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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만개의 촛불에는 정의와 민생을 살리라는 요구가 담겼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촛불대선에서 정의와 민생은 실종되고, "주적이 누구냐"는 구시대적 색깔 공세만 난무합니다. 국민들은 오히려 그들에게 묻습니다. 진짜 주적이 누구인지 아느냐고. <오마이뉴스>는 몇 차례에 걸쳐 '지금, 내 삶의 주적은 누구인가'를 게재합니다. [편집자말]
광화문 고공단식 농성자들은 공복은 물론 추위와도 싸우고 있다. 이인근 금속노조 콜텍지회장의 모습
 광화문 고공단식 농성자들은 공복은 물론 추위와도 싸우고 있다. 이인근 금속노조 콜텍지회장의 모습
ⓒ 투쟁사업장공동투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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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땀과 노력이 자본의 이윤과 권력 유지로만 이용되는 현실이 주적입니다."

오랜 단식으로 지친 그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김혜진(49)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민주노조사수 투쟁위원회 대표는 노동자들을 이용해 자본과 권력이 유지되는 현실을 삶의 주적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현재 김경래 동양시멘트지부 부지부장, 고진수 세종호텔노조원 등 6명의 노동자들과 서울 광화문 세광빌딩 옥상에서 고공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다.

그들은 "비정규직·정리해고·노동악법 철폐"를 외친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보장하라고 부르짖는다. 4월 26일, 물과 소금만으로 버틴 지 벌써 13일째다. 따뜻한 봄날이지만 밤에는 높이 40m 옥상에 매서운 바람이 몰아친다. 춥고 배고픈 고난이다.

그들을 직접 만나러 광화문 빌딩 옥상으로 올라갔지만, 입구를 막은 경찰의 제지로 만나지 못했다. 해당 건물주가 출입을 막아달라는 요청이 있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전화통화로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단식과 추위, 빌딩 위에서 '고난' 자처한 이유

(앞부터) 장재영 현대차울산비정규직지회 조합원, 고진수 세종호텔노조 조합원, 오수일 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대의원, 이인근 금속노조 콜텍지회장, (서있는 2명 앞부터) 김경래 민주노총 동양시멘트지부 부지부장, 김혜진 민주노조사수투쟁위원회 대표.
 (앞부터) 장재영 현대차울산비정규직지회 조합원, 고진수 세종호텔노조 조합원, 오수일 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대의원, 이인근 금속노조 콜텍지회장, (서있는 2명 앞부터) 김경래 민주노총 동양시멘트지부 부지부장, 김혜진 민주노조사수투쟁위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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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공 농성 말고는 선택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는 박근혜 탄핵까지 이르는 모든 과정에서 촛불 시민들과 함께 했다. 하지만 탄핵 이전에도 이후에도 여론은 그들이 겪는 노동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유력 대선후보들은 노동이 아닌 쓸데없는 '주적'만 이야기한다.

광화문 정부청사 앞에서 시위도 이어갔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여전히 관심 밖의 일이었다. 결국 옥상에 올라간다는 결단을 내렸다. 빌딩 앞에서 고공 농성자들에 대한 지지 농성을 벌이고 있는 이상목 금속노조 하이디스 지회장은 "죽는 것을 빼면 마지막 수단"이라고 했다.

그가 이를 악물고 버티는 이유는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등 노동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옥상 밑에서의 삶도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는 노동 문제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노동3권이 온건히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노동문제가 소외돼 있는데, 이는 사회적인 문제라고 생각해요. 현재 10개 사업장이 모여서 싸움을 하고 있고, 6개 사업장이 옥상에 올라왔는데, 각각 사업장 문제를 걸고 올라오지 않았어요. 작은 싸움이 아닌 큰싸움을 하자고 했습니다. 자본과 권력의 유지를 위해 일상적으로 학살되고 있는 노동 문제 해결입니다."

