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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사이트 검색창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 '홍준표 돼지흥분제'라는 키워드가 하루종일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렸기 때문이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대선 후보가 2005년 자서전에서 친구의 강간을 돕기 위해 돼지흥분제를 구해다 준 이야기를 썼고, 이 사실이 뒤늦게 언론에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었다.

비난이 거세지자 홍 후보 측은 황당한 해명을 내놓았다. '자신이 직접 개입한 것은 아니고 다만 들은 이야기를 재미있게 구성하려 했을 뿐이며, 당시에도 이미 잘못된 일이라고 반성을 했다. 또한 사회 분위기가 지금과는 많이 달랐던 45년 전의 일이고, 혈기왕성한 대학생 때이니 너그럽게 봐 달라는 것'이었다. 이 짧은 해명에서도, 한국의 '강간 문화'가 어떻게 돌아가고 유지되는지를 알 수 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가 12년 전 출간한 자전적 에세이 <나 돌아가고 싶다>의 일부분. 이와 관련 홍 후보가 '성폭행 모의'에 가담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가 12년 전 출간한 자전적 에세이 <나 돌아가고 싶다>의 일부분. 이와 관련 홍 후보가 '성폭행 모의'에 가담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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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 문화'가 뭐냐고요?

'강간 문화'라는 표현을 듣고, 어떻게 강간이라는 범죄가 문화가 되느냐고 반문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강간 문화'는 강간이라는 물리적 행위만을 의미하는 단어는 아니다. 레베카 솔닛의 정의에 따르면 '강간 문화'는 강간이 만연한 환경, 미디어와 대중문화가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규범화하고 용인하는 환경을 뜻한다. 즉,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 혐오적 표현, 성폭력의 미화가 미디어를 통해 재생산되고 수용자들이 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상황 전체를 이르는 말이다.

'강간 문화'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성폭력이 폭력이 아니라 '로맨스' 혹은 '미숙한 표현 방식' 등으로 미화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드라마에서 수도 없이 등장하는 장면들,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을 벽으로 몰아붙여 강제로 스킨십을 하고 손목을 낚아채는 장면들은 폭력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상남자의 로맨스'라고 포장된다.

강간이 '무용담'이 되는 사회

홍준표 후보는 본인의 페이스북을 통해 안 하느니 못한 해명을 했다.
▲ 이게 해명인가요? 홍준표 후보는 본인의 페이스북을 통해 안 하느니 못한 해명을 했다.
ⓒ 홍준표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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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홍준표 후보의 자서전에서 '돼지흥분제' 부분이 속한 챕터의 제목은 '꿈꾸는 로맨티스트'이다. 흥분제를 탄 술을 먹이고 강간하려고 했던 친구에 대한 부연도 구구절절하다. 상대 여학생을 '지독하게 짝사랑'했으나 마음을 주지 않았고,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강간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상대가 싫다는데도 쫓아다니겠다는 의지와, 강간을 하면 '내 사람'이 된다는 생각 모두 괴상하지만, 가장 끔찍한 것은 이런 이야기를 철없는 어린 시절의 무용담 정도로 치부해버리는 태도이다.

해명에서도 이런 태도가 여실히 드러난다. 문제가 되자 자신이 직접 가담하지는 않았고, 들은 이야기를 재밌게 전했을 뿐이며,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강간을 방관하고 심지어 재미로 소비하는 것이 문제라는 인식은 전혀 없는 듯하다. 반성한다는 말도 기만적이다. 자서전에서도, 해명에서도 홍준표는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있지 않다. 단지 '반성하고 성장하는 인간 홍준표'의 서사를 위해서, 피해와 반성은 손쉽게 이용된다.

"내 주변에는 없어"...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노홍철은 2004년 여성지에 돼지발정제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가 비난을 받기도 했다.
▲ <슈어>지에 실린 칼럼 노홍철은 2004년 여성지에 돼지발정제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가 비난을 받기도 했다.
ⓒ <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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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돼지흥분제'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2007년, 노홍철도 여성잡지 <슈어>의 기고글이 문제가 되어 여론의 뭇매를 맞은 적이 있다. 문제가 된 내용은 고등학교 시절 여성을 '범하고' 싶은 마음에 술, 수면제, 돼지흥분제 중 어떤 걸 쓸까 고민하다가 돼지흥분제와 수면제는 구하기가 어려워 독한 술을 썼다는 것이었다.

논란이 일자 노홍철 소속사 측은 "노홍철이 쓴 글이 아니고, 친분 있는 기자가 전화와 술자리 이야기를 해달라고 해서 농담 분위기에서 한 이야기를 기자가 재미있게 각색해서 쓴 것"이라고 해명했다. 노홍철은 글에 나온 여성과 술만 함께 마신 것이고, 돼지흥분제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홍준표가 '돼지흥분제'를 썼다는 것을 비난하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것은 누가 봐도 명백한 잘못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홍준표라는 개인의 이미지는 이미 말이 통하지 않는 꼰대 정도로 굳혀졌고, 그래서 이 사건은 더욱 홍준표 개인만의 문제로 비춰지기 쉽다. 그렇다면 '돼지흥분제' 말고 수면제와 술은 괜찮은가?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런 사건들은 낯설지 않다.

아직도 이런 표현들은 문제의식 없이 쓰인다.
▲ 영상 콘텐츠에 등장한 '작업술' 아직도 이런 표현들은 문제의식 없이 쓰인다.
ⓒ 딩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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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해서 취하지 않을 것 같지만 사실은 도수가 높아서 마시다보면 '훅 가는' 술을 '작업주'라고 부른다. 왜 누가 봐도 독한 술이 아니라 알고 보면 취하는 술을 '작업주'라고 말할까? 그 '작업'의 목적은 무엇인가? '작업주'인 칵테일을 마시고 취해서 의사표현이 불분명한 상대방과 성관계를 맺었다면 그것은 강간이 아닌가?

거부 의사 표시를 할 수 없는 상태에서 한 성관계는 강간이다. 그런데 여전히 '작업술'이라는 말은 위트있는 표현으로 쓰이고, '여자들이 좋아하는 작업주'라는 제목을 단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러한 모순이 생기는 것은 '강간 문화'가 성폭력을 성폭력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여성의 주체성과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부족한 것이다. 홍준표의 '돼지흥분제' 발언에는 분노하면서 '술 먹여서 어떻게 해보려는' 일은 웃음거리로 넘겼다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정말 내 주변에는 '강간 문화'가 없는가?

홍준표 후보는 45년 전에는 지금과 사회적 분위기가 달랐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사회는 변한다. 그러나 홍준표는 45년 전이 아니라 2017년 현재 대선 후보다. 성인사이트에서 최음제, 물뽕 등으로 불리던 것들에 '강간 약물'이라는 이름이 붙은 지도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이렇게 사회를 변하게 하는 것은 단편적 사건에서 구조의 문제를 끌어내려는 노력이다. 그의 '돼지흥분제' 논란이 개인 차원에서 끝나지 않고 사회에 만연한 '강간 문화'를 바꾸는 데 일조하길 빈다.


태그:#홍준표, #돼지흥분제, #자유한국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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