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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2016년 20, 30대 청년 6명은 시력을 잃었습니다. 파견노동자로 스마트폰 부품 공장에서 일하면서 만졌던 메탄올이 실명을 불러올 줄은 몰랐습니다. '노동건강연대'와 <오마이뉴스>는 실명 청년들에게 닥친 비극과 현재의 삶을 기록하고, 누가 이들의 눈을 멀게 했는지 파헤칩니다. 동시에 연재되는 다음 스토리펀딩에서 시력을 잃은 청년들을 후원할 수 있습니다. - 기자 주

빨간 디올 립스틱을 입술에 발랐다. 거울은 없었고, 눈은 허공을 향했다. 다소 해쓱했던 스물아홉 이진희씨의 입술에 생기가 돌았다.
 빨간 디올 립스틱을 입술에 발랐다. 거울은 없었고, 눈은 허공을 향했다. 다소 해쓱했던 스물아홉 이진희씨의 입술에 생기가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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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디올 립스틱을 입술에 발랐다. 거울은 없었고, 눈은 허공을 향했다. 다소 해쓱했던 스물아홉 이진희씨의 입술에 생기가 돌았다. 새하얀 블라우스는 진희씨의 낯빛을 환하게 만들었다.

진희씨는 한 달에 두 번 외박을 나갈 수 있다. 기자가 근로복지공단 창원병원을 찾은 15일이 그날이었다.

2주일 내내 하루 24시간 붙어 있는 간병인 정옥 이모와 헤어진 뒤, 엄마아빠와 만났다. 진희씨네는 차로 50분을 달려, 경남 창녕군 남지읍 낙동강변에 닿았다.

드넓은 강변에 샛노란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시력을 완전히 잃고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는 진희씨가 엄마의 도움으로 유채꽃밭을 걸었다. 기자는 내심 봄날의 풍경을 즐길 수 없는 진희씨가 안타까웠다. 그런 생각도 잠시, 진희씨가 기자의 편견을 깼다.

"저도 다치기 전에 풍경을 보면 시각이 먼저였어요. '예쁘다' 이렇게요. 근데 다치고 나서는, 바람을 타고 오는 꽃향기를 맡을 수 있게 됐어요. 벌 소리와 새소리도 듣고요."

꿀을 따는 벌의 모습이 기자의 눈에 들어왔다. "후각과 청각이 발달해, 초능력을 얻었네요." 기자의 달뜬 반응에 진희씨가 발랄한 목소리로 받았다. "저기는 비료 냄새가 많이 나더라고요. 멀리서 쌍욕 하는 소리도 들려요. 재밌어요." 서로 킥킥 웃었다.

4월 15일 이진희씨가 경남 창녕군 남지읍 유채꽃밭을 걷고 있다.
 4월 15일 이진희씨가 경남 창녕군 남지읍 유채꽃밭을 걷고 있다.
ⓒ 민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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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진희씨가 웃음을 되찾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이미 1년 2개월 동안 병원 밥을 먹었지만, 퇴원일은 기약할 수 없다.

진희씨는 어떠한 빛도 감지할 수 없는 시각장애 1급, 뇌를 다쳐 팔다리를 자유롭게 쓸 수 없는 뇌경색 장애 4급 판정을 받았다. 기억력, 인지능력, 체면을 차리는 능력도 떨어졌다. 장애와 별개로, 신경과·정신건강의학과·산부인과·순환기내과·재활의학과 등에서 정기적인 치료를 받고 있다.

전날 병실에서 그녀와 마주 앉았다. 진희씨는 느리고 차분한 목소리로 그녀가 겪은 일을 전했다. 장학생으로 국립대에 입학했던 그녀가 왜 공장에서 일하다 쓰러져야 했는지를.

일한 지 4일째, 깨어나지 못했다

그녀는 2006년 대학에 들어간 뒤, 김치공장, 편의점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몇 년 후 아버지가 일을 하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됐다. 진희씨는 창원을 떠나 친구가 있는 인천으로 향했다. 낮에는 사회복지사 공부를 하고, 밤에는 일했다.

