트럼프를 본다면, 레이건은 농경민 황제 같고 트럼프는 유목민 황제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트럼프 방식보다는 레이건 방식이 훨씬 더 생명력이 길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군사력을 앞세워 신하국들에 무역흑자를 챙긴 유목민 국가들은 오래가지 못했다. 흉노족·선비족·몽골족·여진족 같은 유목민들은 동아시아 지배를 오래 이어가지 못하고, 약소국으로 전락하거나 아니면 서쪽으로 달아났다.

그에 비해 농경민인 중국 한족은 신하국들한테 무역흑자를 양보하는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오랫동안 동아시아 패권을 유지했다. 한족은 유목민한테 중국 땅을 빼앗겼다가도 얼마 뒤에 다시 찾아내곤 했다.

그렇기 때문에 옛날 동아시아 사람들의 눈에는 트럼프 방식보다는 레이건 방식이 훨씬 더 효율적으로 비칠 것이다. 돈을 주지는 못할망정 도리어 뺏으면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트럼프보다는, 적당히 돈을 쓰면서 남을 구슬리려는 레이건이 훨씬 더 '교활한 인물'로 비쳐질 것이다. 


태그:#사드 비용, #트럼프, #레이건, #한미관계, #한미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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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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