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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이삭 하나에 작은 벼꽃 100여 송이가 핀다. 벼 꽃 한 송이가 피었다 져야 쌀 한 톨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먹는 밥 한 그릇은? 벼꽃 한 다발이 피었다 진, 사랑의 결실이라 하겠다. 벼꽃이 피고 지는 걸 볼 때면 많은 생각이 스쳐간다. 언제부터인지 쌀이 흔한 세상이 되었다. 요즘은 그 소중함을 대부분 잊고 산다. 화려한 요리에 가려지고, 먹기 편한 빵에 밀려나고 있다. 이게 단순히 먹을거리 문제만으로 끝날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흔한 걸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그 대가를 우리 스스로가 고스란히 치르게 될 것이다. 뭔가가 흔하다는 건 우리와 가깝다는 것. 물이 그렇고, 공기가 그러하다. 오염되면 우리네 삶의 질이 그만큼 근본에서부터 나빠진다. 흙이, 우리가 먹는 쌀이 그렇다. 쌀에 대한 푸대접은 곧 생명에 대한 푸대접이나 다름없다.' -16~19쪽.

존재만으로 반갑고 고마운 책들이 있습니다. <밥꽃 마중-사람을 살리는 곡식꽃 채소꽃>(들녘 펴냄)도 그런 책입니다. 우리가 밥상에서 밥과 반찬으로 만나는 벼, 보리, 콩과 같은 곡식 꽃들과, 배추나 무, 시금치, 파와 같은 채소들의 꽃만을 다룬 책이기 때문입니다.

<밥꽃 마중-사람을 살리는 곡식꽃 채소꽃> 책표지.
 <밥꽃 마중-사람을 살리는 곡식꽃 채소꽃> 책표지.
ⓒ 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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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주인공 꽃들은 우리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밥꽃' 또는 '목숨꽃'이라 정의했다고 하는데요. 지난해부터 꽃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고 있는 주변인 A씨에게 간단한 설명과 함께 책의 존재를 들려줬더니 묻더군요.

"벼도 꽃이 피나요?"

벼만 꽃이 피나요? 모든 식물은 꽃을 피웁니다. 그러니 우리가 밥이나 반찬으로 먹는 모든 곡식이나 채소들도 꽃을 피우겠지요. 하지만 주변인 A씨처럼 꽃을 피운다는 것을 모르거나 생각조차 못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그저 먹거리로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고.

때문일까요. 그동안 우리들이 흔히 야생화라 부르는 들과 산의 꽃들과 나무, 그들에 대한 책은 넘쳐나지만 이 책처럼 정작 우리 몸을 살리는 곡식들의 꽃과 채소들의 꽃, 그 낱낱을 다룬 책은 아마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관심도 없고 주목받지 못하는 꽃들인 것이지요.

<밥꽃 마중>의 저자들에게 고마울 밖에요. 이런 책을 누구보다 먼저 만날 수 있음이, 나아가 이렇게라도 책의 존재를 알릴 수 있음이 행운이다 싶고요.

'(시금치를)다 먹지 않고 드문드문 남겨놓으면 4월 중순부터 꽃이 피기 시작한다. 시금치꽃은 매우 특별하다. 암·수딴그루여서다. 암시금치, 수시금치가 따로 있다는 말이다. 벼과, 콩과 같은 곡식이나 배추나 상추 같은 채소는 꽃 한 송이에 암수가 함께 있다. 또 암꽃과 수꽃이 따로 있는 오이나 호박도 한 포기 안에 함께 달리지 않는가. (…)그렇다면 암수는 언제 결정되나? 시금치를 심으면 맨 먼저 가늘고 긴 떡잎이 2장 나오고 떡잎과 90도 각도에서 본 잎이 나와 가장자라기 파여 들어가며 자라 시금치 이파리 모양이 날 때, 그때 암수가 결정된다고 한다. 암수 비율은 1:1. 우리가 시금치나물을 먹을 때 아직 성징이 겉으로 나타나지 않았지만, 분명 암·수그루인 시금치를 한데 섞어서 먹는다는 소리다.' -200~201쪽.

책이 다루는 꽃들은 60가지. 크게 곡식꽃과 채소꽃1·2, 그리고 오랫동안 먹어온 밤이나 배와 같은 과일나무 꽃, 쑥이나 참취처럼 상업을 목적으로 최근 재배하기도 하나 야생에서 채취해 먹기도 하는 들꽃, 이렇게 4부로 구성한 후 다시 같은 집안 작물들끼리 묶어 들려줍니다. 그런데 오이꽃 편에서 오이꽃과 비슷한 오이꽃수세미나 동아꽃을 따로 소개하기도 하니 훨씬 많은 꽃들을 만날 수 있답니다.

