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리뷰를 쓰는 입장에서 '이 주의 결정적 장면' 정도를 쓰려면 방영되는 드라마를 다 보고 써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나도 호불호가 갈리는, 그리고 지극히 편향적인 취향을 가진 사람인지라 그럴 수가 없었다. 비록 내가 모든 드라마를 보지는 않았지만 꾸준히 일주일 동안 본 드라마들 중에 몇 개를 골라봤다. 이 세 편의 드라마는 서로 다르지만, 이들 드라마의 지난 주 내용은 그동안 드라마가 '복선'으로 숨기고 있던 '진실'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터널>

<터널> ⓒ OCN


① <터널> 진짜 범인이 나타났다!

<터널>은 30년의 시간을 거슬러 현재로 온 아재 형사 박광호(최진혁 분)가, 그가 못잡은 범인에 의해 살해당한 피해여성의 아들 김선재(윤현민 분)와 함께 30년의 시차를 두고 '연쇄 살인'의 진범을 추격하는 미스터리 범죄 수사물이다. 드디어 이들이 쫓던 연쇄 살인의 진범인 정호영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그런데 수사팀과 함께 숨바꼭질을 하듯 공중전화를 이용하며 그들에게 알 수 없는 힌트를 흘리는 정호영. 정호영의 힌트에 미심쩍어하면서도 화양경찰서 수사팀은 정호영 잡기에 혈안이 되는데. 그렇게 정호영을 향해 달리는 수사 상황 속에서 9회 마지막, 뜻밖의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김선재가 가장 의지해마지않는 부검의 목진우(김민상 분)가 놀이터에서 '나는 이유없이 살인을 하지 않는다'며 여성의 목을 조르며 시청자들의 허를 찌른 것. 

이미 눈밝은 시청자들이라면 연쇄 살인이라는 범죄 자체가 등장하기도 전인 30년 전 여성들을 잇따라 스타킹으로 목을 졸라 죽인 범죄가 당시 학생이었던 정호영의 짓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등장할 때마다 심상치않은 분위기와 의미심장한 대화를 한 목진우를 의심스레지켜본 시청자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드라마가 그렇게 시청자는 알지만, 정작 수사 당사자들은 그것을 찾아 헤매는 것을 드라마적 복선인양 꽁꽁 숨겨놓는 것과 달리, <터널>은 자신만만하게 9회 엔딩에서 대놓고 자신의 숨겨진 패를 '깐다'. 결국 <터널>의 연쇄 살인 역시 <갑동이> 등에서 등장했던 진범과 카피캣의 이야기, 하지만 30년의 시간을 둔 과거의 형사와 현재의 형사의 슬픈 인연, 그리고 과거의 연쇄 살인범과 현재의 카피캣의 엇갈린 범죄는 목진우의 가면이 벗겨지며 절정을 향해 달려간다. 

 <시카고 타자기>

<시카고 타자기> ⓒ tvN


② <시카고 타자기> 귀신이 나타났다!

<시카고 타자기>는 슬럼프에 빠진 천재 스타 작가 한세주(유아인 분)와 그의 유령 작가 유진오(고경표 분)의 이야기다. 대필 작가가 있다는 루머에 시달리던 한세주는 어떻게든 차기작 연재를 이어나가야 하지만, 글은 뜻대로 써지지 않는다. 유진오의 대필로 소설을 연재하지만, 작가적 자존심이 센 한세주는 결국 모든 일을 고백하기로 한다. 작가적 명성과 명예가 바닥으로 곤두박질 칠 것을 알지만 말이다. 

5회, 한세주는 기자들을 모아놓고 유령 작가의 존재를 고백한다. 끊임없이 유렁작가설이 불거지던 한세주의 선언에 기자들의 손놀림은 빨라진다. 그 유령 작가가 누구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세주는 옆에 앉아있는 유진오를 소개한다. 하지만 취재진의 눈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 눈에 한세주의 옆자리는 비어있었던 것이다.

'유령 작가'였던 유진오가 진짜 유령이었음이 드러나는 이 장면. 제작진은 '놀랬지!' 하며 반전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시청자들은 이미 수를 훤히 꿰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첫 회부터 계속 의미심장하게 등장한 삽살개와 타자기로 인해 유진오가 초현실적 존재일 것이라는 걸 감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동시간대 전작들인 <도깨비> <내일 그대와>에 이어 이번엔 유령이라니. '또 판타지?' 라는 느낌이 앞섰다. 다만 과거의 3인방, 1930년대 '경성 트로이카'는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이것이 바로 <시카고 타자기>의 딜레마이다.

 <자체 발광 오피스>

<자체 발광 오피스> ⓒ MBC


③ <자체 발광 오피스> 은장도가 낙하산이라니!

100번의 입사 시험에 실패한 은호원(고아성 분), 만년 공시생이라 애인에게 마저 차인 도기택(이동휘 분), 강남 8학군 출신에 완벽한 스펙을 갖추고도 매번 미끄러지는 장강호(이호원 분)는 면접 실패 동지이자, 한강 투신 동지들이다. 그런 이들이 하우라인의 비정규직 사원으로 만났다. 그러나 이 '기막힌 우연'이 알고보니 사주 아들 서현(김동욱 분)이 기획한 것임이 드러났다.  다시 손을 내민 하지나(한선화 분)의 손을 잡을 수는 없지만,

88만원 세대의 전형으로 등장하여, 어렵사리 하우라인 비정규직 사원으로 고분분투하고 있는 <자체 발광 오피스>의 세 주인공들. 하지만 드라마는 이들이 기대고 있는 마지막 '자존감'의 보루마저 채가 버린다. 그래도 세상이 자신들을 완전히 외면한 것은 아니라고 믿었던, 자신들의 능력으로 쟁취했다고 믿었던 그 '비정규직'의 자리조차 사실은 그들의 원래 몫이 아니었다. 심지어 여태까지 은인이자 호인이라 믿었던 서현이 알고보니 자신들을 '이용'한 사람이라며 드라마는 그 알량한 '판타지'마저 거둬들인다.

늘 세상이 자신을 몰라줘서 서운하다고 했는데, 알고보니 자신들 역시 그 누군가의 밥그릇을 뺏어들고 이 자리에 있어왔다는 것을 깨닫게 된 세 사람. 그들은 '쪽 팔려서' 도망가는 대신, 마지막 그들에게 주어진 기회, 아니 은호원이 서현에게 '고소'를 들먹이며 따낸 '정규직 전환'의 기회를 놓고 최선을 다하려 한다. 비록 회사가 내준 조건에 따르면 그간 사고만 친 이들에게 정규직의 희망은 아득하지만, 이제 이들은 우르르 한강으로 몰려가던 그들이 아니다. 아직은 위축되고 자신 없지만, 대신 당당할 수 있다. 자신들의 역전된 처지에 쪽팔려하는 대신, 자신들의 처지를 돌아보고 남은 시간동안 최선을 다하려는 이들 은장도는 아프지만 주저앉지 않는 당당한 청춘을 그려내기에 고심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터널 자체발광 오피스 시카고 타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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