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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소설, 만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음식들. 군침이 절로 나오는 이야기 속 음식 레시피와 그에 얽힌 잡담을 전한다. 한 술 뜨는 순간 장면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음식 이야기를 '씨네밥상'을 통해 풀어낼 예정이다. - 기자 말

패니 플래그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소설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는 1987년 출간 당시 <뉴욕 타임스> 베스트 셀러에 36주간 머물 정도로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었으며 <페미니스타>가 뽑은 '20세기 100대 영문 소설'에 선정되며 여성주의 소설이자 레즈비언 소설의 현대 고전이 되었다.

이 소설을 바탕으로 나온 영화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또한 큰 인기를 끌었는데 국내에서는 이 영화가 퀴어무비가 아닌 "편견에 맞서 싸우는 두 여성 간의 사랑과 우정" 정도로 홍보되었고 영화 자체도 소설보다는 둘의 사랑을 덜 직접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아직도 이 영화가 퀴어무비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퀴어무비인지 아닌지가 무엇이 중요한지, 그것과 상관 없이 영화 자체가 주는 감동은 변치 않는다는 의견도 있겠지만 두 여자 주인공의 사랑을 레즈비언 커플로서의 그것이 아닌 이성애자 친구간의 깊은 사랑과 우정으로만 바라보는, 혹은 바라보려는 시선도 결국 '성소수자 지우기'의 일면이기에 이 영화의 두 여자 주인공은 서로 사랑했음을 밝히고 시작한다.

"하나님은 절대로 실수하시지 않아"... 두 여인의 사랑

두 여인의 사랑을 그린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포스터
 두 여인의 사랑을 그린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포스터
ⓒ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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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액자식 구성으로 1980년대 말, 남편의 친척을 방문하러 요양원을 찾은 중년의 여성 에블린이 80대의 스레드굿 부인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스레드굿 부인은 자신이 살았던 휘슬스톱, 그곳에 있던 따뜻하고 유쾌한 분위기로 꽉 찬 식당 휘슬스톱 카페와 그곳을 이끌어가는 두 명의 여주인의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하고 에블린은 점점 그 이야기에 빠져들어 간다.

1920년대 미국 남부의 휘슬스톱 마을, 기차가 지나가는 그 마을엔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던 잇지라는 여자 아이가 살았다. 치마대신 남자아이들이 입는 바지를 입고 자기를 놀리는 남자애가 있으면 흠씬 두들겨 패주는 톰보이 잇지, 그녀는 유독 친오빠 버디와 사이가 좋았다.

"잇지, 바다엔 수많은 조개가 살고 있어. 하나님이 그중에 하나를 특별히 사랑해서 그 안에 아주 작은 먼지를 하나 넣어주었어.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 조개는 아주 아름다운 진주를 만들어냈어."
"하나님이 실수하신 거면 어떡해."
"하나님은 절대로 실수하시지 않아."

잇지가 따르던 친오빠 버디에겐 좋아하는 여자가 있었다. 엄마 친구의 딸이자 아름다운 외모의 루스가 그 주인공. 그런데 버디와 루스, 잇지가 사이 좋게 산책을 하던 중 루스가 쓴 모자가 날라가고, 버디가 그 모자를 주으려다 기차에 치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눈 앞에서 오빠가 죽는 사고를 목격한 잇지는 그 후 가슴에 상처를 안고 방황하기 시작한다.

다시 1980년대 요양원, 스레드굿 부인의 이야기에 빠져들기 시작하는 에블린의 삶은 우울하다. 남편은 매사 그녀를 무시하기만 하고, 결혼생활을 잘 유지하기 위해 여성주의 모임의 강의도 들어보고 로맨틱한 분위기를 만드려고 무던히 애쓰지만 남편은 스포츠 경기 중계에나 관심이 있을 뿐, 그녀에게 바라는 것은 오직 저녁을 잘 차려놓는 것 뿐이다. 우울함과 낮아진 자존감, 어디에도 위로 받을 곳 없는 에블린은 음식에 중독되었고 하루 종일 무언가를 먹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힘이 되는 것이 스레드굿 부인이 들려주는, 50~60년도 더 된 과거의 두 여인 이야기다.

