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토론 참석한 대선후보들 중앙일보-JTBC-한국정치학회 공동주최 2017 대통령 후보 초청 토론회가 25일 경기도 고양시 빛마루 방송지원센터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

▲ JTBC 토론 참석한 대선후보들 지난 25일 진행된 중앙일보-JTBC-한국정치학회 공동주최 2017 대통령 후보 초청 토론회에 참여한 대선 주자들 모습. 왼쪽부터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 국회사진취재단


좀 심하게 말해보자. 이런 걸 두고 쓸데없는 싸움이라고 하는 걸까. 25일 진행된 대선후보 4차 토론회에서 홍준표 대선 후보가 뜬금없이 던진 "동성애를 반대하냐"는 질문에 문재인 후보가 "반대한다"고 답했다. 재차 확답을 필요로 하는 질문에 "좋아하지 않는다"라 문 후보 다소 순화하긴 했지만, 이 발언만 놓고 현재까지 두 후보 모두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보수 기독교인 표심을 염두에 둔 전략이었거나 말려들었거나 해석은 분분하지만, 분명히 기억해야 할 사실을 아이돌 그룹 젝스키스 출신 배우 장수원의 말을 빌려 표현해본다.

"앞뒤가 안 맞잖아!"

앞서 언급한 두 후보 간 대화의 본 주제는 차별금지법 제정이었다. 성별, 나이, 인종, 장애, 성 정체성 등을 이유로 하는 차별을 금지하고 이에 대한 처벌규정까지 포함된 법을 말한다. 홍준표 후보는 군부대 이야기를 하다 뜬금없이 동성애 찬반을 문 후보에게 물었고, 이에 문재인 후보가 답한 흐름이다. 정체성을 찬반의 영역에 붙여버린 홍준표의 질문이 일단 잘못됐고, 이를 받아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한 문재인의 대답 역시 적절치 않다는 게 중론이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26일 서울 중구 세종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차별금지법 얘기 중 문재인 후보에게 "동성애를 반대하냐"고 물었다. ⓒ 이희훈


후보자 검증을 위한 토론이 한 번이 아니고, 토론 진행 방식과 상황, 토론전략에 따라 우열이 달라지기에 일희일비할 건 물론 아니다. 퇴임 후에도 국민의 전폭 지지를 받는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2012년 대선 1차 토론 중 당시 롬니 공화당 후보에게 높아진 실업률과 오바마 케어로 인한 적자 재정 등의 공세를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차이가 있다면 미국 대선 토론에선 날 선 공방 와중에 각 후보자 자신의 공약과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설명했고, 우리 토론에선 소모적인 사실관계 확인과 주장이 대부분이었다는 사실. 부끄럽지 못해 참담하다. 국민의 힘으로 조기 대선국면이 열렸는데 정치인들의 수준은 여전히 그걸 따라가지 못하는 건 아닌지. 그래서 준비한 영화들이 있다. 부디 나랏일을 한다거나 요직에 나갈 분들은 미리 참고하시어 성숙한 토론 문화에 이바지해 주시길 바란다. 딱 세 편만 소개하려 한다.

[하나] 목숨을 건 토론...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영국을 대표하는 감독이자 지난해 69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켄 로치 감독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먼저 소개한다. 때는 1920년대. 영화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아일랜드 사람들의 투쟁기를 세밀하게 묘사했다. 영화엔 독립이라는 대의명분엔 뜻을 같이했으나 이념과 가치관 차이로 결국 서로에게 총을 겨눠야 했던 형제 데미안과 테디를 전면에 세워 당시 아일랜드 사람들이 직면한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대표적 사회주의자기도 한 켄 로치 감독의 가치관이 짙게 나타나는 이 영화는 여러 갈래로 해석되는 텍스트기도 하다. 물론 대중을 대상으로 한 작품인 만큼 여러 극적 사건들이 등장해 긴장감을 담보하기도 한다. 독립군의 행방을 밀고한 한 소년을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손으로 총살해야 했던 주인공의 모습에선 아일랜드인들이 처한 운명의 비극을 잘 보여줬고, 조국의 독립을 위한 투쟁으로 연인과는 엇갈린 길을 가는 모습에선 애잔하기까지 하다.

 영화 <보리밭을 흔드느 바람>의 한 장면.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의 한 장면. 우리 토론 문화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는 장면을 8분의 시간을 들여 보여준다. ⓒ 파테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영화의 백미는 일부 자치만 허용하는 조건으로 영국 연방의 일원이 되라는 요구에 응할 것인지, 완전한 자유를 위해 계속 투쟁할 것인지를 두고 토론하는 시민들의 모습이다. 영화는 126분의 러닝타임 중 이 토론장면을 위해 약 8분의 시간을 기꺼이 할애한다. 하나의 목표를 위해 달려온 이들이 며칠 뒤면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눠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순간이다. 그런데도 토론에 임하는 이들의 모습은 감정적이지 않고, 오히려 차분하다. 상대의 마음을 건드리지도 않고, 자신의 신념을 논리적으로 설파하려 한다. 첨예한 대립에서도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상대의 말을 들으며, 자신이 그것과 다른 이유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우리 토론 문화에선 쉽게 찾을 수 없는 모습이다. 침착하게 설득하는 모습이 그래서 더욱 비장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둘] 토론의 핵심은 태도다... <헤일, 시저!>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 좀 무겁고 딱딱하다면 <헤일, 시저!>는 상당히 부드럽고 코미디 요소 또한 갖춘 수작이다. 1950년대 미국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흥행을 노리고 야심 차게 작품을 준비하던 중 톱 배우(조지 클루니 분)가 공산주의자들에게 납치당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줄거리에서 예상할 수 있듯 어떤 비극이나 비장함보단 소동극이라 생각하면 좋다.

