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볶음밥에 쑥을 썰어 잔뜩 올리기
 볶음밥에 쑥을 썰어 잔뜩 올리기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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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맞이한 우리 집 밥상은 날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봄은 삼월하고 사월하고 오월이 사뭇 다르다 할 만큼 며칠 사이로 빠르게 달라지거든요. 하루하루 달라지는 결을 살펴서 나물을 훑습니다. 며칠마다 새로운 나물을 하고, 며칠마다 새로운 밥을 합니다. 저녁에 먹고 남은 밥이 있으면, 이 식은 밥으로 이튿날 아침에 볶음밥을 해서 따뜻하게 먹는데, 그냥 볶음밥이 아닌 '쑥볶음밥'을 합니다.

쑥떡이나 쑥국이나 쑥밥이나 쑥지짐이는 익숙한 분이 많을 텐데, 쑥볶음밥은 낯선 분이 많을 수 있어요. 볶음밥을 하면서 쑥을 넣는다는 생각을 못할 분이 많을 테니까요.

쑥볶음밥은 쉽습니다. 볶음밥을 할 적에 볶을 여러 가지를 밑손질을 먼저 해 놓습니다. 쑥도 미리 뜯어서 잘 헹군 뒤에 체에 놓고 물을 말립니다. 센불에 당근이며 감자이며 마늘이며 함께 볶다가, 양파하고 버섯을 넣어 더 볶고, 달걀을 풀어서 바지런히 섞은 뒤 불을 살살 줄여서 쑥을 잘게 썬 뒤에 넣어서 섞습니다.

마당하고 뒤꼍에서 뜯은 쑥하고 모시. 밥을 지을 적에는 이만큼만 훑습니다.
 마당하고 뒤꼍에서 뜯은 쑥하고 모시. 밥을 지을 적에는 이만큼만 훑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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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볶음밥을 손수 더는 작은아이
 쑥볶음밥을 손수 더는 작은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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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복하게 덮었다 싶어도 숨이 죽으면 이렇게 얼마 없는 듯 보입니다.
 소복하게 덮었다 싶어도 숨이 죽으면 이렇게 얼마 없는 듯 보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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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볶음밥을 하면 아이들이 놀랍니다. "쑥을 그렇게 많이 넣어?" 하고요. 빙그레 웃으며 대꾸하지요. "많아 보여? 그렇지만 숨이 죽으면 아주 적지. 이만큼도 되게 적게 넣었단다."

삼월에는 봄까지꽃이나 곰밤부리나 갈퀴덩굴을 잘게 썰어서 볶음밥을 할 수 있습니다. 사월에 갓 돋은 감잎이라든지 뽕잎으로도 볶음밥을 할 수 있어요. 모시나 민들레나 소리쟁이로도 볶음밥을 할 수 있습니다. 어느 풀이든 맛난 볶음밥 '풀양념'이 되어요.

쑥이 한창 돋을 무렵 마을 할매들이 자꾸 우리 집 뒤꼍이나 마당을 넘봅니다. 우리 집은 농약을 한 방울도 안 치는 터라, 풀이 자라도 웬만하면 그대로 두었다가 잘 클 즈음 낫으로 톡톡 끊어서 눕히는 터라, 봄이면 온통 쑥밭이 되어요. 우리 집 쑥을 몰래 가져가려는 마을 할매가 많습니다.

쑥지짐이를 올리니 빠르기 사라집니다.
 쑥지짐이를 올리니 빠르기 사라집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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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할매는 허리가 구부정한 채 걸으시면서도 밭을 가르는 돌담을 타고 넘어와서 쑥을 몰래 캐려 합니다. 마을 할매는 이녁 밭에서는 쑥을 못 캐지요. 쑥을 따로 키우지도 않을 뿐더러, 할매 밭은 온통 농약투성이일 터이니 쑥을 섣불리 캘 수도 없습니다.

우리 집에 아무 말도 안 하고 담까지 타고 몰래 들어와서 쑥을 캐는 할매를 말립니다.

