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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는 2015년 12월 28일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열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해결 방안에 합의했다. 피해 당사자들에게 의견을 물은 적 없는 일방적인 합의였다.

일본 정부가 10억 엔을 출연해 한국 정부가 '화해치유재단'을 설립해 피해여성과 유족에게 위로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일본의 전쟁 범죄 책임을 인정하는 차원의 진정한 사과와 배상이 아닌 위로금이라는 명목과 소녀상 철거 요구는 피해자와 한국 국민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피해자의 입장을 배제한 한·일 위안부 합의는 잘못됐다."
"대한민국 국민은 한일협상을 거부한다."

졸속 합의된 "위안부 합의 무효"를 주장하며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였던 대학생 김샘에게 1년 6개월의 실형이 구형됐다.

일본군 위안부가 된 남한과 북한의 여성들
▲ 기억하겠습니다 일본군 위안부가 된 남한과 북한의 여성들
ⓒ Al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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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문제는 1991년 당사자인 김학순 할머니의 용기있는 증언으로 범죄사실이 공론화 됐다. 238명이 성노예 피해자였음을 밝혔다. 피해자들은 일본의 사과를 요구했지만 문제 해결을 보지 못한 채 하나 둘 한스러운 세상과 이별 중이다. 2017년 4월 4일 피해자 이순덕 할머니(100세)가 별세했다. 이제 피해자 238명 중 38분만이 생존해 있다.

2017년 4월 26일이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해 매주 연 정기 수요 집회가 2280회를 맞는다. 24년 5개월이 넘는 외침에도 일본은 진정한 사과를 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제 합의가 됐으니 시민들이 마음을 모아 곳곳에 세운 평화의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압박한다.

대사라는 사람은 '정권이 바뀌어도 위안부 합의 는 지켜야 한다'는 망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추악한 전쟁범죄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기억을 지우고 싶은 사람들의 싸움이 25년째 이어지고 있다.

일본은 1932년 '제 2차 상하이 사변'을 일으키며 중국에 최초의 군 위안소를 설치했다고 한다. 조선,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네덜란드. 러시아에서 강제로 끌려간 피해 여성의 규모는 8만 명에서 20만 명에 이른다고 추정된다고 한다. 위안부 강제 연행을 입증하는 문건이 공개되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은 범죄 사실을 은폐하려 문서를 대부분 파기했고 여전히 범죄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기억하겠습니다>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인 이토 다카시가 일본군 위안부가 된 남한 여성 아홉 명과 북한 여성 열한 명의 증언을 사진과 함께 기록한 다큐다.

이토 다카시는 1981년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탄 피폭 피해자 실태를 취재하다가 조선인 피폭자가 7만 명에 이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일본 사회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은 그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 여러 가지 피해를 당한 사람들을 만나 취재와 기록을 시작한다.

그는 35년 동안 아시아 태평양 각국을 돌며 800여 명에 이르는 피해자들을 취재한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도 90여명을 만나 증언을 듣고 기록했다고 한다. 피해자들을 만날 때마다 격한 분노와 마주해야 했던 그는 '과거에 일본이 저질렀던 일들을 일본인이 직접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피해자들의 분노와 슬픔을 괴롭더라도 정면에서 마주해야 한다고 결심했다'고 35년 간 기록을 이어온 심정을 술회하고 있다.

'이처럼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취재는 없었다. 나는 내가 일본인이자 남성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자문해야 했다. 몇 번이나 그만둬야겠다고 생각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90여 명의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를 취재한 데는 큰 이유가 있다. 피해 여성들에 대한 취재를 계속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일본의 중대한 국가 범죄를 분명하게 규명하는 것이 일본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필요하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인류는 과거의 교훈을 통해 계속 진보해왔다. 하지만 근대 일본은 이러한 보편적 진리를 의도적으로 외면해왔다. 많은 피해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과거의 범죄를 은폐하고 다시금 전쟁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 일본의 모습을 확실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일본인 저널리스트가 해야 하는 일은 과거에 일본의 피해를 보았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많은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라 다짐한다.' -8쪽

