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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한국리빙랩네트워크(KNoLL, Korean Network of Living Lab)가 첫 모임을 가졌다. 2006년에 창립, 유럽 전역에 흩어진 400여 개의 사회혁신 기관들이 참여하고 있는 유럽리빙랩네트워크((ENoLL, European Network of Living Lab)에 견주려면 아직 가야할 길이 멀지만, 언젠가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포부로 첫발을 내딛은 것.

앞으로 한국리빙랩네트워크는 사회혁신(Social Innovation)이라는 새로운 길을 가고 있는 한국의 혁신가들에게 든든한 울타리이자 동반자, 또 길라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한국리빙랩네트워크 출범을 계기로 오늘날 한국의 사회혁신이 어디쯤 와있는지를 돌아보려 한다. - 기자의 말

영화 '라이언(Lion)'(2016)은 어릴 적 길을 잃어 바다 건너 호주로 입양돼 자란 인도 청년 '사루'가 '구글어스(www.google.com/earth)'로 25년 만에 집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이 거짓말 같은 이야기는 길을 찾아주는 지도가 어떻게 달리 쓰일 수 있는지, 또 길을 찾는다는 것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리고 여기 세상에 없던 지도를 만들어 새로운 길을 내려는 혁신가들, '엔젤스윙(ANGELSWING)'이 있다. '엔젤스윙' 박원녕 대표를 지난 4월 15일 서울대학교 연구공원 본관 사무실에서 만났다.

네팔 대지진 현장에서 첫 날개를 펴다

 네팔 현지에서 드론을 날리고 있는 박원녕 대표
 네팔 현지에서 드론을 날리고 있는 박원녕 대표
ⓒ 엔젤스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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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네팔에서 지진이 일어났다. 규모 7.8의 강진이었다. 인명피해도 컸지만, 고산지역이라 피해 복구는커녕 한시가 급한 구조의 손길조차 아득하기만 했다. 네팔 정부는 제대로 된 피해 상황도 파악하지 못한 채 안타까운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때 멀리 한국에서 이를 지켜보던 몇몇 대학생들이 자신들이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모른다는 당돌한 생각을 떠올렸다. 교환학생으로 잠시 한국에 머물던 박원녕(미국 조지아공과대 항공우주공학과)과 서울대 학생들이었다. 훗날 소셜벤쳐 '엔젤스윙'을 세운 주역들이다.

지진이 일어나자 집들이 무너져 내린 것은 물론 지형 자체가 크게 바뀌는 바람에 모든 지도가 쓸모없어졌다. 구조를 하려해도 지금 이 순간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또 어떤 길로 갈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를 지켜보던 이들 대학생들은 피해 지역에 드론을 띄우면 당장 사람의 발길이 닿을 수 없는 곳의 상황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떠올렸다. 이들의 날갯짓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드론을 만드는 데는 석 달이 걸렸다. 제작에 필요한 돈은 크라우드펀딩으로 모았다. 좋은 뜻에 공감한 이들이 한 달 사이 300만 원이 조금 넘는 돈을 모아주었다. 네팔에 날아가 드론을 띄우니 생각했던 것만큼 좋은 영상을 얻을 수 있었다. 성공이었다. 지도는 복구 작업에 힘쓰고 있는 NGO에, 드론은 카트만두대학에 주고 왔다. 드론 워크숍을 열어 제작 기술도 나눴다.

그 뿐이 아니다. 지난해 1월에는 전염병이 돌아 사람이 죽어가던 네팔의 고산지 마을에 0.5kg의 의료품을 실은 드론을 날려 보내기도 했다.

네팔에서 돌아온 뒤 박원녕 대표의 눈은 빈민가로 향했다. 서울대 근처 삼성동 쪽방촌을 둘러보고는 네팔에서 본 것과 크게 다를 것 없는 현실에 무척 놀랐다고 한다. 박 대표는 네팔에서 했던 것처럼 이 마을에 드론을 띄워 정밀 지도 정보를 얻으면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드론 제작에 필요한 돈을 얻기 위해 이번엔 서울대 글로벌사회공헌단이 주최한 '응답하라 서울대-2015 겨울방학 사회공헌 프로젝트 공모전'에 지원했고, 다행히 선정이 되어 180만 원을 지원 받을 수 있었다.

