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남성 작가들을 따라다니는 '수식어'에 '선굵다'라는 표현이 있다. 막상 정의를 내리자면 모호하지만, 서사의 스케일이 장대하며, 스토리 라인을 추동하는 힘을 '남성적 역동성'에 기댄다는 의미라 본다면 크게 엇나가지 않을 듯하다. 

'남성 작가'에 굳이 '선굵은'이란 수식어를 얹어주는 것 자체가 이 시대에는 또 다른 성적 편견의 소치일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선굵은 남성 작가 장르'가 내내 존속해 왔던 것 또한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주몽>(2006)에서 <아이리스>(2009) 등 사극과 시대극을 오가며 그의 이름이 곧 장르가 되었던 최완규 작가가 한국의 대표적 선굵은 남성 작가로 칭해진다. 하지만 그의 최근작 <옥중화>가 작품성에 있어서나, 시청률 면에서 아쉬운 결과를 보이며 그 이름값에 걸맞는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김은숙 작가와 함께 <태양의 후예>를 통해 (김은숙이란 장르에서는) 신선한 이야기를 끌어냈던 김원석 작가가 21일 JTBC <맨투맨>을 통해 또 한 명의 '선굵은 장르 작가'로서 진검승부를 펼쳐보고자 한다.

ⓒ JTBC


<태양의 후예>처럼 날아서

지하철 광고문에도 "했지 말입니다" 같은 '군대 용어'가 쓰일 정도였던 <태양의 후예>. 대한민국 군복이 그렇게 멋있을 줄 몰랐다는 우스개가 떠돌 정도로 군복으로 감싼 잘 단련된 젊은이들이 이국의 빛나는 태양 아래 첩보 영화에서나 보던 활약을 펼친다. 이에 다수의 시청자들은 매료됐다. 한국의 전시작전통제권이 미국에 있다는 실질적 사실은 저리 밀쳐두고 미군 앞에서도 당당하고 '여자와 어린이'로 대변되는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그들의 순수한 군인 정신은 "군인 드라마는 안 된다"는 전례를 가볍게 물리쳤다. 그리고 <맨투맨>은 오마주처럼 <태양의 후예>가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던 바로 그 '첩보' 영화 속 한 장면을 다시 불러들인다.

스쿨버스의 아이를 생포한 인질범과 대치하는 다국적군, 지휘관은 명령이 있을 때까지 발사하지 말라고 하지만 인질인 어린이의 생명을 우선시하는 김설우(박해진 분)은 그런 지휘관의 명령에 아랑곳하지 않고 홀로 뛰어들어 그를 죽이고 아이를 구한다. 그의 하극상은 체포로 이어진다. 더 이상 군인으로 활약할 수 없는 김설우. 대신 그에게 주어진 수면 아래의 첩보원 '고스트'로서의 새로운 인생이 주어진다. 그는 <007> 시리즈에서나 볼 법한 '여자'를 볼모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적을 능멸하는 신출귀몰한 활약상을 보여준다. <태양의 후예> 속 익숙했던 카메오와 함께.

이 익숙한 화법은 이미 대중들에게 환호받은 바 있는 전작의 코드를 영리하게 활용함과 동시에 "바로 이게 김원석"이라는 확인 도장 같다. 공동 집필 작품인 <태양의 후예>에서 김원석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에 대한 김원석식 답이 <맨투맨>이다.

<태양의 후예>를 통해 신드롬을 일으킨바 있고, <맨투맨> 첫 회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듯 김원석 드라마의 주인공은 국가의 그늘 속에 사명감을 가지고 그것을 자신의 직분으로 여긴 채 살아가는 정의로운 젊은이다. 흔히 다른 드라마에서 '국정원'이 비리의 배후나 그림자로 등장하는 것과 달리, <맨투맨> 속 국정원은 첫 회에 등장한 장 팀장(장현성 분), 이동현(정만식 분), 김설우의 면면만 봐도 <태양의 후예> 속 군인들 못지 않게 직업적 사명감과 정의감의 현신으로 그려진다. 김원석의 이런 해석이 이번에도 또 한번 통할까?

어라, 장르가 뭐지?

ⓒ JTBC


<태양의 후예> 도입부처럼 날았던 <맨투맨>. 선 굵은 액션 어드벤처를 기대했던 시청자의 기대는 온 몸을 감싼 히어로복을 입은 여운광(박성웅 분)의 입에서 사투리가 터져나오며 '급' 장르를 변경한다. 헐리웃과 중국 영화에 출연했다는 한류 스타 여운광, 하지만 그의 행보는 '코미디'다. 허우대 멀쩡한 덩치와 다르게, 팬클럽 출신 매니저 차도하(김민정 분)에게 쩔쩔맨다. 매니저에게는 막무가내, 송미은(채정안 분) 앞에서는 자존심만 남은 그 모습은 마치 '남자 천송이'를 보는 듯 로맨틱 코미디의 기시감을 느끼게 한다.

여운광의 주변 에피소드에서 장르를 급변환했던 드라마는 다시 또 송산그룹 모승재 회장(연정훈 분)에게로 가면 장르가 달라진다. 할아버지의 초상화 앞에서 서울 시장에 나서는 전직 관료에게 돈과 따귀 세례를 안기며 딜을 하는 그. 서울 시장 자리를 갖다 바친 백인수(천호진 분)와의 사이에서 등장한 '세 개의 목각상'은 이 장르가 여전히 미스터리 첩보 장르이면서, 동시에 최근 빈번해진 기업 비리물임을 확인시켜준다.

이렇게 장르와 장르 사이를 오가며 첫 회를 선보인 <맨투맨>, 김설우과 여운광, 모승재의 등장 장면들이 연결은 매끄럽지 않았지만, 다음 이야기의 궁금증이 증폭된다. 무엇보다 세 개의 목각상을 구하기 위해 국내에 잠입한 '고스트'가 선택한 일자리가 뜻밖에도 한류 스타 여운광의 '가드'라는 신선한 설정은 흔히 첩보원이라면 그에 걸맞은 '가오' 있는 캐릭터로 등장하는 것과 다른 반전이다. 과연 반전을 통해 폭을 넓힌 드라마가 좋은 결과물로 나올지 그 또한 <맨투맨>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맨투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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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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