98주년 3.1절을 맞은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앞에서 열린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제1272차 수요집회에서 참석자들이 '2015 한일위안부협정 무효' '일본정부의 공식사죄와 법적배상' '일본군성노예제 범죄인정' '윤병세 외교부장관해임' 등을 요구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수요시위에 참석하고 있다.
▲ 수요시위 참석한 할머니들 98주년 3.1절을 맞은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앞에서 열린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제1272차 수요집회에서 참석자들이 '2015 한일위안부협정 무효' '일본정부의 공식사죄와 법적배상' '일본군성노예제 범죄인정' '윤병세 외교부장관해임' 등을 요구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수요시위에 참석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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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피해자 스무 명이 강제 연행돼 성노예로 당한 끔찍한 상황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피해자들은 밭에서 일을 하다가 강제로 끌려갔거나 공장에 취직시켜준다는 말로 속임을 당해 끌려갔다. 심미자 할머니처럼 일본에 고분고분하지 않았다고 끌려 간 경우도 있다.

'내가 여자들에게 "어떻게 해서 이곳에 오게 되었느냐"고 물은 적이 있어요. 그러면 90퍼센트 정도는 "공장에 취직시켜 준다"는 말에 속아서 끌려왔고 10퍼센트는 나처럼 학교에서 잡혀왔습니다. "일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학교에 있는 신사에 참배하지 않았다" "황국신민의 서사를 암송할 수 없다" 등의 이유로 잡혀온 여자도 있었습니다. - 심미자 피해자 증언 95쪽'

증언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잔인하고 끔찍하다. 하루에 100명 이상을 상대할 수 없다는 여성들을 나무에 매달아 칼로 목을 베어 죽이고 임신을 하면 자궁째 태아를 들어냈다고 한다.

'1939년 1월에 생리가 시작되었다. 열다섯 살이었다. 그해 3월 리경생 할머니가 임신한 것을 눈치 챈 장교는 군의관에게 이를 확인하라고 지시했다. 할머니에게 "천황에게 충성을 다하지 않는 조선인의 아이는 필요 없지만 너는 아직 쓸모가 있다"고 말했다. 임신 3개월이 되었을 때 공장 안 병원에서 자궁째로 태아를 들어내는 수술을 받았다. 군의관은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리 할머니는 "군의관이 나를 치료해준 이유는 조금이라도 빨리 병사들을 다시 상대해야 했기 때문이었을 거다"라고 말했다.' -277쪽

저자는 증언을 들으며 인간의 존엄을 짓밟은 일본의 범죄에 분노한다. '바늘로 온몸에 문신을 새기고 장난 삼아 담뱃불로 지지고 일본도로 가슴을 베고 인육을 끓인 물을 강제로 마시게 했다'는 증언이 사실임은 피해자들 상처로 알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이 일본인이고 남성임을 끊임없이 되돌아봐야만 했다고 한다.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고 조선의 수많은 여성들을 성노예로, 수많은 젊은이들을 전쟁의 총알받이로 또는 강제 노역으로 희생시킨 일본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는 왜 침묵하려 하는가. 대한민국은 이제라도 졸속 합의를 파기하고 일본에게 분명하게 범죄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만 한다.

일본은 양식있는 몇몇 사람만이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과거의 잘못을 분명하게 인정하고 사과하고 배상을 해야만 한다. 일본이 정부 차원에서 다시는 끔찍한 전쟁 범죄를 저지르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않는 한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가슴과 복부의 문신을 보고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무엇을 그린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아이가 낙서한 것 같은 모양이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내선일체를 내세우면서도 지배하고 있던 조선으로부터 수많은 젊은 여성을 납치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모두 빼앗았다. 벌레만도 못한 인간인양 짓밟았다. 정옥순 할머니의 온몸에 깊게 새겨진 문신은 수많은 이야기보다도 일본이 행한 조선 지배의 실체와 '황군'의 본질을 명확하게 증명해주고 있었다.' -287쪽

덧붙이는 글 | 기억하겠습니다/ 이토 다카시 글 .사진 인해룡. 이은 옮김/ Alma/ 22,000



기억하겠습니다 - 일본군 위안부가 된 남한과 북한의 여성들

이토 다카시 지음, 안해룡.이은 옮김, 알마(2017)


태그:#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정대협 수요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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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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