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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페즈 영묘 가는 길
 허페즈 영묘 가는 길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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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시인 허페즈 영묘는 정원이 아름답다. 정원 가운데 잔디가 자라고 그 안에 온갖 꽃들이 피어 있다. 잔디꽃 양쪽에 영묘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그 바깥으로 키 큰 침엽수와 상록수가 영묘 방문객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듯하다. 그런데 허페즈를 찾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걸까? 허페즈 영묘 첫인상이다.

단체로 온 여고생들이 입구 건물 계단에 앉아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있다. 이 건물은 지붕과 기둥만 설치해 일종의 주랑 같은 느낌을 준다. 그곳에 앉아 그들은 허페즈의 삶과 문학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일종의 문학 순례를 나온 셈이 된다. 이란 사람들에게는 문학이 더 이상 책 속에 있지 않은 모양이다. 현장을 찾아 허페즈의 숨결이라도 느끼고 싶은 걸까?

허페즈 석관 주변에 모인 사람들
 허페즈 석관 주변에 모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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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학문이라는 것이 책으로만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현장을 중시할 때 완성도와 정확도가 높아질 수 있다. 문학도 작가의 삶을 알고 이해할 때 그의 작품에 대한 이해도는 훨씬 높아질 수 있다. 나도 허페즈 문학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서 허페즈 영묘를 찾고 있다. 무덤으로 접근하자, 그곳에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무덤을 참배한다. 참배한다기보다는 즐긴다.

엄숙한 표정의 사람들을 만나기 어렵다. 허페즈의 문학이 책으로 읽으면 어려운데, 현장에서는 쉽기 때문일까? 자세히 보니 허페즈와 교감하기 위해 관을 만지는 사람이 있다. 계단에 앉아 핸드폰을 통해 허페즈의 시를 찾아보는 사람도 있다. 아이들과 함께 소풍을 나온 사람도 있다. 여기는 더 이상 참배지가 아니고 관광지다. 영묘에 어둠이 내린다.

도서관과 연구소

정원-주랑 형태의 건물 탈라르-허페즈 영묘
 정원-주랑 형태의 건물 탈라르-허페즈 영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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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모살라(Mossala) 정원에 허페즈 무덤이 만들어진지 60년쯤 지난 1452년 티무르제국 파르스 총독의 명령으로 무덤 위에 돔 형태의 구조물이 처음 만들어졌다. 그리고 정원에 연못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아바스제국시대에 두 번 수리와 보수가 있었는데, 그것이 1600년 전후와 18세기 전반이다. 잔드 왕조 카림 한 왕 통치시기인 1772/73년에는 무덤 앞에 주랑 형태의 건물인 탈라르(Talar)가 세워졌다.

이 건물의 북쪽으로 무덤 공간이 있고, 남쪽으로 오렌지 정원이 만들어졌다. 무덤 위에는 대리석 석관을 설치하고, 그곳에 허페즈의 가잘을 두 편 새겨 넣었다. 이때 허페즈 영묘가 확장되고 담장이 설치되었다. 카자르시대인 1857년 영묘에 대한 수리와 보수가 있었다. 1878년 무덤 주변에 나무 구조물이 설치되었고, 1899년에는 쇠로 된 조로아스터교 양식의 구조물이 설치되었다.

허페즈 영묘에 1901년에 세워진 철제 구조물
 허페즈 영묘에 1901년에 세워진 철제 구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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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이것을 파괴하고, 1901년에 정면 4칸 측면 3칸의 철제구조물을 만들어 세웠다. 이 구조물은 종교적인 성인의 영묘와 같은 형식이다. 1931년에는 영묘 담장의 남쪽에 문이 설치되었다. 1935년에는 파르스 교육장관 주도로 새로운 영묘 건축이 결정되고, 프랑스 고고학자 앙드레 고다르의 설계에 따라 시공이 이루어졌다. 그것이 현재 허페즈 영묘의 모습이다.