파견업체의 문을 두드렸다. 드림아웃소싱이라는 이름의 이 업체는 진희씨를 삼성전자·LG전자 스마트폰 부품을 만드는 BK테크로 보냈다. 2016년 2월 11일의 일이다.

진희씨는 밤 9시부터 이튿날 오전 9시까지 12시간 밤샘근무를 했다. 그가 한 일은 단순 반복 작업이었다.

① 컴퓨터수치제어(CNC) 공작기계 내부 틀에 스마트폰 몸체 네댓 개를 끼운 후 스타트 버튼을 누른다.
② 절삭 공구가 몸체를 깎는다. 이 과정에서 매끄러운 가공을 위해 메틸알코올(메탄올)이 뿜어져 나온다.
③ 15초 후 작업이 끝나면, 몸체를 꺼내 에어건으로 메탄올을 날린다.

진희씨 눈에 당시 작업 환경이 그려졌다.

"관리자가 작업시간을 줄이라며 (공작기계) 문을 닫지 말라고 했어요. (공장 쪽은) 환기시설을 마련하지 않았고, 마스크와 목장갑만 주고 일하라고 했어요. 어느 날에는 메탄올이 담긴 통을 옥상에 옮겨놓았더라고요. 고용노동부의 점검을 피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참 원망스러워요."

BK테크가 있었던 인천 남동공단 공장의 현재 모습.
 BK테크가 있었던 인천 남동공단 공장의 현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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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한 지 4일째인 16일 밤 출근길, 스마트폰 화면이 보이지 않았다. 정신이 아득히 흐려졌다. 출근했지만 일할 수 없었다. 자정께 조퇴해 집으로 향했다.

17일 진희씨는 깨어나지 못했다. 그날 밤, 같이 사는 친구가 119를 불렀고 진희씨는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이튿날 새벽 병원은 진희씨 부모님에게 전화했다. 아버지 이씨의 말이다.

"애가 중환자실에 올라간다고 했어요. 핏속에 불순물이 많아 투석해야 하는데, 목에 투석장치 꼽는다고 하더라고요.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몰랐고, 멍했어요. 첫차 타고 올라갔어요. 몸에 온갖 장치를 꼽고 식물인간처럼 누워 있더라고요. 이유를 물어봐도 아는 사람이 없었고, 저희 부부는 울기만 했어요."

아버지의 눈물 "이제 서른인데..."

병원에서 각종 검사를 한 결과, 뇌출혈과 뇌경색에 따른 뇌손상이 심각했다. 곧 그 원인이 메탄올이라는 것도 확인됐다. 고농도의 메탄올은 독성물질로, 인간의 중추신경계를 공격한다. 의사는 진희씨 가족에게 말했다.

"깨어나긴 할 텐데, 심각한 장애가 남을 겁니다."

진희씨는 보름 뒤에 깨어났다.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었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말은 "으으으으" 뿐이었다.

더군다나 진희씨의 다친 뇌는 몸에 이상한 명령을 내렸다. 진희씨는 갈증이 난다며 수액 줄을 뜯어 수액을 마셨다. 병원에서 진희씨의 손발을 침대에 붕대로 묶어 놓았지만, 그녀는 입으로 붕대를 뜯어버렸다. 진희씨는 그때를 생각하면 식은땀이 흐른다. "생각해보니, 미친 짓이었어요."

시간이 지나자, 다행히 뇌는 빠르게 아물었고, 진희씨의 마비 증세는 조금씩 완화됐다. 진희씨는 말을 되찾은 뒤 소리 내어 말했다. "앞이 보이지 않아요."

진희씨의 눈을 들여다본 안과 의사는 말했다. "빛을 느끼지 못합니다. 처방할 수 있는 약이 없습니다. 경과를 지켜봅시다." 서울의 큰 병원 안과를 찾았지만, 답은 같았다. 진희씨는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

"눈보다는 걷는 게 먼저였어요. 걸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엄청 노력을 했어요. 눈은 차차 좋아질 거라 생각했어요."

