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형... 내가 웬만하면 개톡을 하려고 했는데 형의 말하는 방식이 잘못되어서 공개적인 자리에 글 올릴게...

단순히 분장한 모습을 흑인비하로 몰아가는 형의 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는 어떻게 해석이 되냐면 영구, 맹구라는 캐릭터는 자폐아들에 대한 비하로 해석될 수가 있고 예전에 한국에 시커먼스라는 오랫동안 사랑받았던 개그란 것도 있었어. 그럼 그것도 흑인비하인 건가?

이런 식으로 풀어가자면 형이 지금 하고 있는 <슈퍼맨이 돌아왔다>라는 프로그램은 아이들과 좋은 곳에 가고 맛있는 거 먹이는 모습이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부모들에겐 '내 아이들에겐 저렇게 해주고 싶어도 해줄 수 없어서'라는 상대적 박탈감을 주는 프로그램이라고 해석될 수도 있어. 하지만 프로그램이나 형의 의도는 저런 게 아니잖아. 한심하다는 표현은 적절치 못했다고."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 출연한 홍현희.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 출연한 홍현희. ⓒ SBS


한국의 공개 코미디는 왜 아직껏 1980년대 '시커먼스' 수준에 머물러야 하는 건가. 왜 '인종 차별'이 버젓이 코미디의 소재로 활용되는가. 더군다나 왜 황현희는 자신의 좁고 협소한 '사견'을 "공개적인 자리"에 게재함으로서 망신을 사는 것은 물론 스스로의 일그러진 시각을 만천하에 공개했을까.

위의 글은 지난 22일 황현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방송인 샘 해밍턴을 향해 적은 글이다. 개인적인 글이라고 하기엔, 다분히 '흑인 비하' 관련 의견을 공개적으로 개진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그런데 22일 하루 소셜미디어 상에서는 황현희의 글에 반대하는 의견들이 차고 넘쳤다. 왜 그랬을까.

황현희가 드러낸 인권 차별 불감증

"이번에 <웃찾사>에서 홍현희가 흑인 분장하고 나왔는데... 진짜 한심하다! 도대체 이런 말도 안 되는 행동 언제까지 할 거야? 인종을 그렇게 놀리는 게 웃겨? 예전에 개그 방송 한 사람으로서 창피하다."

앞서 샘 해밍턴은 21일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지난 19일 방송된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 '개그우먼 홍현희' 코너에서 흑인 원주민 분장을 하고 나온 홍현희의 개그에 대해 일침을 날렸다. 샘 해밍턴은 게시글 댓글을 통해서도 "분장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고 했지만... 만약에 제가 한국인 흉내내려고 분장했으면 문제 아니라고 생각할까요?"라고 덧붙였다.

<웃을 찾는 사람들> 제작진도 지난 21일 이 코너와 관련해 "신중히 검토하지 못한 점 사과드린다"며 "클립은 즉시 삭제 조치했다. 향후 이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더욱 주의를 기울이겠다"고 사과한 바 있다. 이렇게 제작진까지 사과한 사안에 대해 황현희가 의견을 보탠 것이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들먹인 황현희의 경우, 대표적인 '인권 불감증'의 사례라 할 수 있다. "영구, 맹구라는 캐릭터는 자폐아들에 대한 비하"라는 스스로 성급한 추론을 내리는 한편 더 나아가 과거 명징하게 '흑인 차별'이라 비판받았던 '시커먼스'를 소환함으로서 자신의 무지를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다.

개그맨 황현희의 인식, 안타깝다

 황현희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적은 글. 지금은 삭제된 상태다.

황현희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적은 글. 지금은 삭제된 상태다. ⓒ 황현희 페이스북 갈무리


'시커먼스' 코너는 출연자였던 이봉원이 훗날 인터뷰에서 이 코너가 폐지된 이유에 대해 88서울올림픽을 위해 입국하는 흑인 선수들과 관계자들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해서 폐지됐다고 밝힌 바 있다.

무려 30여 년 전인 1980년대에도 이러한 흑인 차별이나 비하가 문제시될 수 있음을 제작진이 인지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왜 시커먼스도 있었는데, 홍현희의 개그는 안 되냐는 항변은 너무나도 명백하게 시대착오적이지 않은가.

이게 다 '인권 불감증'에서 오는 인권 감수성의 하락 때문이다. '나와 다른 누구' 혹은 쉬이 '정상성'이라고 일컬어지는 '나와 우리'의 울타리 밖 누구도 쉽게 개그의 소재로 활용할 수 있다는 그 쉽고 안일한 선택들 말이다.

그러한 시선에서 매일 같이 뚱뚱하거나 못생긴 여성(과 남성)을 비하하고, 심지어 입양아를, 노인을, 장애인을 비하하는 개그들이 '시커먼스' 이래 근 30여 년간 지속돼 왔던 것이다. 더욱이 지난 박근혜 정권들어 정치사회 풍자에 대한 자기검열이 작동하면서 개그의 소재들은 급격히 차별과 혐오의 대상을 찾아 헤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개그 콘서트>를 비롯한 공개 코미디의 시청률 하락 역시 일정 부분은 높아지는 시청자들의 인권이나 페미니즘에 대한 의식과 반하는 시대착오적인 개그의 수준이란 지적이 제기돼 왔다. 그런 가운데 "그것도 흑인비하인 건가?"라며 백인인 샘 해밍턴에게 훈계하는 황현희의 글은 예의 그 '불감증'을 고스란히 드러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황현희가 상대적 박탈감이라고 적시한 그런 예능 프로그램들이 시청자에게 그러한 박탈감을 일정정도 전해주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 방송사들은 그렇게 누군가(소외 계층을 비롯한 일반인)가 받을 박탈감은 세심하게 고려하지 않는 편이다. 역시나 여러 불감증이 작용하고 심화된 결과다. 그 잘못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황현희는 "그것도 흑인비하인 건가?"라고 물었을 때, '우리' 안에 흑인이 없다는 점을 당연스레 상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유튜브도 좀 찾아보고 해외로 눈을 돌려 보시라. 오늘도 버젓이 자행되는 인종차별, 소수자 혐오와 같은 개그와 대중문화 소재들 중 한국인을 포함한 유색인종이 얼마나 많이 포함돼 있는지.

그걸 보고서도 "그것도 흑인비하"냐고 물을 수 있는지. 또 그 화끈 거리고 불쾌한 황인종 비하 개그를 보고도 웃고 넘길 수 있는지. 모르긴 몰라도, 이제는 중견 개그맨인 황현희의 이러한 안타까운 인식 수준은 작금의 개그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에게 외면받는 주요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이것이 절대 비약이 아니라는 것을 황현희가 스스로 입증해낸 셈이다.

황현희 샘 해밍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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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음악이 주는 기쁨과 쓸쓸함. 그 모든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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