이제까지 곡식꽃과 채소꽃을 이처럼 다룬 책들이 없어서 꽃의 생김새와 생태적 특징만 알려줘도 그 자체만으로 귀하다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작물로서 인간과 함께 해온 역사와 변화,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먹을거리가 되기까지, 먹을거리로서의 가치와 활용 등 한 곡식꽃 또는 채소꽃 주변을 낱낱이 알려주고 있어서 솔직히 감탄하며 읽었습니다.

보리와 밀은 가을에 씨를 뿌리면 파릇한 잎으로 겨울을 나 비슷한 시기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때문에 농부들조차 둘의 구분이 쉽지 않다고 합니다. 그래도 엄연히 다른 식물인 만큼 분명한 차이가 있겠지요. '보리와 밀을 어떻게 구별하는가?'처럼 좀 더 깊은 이야기가 필요한 경우 '더 알아보기' 코너로 정리한 것도 이 책의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꽃봉오리부터 지기까지, 트랜스젠더 꽃으로도 불린다는 도라지꽃의 변화를 12장 사진으로 담았다.
 꽃봉오리부터 지기까지, 트랜스젠더 꽃으로도 불린다는 도라지꽃의 변화를 12장 사진으로 담았다.
ⓒ 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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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집안 식물들로 비슷한 꽃을 피우나 엄연히 다른 배추꽃, 양배추꽃, 갓꽃을 비교해 볼 수 있게 실었다. 요즘 배추들은 꽃을 피우지 않아 쉽게 볼 수 없지만 어렸을 때 보고 자랐기에 반가웠다.
 같은 집안 식물들로 비슷한 꽃을 피우나 엄연히 다른 배추꽃, 양배추꽃, 갓꽃을 비교해 볼 수 있게 실었다. 요즘 배추들은 꽃을 피우지 않아 쉽게 볼 수 없지만 어렸을 때 보고 자랐기에 반가웠다.
ⓒ 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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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돋보이는 책이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 암꽃과 수꽃을 나란히 소개함으로써 한눈으로 구분할 수 있게 하거나, 그 꽃만의 두드러진 특징을 살려 찍은 사진들을 많이 실었습니다. 그런데 이에 도라지꽃처럼 꽃의 변화가 심한 경우 꽃이 피는 것부터 수정을 끝내고 꽃이 지기까지의 과정을 한눈에 알 수 있도록 12장의 사진으로 담는다던지, 같은 듯 저마다 다른 그냥 무와 총각무 그리고 열무 꽃들을 나란히 싣는 등까지 했거든요.

어렸을 때는 더러 봤던 것 같은데 이제는 좀체 볼 수 없는 배추꽃, 꽃이 필 것이란 생각을 전혀 못했던 양배추꽃, 그리고 토란꽃이나 생강꽃처럼 원산지와 생육 조건이 맞지 않아 잘 피지 않기 때문에 귀한 꽃들도 풍성하게 만날 수 있답니다. 물론 이들이 꽃을 피우지 못하는 이유나 얼마 전까지 쉽게 볼 수 없는 꽃이었던 이유에 대해서까지 자세하게 들려주고 있어서 여간 흥미로운 것이 아닙니다.

'봄에 대파가 이리 맛있는 것은 왜일까? 다년생 풀들은 겨울을 나기 위해 뿌리를 땅속 깊이 내릴 뿐 아니라 당분 함량을 올린단다. 맹물보다 설탕물이 잘 얼지 않는 원리. 겨울난 대파 뿌리로 국물을 우려보라. 그 추운 겨울을 온몸으로 이기고 아직 사람이 뭔가를 심기도 전에 봄 햇살과 땅 힘을 쭉쭉 빨아들여 우리를 먹여 살린다. 신기하게도 파에게 사람만 끌리는 게 아닌가 보다. 만약 아까시나무꽃과 파꽃이 같이 피었다면 꿀벌은 어디에 더 많이 모일까? 한국양봉협회 자료를 보면 벌은 파꽃을 더 좋아한단다. 그 작디작은 꽃에 꿀이 들었다면 얼마나 들었을까? 예상과 달리 꽃 안에는 꿀샘이 3개나 있고, 이 꿀샘은 벌과 곤충들이 좋아하는 굴을 머금고 있단다. 꿀맛 대신 꽃내음이라도 맡아볼까? 잘 익어 달짝지근하고 향긋한 파 냄새다.' -122~123쪽.