재활 치료를 꾸준히 이어나갔다. 조금씩 진희씨의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력은 돌아오지 않았다. 눈물로 지새운 수많은 밤을 보낸 후, 진희씨는 현실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딸의 눈을 포기할 수 없다.

"저는 한 줄기 희망을 가지고 살고 있어요. 그거 없으면 삶이 지탱될 수 없거든요. 희망이 없으면 어떻게 살라고. 애 나이 이제 서른인데."

가해자의 죗값

이진희씨가 4월 14일 근로복지공단 창원병원 재활치료실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
 이진희씨가 4월 14일 근로복지공단 창원병원 재활치료실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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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가 힘겨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을 때, 가해자는 어떤 죗값을 치렀을까.

파견업체 드림아웃소싱은 진희씨 등 많은 사람들을 불법으로 파견한 죗값을 이미 치렀다. 이곳 대표 원아무개씨 본인과 회사에 부과된 벌금은 모두 합쳐 600만 원이었다. 원씨 쪽은 처음에 진희씨에게 병원비와 진료비 수백만 원을 지원했지만, 몇 개월 뒤 돈도 연락도 끊었다. 진희씨 아버지는 분통을 터트렸다.

"괘씸함이야 말도 못 하죠. 사람이 최소한 도의적 책임은 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불법 파견이 없었다면, 진희씨는 다치지 않았을 것이다. 기자는 파견업체에서 이진희씨를 담당했던 노아무개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진희씨 얘기를 꺼내자 "아, 산재보험으로 큰돈 받으신 분"이라는 말을 늘어놓았다.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 제조업 파견이 불법인지 아셨나요?
"정확히 불법인지 합법인지 제가 잘... 피해자 쪽도 속상하겠지만, 저희도 속상합니다. 사고 때문에 회사가 어려워져서 폐업했고 직장인들이 직장을 잃은 것 아닙니까."

전화를 끊고 구직 사이트를 살펴보니, 노 부장은 다른 파견회사 소속으로 최저시급 파견노동자를 모집하고 있었다.

BK테크 사업주 안아무개씨는 18일 진희씨 아버지를 찾았다. 보상해줄 재산이 없다면서 지금껏 한 푼도 내놓지 않은 그였다. 그는 재산이 많은 동업자에게 돈을 받아내겠다면서, 조심스럽게 형사사건 합의 얘기를 꺼냈다. 

안씨는 공장에서 불법 파견으로 받은 청년들을 쓰고, 메탄올 사용에 따른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아 진희씨와 또 다른 피해자 전정훈씨의 시력을 앗아간 죄로 재판을 받고 있다. 진희씨의 아버지는 안씨에게 "그렇게는 몬합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지금까지 어떠한 성의도 보여주지 않은 사람한테 왜 합의서를 써주고 해요? 지금 우리가 어렵다고 하니 그렇게 말하는 것 같은데, 그런 말을 누가 못합니까. 나도 그런 말을 할 수는 있소!"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이겨도...

진희씨의 부모님은 몸이 좋지 않아, 일을 할 수 없다. 기초생활수급자다. 그녀의 두 동생도 병원 치료와 간병으로 일을 못하고 있다. 진희씨가 산재보험으로 받는 휴업급여와 부모님의 기초생활수급비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산재보험 급여를 웃도는 간병비, 비급여처방, 병원 생활비 등을 빼고 나면 남는 돈은 많지 않다.

진희씨네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 변호사들의 도움으로 드림아웃소싱, BK테크, 대한민국을 상대로 11억 원가량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문제는 승소해도 손해배상을 받을 길이 없다는 데에 있다. 두 업체는 폐업했고, 대표로 있던 사람들의 재산은 거의 없다.

진희씨를 돕고 있는 김종보 변호사(법무법인 휴먼)가 말했다.

