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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철 캐러밴을 끌고 집을 나선 사람들.
 휴가철 캐러밴을 끌고 집을 나선 사람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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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방학이다. 부활절도 끼어 있다. 호주는 기독교 국가가 아니면서도 부활절은 공휴일이다. 놀기 좋아하는 호주 사람들이 공휴일이과 학교 방학이 겹치는 황금연휴를 맞아 집에 붙어있을 리가 없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동네도 규모가 큰 세 개의 캐러밴 파크가 놀러 온 사람으로 붐빈다. 평소에는 조용하던 해변과 수영장에도 사람이 붐빈다. 우리 집에서 가까운 포스터(Forster) 관광지는 시골 동네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주차장 찾기가 쉽지 않을 정도다.

방학을 맞아 딸네 식구가 찾아왔다. 골드 코스트(Gold Coast)에서 7시간을 운전해 먼 길을 온 것이다. 세 명의 손녀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외치며 품 안에 안긴다. 몇 달 만에 보는 손녀들이다. 반갑다.

서울이 고향이라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아 시골에 간 기억이 없다. 어린 시절 먼 친척이 사는 가평에 가서 어른들에게 인사를 하고 잣을 실컷 먹었던 생각이 가물가물할 뿐이다. 그러나 한국 사람이기에 명절에 할아버지 할머니 찾아 시골에 가는 정서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우리 동네에는 은퇴한 할아버지 할머니 단둘이서 넓은 집을 차지하고 지내는 가정이 많다. 필요 이상으로 큰 집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자식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휴가철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아온 어린아이로 동네가 붐비기 시작한다. 이웃과 나누는 대화도 멀리서 찾아오는 손자 손녀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휴가철이 끝나면 아이들과 지낸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얼마나 정신없이 지냈는지, 집안이 전쟁터 같았다는 이야기를 한다. 올 때는 좋았지만 가고 나니 더 좋다는 흔한 이야기도 듣는다.

우리도 손녀들 때문에 바쁘다. 아이들 응석을 받아주며 이곳저곳을 데리고 다닌다. 아이들과 함께 만두를 빚으며 정신없는 식사를 준비하기도 한다. 조용히 둘이서만 지내던 집안이 어질러지고 떠들썩하다. 아내는 오랜만에 만난 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느라 늦게 잠자리에 들기도 한다.      

얼마 전에 산 작은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갔다. 잔잔한 포스터 내해에서 돌고래 떼를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골드 코스트에서도 돌고래를 보던 손녀들이지만 바로 배 앞에서 유영하는 돌고래에게 눈을 떼지 못한다. 낚시도 한다. 도미와 와이팅(whiting)이라는 생선 몇 마리도 잡아 매운탕도 끓여 먹는다.

일주일 이상 정신없이 지냈다. 헤어질 때가 되었다. 마지막 저녁을 함께 나눈다. 헤어짐을 모르는 두 살짜리 손녀는 평소와 다름없이 즐겁게 지내고 있다. 그러나 8살짜리 어린 손녀는 울기까지 하면서 떨어지기를 아쉬워한다. 만나면 헤어질 수밖에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이렇게 생활 속에서 배워 나간다. 

아이들이 떠난 집을 청소한다. 이웃집 사람 말처럼 전쟁터 같은 집안을 정리하고 커피를 마신다. 흔한 표현으로 시원섭섭하다. 손녀들의 재롱과 응석이 아직도 주위에 맴돌고 있다. 다음에는 언제 만날 수 있을까 손꼽아 본다.

어린 아이 같지 않으면 천당에 못 간다는데...

방학을 맞아 어린 강태공이 아빠와 낚시를 즐긴다. 호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방학을 맞아 어린 강태공이 아빠와 낚시를 즐긴다. 호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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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귀엽다. 꼭 피가 섞여서 많은 아니다. 이웃 아이를 보아도 평소의 잡된 생각은 간데없고 나도 모르게 편안함이 찾아온다. 아이들에게는 어른을 미소 짓게 하는 그 무엇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예수님은 어린아이 같지 않으면 천당에 들어 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노자도 어린아이를 극찬한다. 니체라는 철학자도 낙타, 사자 그리고 아이를 예로 들면서 최고의 상태는 아이의 상태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이라고 하면 미완성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교육이라는 것을 통해 완성된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아이에게 어른의 잡다한 생각을 주입한다.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은 흔히 성공(?)이라는 것을 한다. 그러나 행복하다는 보장은 없다. 행복 보다는 성공을 강조하는 사회가 되었다. 

잠시 생각해 본다. 왜 어린아이와 같아야 한다고 하는 것일까? 옳고 그름으로 보이는 것을 나누지 않는 아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아이의 심성을 닮으라고 하는 것은 아닐까? 따라서 분별하는 마음을 버리라고, 남을 판단하지 말라고 종교 지도자들이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베란다에서 커피 향에 젖어 바다를 본다. 끝없이 펼쳐진 산봉우리도 본다. 바다와 산봉우리가 다투지 않고 하나가 되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나 자신을 돌아본다. 판단하며 사는 나의 모습이 보인다. 모든 것을 사랑하며 살겠다는 윤동주 시인을 생각한다.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하겠다는...


태그:#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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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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