"포털사이트가 제공하는 항공지도는 해상도가 너무 떨어져 쪽방촌의 상황을 전혀 알 수 없다. 드론을 활용한 지도는 원한다면 땅에 떨어진 동전까지 찍힐 만큼 고해상도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이런 정보로 이 지역의 상태나 경제상황이 어떤지도 알 수 있다. 지붕만 봐도 많은 정보를 알 수 있다."

드론의 날갯짓에 사람의 발품이 더해지고

 '엔젤스윙'이 만든 지도를 살펴보고 있는 주민들
 '엔젤스윙'이 만든 지도를 살펴보고 있는 주민들
ⓒ 엔젤스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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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드론으로 찍은 항공사진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크라우드 매핑(crowd mapping)'을 활용하기로 했다. 자원봉사자들을 모아 구역을 나누고 직접 동네를 돌며 또 다른 정보를 모으도록 한 것이다. 지도에 나오지 않는 좁은 골목길, 소방차가 다닐 수 있는 길과 없는 길, 비상소화장치함과 CCTV가 있는 곳, 가스통과 화장실의 위치, 가로등이 있는 곳과 망가진 곳, 쓰레기가 버려져 악취가 심한 곳, 도로가 파손된 길, 휠체어가 다닐 수 없는 급경사 지역, 넘어져 다치기 쉬운 길이나 감전 위험이 있는 지역 그리고 폐가를 일일이 찾아 기록했다.

집의 출입구도 표시하도록 했는데,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데다 골목도 좁아 집의 출입구를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자원봉사를 하려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정보였다.

드론을 띄우기 전에는 사전조사팀을 꾸려서 주민들 인터뷰도 진행했다.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던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겨울철에 집밖에 나가기 어렵다는 호소가 많았다. 산동네라 경사가 가파르다 보니 빙판이 생기면 도리가 없었다. 계단도 없고, 다른 동네만큼 관리도 잘 되지 않았다. 집에 화장실이 없어 공공화장실을 써야하는 주민이 많았는데 화장실도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추운 겨울이면 화장실에 갈 수도 없어 집에서 요강으로 해결하는 일이 많다고 했다. 빙판에 미끄러질까봐 신발에 양말을 덧대 다닌다는 얘기에 지원받은 금액의 일부를 떼서 아이젠 40개를 기부하기도 했다.

이렇게 사전인터뷰로 얻은 정보를 기초로 지도에 무엇을 담을지를 정했다. 드론의 날갯짓에 사람의 발품이 더해진 것이다. 그리고는 2015년 12월 드디어 서울 관악구 삼성동 판자촌 일대에 고화질 카메라를 장착한 드론을 띄웠다. 비행 경로를 입력해 자동으로 사진을 찍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촬영하는 데는 20분이면 된다. 그 20분 촬영을 위해 물론 엄청난 준비가 필요하다. 떨어질 것도 대비해야 한다. 실제로 네팔에서는 드론이 추락한 적도 있다. 현장을 꼼꼼하게 파악해야 한다."

시민과 함께 지도의 쓰임새를 새롭게 만들어가다

 '엔젤스윙'이 만든 관악구 삼성동 정밀지도
 '엔젤스윙'이 만든 관악구 삼성동 정밀지도
ⓒ 엔젤스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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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촬영한 지도 정보는 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특히, 지자체를 비롯해 소방서와 경찰서 그리고 NGO가 유용하게 활용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이렇게 완성된 지도 덕에 자원봉사자들은 더 쉽게 도시락을 전달할 수 있게 되었고, 주민들도 반겼다. 또 만에 하나 일어날 수 있는 재난상황에 더 값지게 쓰일 수 있을 것이다.

"한번 만들고 나니까 지도라는 게 누가 쓸 것인가에 맞춰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을 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령, NGO 활동가가 쓸 지도라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직접 물어야 한다. 그래야 당사자에게 더 도움이 되는 지도를 만들 수 있다."

이들이 두 번째로 찾은 곳은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이었다. 1100여 명이 모여 사는 전국 최대의 쪽방촌이다. 이번엔 서울시의 도움을 받았다. 서울시 시민 아이디어 제안 플랫폼인 '천만상상오아시스(oasis.seoul.go.kr)'에 드론을 이용한 쪽방촌 정밀지도 제작 프로젝트를 제안하자 공간정보를 담당하는 부서가 팔을 걷어붙이고 이들을 도왔다. 비행제한구역인 용산구에서 드론을 띄울 수 있도록 국방부와 수도방위사령부를 설득한 것도 서울시였다.