"옛날 집 생각을 하면 이상하게 커피랑 베이컨 냄새가 그리워져. 휘슬스톱 카페의 프라이드 그린토마토 냄새도."

오빠가 죽은 충격으로 술과 도박에 빠져 보내는 잇지, 그녀에게 오빠의 옛 연인이던 루스가 다시 찾아온다. 오빠가 죽었을 때 잇지는 8~9살, 루스는 15~16살 정도였지만 지금은 잇지도 다 큰 상태다.

잇지 엄마의 부탁을 받은 루스는 자꾸 방황만 하는 잇지와 친해지려 노력한다. 잇지는 오빠를 죽게 한 원인을 제공한 루스를 미워하고 피했지만 점점 마음을 열어간다. 어느덧 절친이 된 둘, 아침부터 루스가 자는 방에 창으로 몰래 들어온 잇지는 같이 피크닉을 가기로 제안한다. 들판에 돗자리와 먹을 것을 준비해 자리잡았을 때, 잇지는 루스에게 꿀을 맛보여 준다며 벌로 뒤덮인 나무에 다가가 맨손을 벌집에 넣고 야생꿀을 캐와 루스에게 선물한다.

"그러다 죽으면 어떡해!"
"널 위해 가져온거야, 맨날 이렇게 해 괜찮아. 화난 거면 미안해."
"화낸 거 아니야. 벌을 매료시키는 사람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어. 꿀벌의 여인, 잇지 너는 대단해. 넌 사람도 매료시켜."

영화에서는 루스가 잇지에게 "넌 사람도 매료시킨다"며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소설에는 잇지가 꿀을 건네는 순간 루스는 부정할 수 없는 사랑을,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고 그 후에도 다른 사람에게 느끼지 못한 깊은 사랑을 느꼈다고 적혀있다. 그렇게 둘은 신나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지만... 루스는 부모님이 정해준 남자와 결혼을 한다. 상처받은 잇지는 루스의 결혼식을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고 다시는 루스를 보지 않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사랑이 그렇게 쉽게 잊혀지나, 루스를 잊을 수 없던 잇지는 결국 시간이 흐른 뒤 루스의 집으로 찾아간다. 하지만 오랜만에 본 루스의 얼굴엔 커다란 멍자국이 있다. 남편에게 폭력을 당하며 살고 있었던 것, 화가난 잇지는 남편을 죽여버리겠다고 하지만 루스는 제발 다시 돌아가라며 잇지를 돌려보낸다. 그리고 어느 날, 루스는 친어머니가 돌아가셨다며 잇지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 편지엔 성경의 한 구절이 함께 들어있다.

"그대 가는 곳에 내가 갈 것이며
그대 사는 곳에 나도 살 것이며
그대 가족이 나의 가족이라."

잇지는 더 이상 망설일 것이 없다. 집안일을 하는 든든한 흑인 빅조지와 함께 루스의 집에 가 끝까지 폭력적으로 구는 남편을 떼어내고 루스를 데려온다. 이미 임신한 상태였던 루스는 잇지의 집에서 아들을 낳고 둘은 아들에게 버디 2세라는 이름을 지어주며 함께 휘슬스톱 카페를 만든다.

휘슬스톱 카페는 백인과 흑인 간의 차별을 두지 않고 손님을 받고, 노숙자나 노동자들에게 무료로 밥을 나누어준다. 하인이던 흑인 빅조지와 십시도 함께 직원으로 일한다. 미국 남부는 당시 미국 내에서도 인종차별이 심하던 곳으로 잇지의 오랜 친구조차 "흑인 손님을 받는 것에 불만을 갖는 백인 손님들, 동네 주민이 많다"며 충고하지만 잇지와 루스는 아랑곳 않는다.

