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뒤에 사람 있어요!" 

불합리한 제작환경과 조직문화에 고통받다 세상을 등진 고 이한빛 PD의 죽음을 추모하는 시민 500여 명이 고인이 근무했던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CJ E&M 사옥 근처에 모여 촛불을 밝혔다. 

28일 오후 7시 'tvN <혼술남녀> 신입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아래 대책위) 주최로 열린 시민추모문화제에는 유가족과 고인의 지인들이 모여 함께 고인을 추억하며, CJ E&M의 공식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촉구했다.

고인의 어머니 김혜영씨는 추모제를 찾아준 시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살아가는 청년들이 내게는 모두 아들 한빛이었다. 성실하게 사는 젊은이들이 좌절하고, 죽음을 택해야 하는 회사와 사회 구조는 바뀌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고인과 함께 <혼술남녀> 팀에서 일했던 한 스태프는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 늘 사람이 낮은 순위인 이곳에서, 한빛 군은 다르게 생각하고 진심을 다해 행동했다는 것을 기억하겠다"면서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 더 잘하고 싶어서 힘들다고. 조금만 참으면 된다고 꿈꾸는 이야기만 했던 것 같아 미안하다. 나 또한 방관자였음을 기억하며 살아가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전해오기도 했다. 

이한빛 PD 죽음 애도하는 시민들

 4월 28일 서울 상암동에서 열린 tvN <혼술남녀> 이한빛 PD 시민 추모문화제.

4월 28일 서울 상암동에서 열린 tvN <혼술남녀> 이한빛 PD 시민 추모문화제를 찾은 시민들이 어머니 김혜영씨의 발언을 듣고 있다. ⓒ 김윤정


추모제를 찾은 교사 문병모씨(영일고)는 "(이한빛 PD의 죽음을 접하고) 행복한 드라마, 영화 만드는 현장에서 이렇게 젊은 사람들을 쥐어짜고 있다는 현실이 안타깝다"면서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정의롭게 살아라, 책임감 있게 살아라, 가르치는데 정의롭고 책임감 있게 살려다가 고통받은 이한빛 PD의 이야기를 접하고 나니 아이들에게 무얼 가르쳐야 할지 고민스럽다"고 걱정했다. 

이한빛 PD의 죽음은, 고인과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언론인 지망생들에게도 무겁게 다가왔다. 한 언론인 지망생 참가자는 "솔직히 말하면 많이 무섭다. 위에서 내게 부당한 일을 시켰을 때, 나라면 이한빛 PD처럼 한 번이라도 맞설 수 있을까? 저기에 가면 나도 죽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추모제를 취재하러 온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최인범, 서이령 학생은 "우리 같은 소시민들이 거대한 회사에 맞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건 아닌가 싶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허무하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이어 "고인의 죽음이 나약한 선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인 덕분에 이 문제가 함께 논의되고 있다. 이제라도 개선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이한빛 PD의 친구 황아무개씨는 고인을 "학생 때부터 비정규직과 사회적 약자들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드라마 PD를 꿈꿨던 것도, 현실에서는 당장 이룰 수 없는 일들을 드라마 안에서는 판타지로나마 이야기하고 싶어서였다"고 기억했다. 이어 "무엇보다 노동현장에서의 비인간성에 괴로워했다고 들었다. 왜 죽기까지 했을까 궁금한 분들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신념이 생명보다 소중할 수 있다. 한빛에게는 이상이 인생을 좌우하는 가치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기륭전자 조합원 "CJ E&M 측 조사결과 말도 안 돼"

 4월 28일 서울 상암동에서 열린 tvN <혼술남녀> 이한빛 PD 시민 추모문화제.

고 이한빛 PD의 어머니 김혜영씨는 추운 날씨에도 끝까지 자리를 지켜 준 시민들에게 "남의 일인데 이렇게 와주시고 연대해주셔서 너무 큰 힘이 된다. 정말 감사드린다. 아직 우리 사회에 희망이 있는 것 같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 김윤정


쌀쌀한 날씨 속에도 약 2시간 가까이 이어진 추모제에 참석한 시민 대부분은 마지막까지 함께하며 "CJ E&M은 공식 사과하라!", "재발 방지 대책 마련하라", "카메라 뒤에 사람 있다", "이한빛 PD의 죽음을 기억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날 추모제는 CJ E&M 사옥 앞까지 행진으로 끝이 났다.

모든 순서가 끝이 난 뒤, 기륭전자 조합원 김소연씨는 조용히 어머니 김혜영씨 곁으로 다가가 자신을 소개한 뒤 어머니를 위로하기도 했다. 고 이한빛 PD는 학생 때부터 청년 문제와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이 많아 CJ E&M에 입사해 받은 월급 대부분을 416연대, 기륭전자, KTX 해고 승무원, 빈곤철폐연대 등에 기부했다고 알려졌다.

김소연씨는 "한빛 학생이 신입생 때부터 함께 연대했었는데, 최근 보도된 뒤 뒤늦게 사진을 보고서야 알았다. 진작 몰라서 미안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김소연씨는 고 이한빛 PD가 겪었던 팀 내 갈등 원인이, 고인이 비정규직들에게 모욕적인 발언을 했기 때문이라는 CJ E&M 측의 조사 결과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단언하며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 많았던 한빛 학생이, 본인이 원청 직원이 돼 비정규직, 하청 직원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는 데 고통받았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고인이 비정규직을 차별하고 근무가 태만했다는 사측의 조사 결과에 반박하기 위해 지인들이 앞장서 고 이한빛 PD의 삶을 증언해주고, 시민사회가 함께 나서고 있는 데 대해 어머니 김혜영씨는 "한빛이가 헛살진 않았구나, 정말 남들을 위해 따뜻한 삶을 살아왔구나 싶어 더 사무치게 그립다"며 눈물을 보였다. 이어 "남의 일인데 이렇게 와주시고 연대해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큰 힘이 된다. 아직 우리 사회에 희망이 있는 것 같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한편 청년유니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참여연대 등 32개 시민단체로 꾸려진 대책위는 서명운동, CJ E&M 앞 1인 시위, 방송노동자 노동실태 조사, 국회 토론회 등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4월 28일 서울 상암동에서 열린 tvN <혼술남녀> 이한빛 PD 시민 추모문화제.

쌀쌀한 날씨 속에도 약 2시간 가까이 이어진 추모제에 참석한 시민 대부분은 마지막까지 함께하며 "CJ E&M은 공식 사과하라!", "재발방지 대책 마련하라", "카메라 뒤에 사람있다", "이한빛 PD의 죽음을 기억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 김윤정


 4월 28일 서울 상암동에서 열린 tvN <혼술남녀> 이한빛 PD 시민 추모문화제.

ⓒ 김윤정



혼술남녀 이한빛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