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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는 회사에서 비정규직으로 일을 하면 뭔가 다를까?

비정규직의 사정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회사가 잘나갈 때(원청에서 주는 물량이 많을 때)는 쉬는 날이고 뭐고 없이 일해야 하고, 회사가 어려울 때(물량이 없을 때)는 휴업으로 월급이 반토막 나거나 아예 고용이 불안정한 상태가 된다.

그해 매출액이 높다고 성과금이나 포상휴가를 받는 건 10년을 일해도, 20년을 일해도 듣도보도 못할 것이다. 적당한 때도 없다. 비정규직 인원은 언제나 최소한으로 제한되니까. 잘나가는 회사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한다는 것은 그저 전자일 뿐이다.

인천 송도에 있는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주) (이하 만도헬라)는 자동차에 들어가는 여러 가지 센서와 전자제어장치 등을 만드는 회사이다. 이것들은 자동차 업계의 가장 주요한 이슈 중 하나인 자율주행자동차의 핵심 부품들이니 만큼 만도헬라의 앞날은 창창하리라는 전망이다.

실제로 2008년 독일계 헬라사와 (주)만도가 합작하여 설립된 후 만도헬라는 급성장을 하여 2016년에는 매출액 4823억 원, 당기순이익 302억 원을 달성하였다.
출처 : 중소기업현황정보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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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강한노동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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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창창한 회사에는 어떤 사람들이 일하고 있을까?

# 생산직 100% 비정규직

만도헬라에서는 대략 700여명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이중 반은 만도헬라 소속 사무직군과 30여명의 관리자이고, 나머지 반은 생산직인데 이들 소속은 만도헬라가 아니라 서울커뮤니케이션과 에이치알티씨라는 파견회사이다(만도헬라는 최근 에이치알티씨와 계약을 해지하여 신규업체인 쉘코아가 들어왔고, 이 과정에서 전원 고용승계를 위한 투쟁이 있었다). 즉, 만도헬라는 생산직 100%가 비정규직으로 굴러가는 공장인 것이다.

정규직 연봉은 대략 평균 8000여만 원, 12시간 맞교대로 일요일도 쉬지 않고 일하는 비정규직은 연봉으로 치면 3000만 원 안팎의 임금을 받고 있고, 상여금도 정규직은 750%, 600%인 데 반해, 비정규직은 100%다.

2014년 1월부터 400%이던 상여금 중 300%를 기본급화해서 100%로 줄인 것이고, '특근수당 누진제도'라는 것도 있었는데 없어졌다. 결국 기본급이 늘어났다고 해도 임금총액은 줄어든 거나 마찬가지였다. 회사는 쑥쑥 커가지만 월급은 상대적으로 제자리걸음인 만도헬라, 노동자들의 안전이나 건강을 위해서는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을까?

만도헬라 2015년 정규직 평균연봉
 만도헬라 2015년 정규직 평균연봉
ⓒ 건강한노동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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튼실하고 창창한 회사,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안녕할까 궁금해졌다.

그래서, 만나보았다.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에서 일하고 있는 수영씨(가명)와 인경씨(가명). 둘은 입사 7년차와 8년차다.

아침 9시 반, 한 삼겹살집. 한잔 하려면 밤 9시에 끝나는 주간보다는 아침 8시 반에 퇴근하는 야간때가 낫다고 했다. 교대근무를 하며 하루의 반 이상을 공장에서 보내야 하는 이들의 일상이 훅 와닿는 얘기였다. 

# 기계를 끄지 않으려고 365일 돌아가는 공장

수영 처음에는 라인이 하나밖에 없었어요. 그때는 정규직들도 같이 밥 먹고 가족 같고 좋았는데 점점 일이 많아졌고 2013년쯤엔가 인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거 같아요. 전체 공장이 다 쉬는 건 여름휴가 3일뿐이지만 그것도 최근 들어서고 전에는 휴가 반납할 사람 조사해서 돌렸어요. 관리자들은 나중에 따로 대체휴가 쓰고 쉬구요. 설 당일도 가동하는 부서도 있는데 우리 부서는 신정 때마다 야간 걸려서 동료들이 매년 제야의 종소리를 일하다 듣는다고 웃어요. 여유 인원이 한 명도 없어서 빠질 수가 없거든요.