휘슬스톱 카페가 특별하고 아름다운 이유는 당시의 시대 상황과 상관없이, 그곳을 혐오대신 사랑으로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루스와 잇지의 사랑, 흑인 직원들과의 우정, 피부색으로 차별 두지 않고, 지금 당장 돈이 없는 노동자들에게도 여력이 되는 만큼 밥을 제공하는 연대의식. 누구보다 밝고 유쾌하며 사랑스러운 루스와 잇지는 사실 누구보다 용감하고 강하며, 사회의 편견에 맞서는 이들의 용기가 아름답고 따뜻한 카페를 만들어냈다.

사랑과 인권 앞에 '사회적 합의'는 필요없다

소수자와 약자를 향한 차별과 피해는 언제나 '지금 당장' 개선해야 한다.
 소수자와 약자를 향한 차별과 피해는 언제나 '지금 당장' 개선해야 한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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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와 잇지가 당시 남부의 '사회적 분위기와 합의'에 따랐다면, 둘이 함께 가정을 꾸릴 수도 없었을 뿐더러 흑인은 손님으로 받지 말았어야 한다. '사회적 분위기와 합의에 따른 인권'이란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인권 앞에는 '여기까지만 차별하자'는 타협도, '나중에'도 없다. 소수자와 약자를 향한 차별과 피해는 언제나 '지금 당장' 개선해야 한다.

나는 묻고 싶다. 루스가 당시의 시대상황에 따라 잇지를 향한 감정을 억누르고 남편에게 맞아가며 숨죽이고 살아야 했는지. 잇지가 흑인을 차별해야 했는지. 루스와 잇지가 행복한 휘슬스톱 카페를 꾸려가며 누구에게 피해를 주었는지. 흑인들과 함께 식당에서 밥을 먹어야 해서 백인의 기분이 상한다면 그 백인이 생각을 고쳐야 할 일이다. 명백한 편견과 차별 앞에서 '사회적 합의' 운운할 수는 없다.

영화를 본 뒤 "그래도 저들은 좋은 사람이니까"라고 루스와 잇지 커플을 조건부 응원하면서 "그래도 이성애자 커플과 동등한 권리를 줄 수는 없어. 그러니 루스가 죽으면 루스 앞으로 돼있던 재산을 잇지에게 주지 못하게 몰수하고 아들 버디 2세의 양육권도 빼앗아오자"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나? 단순히 누군가가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누군가의 사랑을 '반대'하고, 권리를 빼앗으며, 조용히 숨죽여 살라는 것이 어떻게 혐오와 차별이 아닐 수 있을까? 진정한 변화는, 사회적 분위기와 합의를 앞질러 갔을 때, 그것을 벗어날 때 일어난다.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는 단순히 한 시대의 조금은 독특한, 혹은 가십으로 소비될 만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시대와 세대와 성별과 인종을 넘어선 연대와, 그 연대가 지닌 힘을 이야기한다. 여성주의 모임에 나가 자신의 성기를 거울로 비추고 있기에는 겁이 많고, 그렇다고 '착한 아내'로 무시당하고 숨죽이며 살기에는 화가 나는 중년의 여성 에블린은, 그 옛날 잇지와 루스의 얘기를 들으며 용기를 얻는다.

조숙하지 못하다는 말을 들을까봐 순결을 지키고, 남편을 만족시키기 위해 오르가즘을 연기하며 괴팍한 여자라고 욕 먹을까봐 페미니즘을 지지하지 못하고 남편이 화를 낼까봐 숨죽여 살던 그녀는, "젊다기엔 너무 나이를 많이 먹었고 늙었다기엔 내 청춘이 아깝다"며 좌절하고 있을 때 80 먹은 노부인의 이야기에 용기를 갖게 되고 삶의 의미를 되찾아간다. 세계의 편견에 맞서 싸운 이의 이야기는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어 '실질적인' 용기를 준다. 그 전에도, 지금도 끊임없이 편견에 싸우는 고마운 이들이 있고, 우리는 그들에게 얼마간의 빚을 진 채 살아간다.

