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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특검조사를 받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승계와 관련된 불법행위 혐의로 구속되었다. 특히 대중들은 국민연금과 관련된 지점에서 제일 많이 분노했다. 국민연금은 막대한 손해를 보면서까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고 이는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승계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기업의 사적 이윤을 위해 서민들의 노후 자금을 축 낸 꼴이다.

그런데 재벌이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이용하는 것은 국민연금만이 아니다. 국민건강보험도 위험하다. 이미 상당한 금액이 재벌기업의 제품 개발과 판매를 위해 지출되고 있다. 이를 위해 재벌기업의 이익을 국가 전체의 이익으로 공식화시키는 과정들이 있었다.

2010년, 보건복지부는 '미래복지사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산업 선진화 방안'이라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한국 보건산업의 통일된 비전과 전략적 방향성을 제시할 기본계획을 수립하기 위해(복지부 보도자료)" 삼성경제연구소에 맡긴 연구용역의 결과물이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삼성그룹의 미래 수익 창출을 위해 준비하던 바이오·신약과 의료기기 발전 로드맵을 보고서로 작성해 보건복지부에 제출했다. 그 결과 삼성의 바이오·신약과 의료기기 사업 진출을 위한 야심찬 전략은 곧 한국 보건산업 정책이 되었다. 이 보고서는 보건복지부가 수행해야 할 대표전략과제로 의료기기 임상시험 지원, 원격의료를 포함한 유헬스 기술 개발, 줄기세포·유전체 치료 기술 개발을 꼽았다.

복지부는 삼성의 요구를 성실히 이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분야가 의료기기로, 세금과 건강보험료를 이용해 의료기기 개발과 판매를 도와주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의료기기들이 효과는 없으면서 비싸기만 하다는 점이다.

원격의료와 건강관리서비스, 핵심은 의료기기다

지난 3월 보건복지부가 의사-환자간 원격의료를 허용해달라며 의료법 개정안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제출했다. 법안에는 지금껏 원격의료를 반대해왔던 동네의원 의사들이 혹할 만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대상자 중 가장 수가 많은 만성질환자에 대한 진단과 처방은 원격의료에서 제외하겠다는 문구였다. 이 변화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원격의료 통과가 그만큼 절실하다는 거고, 다른 하나는 의사나 병원의 이해관계가 원격의료의 핵심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편 법안에서 또 하나 눈여겨 봐야할 점이 있다. 의료법 제 34조(원격의료)만 개정하는 것에서 제 24조(요양방법 지도)도 개정하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의료법 24조는 "의료인은 환자나 환자의 보호자에게 요양방법이나 그 밖에 건강관리에 필요한 사항을 지도하여야 한다"라며 의사의 건강관리 지도에 대한 의무를 담고 있다. 여기에 새로 조항을 신설해 원격의료기기를 이용한 건강관리서비스의 법적 토대를 마련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복지부가 그토록 절실하게 원했던 원격의료와 건강관리서비스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원격의료기기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원격의료기기 시장 창출이야말로 원격의료와 건강관리서비스 정책의 핵심이다.

대표적인 원격의료기기에는 혈압계, 혈당계, 활동량계가 있다. 그 중에서도 활동량계가 가장 시장이 크다. 혈압계는 고혈압 환자에게만 팔 수 있고 혈당계는 당뇨 환자에게만 팔 수 있다. 하지만 활동량계는 의학적으로 체중조절이 필요한 모든 사람에게 팔 수 있다. 원격의료와 건강관리서비스가 전면 시행되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천만 명에게 활동량계를 팔 수 있다.

원격 활동량계(웨어러블 디바이스)는 효과가 없다

2016년 유명 의학잡지 두 곳(Lancet Diabetes Endocrinology, JAMA)에 활동량계 효과를 장기 연구한 논문이 한 편씩 실렸다. 두 연구 모두에서 활동량계로 인한 운동 증가 효과는 미미한 수준이었으며 체중이나 혈압 감소 효과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정부와 의료기기 업계는 어떤 자료를 근거로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정부가 제시하는 근거자료나 시범사업 결과를 보면 원격의료기기를 사용한 사람들과 사용하지 않은 사람들을 비교한다.

그런데 원격의료기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의료진과 상담이 이루어지고 일정 수준의 기대를 받고 있었다. 반면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혼자 건강관리를 했다. 시범사업이 끝나고 결과를 측정하면 원격의료기기를 사용한 사람들의 건강수준이 더 높게 나온다. 하지만 그것은 원격의료기기의 효과가 아니다.

