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20만 원 vs. 산드라"

투표용지가 한 장 앞에 있다. 용지를 펴면 두 가지 선택지가 나온다. '산드라' 대 '120만 원'. 산드라는 얼마 후 복직이 예정된 직장 동료이고, 120만 원은 산드라의 복직을 거부하면 받을 수 있는 보너스다. 16명이 투표해 14명이 120만 원을 선택했다.

결국, 산드라는 복직을 못 하게 되었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우리

 1000유로와 동료의 복직. 직원들은 너무도 쉽게, 동료를 포기했다.

1000유로와 동료의 복직. 직원들은 너무도 쉽게, 동료를 포기했다. ⓒ 그린나래미디어(주)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에서 나오는 1000유로는 한국 돈으로 120만 원 정도. 120만 원은 결코 적은 돈이라고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많다고 할 수도 없는 돈이다. 더군다나 한 사람의 생계 대신 선택하기에는 터무니없이 '고작'인 돈. 그래서 1000만 원도 아니고 1억도 아닌 120만 원의 의미는 두 가지이다. 그 자체로 돈과 인간의 대결이라는 것과, 그만큼 사람들이 타인의 삶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

120만 원으로는 그 어떤 것도 영구적으로 회복할 수 없으며, 아이들의 학비를 몇 개월 메울 수 있을 뿐이다. 그래 봤자 한두 달 조금 여유로워지는 것뿐이며, 미뤄두었던 집수리를 하거나, 기분 내어 놀 수 있는 정도다. 이 정도의 가치가 산드라의 가치보다 높다고 사람들은 판단했다. 120만 원이 '돈'이어서 그렇고, 산드라가 '타인'이어서 그렇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이용하는 건, 악덕 사장이다. 산드라가 휴직을 내자 16명만으로도 충분히 '효율'을 끌어낼 수 있다는 걸 사장은 알게 된다. 이에 투표라는 묘수를 짜내고 반장을 이용해 사람들을 꼬인다. 설득도 하고, 회유도 하고, 몇몇 계약직 지원에게는 '보너스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 좋을 줄 알아라'하며 협박도 하면서.

산드라가 동료 직원들을 한 명, 한 명 찾아다니며 '지금 이 상황은 내 탓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유다. 애초에 산드라와 돈을 같은 선상에 놓고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 건 사장이었다. 산드라가 복직하여 사람들이 보너스를 못 받게 되더라도 그건 산드라 잘못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 구조에서는 이래도 된다고 터득한, 사장 때문이다. 그런데도 산드라는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을 갈등으로 밀어 넣는 것에 죄책감을 느낀다.

마리옹 코티야르가 연기하는 산드라는 우울증으로 휴직한 상태였다. 차도가 보여 곧 복직하려던 참이었는데 어느 날 친한 동료 줄리엣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온다. 사장이 자신과 보너스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고, 사람들은 보너스는 선택했다는 말. 충격받은 산드라는 회사에 찾아가 사장과 협상을 벌인다. 사장은 다음 주 월요일에 재투표를 하겠다고 약속한다.

다시 연결되었다는 것에 희망이

 월요일, 재투표를 위해 모딘 공장 직원들.

월요일, 재투표를 위해 모딘 공장 직원들. ⓒ 그린나래미디어(주)


산드라에게는 이틀의 시간이 주어졌다. 주말을 이용해 120만 원을 선택한 동료들을 설득해야 한다. 마치 거지가 된 것만 같은 기분과 생계를 위해 해야만 하는 투쟁 사이에서 산드라는 울며 절망한다. 하지만 주저앉는 대신 우울증약으로 버텨가며 동료들을 만나러 다닌다. 동료들의 반응은 이렇게 모였다.

"네가 복직하는 걸 반대하는 건 아니야. 하지만 보너스가 필요해."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긴 하지만 산드라는 "나를 위해 너의 돈을 포기해줘"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나를 위해 너의 돈을 포기해줘"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해 너의 돈을 포기해줘"가 된다. 사장은 효율을 위해서라면 또다시 한 명의 직원을 내쫓을 수 있고, 그때 그 한 명은 '아무나'가 될 수 있다. 어떤 법적 절차도 거치지 않고 투표로 모든 걸 해결하며 마치 공평한 처사라는 듯 행세하는 사장의 다음 표적은 먼저 계약직 직원이겠지만, 그 후엔 정규직 직원일 것이다. 연대하지 않은 개인은 결국 언젠가는 내쳐질 것이다.

월요일 아침에 재투표가 시행됐다. 결과를 받아들이며 회사를 나온 산드라는 휴대폰 건너 남편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 잘 싸웠지? 나 행복해."

산드라가 행복한 원인은 투쟁의 결과에 있지 않고, 투쟁의 과정에 있다. 원제가 '1박 2일'인 건 바로 이 이틀간의 과정에 의미를 두기 때문이다. 포기하지 않고 투쟁했다는 사실과, 이 투쟁이 '나'와 '타인'을 다시 연결했다는 사실. 첫 투표에서는 120만 원을 선택했던 사람들 중 윤리적 성찰을 거쳐 재투표에서는 인간을 선택한 이들이 있다. 이 사실에 산드라는 희망의 빛을 본다.

물론, 앞으로의 삶도 여전히 고될 테고 산드라는 또다시 굴욕적인 상황에 내몰릴 수도 있다. 그런데도 희망할 수 있다는 희망이 산드라를 웃게 했다. 그런 산드라를 보며 우리 또한 희망의 가능성을 머리에 떠올려 볼 기회를 얻는다. 반면, 서글퍼지기도 한다. 다르덴 형제 감독이 이 사회에서 찾을 수 있는 희망이 이 정도뿐이었다는 사실에.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의 포스터.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의 포스터.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연대할 수 있다. ⓒ (주)그린나래미디어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황보름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내일을 위한 시간 다르덴 형제 마리옹 꼬띠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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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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