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대한민국의 20~25세 사이의 남성 90%가 현역으로 군대에 입대한다. 그러다 보니 남성사회에서는 얘기 나눌 때나 누군가를 대할 때 '군대'라는 소재가 늘 따라다녔다. 그런데 난 이 사회에서 '공익'이라고 불리는 '공익근무요원'으로 대체 복무를 했었다. 단순히 건강상의 이유로 현역으로 군대를 갈 수 없었다. 그러나 내게는 '미완성된 남성'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한번은 친척형과의 대화에서 아주 불쾌했었던 적이 있다.

"한별아 임마, 너 그래서 공익이냐?"
"어 왜?"
"야 그게 남자냐?"
"뭔 말이야?"
"아니 남자는 군대를 가야지."
"나 폐 수술해서 군대에서 오지 말래."
"야 군대에 가면 폐 수술이 문제가 아니라 생사가 오가는데... 에이 이거 남자 아니네."

이 당시에 더욱 기분이 나빴던 건 곧 군대에 갈 남성 친척들이 웃고 있었던 것이다. 일단 그들은 군대에 '아직' 가지 않았다. 당시에 나는 그중에서 군을 제대한 친척 형 외에 저 기분 나쁜 발화에 동참할 수 있는 권리는 그들에게 없다고 생각했고, 그들의 웃음에 깔린 저의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꼭 나를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기분이 더욱 나빴다. 그래서 이런 대꾸를 했었다.

"그러는 당신들은 여자친구는 있어?"

나는 남성으로서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여성 애인이 있는지 없는지'라는 주제를 꺼냈고, 그 불편한 대화는 그렇게 마무리가 됐다. 한국사회의 남성에게 있어 남성성 혹은 마초성을 드러내는 방법은, 이성애자 남성 기준으로 여성을 '소유'하고 있느냐 없느냐로 얘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여성'이라는 도구가 없었고 나에게는 있었기에 더 이상 코멘트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작은 승리를 얻어냈다.

그런데 입을 닫지 않은 이가 있었으니, 바로 삼촌이었다. 당시에 그는 여성 애인이 있었다. 나와 애인이 있다는 똑같은 조건을 취하고 있었기에 그는 나보다 더 남성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방위 출신이지만 해병대 군인들이랑 같이 근무했었어."

평소 군대의 문제에 대해서 잘 얘기하고 그 병폐에 대해서도 잘 이해하고 있는 그의 발언을 난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떤 대상에 대해 비판하면서 그 존재에 속하기를 바라다니, 언행불일치가 아닌가. 그는 평범한 공익인 나와 다르게 해병대라는 마초적인 공간에 있었다고, 군대라는 전유물을 소유하는 진짜 남자 중의 '남자'라고 선을 긋고 싶었을 거라고 추측해본다.

내가 그려본 맨박스
 내가 그려본 맨박스
ⓒ 김한별

관련사진보기


"남자는 OO해야 한다" 이런 말은 이제 그만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저 대화가 참 가소롭다는 느낌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군대라는 비인간적이고 비상식적인 계급사회를 경험하면서 마초적인 특징을 체화해온 남성이 진짜 '남성'이고 그렇지 않은 남성은 '남성'이 아니게 되는 걸까.

나는 어떻게든 남성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여성 애인'이 있다는 것을 내세웠다. '이성애자 남자' 구실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여성을 도구로 삼은 것이다. 나는 과거 내 경험을 공유하면서 '우리들(남성들)'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생각해보면 남성들은 누가 더 남성적인지, 누가 마초적인지에 혈안이 되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누군가(남성)에게는 남성성이 콤플렉스로 작용하며 늘 남성이 남성이기를 꿈꾸며 정말 쓸모없는 경쟁을 하고 있는 것 아닐까? 이런 경쟁 그만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고정된 남성성에 대한 해체로 이어져야 한다.

남성 중심의 고정된 성역할과 성 정체성, 그리고 성별 이분법은 다른 성별을 '틀린' 성별로 이해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성별을 남성과 남성이 아닌 것으로 간주한다. 남성에게 '계집애 같다'는 표현이 욕으로 쓰이는 상황을 보라. 다시 말해 우리에게는 기존에 남성이라고 규정하는 기준에서 벗어난 것은 남성이 아닌 것이며, 심지어는 나쁜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성차별적인 사회를 만들고 있는 기존의 '남성성'을 함께 해체해야 한다고 더욱 주장하고 싶다.

덧붙여서 구체적으로는 이성애자 중심의 남성성이 해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최근에 군대 내 성소수자 색출 사건이 터졌는데 이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에서 적나라하게 이성애자 남성 중심의 차별적인 시선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성소수자가 군대를 갈 수 있느냐"부터 "처벌해야 한다"까지 서로 다른 성정체성에 대해서 아주 지극히 이성애자 남성 중심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성애자가 아니면 잘못된 것, 기존 남성성 규범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은 틀린 것으로 개인의 권리를 침범하며 처벌까지 이야기한다. 끔찍한 일이다.

우선은 일상에서부터 바꾸자고 제안한다. 의식적으로 "남자는 OO해야 한다/하지 말아야 한다"와 같은 말과 생각을 지양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여성은 OO해야 한다/하지 말아야 한다"도.) 나 또한 이것을 실천하려고 노력 중이다. 살면서 내가 배운 거라고는 "남자는 로봇을 좋아해"부터 "남자는 여자를 거칠게 대해야 해", "남자는 남자다워야 해" 따위들 뿐이라 그 외에 생각을 해본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여전히 쉽지는 않다.

또 나 혼자 내 스스로를 바꾼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을 읽는 당신이 함께한다면 조금은 바뀌지 않을까. 당신이 나와 같은 남성 오버워치 유저라면 일단 "여자가 힐러(아군에게 치료를 하는 직군) 해야지" 같은 말을 쓰지도 생각하지도 않는 것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덧붙이는 글 | 글을 쓴 김한별씨는 아르바이트 노동조합에서 인천지부 지부장을 맡고 있으며, 노동당의 (비공식) 남성 페미니스트 당원 모임인 '이름없음'에 참여하고 있는 노동당 당원으로 이 글을 통해 노동당 여성위원회가 페미니즘에 대해 고민하는 남성 당원들과 함께 시작한 '남성성들: 남성 페미니스트 글쓰기 연재'에 참여합니다. '남성성들: 남성 페미니스트 글쓰기 연재'는 페미니즘에 대해 고민하는 남성 노동당원들이, 노동당 여성위원회와 시작한 글쓰기 시리즈입니다. 여기에서 '남성성'이란 R.W.코넬의 저작 <남성성/들>에서 인용한 것으로, 하나의 '남성성'이 존재한다기보다 만들어지고, 수행되는 개념으로서 한국사회의 남성성이 어떻게 실천되고 유지되는가를 성찰적으로 나누기 위한 개념으로 사용하였습니다.



댓글3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