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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토론회에서 홍준표 후보 차례를 부쩍 기다리게 된다. 이번에는 어떤 막말로 시청자를 웃겨줄까 하는 기대감에서다. 지난 19일 KBS 토론회에서 그는 이 기대를 백 퍼센트 충족시켜 주었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설거지는 하늘이 정해 준 여자의 일"이라고 한 것에 대해 능구렁이 같은 변명을 하다가, 결국은 수세에 몰려 사과했다. 안철수와 유승민 후보의 협공, 심상정의 단호한 비판 때문이다. 별다른 논리도 필요하지 않았다. 농담이라는 그의 말에 심 후보는 "그렇게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라고 정색하고, 강경한 어조로 "여성 유권자들을 향해 사과하라"고 거듭 요구했을 뿐이다.

나는 이 과정이 속 시원했다. 스트레이트로 문제제기를 했고, 사과는 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이뤄졌다. 이는 성, 인종 등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발언을 바로잡자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을 보여주는 사례다. 비록 전제가 달린 반쪽짜리 반성("말이 잘못됐다면 사과하겠습니다."라고 했지만, 정확히 말해 잘못된 것은 홍 후보의 여성관 그 자체다.)이긴 하지만, 적어도 당분간 홍 후보는 자신이 성차별적인 발언을 하고 있는지 검열하게 될 것이다. 그는 스스로 광대(?)가 됨으로써, 공론장에서 지켜야 할 정치적 올바름이 무엇인지 대중에게 몸소 각인시켜 주었다.

웃을 수 있는 남자는 얼마나 될까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25일 오후 강원도 춘천 명동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25일 오후 강원도 춘천 명동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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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설거지 논란이 마냥 웃기지만은 않다. 우리는 집에서, 직장에서, 택시 안에서 이와 비슷한 말을 하는 남자들을 종종 만난다. 여성을 하찮은 성으로 격하함으로써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하고자 하는 이들 말이다. 이러한 남성간의 연대-호모소셜-가 작동하려면, 여기에 동조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어야 한다.

회식 자리에서 여성 비하 발언을 농담이랍시고 던질 때 이걸 받아서 같이 웃고 떠드는 남자들이 있어야, 다른 곳에서도 당연하다는 듯이 그런 발언을 할 수 있다. 유권자의 표심, 언론의 감시를 두려워할 일이 없는 이들에게는 정치적 올바름이 그리 중요한 기준이 아니다. 남성이 우월한 성이라는 기존의 인식을 재고하거나, 여성 비하 발언에 대한 사과를 받아내기란 정말 어렵다. 현실에서의 홍 후보 같은 남성은 공고한 벽이다.

한편 '생각'과 '행동'은 별개의 문제다. 과연 다른 후보들이라고 집에 가서 끼니마다 설거지를 할까? 남자도 당연히 집안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 데는 커다란 간극이 있다. 2017년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자료에 의하면, 맞벌이 가정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가사노동을 3.6배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적으로 남성은 밖에서 더 장시간 일하지만,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이를 상쇄하고도 남는다. 이 데이터는 많은 남성들이 자기 몸을 움직여 집안일을 하는 데 인색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간이 부족해서, 몸이 고돼서, '그래서' 설거지를 안 하는 남성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여성의 차이는 뭘까? 여전히 남성은 집안일을 돕는 부차적인 존재이고, 실은 여성의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이쯤되면 홍 후보는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그의 입장에서는 평소 사석에서 하던 얘기를 공석에서도 솔직하게 꺼낸 것뿐이다. 이튿날 자유한국당 대변인이 "이 시대의 남성을 대변한 것이었다"라며 설거지 발언을 옹호한 것은 아마도 이런 맥락에서였을 것이다. 여성들의 비난이야 어느 정도 감안했겠지만, 최소한 남성들은 같이 웃어줄 거라 여겼나 보다. 다른 후보들도 집에 가면 일 안 하기는 매한가지(라고 가정했을 것이다)일 테니, 그렇게 공격을 퍼부으리라는 것도 예상치 못했겠지. 왜 나만 갖고 그래, 억울하다 홍!

심상정이 '메갈'이라고?

 심상정 후보가 홍준표 후보에게 "사과 한마디 하세요"라며 '설거지는 하늘이 정해준 여자의 일'이라는 발언에 대한 사과를 권유하고 있다.
 심상정 후보가 홍준표 후보에게 "사과 한마디 하세요"라며 '설거지는 하늘이 정해준 여자의 일'이라는 발언에 대한 사과를 권유하고 있다.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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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음을 읽었는지 19일 토론회 당시 유튜브, 트위터 상에는 심상정을 성토하는 글들이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이른바 '심상정 메갈'설이다. 넷 상에서 흔히 극단적 페미니스트와 동의어로 쓰이는 이 단어가 왜 하필 그 순간 심상정한테 수식어로 붙었을까? 명백한 잘못에 대해 상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했을 뿐인데 말이다. 혹시 자기 스스로 찔린 건 아닐까?

