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나비에게 꿀을 바치듯, 최수희는 사랑만을 주었다. 누가 그녀를 아프게 하는가. 남성이여, 당신은 죄가 많다!" (<26X365=0>, 노세한, 1979)
"아... 아파요. 꺾지 마세요. 그냥 보기만 하세요. 향내만 맡으세요" (<꽃순이를 아시나요>, 정인엽, 1977)
"우리가 만난 여자, 우리가 사랑한 여자, 우리가 버린 여자, 영자" (<영자의 전성시대>, 김호선, 1975)

위의 광고 카피들은 1970년대 흥행 몰이를 했던 '야한 영화들'의 지면 광고와 포스터 카피들이다. 특히 극장가를 휩쓸었던 호스티스 영화들의 광고는 대부분 성적으로 과장된 단어들과 이미지들이 수반되곤 했다. 일반적으로 여자 주인공의 반라의 모습과 유혹적인 포즈가 정면 배치되고 여성의 성기를 상징하는 아이콘들 – 조개, 장미 등 – 과 "꺾다," "아픈," "버리다"등의 가학적인 수사들이 측면에 배치되었다.

 영화 <꽃순이를 아시나요> 포스터

영화 <꽃순이를 아시나요> 포스터 ⓒ 영상자료원


1970년대 '야한 영화'의 포스터

한글을 사용한 문구들이 많이 눈에 띄는데 이것은 당시 박정희의 민족 문화 발전 사업 중 하나의 일환으로 진행된 한글 사용 권장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외래어의 사용을 금한 것이다. 이로 인해 한문보다는 한글이 쓰였고 영어로 된 외래어는 영화 대사에서 검열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김호선 감독의 <여자들만 사는 거리>의 검열기록을 보면 외래어를 순 한국말로 바꾸라는 검열관의 지시가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뼈와 살이 불타는 밤" "꺾지 마세요! 아파요" "누가 이 여인에게 돌을 던졌는가" 등 지금 기준에서 보면 다소 유치한 구어체 형식의 한글 문장들이 포스터를 뒤덮게 된 것이다.

스타일 면에서, 1970년대 영화의 광고는 과거 60년대 광고들에 비해 시각적으로 단순화 또는 캐릭터화 된 양상을 보인다. 선대의 지면 광고 디자인들이 다수의 출연 배우들의 이름과 여러 일러스트레이션들을 '널어놓기' 식으로 무질서하게 배치했다면 70년대 호스티스 영화의 광고들은 반라에 가까운 여자주인공을 극대화하여 중앙에 배치하고 그녀를 둘러싼 상징적 아이콘을 중첩하는 식이었다. 이렇게 단순화된 이미지들은 성적으로 '농축'된 이미지들로서 보는 이의 시선을 가두는데 효과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러한 '몸의 전시'에 대해서 유지나(여성 몸의 장르: 근대화의 상처, <한국영화, 섹슈얼리티를 만나다> 2004)는 호스티스 영화의 일러스트와 자극적인 광고 카피들은 전략적으로 여성의 성기 주변에 배치된다고 주장한다. 1970년대 호스티스 영화 광고에서 주로 사용됐던 아이콘들은 앞서 언급했던 꽃, 조개, 딸기 등으로 여성의 성이나 성기를 상징하는 (남성적 시선에서의) 성적 메타포들로 간주할 수 있다. 이러한 성 묘사의 가장 큰 문제점은 남성에게 익숙한 언어와 심벌을 사용함으로서 남성적 관객성을 형성함과 동시에 남성을 주체화하고 여성을 대상화하는 이분법적 논리를 설파한다.

 영화 <내가 버린 여자> 포스터

영화 <내가 버린 여자> 포스터 ⓒ 영상자료원


비슷한 맥락에서, 성적 이미지들은 가학적이면서도 여성의 희생을 강조하는 문구들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우리가 만난 여자, 사랑한 여자, 그리고 버린 여자, 영자! <영자의 전성시대>, "많은 남자들이 은자를 버렸지만 그녀는 미소로 그들을 떠나보냈다" <미스 양의 외출>, "우리 모두 그녀를 사랑했다"<미스 O의 아파트>, "꽃이 벌에게 꿀을 주듯 최수희는 사랑을 주었다. 누가 그녀를 아프게 하는가? 그 이름은 남자! 당신은 유죄다" <26X365=0> 등의 카피라인에서 여성은 남성에게 버려지는 존재지만 '미소'나 '사랑'으로 응대하는 성녀의 양상을 보인다.

