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토트넘)의 프로무대 첫 우승의 꿈은 또 한번 허무하게 날아갔다. 정작 손흥민은 어울리지않는 포지션에서 뛰다가 상대에게 PK골까지 헌납하며 최악의 하루를 보냈다. 대망의 통산 20골 기록과 FA컵 단독 득점왕 도전도 무산됐다. 모두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의 잘못된 선택이 불러온 나비효과였다.

23일(한국시간) 영국 런던 웸블리스타디움에서 열린 2016~2017시즌 잉글랜드축구협회(FA)컵 4강전에서 손흥민의 토트넘은 첼시에게 2-4로 패하며 결승진출의 꿈이 좌절됐다. 1991년 이후 26년 만에 FA컵 정상 등극을 노렸던 토트넘의 도전은 여기서 끝났다. 3월부터 이어온 공식경기 8연승의 상승세도 중단됐다.

이날 경기전까지만 해도 많은 이들은 토트넘의 상승세에 높은 점수를 줬다. 토트넘은 연승행진을 달리는 동안 28골을 터뜨리는 가공할 화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특히 손흥민은 최근 4경기 연속골을 터뜨리는 동안 5골 1도움을 기록하며 팀내에서도 가장 쾌조의 컨디션과 골감각을 자랑했다.

반면 첼시는 최근 5경기에서 3승 2패로 다소 주춤하며 리그에서도 토트넘에 바짝 추격을 당하여 흔들리고 있던 상황이었다. 토트넘은 지난 1월 5일 리그 20라운드에서는 첼시를 2-0으로 격파하기도 했다.

하지만 상대를 너무 의식한 탓일까. 포체티노 감독은 첼시와의 FA컵 준결승전을 앞두고 무리한 자충수를 범했다. 최근 4-2-3-1 포메이션을 앞세워 상승세를 타고 있었음에도 첼시전에서 굳이 스리백으로 전술 변화를 단행했다. 1월 첼시전 승리를 비롯하여 올시즌 스리백 전술을 내세운 경기에서 대체로 결과가 좋았던 것을 감안한 포석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걸리는 부분이 바로 손흥민의 활용도였다. 손흥민은 올시즌 스리백 전술에서는 주로 벤치를 지켰다. 3-4-3(혹은 3-4-2-1) 전술에서 전방의 스리톱을 해리 케인-델레 알리-크리스티안 에릭센에서 맡기면서 손흥민이 나설 자리가 없었다. 주포 케인이 부상에서 돌아오면서 포체티노 감독은 최근 팀내에서 가장 출중한 골감각을 보여주고있는 손흥민을 어떻게 활용해야할지 고민에 빠졌다.

놀랍게도 포체티노 감독의 선택은 손흥민의 윙백 배치였다. 손흥민은 3-4-3의 왼쪽 측면 윙백으로 선발투입됐다. 스리백에서의 윙백은 엄청난 활동량을 바탕으로 측면에서 공격과 수비를 모두 소화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이다.

나름 스리백과 손흥민의 공존을 위한 파격적인 한 수였지만, 문제는 손흥민이 토트넘에서는 물론이고 프로 데뷔 이후 단 한번도 이 포지션에서 뛰어본 일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올시즌 19골이나 넣은 공격수를 어쩌면 시즌의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 익숙하지 않은 수비수로 돌린다는 것부터가 상식적으로 이해할수 없는 장면이다. 수비가 무엇보다 강조되는 단판승부에서 꺼내들기에 지나치게 무모한 선택이었다. 토트넘에 카일 워커라는 EPL 최고의 측면자원이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 고개를 갸웃하게 했다.

포체티노 감독의 도박에 가까웠던 포지션 파괴는 결국 재앙으로 이어졌다. 토트넘은 초반부터 수비가 급격하게 흔들리며 첼시의 역습에 농락당했다. 낯선 포지션에서 헤매던 손흥민은 어쩡정한 위치선정과 미숙한 수비로 인하여 특유의 공격적인 장점을 거의 보여주지 못하고 부진했다. 전반 43분에는 첼시 빅터 모제스의 돌파를 저지하려다가 페널티박스 왼쪽에서 무리한 태클로 PK까지 내주고 말았다. 윌리안이 PK로 두 번째 골을 성공시키며 손흥민은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방송중계화면에서 느린 장면으로 보면 모제스가 다소 과장되게 넘어지는 듯한 모습이 잡혔지만, 일단 위험지역에서 무모한 슬라이딩 태클을 시도한 손흥민의 선택 자체가 좋지 못했다. 손흥민에게 수비수 역할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만 확인시켜준 장면이었다.

결국 토트넘은 전반 중반부터 다시 포백으로 회귀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미 한번 꼬여버린 수비 조직력은 후반에도 안정을 찾지못했다. 손흥민은 결국 후반 22분 진짜 측면 수비수인 워커와 교체될 때까지 그라운드를 빠져나올 때까지 아무런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결과적으로는 이럴 바에 차라리 벤치에서 조커로 투입되느니만 못한 상황이 됐다. 경기가 끝난 이후 영국 현지 언론과 축구 전문가들도 포체티노 감독의 전술에 의문을 표시했다.

더구나 이날 경기의 패배가 남긴 메시지는 단순히 FA컵 우승 좌절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일단 손흥민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포체티노 감독의 구상에서 핵심 공격진의 '상수가 아닌 변수'에 불과하다는 입지를 확인한 장면이었다.

손흥민이 올시즌 FA컵 최다득점자이자 최근 4경기 연속골을 터뜨리며 최고의 골감각을 자랑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포체티노 감독은 케인-알리-에릭센의 조합을 더 신뢰했고 손흥민을 또 한번 '전술의 희생양'으로 만들어버렸다. 실제로 빅3는 첼시전에서도 모두 공격포인트를 합작하며 공격 면에서는 제몫을 해냈다. 올시즌 개인 통산성적에도 빅3의 활약이 손흥민보다 뒤지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이들 3인방이 건재한 이상 손흥민으로서는 앞으로 토트넘에서 아무리 좋은 활약을 펼쳐도 이들의 뒤를 받치는 2순위 정도의 위상을 벗어나기 어렵다는게 객관적인 현실이다. 올시즌의 활약상과 별개로 앞으로 토트넘에서 손흥민의 미래를 기약할수 있을지는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순간이다.

토트넘으로서는 올시즌 또다시 무관에 그칠수 있다는 위기감이 높아졌다. 토트넘에게 이제 남은 우승 도전 기회는 프리미어리그 밖에 없다. 토트넘은 현재 6경기를 남겨놓은 가운데 승점 71점으로 선두 첼시(승점 75점)를 승점 4점차로 뒤쫓고 있지만, 하필 FA컵 패배로 최근 하향세를 타고있던 라이벌팀의 기를 스스로 살려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지난 시즌에도 첼시전 패배로 리그 우승이 최종적으로 좌절되었던 악연을 2년 연속 되풀이하게 된 셈이다. 손흥민과 토트넘에게 시즌 막판 또 한번 중요한 고비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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