남성이라는 존재 자체가 우월하다고 믿는, 그래서 남녀의 일이 따로 구분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일부' 남성들이 자신을 '준표 형님'과 동일시했다면, 자기가 당한 것 마냥 심상정의 공격이 뼈아팠을 것이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마법의 방패 '메갈'을 꺼내든 것이리라. 이것은 흡사 '빨갱이' 딱지와 비슷하다.

달이 아니라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문제라고 말함으로써, 말하는 이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이 방패는 문제 제기하는 여성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소환된다. 아무리 맞는 얘기라도 공손하게, 조근조근, 기분 좋게 설명하지 않고, 남자 기를 팍팍 죽이면, 그게 바로 메갈이다. 안타깝게도 심상정은 이 기준에 딱 들어맞는다.

이걸 알기 때문에 여자들은 오프라인에서는 대체로 입을 다물고 만다. 상상해보자. 상견례에서 처음 만난 시아버지가 홍준표 같은 말을 한다면? 남자 동료들이 자기들끼리 시시덕거리며 집안일을 안 하는 게 자랑인 것마냥 얘기한다면? 이런 상황에서 심상정처럼 돌직구로 얘기하기는 어렵다. 여성혐오는 권력의 추 위에 살포시 얹혀 있다. 비교적 평등한 관계라도 "너 메갈이냐", "혹시 페미니스트냐."하는 답변이 테러리스트를 대하는 것마냥 의심스러운 말투로 돌아올 수 있다.

이 관문을 통과하려면 조근조근 설명하기 위해 화를 억누르며 감정노동을 해야 한다. 집에서, 직장에서, 택시 안에서 여자들은 언제쯤 당신이 틀렸기 때문에 틀렸다고 똑바로 쳐다보며 얘기할 수 있을까? 나는 정치적 올바름에 관한 한, '무식함'이 죄라고 생각한다. 다 큰 성인이 자기는 편하다는 이유로 한쪽 성의 불편함을 모르고 살아왔다면, 그 인식의 게으름으로 인해 차별적인 언행을 했다면, 상대방으로부터 분노어린 질책을 들어 마땅하다. 마찬가지로 비장애인인 내가 장애인이 어떤 부분을 불편해하는지 몰라서 무심코 상처를 줬다면, 그것 역시 사죄해야 할 일이다. 알고 했든 모르고 했든,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는 게 어른 아니던가.

일상에서의 정치적 올바름을 위하여 -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달려들자!

말이야 방구야? 이날 행사장 한 켠에 마련된, 직장생활을 하며 들었던 황당한 말을 소개하는 ‘말이야 방구야’ 전시에서도 성희롱 발언은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OO씨는 (손끝으로 S라인을 만들며) 이렇게 하면 사회 나가서 훨씬 예쁨 받을 거다”와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2015년 10월, 한국여성민우회가 20·30대 여성의 노동 경험담을 풀어내기 위해 주최한 어디가서 말하겠어' 행사에서는, 직장생활을 하며 들었던 황당한 말을 소개하는 ‘말이야 방구야’ 전시도 함께 열렸다.
ⓒ 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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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올바름, 특히 성차별적인 발언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공론장과 일상에서의 온도 차이가 크다. 평소 말버릇대로 하다가 토론장에서 공개 사과를 하게 된 홍준표 후보는 이 간극을 잘 보여준다. 실제로 문재인, 안철수, 유승민 후보가 집에서 설거지를 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자리에서 공인으로서 지켜야 할 윤리적 기준을 제시하며, 문제 제기를 했다는 사실에는 점수를 주고 싶다. (홍준표가 농담이라고 했을 때, 같이 웃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심상정 후보 혼자서 그렇게 정색하고 말했다면, 홍 후보는 더 뻔뻔하게 위악적으로 나왔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사회적 공기다. 웃자고 한 농담에 죽자고 덤벼드는 사람이 여럿이라면, 흐름 자체를 바꿔놓을 수 있다.

홍 후보의 발언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모든 남자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회식 자리에서 상사가 성희롱 발언을 하며 낄낄거리거든 같이 맞장구치며 웃어주지 마라. 친구들 사이에서 누가 집안일을 더 안하는 용자인가 배틀이 붙거들랑, 그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어라. 현실에서 외로운 심상정 같은 여자 동료를 만나거들랑 같이 말을 보태 달라.

묵인과 동조를 벗어나 차별적인 언행을 함께 비판할 때, 일상에서도 정치적 올바름이 자리 잡을 수 있다. 위악보다는 위선이 낫고, 생각한다면 언젠가 행동할 수 있다. 성평등한 분위기를 함께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여자 시민이 동료로서 남성 시민에게 기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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