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떠난 뒤, 세 남매와 할머니가 함께 살게 된다.

엄마가 떠난 뒤, 세 남매와 할머니가 함께 살게 된다. ⓒ (주) 영화사조제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 영화를 보고 있으면 지금 이대로의 나여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무 목적 없이 핀란드에 찾아가 서점을 기웃거리며 시간을 보내도, 큰 욕심 없이 이국 마을에 나만의 식당을 열었는데 파리만 날려도, 그것에 조급한 마음이 들지 않아도, 뚜렷이 하는 일 없이 바닷가 민박집에 묶으며 사색에 잠겨도, 매일 똑같은 옷만 입어도, 희한한 천으로 만든 치마를 부적처럼 입고 다녀도, 괜찮을 것 같다. 

그래서 나오코 사단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허점 많은 나도 그들 이야기 속 일원으로 받아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내 내면의 모자람과 외면의 허술함이 그들 인원이 되는 하나의 조건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완벽하고 잘난 이들은 지루하고 따분해할 것이 분명한 이 집단의 일원이 된다는 상상은 마치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는 것처럼 편안한 기분을 불러온다.

하지만 단지 다소 부족하다고 하여 그들 일원이 될 수는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내려 놓아야 하지 않을까. 게걸스레 음식을 해치우듯, 조급하게 시간을 보내는 생활을 내려놓는 것. 일상을 배제한 채 달려가는 욕망도, 타인의 눈에 잘 보이려는 욕망도, 지금보다 더 나은 내가 되려는 욕망도 내려놓는 것. 대신 정갈하게 차려진 음식 앞에서 천천히 젓가락을 들어 음식을 입에 넣고, 그 맛을 음미하며, 간간히 시원한 맥주를 곁들이는 일상. 느리게, 소박하게 흘러가는 단조로운 일상. 잠깐의 휴식이 아닌 이러한 일상을 즐기는 능력이 필요할 것 같다.

받아들인다는 것의 의미

 성질내며 2층으로 올라가는 레이를 바라보는 가족.

성질내며 2층으로 올라가는 레이를 바라보는 가족. ⓒ (주) 영화사조제


나오코 감독의 다른 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토일렛>에서도 장소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카메라는 장소를 부각하기보다 그 장소에 놓인 사람들을 부각한다.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대단할 것 없는 일상을 보내며 소소한 관계를 이어가고, 그 관계를 통해 마음의 평안을 되찾거나, 행복해한다. 여기서 관계를 맺는 사람들은 피로 맺어진 가족일 필요는 없다. '물보다 진한 건 피'라는 재미없는 말도 있지만, 피보다 더 중요한 건 서로를 향한 '느슨한' 애정이자 관심이다. 그리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레이는 가족이 싫었다. 골치 아프고 귀찮았다. 4년째 공황 장애를 앓으며 집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가지 않는 형과 제멋대로 굴기만 하는 동생. 거기다 엄마가 일본에서 모셔온 (아마도) 엄마의 엄마가 분명한 그 할머니한테도 신경 쓰기 싫었다. 레이에게 "인생은 지루한 일상을 견디는 것의 연속"일뿐이며 어차피 "오늘과 내일은 같을 것"이므로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죽는다. 형과 동생은 레이더러 집에 들어와 함께 살아 달라고 말한다. 말도 안 된다며 확실히 선을 그었건만, 혼자 살던 집에 불이 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가족과 함께 살게 된 레이. '역시' 가족은 귀찮기만 하다. 무엇보다 신경 쓰이는 건 엄마의 엄마. 영어는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화장실에서 나올 때마다 한숨만 푹푹 쉬어대는 그녀. 그런 할머니를 보며 레이는 생각한다. '저 할머니가 정말 내 할머니일까? 피도 안 섞였을지도 모르는데 우리가 같이 살 필요가 있을까?'

 이상한 할머니는 도통 먹지 않는다. 그것이 신경쓰이는 세 남매.

이상한 할머니는 도통 먹지 않는다. 그것이 신경쓰이는 세 남매. ⓒ (주) 영화사조제


영화는 가족을 못 마땅해하던 레이가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바늘로 찌르면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던 레이는 서서히 마음을 연다. 영화는 이 과정을 서두르지 않는다. 극적인 장치를 제공하지도 않는다. 그저 따뜻한 만두를 나눠 먹고 같이 맥주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레이는 달라졌다. 그리고 영화의 반전에 해당하는 에피소드에서 레이는 깨닫는다. 할머니를 받아줄까, 받아주지 말까 고민하던 레이가 정작 가족에게 받아들여지고 있었다는 걸. 가족은 피로 맺어지는 관계가 아니라 시간을 두고 너그럽게 지켜봐 주는 애정으로 맺어지는 관계라는 걸. 

할머니 역은 모타이 마사코가 맡았다. 고바야시 사토미와 더불어 나오코 사단의 대표 배우. 읽기 어려운 표정을 지은 채 작고 아담한 몸으로 집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것만으로도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온다. 일본식 표현으로 '츤데레' 스타일의 연기가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인데, 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엄하거나 무서운 표정 속에 따뜻한 마음이 숨어 있기에 할머니가 마음을 표현하면 파장이 엄청나다. 영화의 제목이 <토일렛>인 것도 할머니와 관련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황보름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토일렛 오기가미 나오코 모타이 마사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