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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선후보가 17일 오전 대구 칠성시장을 방문해 상인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선후보가 17일 오전 대구 칠성시장을 방문해 상인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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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는 글을 몰라요. 무지렁이처럼 살아도 자식 사랑하고 남편 사랑하고 그렇게 헌신적으로 살았습니다. 내 인생의 멘토가 내 엄마입니다. 내 인생의 마지막 꿈이 대통령이 돼서 내 엄마처럼 착한 사람 한 번 잘 살게 해줘보자, 그게 내 마지막 꿈이었습니다."

지난달 31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최종 선출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가 낭독한 수락 연설문의 백미는 단연 '엄마'를 강조한 말이었다. 가난한 집안 살림에도 강한 모성애로 자식을 기르며 희생한 홍 후보의 엄마. 그는 이 자리에서 엄마를 이순신 장군, 세종대왕보다 더 존경한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을 현장에서 들으면서 최근 인기를 끈 한 책이 떠올랐다.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 36세, 아이 엄마, 경력 단절 여성. 한국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프로필을 가진 주인공이 그의 엄마와 할머니 세대의 삶을 반추하며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좌절과 포기를 겪는 내용이다.

홍준표의 엄마와 <82년생 김지영>의 엄마

홍 후보의 말 속에서 머릿속을 스친 인물은 소설 속 김지영의 '엄마'였다. '오빠들'을 학교보내기 위해 교사의 꿈을 포기한 채 일터로 나갔고, 결혼한 뒤에는 보육과 가사 노동을 전담하며 남편을 보조해온 김지영의 엄마. 여성을 더 이상 가부장제의 테두리 안에서 고통 받게 하지 말자는 것이 소설의 메시지였다.

"우리 엄마 같은 사람들이 잘 살게 하겠다"는 홍 후보의 공언도 이와 닿아 있을까. 잠깐의 기대는 쉽게 무너졌다. 지난 17일 YTN <대선 안드로메다> 인터뷰에서 "남자가 하는 일과 여자가 하는 일은 따로 있다"며 "(여자가 하는 일은) 하늘이 정해 놨다"고 말한 최근 일 때문이다.

'여자의 일',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여실히 드러낸 말이었다. 맞벌이 가구가 늘어나고 있는 한국 사회 현실과도 맞지 않는 발언이다. 더군다나 통계청이 지난해 발표한 '2016 일·가정양립지표'를 보면, 맞벌이 가구 여성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 시간은 3시간 20분, 남성은 40분에 그쳤다. 설거지를 '여자의 일'로 거부할 시대는 이미 지난 것이다.

맞벌이를 하지 않는 "하우스와이프(전업주부) 개념이었다"는 이후 해명도 구차했다. 가사 노동은 일반 노동과 달리 노동 시간과 여가가 분리돼 있지 않아 종일 매달려야하는, 기본적으로 '함께 해야 하는 일'이다. '밖에서 돈 벌어 오면 집에서 살림하라'는 가부장적 인식으로는 여성 유권자의 마음을 잡을 수 없다.

'여자의 일'은 따로 없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선후보가 17일 오전 대구 칠성시장을 방문해 상인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선후보가 17일 오전 대구 칠성시장을 방문해 상인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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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성 역할 고정 관념은 과거 발언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저출산의 원인을 여성들의 '지위 상승'으로 지목하기도 했고, 여성 비하적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일하기 싫으면 집에 가서 애나 보든지 배지 떼라." 2009년 4월 21일 원내대표 시절 추미애 당시 환경노동위원장에게

"(우리 당) 전여옥 의원이 이대거든, 전여옥한테 내가 '이대 계집애들 싫어한다' 이런다고 한다." 2011년 10월 31일 대학생들과 만나

"출산율이 낮은 것은 여자들의 지위가 높아지고 독립적인 생계수단이 생기고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결혼 안 해도 되고, 자녀 없이도 살 수 있는 분위기가 됐기 때문이다." 2014년 11월 6일 TV조선 <뉴스판> 출연 당시

특히 추미애 당시 환노위원장에게 던진 '애나 보든지' 발언은 여성단체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홍 원내대표는)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가치와 상식, 변화하는 시대의 정신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여덟 해 전 나온 이 비판은 19대 대선 주자로 나선 2017년의 홍준표 후보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홍 후보가 정말 '엄마 같은 사람도 잘 사는 세상'을 꿈꾼다면, 가부장제 아래서 여성들이 겪고 있는 불편과 고통을 반복하지 않도록 관련 공약과 그 구체적인 실행 방법을 제시해야한다. '모성애'를 강조하며 성 역할을 고정하는 것은 그 방법이 아니다. '설거지 발언'으로 다시 찾아본 <82년생 김지영>에는 김지영의 엄마가 그의 남편에게 하는 말이 나온다.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니까 혼자 이 집안 떠메고 있는 것처럼 앓는 소리 좀 하지 마. 그러라고 한 사람도 없고, 솔직히, 그러고 있지도 않잖아."


태그:#홍준표, #자유한국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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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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