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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 26일 오전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열린 ‘천군만마(千軍萬馬) 국방안보 1000인 지지선언’ 기자회견에서 인사말을 마친 직후 성소수자 단체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고 있다. 레인보우 깃발을 들고 문 후보를 향해 기습시위를 벌인 이들은 전날 TV토론에서 "동성애 반대 뜻을 밝힌 것에 대해 문 후보의 사과를 촉구했다.
▲ 성소수자 기습시위 벌인 문재인 회견장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 26일 오전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열린 ‘천군만마(千軍萬馬) 국방안보 1000인 지지선언’ 기자회견에서 인사말을 마친 직후 성소수자 단체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고 있다. 레인보우 깃발을 들고 문 후보를 향해 기습시위를 벌인 이들은 전날 TV토론에서 "동성애 반대 뜻을 밝힌 것에 대해 문 후보의 사과를 촉구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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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다가오는 대선에서 문재인을 찍을 생각입니다. 저는 지난 2012년 대선 당시에도 문재인 후보를 뽑았고 이번에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나라 꼴이 좀 나라 꼴다워지도록 이끌 수 있는 사람을 경선 단계에서부터 내 손으로 직접 뽑고 싶어서 몇달 전 부랴부랴 난생 처음 당원 가입이란 것도 해봤습니다.

사실 문재인 후보의 모든 점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따지고 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더 많습니다. 정치인으로서의 문재인은 저에게 최선이 아닌 차선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그리고 단 한 명의 정치 지도자가 마치 메시아처럼 모든 것을 일거에 해결해주리라는 기대는 매우 위험하고 비현실적이며, 반민주주의적인 생각이란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문재인 후보를 뽑으려고 했던 것은, 한국의 온갖 안 좋은 것들은 다 만들어내고 그 위에서 기생하고 있는 새누리당 계열의 반대편에 위치한 현실 정치인 중 가장 합리적인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다소 아쉬운 점이 있더라도 '그래도 말을 알아들을 사람'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고백하자면 그가 심상정 후보보다 더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문재인 후보를 통해 드디어 '내가 뽑은 대통령'이라는 감각을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여태껏 한 번도 내가 뽑은 사람이 대통령이 된 적이 없었습니다. 선거에서 승리하는 경험을 이번에 문재인 후보를 통해 누려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TV토론 중의 동성애 혐오 발언은 이 모든 결심을 수포로 돌아가게 만들었습니다. 이런데도 불구하고 내가 저 사람을 뽑아야 하는가? 라는 회의가 자꾸 듭니다. 다른 문재인 지지자들이 '쉴드'를 치겠답시고 호모포빅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걸 보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는 이 문제에 분노하는 다른 시민들 앞에서 낯이 서질 않습니다. 동성애가 군 전력을 약화시킨다는 사실관계조차 틀린 한심한 혐오발언에 서슴없이 "그렇게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하는 그 모습은 정말 참담합니다. 자칭타칭 "인권 변호사"라고 했던 것이 부끄럽지 않으십니까?

저는 부끄럽습니다. 어떤 '인권 변호사'도 동성애에 반대한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물며 '인권 변호사'는 정치인 문재인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 아니었습니까. 사람들이 문재인에게 기대하는 까닭은 그가 노무현의 민정수석이어서가 아니라 노무현과 함께 약자를 대변했던 변호사 문재인이어서가 아니었습니까.

이 사안을 비판하는 모두가 지적하듯, 성적 지향(Sexsual Orientation)은 논쟁가능한 성질의 것이 아닌 존재에 대한 것입니다. 당신과 당신의 지지자들은 무지개를 찬성하거나 반대할 수 있습니까? (목적어에 무지개를 넣었을 때 비문이 되어버리는 이 상황을 보십시오) 반대하면 무지개가 없어집니까? 당신들의 무지개에 대한 호오가 무지개의 존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까?

이와 똑같은 어리석은 말을 당신이 했고 당신의 지지자들은 그것을 확대재생산해 내고 있습니다. 동성애에 꽂혀서 다른 성소수자를 투명인간 취급하고 있는 것도 매우 반인권적이라는 얘기도 꼭 해둬야겠습니다. (문재인 후보는 지난 27일, 토론회에서의 '동성애 반대' 발언에 대해 기자들 앞에서 해명 및 사과하고, 자신의 페이스북에도 사과글을 올렸다. 관련기사: "성소수자에 아픔 드려 송구", 문재인 이틀 만에 사과 )

어쩌면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안철수 후보와 홍준표 후보는 성소수자에 대해 더 심한 혐오발언을 했는데 더 큰 비난은 문재인 후보에게 집중되어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재인 후보를 비난하는 사람들조차 안철수 홍준표보다 문재인이 '말을 알아들을 사람'이라는 지푸라기의 기대가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제가 문재인 후보에게 갖는 마지막 한 줌의 희망이기도 합니다.

배우 조지 클루니는 한때 게이가 아니냐는 시선과 질문을 무수히 받았습니다. 당시의 조지 클루니는 그것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를 나중에 밝히길 본인이 게이가 아니라고 부정할 때 받을 수도 있는 동성애자 친구들의 상처를 고려해서라고 말했습니다. 마치 동성애가 나쁜 어떤 것인 양, 아니라고 밝혀야 그제서야 떳떳해지는 것처럼 말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었습니다.

"저의 성 정체성에 관해 이야기들이 많지만 게이가 맞다, 아니다, 라고 확실하게 말하고 싶지 않아요. 그렇게 말하면 게이 커뮤니티에 있는 저의 좋은 친구들이 불편한 시선을 받을 수도 있잖아요. 저는 사람들이 게이라는 사실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편견이 있다면 그대로 두어선 안돼요." - 조지 클루니 (GQ 2013년 11월호 인터뷰 중)

나는 사람에 대한 생각이 미국의 배우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람을 한국의 대통령으로 뽑고 싶지 않습니다.

문재인 후보는 혐오를 판매하는 기독교 세력의 표를 의식하여 전략적인 발언을 하는 것을 멈춰야 합니다. 문재인 후보는 대한민국 시민의 대표가 되고자 하는 것이지 한국기독교총연합 회장 선거에 출마하는 것이 아닙니다.

끝으로, 동성애자의 권리를 침해하지 말고, 다른 이성애자와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라는 말을 하기 위해 내가 굳이 이성애자임을 말해야 하는 사회는 이미 차별적입니다. 나는 게이라서 그들의 동등하고 평등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사람이기에 그들의 권리를 주장합니다. '네 가족이 게이여도 그런 말을 할래?' 같은 멍청한 얘기는 넣어두십시오. 내 가족이 게이인 것은 아무 해가 되지 않으나, 사람의 얼굴을 하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저에게는 더 끔찍하니까요.

덧붙이는 글 | 꿀곰 블로그 (https://brunch.co.kr/@honeybear/5) 에도 게재됐습니다



태그:#문재인, #성소수자, #동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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