"할매, 여기는 저희 밭이에요. 밭에 호밀씨를 잔뜩 뿌려서 호밀이 이렇게 올라왔는데 호밀을 마구 밟으면서 쑥을 함부로 뜯으시면 안 돼요." 
"쑥 저렇게 놔두면 누가 먹나? 좀 가져가면 안 되나?" 
"안 되지요. 저희가 먹을 쑥을 할매들이 몰래 다 캐 가면 저희는 뭘 먹어요? 좀 먹을 만하게 크면 몰래 들어와서 샅샅이 캐 가니 저희는 못 먹어요. 게다가 할매가 선 그 자리에는 옥수수를 심었는데, 옥수수싹이 다 밟혀요. 생각해 보세요. 제가 할매 밭에 몰래 들어간 적 있나요? 제가 할매 밭에 몰래 들어가서 저 마늘이나 배추 몰래 뽑아 가도 되겠어요? 이렇게 몰래 마구 캐 가시면 안 돼요. 저희한테서 쑥을 얻고 싶으면 얘기하세요. 그러면 저희가 드릴 수 있는 만큼 저희가 캐서 드릴 테니까요."

저희는 쑥을 캐서 먹기도 하지만, 쑥꽃이 필 때까지 그냥 두기도 합니다. 꽃이 피는 쑥은 꽤 크게 자랍니다. 쑥꽃이 피고 쑥씨가 맺는 쑥대는 잘 베어서 말려 놓으면 쑥불을 피울 적에 아주 좋습니다. 씨앗을 맺은 쑥대를 말리면, 쑥대가 마르면서 나는 냄새로도 무척 향긋하지요. 잘 마른 쑥대를 태워서 쑥불을 피우면 모깃불도 되고 집안에 고운 내음이 퍼집니다. 쑥불을 태우고 나온 재를 밭에 주면 흙이 좋아해요. 따로 쑥불을 피우지 않고 쑥대를 베어 눕혀 놓으면 다른 풀이 거의 안 돋기도 합니다.

얼른 새로 지집니다.
 얼른 새로 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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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한 쑥지짐이는 체반에 놓고 김을 뺍니다.
 다 한 쑥지짐이는 체반에 놓고 김을 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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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반에 놓고 김을 뺀 쑥지짐이를 접시에 담으니 부산하게 가위질.
 체반에 놓고 김을 뺀 쑥지짐이를 접시에 담으니 부산하게 가위질.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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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쑥은 철을 살펴서 알맞게 먹으면서 누립니다. 굳이 안 먹고 두는 쑥은 쑥불을 피우는 쑥대 구실을 합니다. 쑥불을 안 피우고 그대로 베어 놓기만 해도 땅을 살리는 거름 구실을 하지요.

마을 할매는 저희처럼 쑥대나 다른 풀이 흙으로 저절로 돌아가서 거름이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냥 농약을 치고 비료를 칩니다. 저희는 이 땅에서 아이들이 맨발로 뛰어놀고 나무를 타며 놀기를 바라기에 쑥을 고이 건사하면서 알맞게 누립니다.

낮밥으로 쑥지짐이를 합니다. 두 아이는 쑥지짐이를 석 장을 먹습니다. 두 장을 더 해서 접시에 옮깁니다. 나중에 아이들이 주전부리로 먹도록 둡니다. 여기에 석 장을 더 합니다. 쑥지짐이 석 장은 마을회관으로 들고 갑니다. 낮밥을 자시고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텔레비전을 보며 쉬는 마을 할매들한테 주전부리로 쑥지짐이를 드립니다.

"이 귀한 것을 주시오? 이녁 아이들 주셔야 하지 않소?" 
"봄이니까 봄맛으로 했어요. 저희도 배불리 먹었어요. 주전부리로 드셔요." 
"그라오? 그러면 고맙게 먹겠소. 자 다들 한 점씩 잡솨 봐. 맛나네." 

마을 할매요, 몰래 담 타고 넘어와 캐지 마쇼. 이렇게 우리가 쑥 뜯고 쑥지짐이를 해서 갖다 드릴 테니 말이오 ^^
 마을 할매요, 몰래 담 타고 넘어와 캐지 마쇼. 이렇게 우리가 쑥 뜯고 쑥지짐이를 해서 갖다 드릴 테니 말이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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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 함께 자라는 우리 집 쑥. 옆에 봄까지꽃도.
 파랑 함께 자라는 우리 집 쑥. 옆에 봄까지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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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글쓴이 누리집(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태그:#쑥지짐이, #봄쑥, #시골살이, #고흥,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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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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