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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만개의 촛불에는 정의와 민생을 살리라는 요구가 담겼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촛불대선에서 정의와 민생은 실종되고, "주적이 누구냐"는 구시대적 색깔 공세만 난무합니다. 국민들은 오히려 그들에게 묻습니다. 진짜 주적이 누구인지 아느냐고. <오마이뉴스>는 몇 차례에 걸쳐 '지금, 내 삶의 주적은 누구인가'를 게재합니다. [편집자말]
시민들은 사회적 문제를 정당이 해결하지 못할 때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들었다.
 시민들은 사회적 문제를 정당이 해결하지 못할 때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들었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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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승민 의원에게 촛불 시위란?

"국민의 소리죠."

"국민들께서 그냥 광장으로 나오셨겠는가"라며 "대통령과 측근 세력들의 헌법·법률 위반, 굉장히 심각한 잘못이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서 촛불이라는 국민의 소리, 국민의 민심이 표출된 것"이라고도 했다. 지난 2월 16일, JTBC <뉴스룸> '소셜라이브' 인터뷰에서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한 말이다.

유 후보는 이런 말도 했다. "정치인들 입장에서는 촛불이든, 태극기든, 그 민심에 대해 늘 정확하게 파악하려고 노력할 의무가 있다". 그로부터 두 달 여 지난 지금, 유 후보 등 대권에 도전하고 있는 정치인들에게 묻고 싶다. 지금 당신들의 '토론'이 민심을 정확하게 파악한 결과인가. 정치인으로서 의무를 정녕 다 하고 있는 것인가.

유승민 후보 덕분에 던진 질문, 내 삶의 주적

유 후보 덕분이었다. 두 달 여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그래서 더욱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TV뉴스 등을 통해 목격하면서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그래, 주요 적이란 말이지? 그럼 내 삶의 '주적'은 누구지? 금방 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는 '당위'에 따라 먼저 떠오른 답은 '나'였지만, 그렇다고 이 척박한 현실에서 버티고 있는 '나'에게 그렇게까지 적개심을 드러내는 것은 너무하다 싶었다.

적개심, '적과 싸우고자 하는 마음' 또는 '적에 대하여 느끼는 분노와 증오'란 뜻에 주목해 보기도 했다. 평소 언제, 누구에게 분노를 느끼는가, 생각해 봤더니 난 확실히 '화'가 많은 사람이었다. 이른바 '길빵(보행 흡연)'을 하거나 꽁초를 아무데나 버리는 인간, 신호가 바뀌어 횡단보도에 나서는 순간 쏜살같이 지나가는 자동차,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내리기도 전 밀고 들어오는 어깨 등등. 참 많았지만, 그들 모두를 주적으로 삼을 순 없다. 무엇보다 난 '이소룡'이 아니다. '레이저 우병우'까지다.

그 다음으로는 언제 두려움에 휩싸이는지 생각해 봤다. 솔직히 북한보다는 <그것이 알고싶다>가 더 무서웠다. 프로그램을 통해 왕왕 소개되는 살벌하고, 흉악하고, 사악하기 그지없는 범죄와 인간을 접할 때마다 두려움을 느꼈고 내 가족이 떠올랐다. 허나 그렇다고 또 언제 다가올지 모를 위협을 '주적'으로 규정하는 것 또한 우스운 일이다. 그보다는 나를 지켜주는 경찰을, 대한민국을 믿는 편이 낫다. 암 그렇고 말고.

그렇기에 강렬한 분노를 느끼거나 두려움을 넘어 허망함을 느꼈던 경우는 결국 이런 가장 기본적인 믿음이 깨질 때였다. 꽃다운 나이의 학생들이 갑자기 다리가 뚝 끊기는 바람에 허망하게 이 땅을 떠나는 현장을 생중계로 지켜봤었다. 바로 다음 해에는 폭삭 주저앉은 삼풍백화점 현장을 직접 목격했다. 불타는 지하철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상상하기에도 어려운 고통 속에 사라졌고, 그리고, 세월호 침몰을 꼼짝없이 생중계로 지켜봤다. 이 땅에서 이젠 제법 오래 살았는데, 이런, 참 말도 안 되는 비극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옛 드라마 <하얀 거탑>의 대사가 떠오르는 것도 그래서다.

제2금융권 대출 총액 700조, 재벌들 사내유보금 710조

"자판기도 동전 넣으면 커피 한 잔은 토해냅니다."

새파란 나이에 총 들라고 해서 총 들고, 그것도 모자라 예비군 나오라고 하면 또 나가고, 꼬박 꼬박 세금 내고, 하라는 대로 꼬박 꼬박 내 인생의 '동전'을 넣고 있는데, 어찌 된 일인지 520만 명(통계청 추산 현재 1인 가구 숫자) 중 한 사람인 내 손에는 '커피 한 잔' 쥐여주지 않는 것 같다. 지금은 지금대로 불안하고, 앞으로는 또 앞으로 대로 불안하다.