동자동에서는 주민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도 진행했다. 쪽방촌 상담소에 지도를 보내고 주민회의 때 의견도 들었다. 서울시는 이렇게 만들어진 정밀지도를 소방재난본부와 쪽방촌 상담소 그리고 도시락을 배달하는 봉사단체 등에 전달했다. 3D지도는 동자동 지도를 새롭게 만드는 작업에도 활용되고 있다.

"지도를 크게 뽑아 동네 담벼락에 붙였더니, 주민들의 고독사를 막기 위해 이웃끼리 서로 관계를 맺어주는 일을 해보려는 시민단체에서 연락을 해왔다. 현장에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하게 지도를 활용한다. 그래서 정보를 얻는 데도, 또 활용하게 만드는 데도 집단지성이 큰 도움이 된다."

'엔젤스윙'은 '크라우드 소싱(Crowd Sourcing)' 방식으로 누구나 지도를 업데이트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플랫폼도 준비하고 있다. 또 다른 혁신가나 NGO 활동가, 또 지역 주민들이 새로운 정보를 덧입힐 수 있도록 열어둘 생각이다.

"플랫폼이 만들어지면 어디까지 활용될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사람들이 우리 지도에서 영감을 받아 새로운 정보를 더하거나 새롭게 활용하면 얼마든지 더 나은 사회적 가치가 만들어질 수 있다. 연탄배달을 하는 단체가 있다면 연탄배달 지도가 만들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날아오르는 엔젤스윙

 드론으로 촬영한 네팔 현지의 모습
 드론으로 촬영한 네팔 현지의 모습
ⓒ 엔젤스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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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젤스윙'이 세 번째로 날아오른 곳은 강남구 구룡마을 위다. 1980년대 오갈 데 없던 도시 빈민들이 모여들어 만들어진 판자촌으로 축구장 37개를 합쳐놓은 것만큼 넓다. 지난 3월에 큰 불이 나 스물아홉 가구가 집을 잃은 곳이기도 하다. 박 대표는 세 번째 동네로 이곳을 고른 이유가 있다고 했다.

"지난해 말, 2020년까지 구룡마을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세우겠다는 재개발 계획이 발표됐다. 지금의 모습은 사라질 것이다. 10년, 20년이 흘러도 이런 곳이 있었다는 기록은 남겨둘 필요가 있다. 그래서 두 달에 한 번이든, 세 달에 한 번이든 이곳이 사라질 때까지 꾸준히 기록을 하려 한다."

'엔젤스윙'에게 한국은 너무 좁다. 네팔에서 첫 비행을 시작했듯이 이들의 꿈은 늘 세계를 향해 있다. 올해 2월에는 다시 네팔을 찾았다. 이번에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를 가로지르는 바그마티 강의 극심한 수질오염 문제의 해법을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바그마티 강은 '신성한 강'으로 불리지만 빠른 도시화와 넘쳐나는 쓰레기로 몸살을 앓은 지 오래다. 엔젤스윙은 강 위로 드론을 띄워 수질 오염이 얼마나 심각한지, 폐수가 어디서 유입되고 있는지 그리고 강을 따라 자리한 빈민촌 주민들이 오염된 물로 어떤 영향을 받는지 등을 살폈다.

박원녕 대표는 '엔젤스윙'의 네팔 법인도 준비하고 있다. 개발도상국에서 청년창업가들을 발굴하고 지원하기 위해서다. 첨단기술의 혜택을 선진국, 그것도 소수의 부자들만이 누리는 현실을 넘어서려는 도전이다.

"기술력을 가진 개도국 청년들이 자국에서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길도 열어주고 싶다. 자연스레 개도국의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 네팔에 뿌리를 둔 스타트업을 만들고 이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지속가능하게 꾸려갈 계획이다."

이들은 '세계 빈민가 정밀지도(World Slum Map)'를 만들 계획도 가지고 있다. 지도 플랫폼을 열고 세계 곳곳의 뜻있는 이들을 모아 자기 나라와 개발도상국 빈민촌의 지도를 완성해가려는 거대한 프로젝트다.

언젠가 이들이 꿈꾸는 '세계 빈민가 정밀지도'는 완성될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때쯤이면 '엔젤스윙'은 또 다른 곳에서 지도의 또 다른 쓰임새를 찾아 날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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