 <영자의 전성시대> 포스터

<영자의 전성시대> 포스터 ⓒ 영상자료원


결과적으로 남성의 죄의식은 엄연히 존재하지만 결국 그녀의 착한 천성으로 그들의 '죄'는 사함을 받는다. 이러한 '베풂'의 양상은 <꽃띠여자>(1978)의 광고카피에서 가장 현저하게 드러난다. "나는 신이 한 남자를 위해 36-24-36의 몸을 주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애인 면회 꼬박꼬박 가는 여자" 등의 카피에서 여성은 남성이 "빼앗아야 할 행운"으로 남성이 어떻게 그녀를 대하든 늘 사랑으로 응대하는 존재인 것이다(여성 몸의 장르 : 근대화의 상처, <한국영화, 섹슈얼리티를 만나다>).

여성을 향한 이중적 시선

호스티스 영화 광고에서 드러나는 또 하나의 주목해야 할 양상은 여성의 존재가 '과거의 산물' 로 현재에서 배제되어 과거 시제로 존재하거나(<모두가 사랑했던 영자>), 공공영역에서 완전히 배제된 형태로 등장한다(<이화는 모두에게 속하지만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는다> <문 좀 열어 주세요>). 이런 의미에서 여성은 남성의 쾌락을 위해서 시각화되어야 하는 것과 동시에 현실적으로는 배제되어야 하는, 이중적이고 판타지적인 존재가 된다.

이러한 모든 면을 종합해 볼 때, 여성을 향한 이중적인 시선 – 쾌락의 대상임과 동시에 죄의식의 원천, 배제 대상 – 은 산업화 기간 동안 희생 혹은 강요되었던 여성의 성에 대한 남성의 집단 적인 정서와 연결지어 볼 수 있다. 박정희 집권 하의 산업화 기간 동안 수많은 여공들이 접대부로 전락하거나 관광 사업 육성을 위한 관기(관광기생)로 모집되었다. 또한 미군부대의 유치 기간을 늘리기 위한 일환으로 박정희 정권에서 부대 주변의 집창촌을 의도적으로 방치한 것도 비슷한 의도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수많은 젊은 여성들이 가족이나 국가를 위한 '대의(大義)'를 위해 희생되었다. 그들을 주인공으로 한 호스티스 영화의 제작 붐이 광고, 잡지, 신문 등으로 산업화되면서 여성의 성(性)적인 희생 담론이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 퍼져나갔다고 볼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영화 포스터의 경향이 비단 여자를 주인공 혹은 '대상'으로 하는 호스티스영화에만 쓰인 것은 아니다. 80년대 에로영화 붐이 일면서 소위 성애 영화뿐 아니라 일반 멜로 영화나 혹은 야하지도 않은 공포물들 까지 여성 캐릭터의 몸에 코멘트를 붙이는 식의 광고 카피를 관습적으로 차용하고 발전시켜 더욱 가학적으로, 빈번히 영화 포스터의 일면을 장식하게 된다. 

다행인 것은 이러한 종류의 '서글픈' 포스터들이 과거의 산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한국 영화 포스터들은 그 자체로 작품으로 보고 싶을 정도의 도약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 배우들이 작품 속 캐릭터의 특징으로 부각되는 반면 여자 배우들은 외모적인 면으로 강조되는 경향이 없지 않다. 어루만지고 싶은 포스터가 아닌 어루만져주는 영화 포스터를 보고 싶다.

덧붙이는 글 문화 블로그 월간 이리에 게재 했던 글 중 한 두 문단을 재 인용 하였습니다. 나머지는 새로 쓴 것입니다.
호스티스 영화 영화 포스터 여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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