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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를 상징하는 건축물 에펠탑. 화려한 야간 조명이 켜졌다. 아래 센강 유람선이 보인다.
 프랑스 파리를 상징하는 건축물 에펠탑. 화려한 야간 조명이 켜졌다. 아래 센강 유람선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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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마르트르 언덕의 사크레쾨르 성당. 주위에서 여유를 즐기는 여행자들과 파리 시민들.
 몽마르트르 언덕의 사크레쾨르 성당. 주위에서 여유를 즐기는 여행자들과 파리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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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 오른 지 10시간이 넘어섰다. 견딜 수 없이 좀이 쑤시기 시작했다. 

프랑스는 멀고도 멀었다. 이전까지 내가 경험한 최장시간 비행은 태국 방콕에서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까지 날아갔던 8시간 남짓. 인천공항에서 파리까지는 그보다 4시간쯤이 더 걸린다고 했다.

집을 떠나 길 위에 나선 여행자의 즐거움 중 하나인 기내식과 무제한 제공되는 샴페인과 맥주도 서너 시간 정도의 지루함을 달래줄 뿐이었다.

황지우의 시집과 프랑스여행 가이드북을 뒤적이기도 하고, 비행기 좌석에 설치된 모니터로 영화를 보고, 이어폰을 통해 들려오는 클래식에도 귀를 기울여봤지만…. 시간은 대체 왜 이렇게 더디 가는 것인지. "인간이 처한 상황에 따라 절대적이 아닌 상대적인 속도로 흐르는 게 시간"이란 어느 철학자의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사실 여행자가 비행기 안에선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다. 좀 야박하게 말하자면 땅으로부터 수백m 혹은 수천m 위에 뜬 한정적인 공간에 수백 명의 승객이 갇혀 있는 꼴이다.

비행기를 이용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몸을 누일 수 있는 편안한 일등석은 물론, 다리를 쭉 뻗는 게 가능한 비즈니스석도 언감생심이다. 좁디좁은 이코노미 좌석에 불편하게 앉아 건네주는 밥을 먹고, 음료수를 마시며 어떻게든 착륙 때까지 시간을 견뎌야 한다.

나는 183cm에 86kg쯤 되는 체격. 이코노미 좌석에선 싫으나 좋으나 차렷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옆 좌석에 앉은 백인은 100kg이 훨씬 넘어 보였다. 키도 나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컸다. 그는 아까부터 죽을상이다. '그래, 참자. 저 사람에 비하면 덜 고통스러울 테니까'라는 혼잣말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마침내 '샤를 드골 국제공항'... 파리행 전철에 오르다

문학과 영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프랑스 여행을 꿈꾸었을 것이다. 젊은 날 가슴 설레며 읽었던 앙드레 지드와 장 폴 사르트르, 그리고 알베르 카뮈의 책들. 그 작가들의 흔적과 숨결이 아직도 남아있는 프랑스의 수도 파리.

<400번의 구타>를 감독한 프랑수아 트뤼포, 영화 <레옹>을 연출한 뤽 베송, <퐁네프의 연인들>의 감독 레오 카락스가 활동한 나라, 거기에 매혹적인 배우 알랭 들롱, 줄리 델피, 뱅상 카셀, 에바 그린, 마리옹 꼬띠아르가 태어난 곳이 프랑스다.

프랑스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건 비단 문학과 영화만이 아니다. 다채롭고 화려한 요리, 미려한 건축물, 사람들 몸에 배인 관용(tolerance)의 정신까지가 일종의 '관광자원'이다. 거기에 미술관과 박물관까지 덤으로 즐길 수 있으니 여행자가 몰려드는 건 당연한 일.

나 역시 프랑스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그런데, 그 기대는 의외의 지점에서 보기 좋게 깨졌으니….

12시간의 지루함을 견딘 끝에 비행기는 마침내 샤를 드골 국제공항(Charles de Gaulle Airport)에 도착했다. 입국수속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발걸음을 재촉해 공항 밖으로 나가 오래 참았던 담배부터 한 개비 꺼내 물었다.

파리 시내로 들어가려면 전철을 타야 했다. 그런데, 한국의 지하철보다 지저분하고 번잡스러웠다. 정차하는 역들의 플랫폼에도 빈 과자봉지와 담배꽁초 등이 널려 있었다.