인경 못 쉬는 게 가장 힘들어요. 깊이 자지도 못하고 두세 시간 마다 깨는 것 같아요. 주야 다 보통 4~5시간밖에 못자요.

수영 나는 야간 때는 3시간 정도밖에 안 자요. 집에 가서 잠만 딱 자고 다시 출근한 적도 있어요.

전자제품을 만드는 만도헬라는 기계를 끄지 않으려고 주말 특근이 강제다. 그리고 주야 전환 시 생기는 공백시간을 줄이려고 2주씩 교대를 한다. 특근인데도 명단을 올린 후 못 나오게 되면 경위서를 써야 한단다. 마트같은 서비스업도 아닌데 월~일요일까지 순번대로 쉬는 날을 정해서 그날만 쉬어야 하는 '비상근무제'도 있고, 밥시간에도 라인을 안 멈추고 돌아가면서 식사하는 '밥교대'도 한단다. 연간 쉬는 날은 보름정도.

만도헬라비정규직지회에 따르면 만도헬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일주일에 평균 69시간 정도씩 일을 한다고 하니 1년이면 3588시간이다. 한국의 평균노동시간은 OECD 회원국 중 2위(2015년 기준)로 2113시간인데 이와 비교해 보아도 엄청난 시간을 일하고 있다(회원국 평균은 1176시간). 이렇게 오래 일하고, 거기다 교대근무에, 심야노동까지. 알다시피 심야노동은 2급 발암물질이다.

# 지압슬리퍼

작업화가 지압슬리퍼라니, 얘길 듣고 한참을 웃었다. 안전과 건강 얘기를 하니 가장 먼저 나온 게 지압슬리퍼 얘기였다.

   만도헬라 작업화
 만도헬라 작업화
ⓒ 만도헬라비정규직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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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 처음 왔을 때는 발에 굳은살 생기고 티눈이 엄청 심했었어요. 마운터 공정에서 일하는 사람은 쉴 새 없이 자제 보급하러 왔다갔다 해야 하는데 발이 아파서 신발을 벗고 맨발로 일하기도 해요.

인경 족저근막염 걸린 사람도 많구요. 파렛트 교체작업을 하는데 15~20kg쯤 되는 거거든요. 그거 꺼내다가 발을 다친 사람도 있어요. 슬리퍼라 대차(중량화물 이동 카트) 끌다가 발꿈치 까이는 일도 많이 있어요. 최근에 대차에 스폰지 붙여줬어요.

# 근골격계는 기본, 수시로 다쳐도...

수영 중량물 들어올리는 일이 꽤 많아요. 조그만 돌덩이 같은 방열판이라는 부품이 있는데 수십 개가 한 묶음이에요. 한 묶음씩 들어나르는 게 정석이지만 바쁘니까 여러 개씩 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거하다가 손목 다친 사람이 있는데 거의 유일하게 산재 인정을 받은 케이스예요.

인경 매거진이라고 직사각형 상자에 제품을 담아서 들어올려야 하는 작업도 있는데 남자한테도 무거운데 여자들이 작업해요. 허리 나간 사람 많죠. 외관 검사하는 공정에 납땜이 잘 됐는지 보려고 제품을 흔들어서 소리나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있는데 하루에 600개씩은 할 거예요. 그거 흔들다 손목에 물차서 치료받은 사람도 있구요.

크고 작은 사고도 수시로 나죠. 전에 장갑 껴서 손에 구멍까진 안 났지만 손가락을 다친 사람이 있었는데 관리자들은 그냥 그럴 리가 없다는 반응이었어요. 또 다른 사람도 기계오작동으로 손가락이 끼인 적이 있는데 그때 정규직들은 전체 회식이라 공장에 관리직이 없을 때였거든요. 결국 응급실 가서 수술 받고 3개월 동안 입원해서 치료받고 그랬어요.

허리 삐끗하는 사람 많은데 다 자가치료 해요. 치료를 안 해줘서 자가치료 하다가 결국은 퇴사해서 산재승인 받은 사람도 있었어요. 근골 유해인조사 하긴 하는데 결과는 잘 몰라요. 바뀌는 것도 잘 못 느끼겠구요.