먼저 영묘 주변으로 5단의 원형 계단을 설치했다. 계단의 높이는 1m 정도다. 계단 위 허페즈의 석관 주위로 10m 높이의 기둥 8개를 세우고, 그 위로 이슬람교 터번 모양의 구리 돔을 얹었다. 돔의 안쪽으로는 여러 가지 색깔로 반짝이는 타일 조각을 붙여 빛이 나게 만들었다. 전체적으로는 단순화된 무까르나스 양식이다. 돔의 하단부 기둥머리를 받치는 벽체에는 타일장식의 가잘 2행 연구(聯句)가 새겨져 있다.

현재의 허페즈 영묘
 현재의 허페즈 영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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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묘의 북쪽으로는 카자르 시대 양식의 건물이 하나 있다. 이것은 440㎡의 면적에 만 권의 장서를 가진 허페즈 도서관 겸 연구소다. 내부는 서고와 책을 읽을 수 있는 열람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이곳은 아무나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다. 영묘의 남쪽에 있는 주랑형 건물은 16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둥머리 위 지붕 벽체에도 돔과 마찬가지로 타일장식의 가잘 2행 연구가 새겨져 있다.        

허페즈 영묘의 밤

허페즈 영묘의 구리 돔 천정
 허페즈 영묘의 구리 돔 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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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내린 밤에도 사람들은 허페즈 영묘를 떠나지 않는다. 오히려 시원한 밤의 분위기를 즐기는 것 같다. 아이들은 뛰어놀고,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은 대화한다. 어른들은 석관 주변을 돌아보거나 계단에 앉아서 휴대폰을 들여다본다. 자식을 데리고 온 부모는 아이들과 함께 놀아준다. 나는 이러한 광경을 보며, 허페즈 영묘의 특징과 의미를 하나라도 더 알아보려고 노력한다.

밤이 되어 조명을 하니 영묘 구리 돔 천정의 타일 장식이 더 환상적으로 보인다. 파랑색과 에메랄드색을 기본 톤으로 붉은색 계열을 가미했는데, 도안이나 색감이 정말 은은하면서도 아름답다. 서양 사람들이 이런 문양을 보고 아라베스크라는 말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아라베스크는 원래 아라비아 사람들이 사용하는 장식예술을 의미하지만, 이제는 그 의미가 기하학적인, 종교적인, 신비적인, 환상적임으로까지 확장되었다.

허페즈를 찾은 여대생들
 허페즈를 찾은 여대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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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인, 그들은 이슬람교를 받아들임으로써 종교적으로 차원을 높일 수 있었고, 아라베스크를 받아들임으로써 예술적으로 다양성과 풍성함을 얻을 수 있었다. 허페즈 영묘가 조로아스터교 양식의 철제구조물에서 아라비아 양식의 돔형 구조물로 변한 것에서도 그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꾸란을 지나치게 해석하는 근본주의로 인해 오히려 여성의 활동이 제한되는 문제점도 있었다.

그런데 이곳의 여성들에게서는 그런 면을 전혀 찾아볼 수 없으니 어찌 된 일인가? 히잡을 썼거나 차도르를 입었거나 그녀들은 밝고 자유분방하게 행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허페즈 영묘에는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더 많았다. 이것은 단순히 여성들이 문학에 더 관심이 많기 때문만도 아닌 것 같았다. 이란에서 여성들의 활동공간이 그만큼 더 넓어지고 있다는 증거로 보였다. 이란에도 아자디(자유)가 확산되고 있는 분위기다.   

장미꽃과 포도주 그리고 나이팅게일을 찾아

사파비제국의 체헬소툰 궁전 벽화: 포도주 마시기
 사파비제국의 체헬소툰 궁전 벽화: 포도주 마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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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제 허페즈 시의 소재와 모티브인 사랑, 포도주, 나이팅게일, 장미/튤립 등에 대해 생각해 보자. 연인, 술, 꽃은 허페즈 시뿐 아니라 모든 문학에서 가장 자주 다루어지는 소재다, 그것을 허페즈는 직설적으로 그러나 낭만적으로 표현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시는 독일 낭만주의자들에 의해 즐겨 번역되고 모방되었을 뿐 아니라 음악으로 만들어졌다.