실험 관찰자의 관심이 실험 대상자의 행동에 긍정적 영향을 미쳐 좋은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를 호손 효과(Hawthorne effect)라 한다. 대상자가 블루투스를 지원하는 원격 활동량계를 차든, 일반 손목시계를 차든 의료진과의 접촉과 교류만 있다면 똑같이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다. 앞에서 설명했던 두 장기 연구에서는 원격 의료기기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도 의료진 상담은 같은 빈도로 받았다.

실제 지난 20년 간 원격의료와 관련된 연구들을 의료기기에 따라 분류해서 비교해본 논문이 있다. 그 결과 화상진료 기기를 이용하든, 원격 활동량계와 같은 원격모니터링 기기를 이용하든, 일반 전화 상담을 하든 건강증진 효과에는 차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전화기와 달리 원격의료기기는 비싸고 따로 구매를 해야 한다. 건강보험 적용을 해주게 되면 건강보험 재정 낭비요, 환자가 전액 부담하게 되면 환자 손해다. 환자들은 원격 의료기기를 이용해서 건강증진을 했으니 비용이 아니라 투자라 생각하겠지만, 전화 상담만 했어도 결과는 같을 것이다.

이런 착시 효과를 근거로 정부는 원격의료기기를 이용한 원격의료와 건강관리서비스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시범사업 때 사용하는 기기 비용은 건강보험 재정과 국민건강증진기금에서 지출되고 있다.

보험회사가 원격의료기기를 이용해 개인건강정보를 훔친다

사람들이 원격의료기기를 사용하면 이득을 보는 기업은 의료기기 기업 말고 또 있다. 바로 보험회사다. 박근혜 정부는 작년 9차 투자 활성화 대책을 발표하면서 보험회사도 건강관리서비스를 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다.

지난 3월 7일에는 금융위원회가 생명보험협회를 통해 각 보험사에 서면 자료를 전달했다. 요지는 원격의료기기를 제공해도 불법 행위로 간주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마음 놓고 원격의료기기를 제공하라는 면죄부를 준 것이다.

만약 보험회사가 원격의료기기를 가입자에게 제공하는 경우, 가입자의 개인건강정보가 모두 유출된다. 민간보험사들은 가입자가 질병에 걸릴 확률에 기초해 보험금을 책정한다. 따라서 그 건강정보를 분석해 질병 발생 가능성이 높은 가입자에게 더 많은 보험금을 책정할 것이다. 보험사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일이다. 실제 일본 민간보험사들은 건강관리서비스 회사를 운영하며 얻은 개인건강정보를 상품 개발에 활용하고 있다.

비용은 서민이, 이익은 재벌이? 이제는 멈춰야 한다!

삼성이 의료민영화를 추진하는 대표적인 기업으로 지목받는 이유는 앞서 이야기한 보고서 때문만은 아니다. 삼성이 헬스케어 분야의 모든 기업을 다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기기, 바이오·신약 제조 회사부터 민간보험사, 상급종합병원에, 심지어 건강관리서비스 회사까지 소유하고 있다. 거기에 복지부 보고서와 최순실 게이트를 고려하면 한국 의료민영화 정책에 삼성의 영향이 없을 리 없다.

정부는 지금 펼치고 있는 정책들이 중소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의료기기와 제약 산업은 모두 소수 대기업이 시장을 독식하고 있는 과점 체제다. 신기술을 개발하는 중소기업은 모두 대기업에 의해 인수되거나, 기술을 대기업으로 이전해 버린다.

따라서 규제가 본격적으로 완화되면 재벌기업들이 기술을 가진 중소기업을 모두 집어삼키고 이윤을 독식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규제 완화의 수혜자는 재벌기업이지, 중소기업이 아니다.

삼성이 국민연금에 이어 건강보험 재정까지 가로채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재벌기업이 만드는 의료기기를 팔아주려고 규제를 완화해서도 안 된다. 재벌과 정부가 결탁하여 만든 모든 의료민영화 정책을 폐기해야만 진정한 적폐청산이 이루어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김진현(사회진보연대 보건의료팀 정책위원, 의사)



태그:#건강보험, #원격의료, #건강관리서비스, #의료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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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농민,보건의료 시민사회단체를 총 망라하는 연대체로써 의료민영화 저지와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대국민홍보와 정책대안 마련을 위해 결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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