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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누구 찍을 지 결정하셨습니까? 저는 정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후보는 제 가족 친지 선후배부터 사돈에 팔촌의 아랫집 윗집까지 동원해도 당선될 확률이 없는 후보입니다.

지지후보를 말했더니, 주위에서 '굳이 사표를 만드는 심리를 이해할 수 없다'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이 칼럼은 그런 유권자분들에 대한 제 나름의 답변이자, 지지후보가 당선될 리 없다는 이유로 투표를 포기하시려는 분들께 올리는 호소입니다.

선거에 출마하는 이의 목적은 당연히 당선이죠. 그리고 투표하는 이들의 목적 역시 지지자의 당선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본인이 원하는 후보가 아닌 차선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당선 가능성이 더 높은 후보에게 표를 줌으로써 내 표가 '사표'가 되지 않게 하려는 심리 탓이라죠.

'사표'. 무의미한 표를 뜻합니다. 고등학교 법과정치 교과서를 보면 이 '사표'에 대한 서술량이 상당합니다. 고교과정 커리큘럼상 법학과 정치학의 아주 넓고 기초적인 부분만 다룸에도 불구하고 그렇습니다. 그만큼 선거에 있어 중요한 변수라는 의미죠. 비례대표제와 결선투표제 등 다수결의 원칙 하에서도 다양한 투표방식이 나오게 된 것 역시 이 사표의 심리학 때문이라고, 교과서는 서술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이번 대선에서 '사표의 길'을 선택하기까지 상당히 갈등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안될 게 뻔한 후보에게, 티도 안 나는 한 표를 더하기 위해, 황금같은 공휴일에 주민센터에 가서, 줄을 서야 한다니요!

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는데... 계기가 좀 엉뚱합니다. 정치적인 이유가 아니었거든요.

술만 마시면 50원짜리 인생 철학을 주고받는 버릇이 저와 꼭 닮은 형이 있습니다. 둘이 같이 취하면 당연히 가관이겠죠. 어느 날, 여느때처럼 둘이서 홍상수 영화를 생방송으로 찍다가, 도전과 실패에 대한 주제가 나왔어요. 그런데 그 형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내 뜻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이야. 하지만 적어도 내 뜻이 뭔지는 알아야 해."

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투표소를 향한 발걸음이라는 번거로움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다수를 따라 차선을 택하는 대신, 나는 내 소신과 내 가치관을 믿고 '내 표'를 행사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적어도 그 날 만큼은, 그 형의 철학은 200원 정도의 가치는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막상 '사표를 만들어낼 결심'을 하고 보니, 안될 걸 알면서도 유세차량을 타고 애타게 민심을 쫓는 '내 후보'가 참 짠해 보이더군요. 그래서였을까요. 나는 방구석에서 찍을까 말까 고민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저 사람은 왜 질 게 뻔한 싸움에 저렇게 공을 들일까.

답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아예 그 후보가 그 내용으로 어느 언론사랑 인터뷰했더라고요. 말씀을 옮기자면 이렇습니다. "선거에 출마한다는 것은 당선이 목적이지만, 민주주의의 선거는 당락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렇습니다. 선거를 통해 정치 신인이 출현하기도 하고, 정치인의 부정이 선거를 통해 심판을 받기도 합니다. 그리고 제가 지지하는 해당 후보처럼 작은 규모의 정당은 '우리도 여기에 있다'는 것을 외치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후보는 해당 인터뷰에서 '완주'를 강하게 약속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될지 안 될지 모를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하며 삽니다. 심지어는 안 될 게 뻔한데도 끝까지 가야만 하는 싸움도 있죠. 제일 좋은 것은 승리지만, 그다음 좋은 것은 가치 있는 패배일 것입니다. 인생에서 성공만이 답이 아니듯 당선만이 출마나 투표의 전부는 아닌 것이죠.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세상에 '사표'란, 없습니다. 주권자로서 제가 지지하는 후보에게 표를 주고, 후보는 어려운 결심을 한 유권자의 표를 받습니다. 그렇게 제 한 표는 하나의 민주주의로서 살아 숨 쉽니다. 죽은 표가 아닙니다.

직선제 개헌을 통해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게 된 것이 87년도라고 하죠. 공교롭게도, 제가 87년생입니다. 민주화를 위해 수많은 분들께서 의로운 피를 흘리셨고, 저는 그분들이 그토록 꿈꾸던 한 표를 행사하러 갑니다.

당선이 되지 않을 게 뻔하다고요? 당신의 표는 여전히 남습니다. 그놈이 그놈이라고요? 그나마 나은 놈 뽑으십시오.

칼바람에 촛불 들고 어렵게 얻어낸 조기 대선입니다. 그리고 그것의 완성은 투표라는 생각이 듭니다. 87년, 직선제와 제도적 민주주의는 완성됐지만, 그것이 얼마나 맥없이 무너질 수 있는지 목격해버린 지금, 많은 것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직선제와 민주주의를 우리에게 선물해 주신 의인들, 정작 본인들은 직선제 투표를 할 수 없던 이들을 대신해서라도, 소신 있는 한 표를 주십시오. 함께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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