"노동문제 해결 안 되면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 오지 않아"

(앞부터)오수일 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대의원, 김혜진 민주노조사수투쟁위 대표, 김경래 민주노총 동양시멘트지부 부지부장, 고진수 세종호탤노조 조합원
 (앞부터)오수일 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대의원, 김혜진 민주노조사수투쟁위 대표, 김경래 민주노총 동양시멘트지부 부지부장, 고진수 세종호탤노조 조합원
ⓒ 신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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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는 노동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는 오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자본 쪽으로 기울어진 '노동'의 추를 공평하게 세우지 않으면, '차별 구조'는 지속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노동자들은 기간제와 파견제 같은 온갖 악법들로 규제되고 자본의 사적 이익을 위해 탄압받고 유린당합니다. 선량한 사람들의 땀과 눈물이 자본과 권력 유지로 이용되고 있어요. 헌법에 보장된 노동 3권을 보장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대선 후보들이 민생이 아닌 '주적' 등 해묵은 안보 논쟁만 반복하고, 여전히 노동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실망감을 보였다. 당초 기대하진 않았지만, 이 정도까지 관심을 갖지 않을 줄은 몰랐다.

"사실 대선에서 우리 이야기를 해줄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어요. 그나마 대선 기간 되면 대선 후보들이 비정규직 눈물 닦아주겠다, 조금 이야기라도 하는데, 지금은 예전보다도 훨씬 못 미쳐요. 대선 후보들, 각 정당들이 노동을 어떻게 대하는지 요즘 특히 뼈저리게 느껴요."

대선주자들이 공약으로나마 노동 문제를 말하곤 있지만, 그는 아직 신뢰할 수 없다. 역대 정권 모두 공약을 해놓고, 말을 손바닥처럼 뒤집었다. 말만 해놓고 실천이 없었다.

"우리 싸움은 김대중 정권 때부터 시작됐어요.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모두 자기 공약으로 내세운 것들을 종잇장 뒤집듯 뒤집지 않은 사람이 없었어요. 실천의 문제입니다. 좋은 공약을 발표한다고 해도, 그 공약이 지켜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10일이 넘게 이어지는 단식, 그것도 건물 옥상에서 하다보니, 고충은 더 심하다. 밑에서 지원 농성을 하는 동지들을 보기 위해서는 2m 되는 철골 구조물을 딛고 올라서야 해서, 체력 소모도 더 크다.

"한 사업장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의 문제, 모두의 문제"

26일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 고공농성빌딩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기자회견을 취재하는 기자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26일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 고공농성빌딩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기자회견을 취재하는 기자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 신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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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들이 하는 고공농성이 단순히 한 사업장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해달라고 했다. 자신들의 고공농성을 단순히 몇몇 사업장의 특정 문제라고 단정하는 것은 '폄훼'라고 했다.

"지금 싸우는 동지들 중 비정규직 노동자도 있고, 정규직인데, 공장 폐쇄로 정리해고된 동지도 있고, 노조를 파괴하려는 회사의 탄압에 맞서 싸우는 동지도 있어요. 이를 단순히 투쟁사업장의 문제로만 바라보는 것은 폄훼하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모두의 문제를 해결하자, 그것이 이 싸움에서 이기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26일 오전 그들이 고공 투쟁을 이어가는 광화문 세광빌딩 앞에선 고공단식농성 지지와 연대를 위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노동자 20여 명이 모였지만, 이를 취재하는 기자들은 찾기 어려웠다.

지상 농성장 한 켠에는 시민들을 상대로 고공농성지지 서명을 받고 있었다. 이날 오전 내내 서명에 참여한 사람은 20여 명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노조원들이 대부분이었다. "서명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설명이다. 점심시간이 되면서 정장 차림의 직장인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농성장에 눈길을 주는 이는 없었다. 

현재 광화문에서 고공시위를 하는 사람들은 김경래 민주노총 강원영동지역노조 동양시멘트지부 부지부장, 고진수 세종호텔노조 조합원, 오수일 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대의원, 이인근 금속노조 콜텍지회장, 김혜진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민주노조사수 투쟁위원회 대표, 장재영 현대차울산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이다.


태그:#삶의 주적, #노동, #비정규직 철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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