물론 이런 불안함은 나이나 사상 등 차이를 불문하고 지금 서민들 대부분이 느끼는 문제다. 열심히 살면, 결혼도 하고, 가정을 이루고, 내 집도 사고, 뭐 그렇게 되는 것이 최소한의 상식인데, 그게 참 어렵다. '그 놈의' GNP는 분명 내 20대 시절보다 훨씬 오른 것은 분명한데, 지금의 청년들은 또 그들의 부모는 '그 놈의' 등록금 때문에 그때보다 허리가 더 휜다. 아무리 봐도 지금의 청년들은 나의 20대보다 훨씬 더 스펙이란 놈이 뛰어난 것 같은데, 취업하기가 그 시절보다는 훨씬 더 어려워졌다.

이와 같은 민생 문제가 전시에 준하는 상황이란 건 통계청 발 숫자 몇 가지만 살펴봐도 자명해진다. 2016년, 전년 대비 신혼부부가 작년에 2만쌍이나 줄었고, 출생아 숫자 또한 40만6천명으로 역대 최소 수준이었다고 한다. 양극화는 또 어떠한가. 작년 소득 하위 20%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44만 7천원으로 전년 대비 5.6% 감소한 반면, 상위 20% 경우는 834만8천원으로 2.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예산정책처 '저출산 문제와 교육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사교육비 지출 규모에 따른 주요 10개 대학 진학률이 '구체적으로' 큰 차이를 보였다고 한다.

그러니 갈수록 느는 것은 빚이다. 지난 해 가계부채가 1344조3천억 원으로 역대 최대다. 시민 한 사람 당 2600만 원 정도 빚을 지고 있다고 한다. 영세 자영업자들의 경우는 매달 버는 돈의 거의 절반을 빚 갚는데 썼다고 하고, 지난 해 10월말 현재 은행이 아닌 금융기관 대출 총액은 사상 처음으로 700조 원을 넘어섰다. 그런데, 그만큼의 돈(사내유보금, 710조원)을 금고에 쌓아두고 있는 재벌들, 그 중 삼성은 그것도 모자라 국민연금에까지 손을 댔다. 최소한의 정의마저 바닥에 완전히 떨어졌다.

나는 이미 '핵'을 보유하고 있다

그랬기에 시민들이 거리로 나선 것이다. 잠시 생업을 놓고 또는 금쪽 같은 휴식을 버리고 그 많은 사람들, 주최측 추산 1600만 명이 요구한 것이 대통령 탄핵만이 아니다. 그 많은 사람이 든 촛불에는 정의를 다시 살리고, 민생을 진짜 살려내라는 요구가 담겨 있었다.

그래서 적어도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 무너진 정의를 어떻게 다시 일으키고, 무너져 내리는 민생을 어떻게 지켜내고 다시 일으킬 것인지가, 우리의 미래 이야기가 이번 대선 정국에서 중심에 놓일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지난 주 토론 시작부터 정치인으로서의 의무를 저버린 것은 정작 유승민 후보 자신이었다. "촛불이든, 태극기든, 그 민심에 대해 늘 정확하게 파악하려고 노력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던 그는 "주적이 누구냐"부터 물었다. 그것도 모자라 유 후보는 10년 전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표결 과정을 들먹이며 사실상의 사상 검증을 주도했다. 지금의 엄중한 민생 현실에 비하면, 이런 시대착오적 논쟁은 '국민 발가락'에 낀 때만큼의 가치도 없는 것이다.

유승민 후보의 질문에 문재인 후보가 답하고 있다
 유승민 후보의 질문에 문재인 후보가 답하고 있다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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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고 노무현 대통령 뇌물 수사 이야기가, 서민 경제가 도탄에 빠진 지금, 무엇이 그리도 중요하다는 말인가. 토론이 벌어질 때마다 '640만 달러'를 입에 올렸던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25일 JTBC 대선 토론에서도 또 그 이야기를 꺼내들었고 결국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이보세요"에 "버릇이 없다"로 맞받으며 충돌했다.

이 장면을 지켜보며, 적어도 지금, 내 삶의 주적이 누구인지 결론에 도달했다. 버릇의 첫 번째 뜻, 윗사람에 대한 예의. 정치인에게 윗사람인 시민 또는 국민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는 대선 후보. 버릇의 두 번째 뜻, 오랫동안 자꾸 반복하여 몸에 익어 버린 행동. 선거 때만 되면 '입'으로만 국민을 모시거나, 툭하면 납작 엎드려 절을 하면서도, 실제 서민들이 듣고 싶어하는 진짜 이야기는 외면하는 못된 버릇을 갖고 있는 정치인들.

그들이 지금, 내 삶의 '주적'이다. 그리고 나는, 우리는 이미 그런 주적을 응징할 수 있는 '핵'을 각자 보유하고 있다.


태그:#주적, #유승민, #홍준표, #촛불, #하얀 거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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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냉탕과 온탕을 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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