최근 국내 예술계에 만연한 성폭력 이야기가 수면 위로 떠올랐을 때 '#내가 너의 용기가 되어줄게'라는 해시태그가 돌았다. 이보다 적절한 말이 있을까. 우리가 우리의 용기가 됨으로써, 한 명의 소수자, 약자는 힘을 가지게 된다. 서로 다른 차별과 폭력으로 고통받는 소수자라고 해도, 인권 앞에서는 평등하기에 소수자 간의 연대가 가능하다. 사회적 합의라는 것이 명백한 폭력과 편견일 때, 소수자와 약자의 연대는 얼마나 중요한가. 영화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는 혐오보다 강한 사랑의 힘을, 그 아름다운 용기를 보여준다. 그러니 우리 용기를 갖자.

[씨네밥상 레시피] 휘슬스톱의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휘슬스톱의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휘슬스톱의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 강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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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는 작가 패니 플래그가 '십시의 레시피'라며 휘슬스톱 카페에서 파는 음식의 레서피를 부록처럼 제공하고 있다. 소설과 영화가 인기를 끌며 매니아 층이 많아지자 아예 < Fannie Flagg's Original Whistle Stop Cafe Cookbook>이라는 쿡북이 발간되기도 했다.

휘슬스톱의 메뉴는 미국 남부 흑인들의 소울푸드가 주를 이루는데 치킨, 바비큐, 버터밀크 비스켓 등 푸짐하면서도 즉각적으로 침샘을 자극하는 것들이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는 대표적인 남부의 음식이지만 독특해서 잘 안 알려진 음식이기도 하다. 아직 덜 익은 풋 토마토를 따 반죽을 입혀 튀기는데 부드러우면서도 향긋하고 바삭한 그 맛이 일품이다. 콘밀(옥수수가루)을 쓰는 레시피도, 그렇지 않은 레시피도 있다.

쿡북에서는 프라이드 그린토마토의 레시피를 3종류로 제공하는데 그중에서도 하나를 응용, 잘 구할 수 없는 콘밀을 빼는 대신 바삭한 식감을 위해 빵가루를 더했다. 우리나라 토마토는 사실 대부분 맛이 없지만, 그래도 그중에 맛 좋은 대저토마토를 사용했다. 대저토마토는 원래 파랄 때 먹어야 맛있기 때문에 파란 상태로 출하되니 파란 버전을 구하기도 쉽다. 다 익은 토마토로도 만들 수야 있지만 육질이 무르고 즙이 많아 튀기기에 적합하지가 않다. 튀긴 토마토는 튀긴 즉시, 따듯할 때 먹어야 제 맛이다.

재료분량 2인분

파란 토마토 중간크기 3개, 달걀 1개, 우유·밀가루·빵가루 ½컵씩, 소금 1작은술, 파프리카파우더·카이엔페어 ½작은술씩(생략가능), 후춧가루 약간, 식용유

1. 토마토는 꼭지를 제거하고 깨끗하게 씻어 1cm 두께로 도톰하게 썬다.
2. 달걀을 곱게 풀고 우유를 부어 잘 섞는다.
3. 밀가루 ¼컵과 빵가루 ½컵, 파프리카파우더, 카이엔페퍼, 소금, 후춧가루를 잘 섞는다.
4. 나머지 밀가루는 접시에 담는다.
5. 자른 토마토의 앞뒤로 밀가루를 뭍힌 뒤 달걀물에 담갔다 3의 반죽옷을 앞뒤로 잘 입힌다.
6. 170도로 가열한 식용유에 반죽옷을 입힌 토마토를 넣어 앞뒤로 노릇하게 튀긴다.
7. 식힘망에서 튀김을 잠시 식힌뒤 그릇에 보기 좋게 담아낸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강윤희는 음식잡지에서 기자로 일하다 회사를 나와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는 푸드라이터. 음식에 관련된 콘텐츠라면 에세이부터 영화, 레시피 북까지 모든 것을 즐긴다. 영화를 보다가 호기심을 잡아끄는 음식이 나오면 바로 실행.



태그:#프라이드그린토마토, #동성애, #레즈비언, #차별금지법, #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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