"파견·사용사업주에 가압류를 걸었는데, 돈 될 만한 게 없었어요. 미리 재산을 빼돌렸을 가능성이 높은 것 같아요. 그런 재산을 찾아야 하는데, 쉽지 않네요."

시력을 잃고 초능력을 얻은 그녀

이진히씨는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으면서 눈물을 쏟았다.
 이진히씨는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으면서 눈물을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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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현실이 진희씨를 억누른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때도 많다. 하지만 진희씨가 있는 병실과 재활치료실에서는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기자도 많이 웃었다.

"처음에는 '왜 하필 나한테...' 이런 생각을 했죠. 근데 이미 벌어진 일을 어떻게 해요.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면, 뭐 어쩌겠어요. 그냥 빨리 잊고, 살 길을 찾아야지. 저는 생각이 좀 긍정적이라서."

15일 꽃놀이에 앞서 병실을 찾았을 때 이야기꽃이 피었다. 주제는 진희씨의 초능력이었다. 진희씨가 이모라 부르며 따르는 간병인들이 진희씨의 초능력을 하나씩 풀어놓았다. 

선희 이모 : "진희는 멀리에서 걸어오는 사람이 누구인지 다 알아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진희가 누가 온다고 하면 진짜로 그 사람이 와요. 하하. 또 손으로 만진다든지, 느낌만 줘도 누구인지 다 맞춰요. 천재예요. 천재."
정옥 이모 : "여자 같은 경우는 화장품 냄새로도 맞추더라고. 놀랄 때가 많아요."

진희씨에게 물었더니, "신발이 다르니까 걷는 것도 다르니까, 알 수 있죠"라는 답이 돌아왔다. 시간에 대한 기억력도 이모들을 놀라게 한다. 시계를 볼 수 없는 진희씨는 반복되는 일상을 기억해 시간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다.

선희 이모 : "아침에 수간호사 쌤이 회진할 때 방을 깨끗이 해야 해요. 다들 드라마 보고 있는데, 진희는 하나도 안 까먹고 얘길 해요."
진희씨 : "아침에 드라마 할 시간쯤 되면, 수간호사 쌤이 와요. 언제 한번 수간호사 쌤이 선희 이모한테 행주를 치우라고 했거든요. 그래서 제가 그다음 날 선희 이모한테 '행주!'라고 했더니, '수건이다'라고 하더라고요. 하하."

진희씨는 재활치료를 함께 하는 환자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용기를 얻는다. 또한 메탄올로 시력을 잃은 다른 피해자들의 존재는 진희씨에게 큰 힘이 된다. 지난해 3월 진희씨가 부천의 대학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동갑내기 피해자 현순씨가 찾아왔다. 창밖엔 벚꽃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진희씨는 그날의 대화를 옮겼다.

"현순이가 용기를 많이 주고 갔어요. 자기는 약 먹고 치료받고 많이 나았으니까, 나도 나을 수 있다고... 밖에 벚꽃이 많이 피었으니까 보러 가자고 했어요. 어떻게 갈 거냐고 하니까 자기 있으니까 걱정 말라고. (웃음) 나도 치료받으면 보일 수 있겠지 생각했죠."

그 뒤 1년이 흘렀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내년에는 그 약속이 지켜지겠죠?" 기자의 성급한 질문에, 진희씨가 답했다.

"그러게요. 눈이 계속 안 보이면, 조금이라도 보이는 현순이가 데려가겠죠. 안 그렇겠어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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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다치기 전에 풍경을 보면 시각이 먼저였어요. '예쁘다' 이렇게요. 근데 다치고 나서는, 바람을 타고 오는 꽃향기를 맡을 수 있게 됐어요. 벌 소리와 새소리도 듣고요."
 "저도 다치기 전에 풍경을 보면 시각이 먼저였어요. '예쁘다' 이렇게요. 근데 다치고 나서는, 바람을 타고 오는 꽃향기를 맡을 수 있게 됐어요. 벌 소리와 새소리도 듣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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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누가 청년의 눈을 멀게 했나, #메탄올, #파견노동자,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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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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