내가 파리를 찾았을 땐 '유럽 축구선수권대회'가 한창이었다. 초록색 유니폼 셔츠를 맞춰 입은 아일랜드 축구팬과 노란색 유니폼 셔츠로 축구사랑을 과시하는 스웨덴인들 수십 명이 전철 안을 시끄럽게 만들고 있었다. 프랑스에 도착하자마자 '조용하고 매너 있는 유럽인들'이란 선입견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머문 숙소에도 유럽 각국의 축구팬 수십 명이 투숙하고 있었다.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들어와 호텔 복도에서 큰소리로 응원가를 합창하던 이들은 아일랜드인들이었을까, 스웨덴 사람들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프랑스 축구팬들이었을까?

루브르 박물관. 입구에 설치된 유리 피라미드가 독특하다.
 루브르 박물관. 입구에 설치된 유리 피라미드가 독특하다.
ⓒ 구창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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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내린 파리. 하루를 정리하고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
 어둠이 내린 파리. 하루를 정리하고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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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미화원들의 파업... 오물 냄새 진동하는 파리

예약한 숙소에서 가까운 브레게 사방(Breguet Sabin)역에 내려 지상으로 올라오니 이건 또 뭔가? 얼마나 오래 방치한 것인지 거리에 쓰레기더미가 가득했다. 냄새가 코를 찔렀다. 품고 있던 프랑스와 파리에 대한 환상이 다시 한 번 무참히 깨졌다. 호텔을 찾아가는 길에선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샤워를 마치고 로비로 내려오니 L이 와 있었다. 한국에서 신문사를 다녔던 L은 몇 해 전 아내와 함께 공부를 하러 프랑스로 왔다. 선배의 소개를 통해 한두 번 전화로 인사한 것이 전부인데, 마치 오래 만나온 사람처럼 살갑게 대해주는 게 고마웠다.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에 L에게 물었다. "파리는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딴판이네요. 왜 쓰레기를 며칠씩 치우지 않는 거죠?" 너털웃음을 터뜨린 그가 이유를 알려줬다.

"아, 그거요? 지금 몇 주째 환경미화원들이 파업을 하고 있어요. 보통 땐 지금보다는 낫죠. 하지만, 파리가 그렇게 깨끗한 곳은 아니에요. 밤에 센(Seine)강에 가보세요. 거긴 노상방뇨 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어쨌건 프랑스에서 나를 가장 먼저 반긴 건 시끌벅적한 전철 안 소음과 악취였다. 즐겁고 행복한 첫 만남이라고 할 순 없었다.

샹젤리제 거리의 한 식당. 파리에 사는 대학생을 소개받아 함께 저녁을 먹었다. 아랍계인 그는 "테러는 있어서는 안 될 비극"이라고 말했다. 사실 탈레반과 IS 같은 극단적 이슬람근본주의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샹젤리제 거리의 한 식당. 파리에 사는 대학생을 소개받아 함께 저녁을 먹었다. 아랍계인 그는 "테러는 있어서는 안 될 비극"이라고 말했다. 사실 탈레반과 IS 같은 극단적 이슬람근본주의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 이준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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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로 보이는 아기를 돌보는 프랑스 여인. 보통 때 파리의 일상은 이처럼 평화롭다.
 손자로 보이는 아기를 돌보는 프랑스 여인. 보통 때 파리의 일상은 이처럼 평화롭다.
ⓒ 구창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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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L이 운전하는 차에 올라 해 질 무렵의 몽마르트르 언덕과 환하게 불 밝힌 에펠탑을 둘러보고, 샹젤리제 거리의 조그만 식당에서 포도주를 곁들여 맛있는 요리를 먹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여유로워졌다. L에게 소개받은 아랍계 프랑스인 청년의 환한 미소도 보기에 좋았다.

건너편 식탁에선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커플이 사람들이 보건 말건 오랫동안 달콤하게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 여기가 수많은 시인들이 "낭만의 절정"이라고 노래한 파리구나. 죽은 에디트 피아프가 부활해 '라비앙 로즈(La Vie En Rose·장밋빛 인생)'를 불러줄 것만 같은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바로 그 샹젤리제 거리에서 얼마 전 끔찍한 테러가 발생했다니 안타까운 마음 감출 길이 없다. 인종과 종교가 야기한 테러라는 '야만'이 더 이상 파리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없었으면.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신문>에 게재된 것을 일부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태그:#프랑스, #파리, #상젤리제, #몽마르트르, #에펠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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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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