# 납을 끓이는 오븐

수영 우리 공정은 납을 고온으로 끓여서 붙이는 작업을 해요. 그래서 공간이 밀폐되어 있는데 납을 끓이는 오븐이 270도까지 올라가는데 전에는 그대로 커버를 열어야 해서 작업장 전체가 찜통같고 공기도 안 좋아요. 최근에 쿨링시스템을 만들긴 했는데 생산량이 많아서 그냥 바로 열어야 할 때가 더 많아요. 문을 열면 공장 전체로 퍼진다고 문도 못 열게 해요. 납 도포작업 하는 공정도 납이 공기 중에 퍼질 텐데 측정을 해도 괜찮다고 나왔어요.

인경 99.9%농도의 이소프로필알콜로 세척하는 공정도 있는데 방독면 있지만 급하니까 그냥 막 하거든요. 세척액에 제품을 담갔다가 고무장갑 끼고 칫솔질을 하는데 하루에 600~1000개씩 칫솔질 하느라 손목도 아프지만 냄새도 엄청 많이 나죠. 거기서 일하다가 천식으로 퇴사한 사람도 있어요. 자르고 조립하는 일이 많아서 분진도 많고요. 특수건강검진 받지만 늘 이상은 없다고 나오더라구요.

# 한번 설비를 하면 관리를 전혀 안 해요

인경 처음 입사했을 때 첫인상은 깨끗했죠. 그렇지만 한 번 설비를 하면 관리를 전혀 안 해요. 세척공정에 배수 경칩이 망가져도 안 고쳐주다가 몇 년 만에 보수해주고 그랬어요. 배기장치 작동 안 되는 것도 많아요.

수영 정전기를 없애려고 계속 이온바람이 나오는 이오나이져라는 걸 돌리는데 그거 때문에 엄청 건조하거든요. 다 사람 좋으란 게 아니라 제품 좋으라는 거죠.

# 엑스레이

인경 엑스레이 설비안에 제품을 놓고 문 닫고 엑스레이 쏘고 다시 문 열고 제품 바꾸고 하는 공정이 있는데 여성들이 작업을 해요. 두 명 다 여성질환이 있대요.

수영 그 공정을 관리자들도 엄청 안 좋은 공정으로 생각해요.

하나하나 얘기하다 보면 끝도 없을 것 같았다.

만도헬라는 제품만 제대로 생산되어 나오면 될 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설비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 듯해 보였다.

2016년 영업이익이 14조 원에 이르는 한전, 원청 정규직은 1인당 73만 원 상당의 안전장구를 지급하고 있는 데 반해, 비정규직은 고작 1만 7천 원의 안전관리비가 책정되어 있다고 한다. 그 결과로 지난 5년 동안 한전에서는 710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했다(2016년 국회 산업통상자원위 소속 유동수 의원이 공개한 국정감사 자료).

깨끗해야 하는 반도체 공장, 그러나 고 황유미씨와 같은 삼성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의 사례에서 보듯이 반도체 공장의 깨끗함은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제품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노동자들은 제품에 먼지나 머리카락이 묻지 않게 얇은 방진복 한 장만 입고 일을 하다 백혈병이나 각종 희귀암에 걸렸고 피해자 수의 카운터는 아직 멈추지 않고 있다.

만도헬라의 비정규직들은 지금은 20~30대의 젊은 노동자들이지만 이렇게 장시간, 올빼미처럼 일하고, 각종 유해물질과 유해환경에 그대로 노출된 채 40~50대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

수영 원형 탈모도 있었어요. 제일 힘들었던 게 노예근성 같은 거예요. 회사의 닦달에 치이다 보니 이제는 스스로 너무 열심히 일하고 빨리빨리 하게 되는 거죠. 저도 그렇구요.

  만도헬라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출근선전전
 만도헬라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출근선전전
ⓒ 만도헬라비정규직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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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건강한노동세상 소식지 2017.4월호에 실린 글을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



태그:#만도헬라, #비정규직, #건강권, #산재, #원형탈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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