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인간이기 위한 부품이 적지 않은 것처럼 자신이 자신이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필요하다고 모토코는 말하고 있다.

인간이 인간이기 위한 부품이 적지 않은 것처럼 자신이 자신이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필요하다고 모토코는 말하고 있다. ⓒ 원작 배급 쇼치쿠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는 지금의 인터넷과 유사한 정보망인 '네트'를 접속할 수 있는 전뇌가 발달하면서 인간과 기계 그리고 인조인간 사이의 경계가 점점 흐릿해져 가는 가까운 미래를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1995년에 나온 이 영화를 다시 들여다보게 된 이유는 얼마 전 할리우드 리메이크 실사 영화가 나왔다는 것도 있겠지만, 더 큰 이유는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에 대한 관심과 우려가 한층 더 깊어졌음을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4차 산업에 전문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4차 산업이란 게 이것이다."라고 설명할 자신도 없지만, 우리 사회가 단순한 정보사회에서 한층 더 진화하고 있음을 어렴풋하게나마 느끼고 있다는 이야기다.

더구나, 나는 지체장애인이다. 태어날 때부터 육체적 한계를 가지고 태어나 전동휠체어에 의지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나에게는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그려낸 '전뇌화'와 '의체'의 미래가 한편으로는 기대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불안하기도 하다. 미래가 기대되는 이유는 비교적 간단하다. 지금까지 장애 때문에 할 수 없었던 일, 비장애인에겐 어쩌면 너무 당연한, 그런 평범함에 쉽게 접근하게 날이 머지않아 도래할 것이라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이미 하루에 상당한 시간을 인터넷 정보검색과 통신에 소비하고 있는 사람은 이미 <공각기동대>의 미래사회에 길든 사람일지도 모른다. 여기에 만약 인체의 모든 부분을(아니, 심지어는 뇌까지도> 마치 우리가 자동차를 튜닝하듯 부속품을 대체할 수 있다면, 과연 우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그때가 되면 장애라는 말이 무의미해질 만큼 사회가 변하기라도 할까? 장애인이 더는 사회적 약자가 아닐 수 있는, 어쩌면 장애를 짊어지고 살아가야 할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유토피아에 가까운 사회가 될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물질적으로는.

그런데도 주인공 쿠사나기 모토코는 분명히 말하고 있다. 인간은 이런 부품의 집합체가 아니라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의체를 구성하는 부품들이 아니라 그 수많은 부분의 조합을 일관성을 가진 전체로 인식하고 그것의 한계를 자각할 수 있는 존재이기에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말한다.

"인간이 인간이기 위한 부품이 적지 않은 것처럼 자신이 자신이기 위해서는 놀랄 만큼 많은 것이 필요해. 타인과 구별하기 위한 얼굴, 의식하지 않은 목소리, 눈 뜰 때 응시하는 손, 어릴 때의 기억, 미래의 예감. 그것만이 아니야. 내 전뇌가 엑세스할 수 있는 방대한 정보와 네트의 넓이. 그것 전부가 내 일부이고 나라는 의식 그 자체를 만들어내고, 동시에 나를 어떤 한계로 계속 제약해!"

그렇다. 어쩌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어떤 결과로서 드러나는 물질문명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한계 또는 유한성을 자각함으로써 지금까지의 자신과 다른 어떤 것을 받아들이고 포용함으로써 한계를 극복하고 더 성숙한 자신으로 발전하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인간답게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탈산업사회를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공장 컨베이어 벨트에서 대량으로 생산되던 상품이 소량으로 개개인의 취향에 맞게 다품종으로 만들어지는 생산방식의 변화만을 말하지 않는다. 이는 또한 사물을 단순히 부분의 합계로 인식하는 기계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떤 면에서는 아직도 산업사회의 유물인 기계적인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장애등급제이다. 팔과 다리 등의 기능에 따라 분류하고 그 성능을 평가하게 하는 장애인등급제는 사회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할 장애인이 장애를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불합리한 제도일 뿐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를 기계처럼 부품의 성능에 따라 분류하고 평가하는 부도덕한 제도이기도 하다.

지난 20일이 바로 장애인의 날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2017년 탈산업화이자 정보화 사회의 중심에 서 있다. 이제 인공지능이란 말은 더는 우리에게 낯선 말이 아니며 물아의 경계가 허물어진 공각기동대의 미래는 우리에게 먼 미래가 아닐지도 모른다. 인간의 물질문명은 이처럼 빠르게 진화하고 있는데도 우리 사회의 인식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듯하다. 만약 지금 우리 앞에 '인형사' 같은 프로그램이 나타나 자신을 한 개인으로 규정할 수 있는 건 기억뿐이라며 정보의 흐름 속에서 자신을 자각하게 된 자신도 하나의 생명체로서 망명을 요청할 권리를 지닌다고 한다면 우리는 무어라 대답할 것인가? 적어도 인간을 기계의 성능을 평가하고 그 성능에 따라 등급을 매기는 그런 비인간적인 제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사회적 책임이 우리에게 있지 않을까?    

공각기동대 장애인등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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