단순한 구성에 비해 이 영화가 품고 있는 의미가 꽤 크다. 영화를 연출한 코엔 형제가 그간 여러 영화를 통해 지식인들과 사회 시스템을 풍자해왔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이 소동극을 쉽게 지나칠 순 없다. 여기선 영화에 두 번 등장하는 토론 장면에 집중하자.

 영화 <헤일, 시저!>의 한 장면.

영화 <헤일, 시저!>의 한 장면. 코믹한 상황 속에 진중한 메시지를 담은 게 일품이다. ⓒ 워킹 타이틀


제작자인 매닉스(조슈 브롤린 분)는 자신이 준비하는 종교 블록버스터 영화를 위해 종교인들과 함께 토론을 벌인다. 영화에 예수가 등장하기에 꼭 거쳐야 하는 단계인데 문제는 테이블에 참여한 종교인들이 자기들끼리 싸운다는 점이다. 예수가 신의 아들인지 아닌지에 집착하는 이들을 매닉스가 직접 말리는 모습에서 사회 지도자의 허울뿐인 이면을 관객 입장에선 바라볼 수 있다.

또 다른 토론은 납치당한 톱 배우가 공산주의자들 사이에서 벌어진다. 재밌는 건 이 공산주의자들이 전혀 괴팍하지도 거칠지도 않다는 점이다. 오히려 신사적으로 자신들의 논리를 설파하고 상대의 말을 경청한다. 이 과정에서 톱 배우는 자신도 모르게 설득당해 이후에 제작자에게 공산주의의 위대함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이 영화의 배경이 1950년대임을 다시 생각해보자. 냉전 시대, 즉 광적으로 공산주의 열풍을 배척하던 당시 미국 사회에 대한 풍자와 동시에 토론을 대하는 매우 중요한 자세를 발견할 수 있다. 토론은 논리가 핵심인 건 맞다. 다만 상대를 설득하는 과정에선 '논리로 설복'하기보단 '좋은 자세로 감화' 시키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 아무리 좋은 메시지라도 천둥벌거숭이 같은 자세라면 그 누구도 들으려 하지 않을 테니까. 왠지 홍준표 후보가 이렇게 물을 것만 같다. "지금, 공산주의를 찬성하는 겁니까?"

[셋] 토론의 교과서... <그레이트 디베이터스>

지금 말하는 영화가 아마 가장 토론의 정석과 토론의 핵심 정신을 설명하는 작품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덴젤 워싱톤이 연출과 주연까지 맡은 영화 <그레이트 디베이터스>다.

이념 갈등과 함께 미국 사회에서 뿌리 깊은 문제 중 하나인 인종 차별. 영화는 바로 그 인종차별의 대상이 된 흑인들의 위대한 토론을 소재로 했다. 사회적으로 흑인들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1930년대였지만 대학교 토론 팀에선 예외였다. 남성 3명, 여성 1명, 총 4인으로 구성된 이 토론팀은 차별과 폭력으로 인해 생긴 울분을 가슴 속에 잠시 누르고 논리와 말로 맞서 싸운다. 

 영화 <그레이트 디베이터스>의 포스터.

영화 <그레이트 디베이터스>의 포스터. 토론의 위대함을 일깨워주는 영화이다. ⓒ 와인스타인 컴퍼니


이 영화로 우린 토론의 위대함과 중요성을 동시에 알 수 있다. 선거와 함께 토론 문화는 본디 민주주의의 꽃이다. 토론 테이블에선 아무리 강한 권력자라도 억만장자 자본가라도 함부로 과시할 수 없다. 사람들을 설득하고 감화시키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은 이상 우스워지기에 십상이다. <그레이트 디베이터스>엔 양질의 토론, 때로는 드라마틱한 토론을 위한 각종 요소가 담겨 있다. 경청하는 자세, 이해하는 자세 없인 상대를 이기거나 설득할 수 없다. 나아가 변화시킬 수 없다.

왜 우린 토론하는가. 작게는 서로의 차이를 합리적으로 발견하는 계기면서 동시에 첨예한 갈등을 벗어나 보다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합의 단계 아닌가. 특히나 사회적 약자로서 토론 등의 언로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창구라는 걸 기억하자.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토론 자체를 폄훼하는 일부 정치인들의 모습이 더는 TV에 나오지 않길 바란다. 그 말할 자유를 위해 수많은 시민이 피 흘렸고, 약자들이 외쳤으니 말이다. 말하기 전에 일단 듣고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볼 일이다. 적어도 시민들의 소중한 한 표를 받으려면 말이다.

본문에 설명하진 못했지만, 번외로 <12인의 성난 사람들>도 함께 추천한다. 사형 판결을 앞두고 12명의 배심원이 토론하는 장면을 다룬 이 영화는 그 자체로 좋은 토론을 위한 텍스트다. 신념과 소신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작품이니 참고하자.

토론회 문재인 홍준표 대통령 선거 장미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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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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