가슴엔 장미꽃을, 손엔 포도주잔을 들고
연인을 찾아가세.
그땐 황제도 나의 노예
등불을 들고 가게나, 등불을 들고.

오늘 모임에서
연인은 보름달처럼 빛나네.
우리들 규범에 따라 포도주가 허용되었어,
그러니 당신의 아름다운 얼굴이 없으면 되겠어.

류트 소리가 내 귀를 즐겁게 하고
눈은 입술에,
술잔에 머문다네.
달콤한 빵에 대해 내게 말하지 마.

달콤한 입술이
내가 소망하는 최고의 것이야.
연인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네.

마시는 즐거움을 누리면서
그녀를 바라볼 일이야.
연인과 포도주 없이 살지 마라.
장미꽃 피는 시절 축제장에서 허페즈가.

튤립 조형물
 튤립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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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갛게 피어오르는 튤립을 보고는 사랑의 불꽃을 연상한다. 엘리어트(T. S. Eliot)의 '죽음의 땅에서 라일락은 피어나고'를 훨씬 앞서는 '무덤에서 피어나는 빨간 튤립'이다. 꽃을 피우는 그 장엄하고 경이로운 일은, 살면서 불태웠던 사랑의 불꽃이다. 이를 통해 허페즈는 사랑의 불꽃이 영원함을 말하고 있다. 사랑은 결코 죽지 않는다. 튤립을 통해 영원히 반복되고 또 이 세상에 알려지기 때문이다.

언젠가 내 무덤에서 빨간 튤립이 피어나겠지,
불꽃처럼 빨간 튤립이.
이처럼 경이로운 일에 놀라지 말게나,
얼마나 장엄한 일인가.

생각해 보게 생각해 보게,
그 강렬한 피어오름을, 너에게 바쳐진 사랑의 불꽃을.
살면서 불태웠던 사랑의 불꽃이
죽어서도 여전히 피어오르는 것이라네.

카펫에 수놓아진 나이팅게일
 카펫에 수놓아진 나이팅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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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팅게일은 꽃과 새라는 연인의 상징으로 페르시아 문학에서 즐겨 표현되었다. 꽃 중에서도 장미꽃은 그 아름다움으로 인해 이상적인 여인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밤꾀꼬리 나이팅게일은 사랑을 찾아 나선 사람 또는 시인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나이팅게일은 연인을 찾아 그 사랑이 이루어질 때까지 끊임없이 노래한다. 그러나 반대로 나이팅게일이 울면 장미꽃이 피어나기도 한다. 또 가끔 이들은 갈등을 겪기도 한다.

밤꾀꼬리여, 새벽에 장미꽃을 만났으니 기쁘겠지
꽃밭은 요염한 지저귐으로 가득하다.

밤꾀꼬리가 곱디 고운 장미꽃에 부리를 대고 있네.
꽃에서 즐겁게 흥얼거리며 울고 있구나.

밤꾀꼬리와 장미
 밤꾀꼬리와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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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 가득한 꽃밭에
밤꾀꼬리 울면 장미꽃이 피어난다.

새벽에 밤꾀꼬리 깨어나 장미에게 말했다네.
"애교 떨지 마, 이 정원에는 당신 같은 꽃들이 수 없이 많아."
장미꽃은 웃으며 대답했다네.
"당신의 말이 옳을 수도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은 연인에게 그렇게 심한 말을 하지 않아."

덧붙이는 글 | 허페즈의 시 번역은 영어와 독일어 번역본을 토대로 했다. 그리고 이란 문학 전공자인 신규섭 박사의 <허페즈 시선>(명지출판사, 2002)을 참고했다.



태그:#허페즈 영묘, #석관과 구리 돔, #장미와 포도주, #사랑, #나이팅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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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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