덕분에 알게 된 것들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가을보다 비싼 대파를 보다 쉽게 먹고자 몇 년째 대파를 뽑지 않고 겨울을 나게 해 새봄에 뽑아 먹고 있습니다. 그동안 그저 겨울을 이겨내고 봄에 돋은 것이라 맛있는 것이려니, 그래서 귀하다고들 하는 것이려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맛있는 이유가 분명하게 있다는 군요.

'봄 부추는 딸네도 안 준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봄에 갓 돋아난 부추는 맛도 좋고 몸에도 좋습니다. 냉이국을 끓이면 향긋하기도 하고 달짝지근하기도 하죠. 대파처럼 뿌리로 겨울을 나며 당분을 늘린 때문이겠지요.

▲좁쌀 1000알의 무게가 3g이 채 되지 않는다. ▲옥수수수염 하나에 알갱이 하나 ▲수수꽃은 이삭 하나에 아주 많은 꽃들(1500~4000개)이 모여서 핀다. ▲메밀의 뿌리는 땅속 1m 남짓, 깊이 뻗는다. ▲대두와 함께 팥 역시 한반도가 원조다. ▲(땅콩꽃)씨방자루 끝에 녹말알갱이가 있어 이걸 통해 중력을 감지한단다. ▲보통 달래 하면 봄나물인 줄 알지만, 달래는 한해 두 번(봄, 가을) 거둘 수 있다. ▲오이는 한 포기에 암꽃과 수꽃이 따로 핀다. ▲호박의 원산지는 멕시코 인근 중남미다. 16세기 중국을 통해 들어와 '중국놈 박'을 뜻하는 호박으로 불렀다. ▲(호박) 열매를 맺을 암꽃은 놔두고 수꽃을 딴다. 호박꽃잎전, 꽃잎쌈, 꽃잎 안에 소를 넣은 튀김 역시 별미다.

율무꽃.
 율무꽃.
ⓒ 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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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집안 꽃들로 비슷하지만 엄연히 다른 그냥 무, 총각무, 열무 꽃을 비교해 볼 수 있게 한쪽에 실었다.
 같은 집안 꽃들로 비슷하지만 엄연히 다른 그냥 무, 총각무, 열무 꽃을 비교해 볼 수 있게 한쪽에 실었다.
ⓒ 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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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1996년에 전북 무주로 귀향해 농사를 짓고 있는 장영란·김광화 부부. 그동안 부부가 함께 <자연달력 제철밥상>을 비롯해 여러 권의 책을 냈다고요. 부부의 신간인 이 책 <밥꽃 마중-사람을 살리는 곡식꽃 채소꽃>은 개념 있는 농부의 책으로도 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점점 사라져가는 토종 종자에 대한 안타까움과 농촌의 현실, 이와 맞물린 우리의 먹을거리 문제에 대한 진솔한 고민들까지 충분하게 느끼며 읽은 책이기 때문입니다.

함께 알면 좋을 부분을 소개하는 것으로 함께 읽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우리를 살리는 존재에 관심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 전합니다.   

'우리가 무심코 먹는 밀은 대부분 수입 밀가루다. 수입밀가루는 여간해서는 벌레가 안 난다. 도배 풀을 쑤다 남겨둔 수입밀가루가 있었는데 10년이 넘도록 벌레 하나 안 나고 쌩쌩하다. 우리밀가루는 여름에 며칠만 상온에 두어도 당장 벌레가 난다. 어떤 게 정상일까?

미국에서 밀을 생산하는 방법은 이렇단다. 밀을 길러 거두기 7~10일 전 라운드업 제초제로 밀밭을 흠뻑 적신다. 그러면 제초제가 낱알로 흡수되어 밀을 말려 죽인다. 밀꽃이 한날에 다 피지 않고 여러 날에 걸쳐 피니 밀은 같은 시기에 익지 않는데, 라운드업을 뿌려주면 아직 익지 않은 푸른 밀을 빠르게 익게 한다. 작물이 죽으면서 열매를 맺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밀알의 수분함량을 줄이고 밀의 산출량을 높일 수 있다. 아, 거둔 뒤 유통을 위해 농약을 뿌리는 게 아니라 아예 농약에 절여진 거로구나.' - 35~37쪽.

덧붙이는 글 | <밥꽃 마중-사람을 살리는 곡식꽃 채소꽃>(장영란·김광화) | 들녘 | 2017-02-27ㅣ정가 17,000원.



밥꽃 마중 - 사람을 살리는 곡식꽃 채소꽃

장영란.김광화 지음, 들녘(2017)


태그:#밥꽃 마중, #벼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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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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