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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참사 3주기를 하루앞둔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4월 16일의 약속, 함께 여는 봄’ 기억문화제>에서, 대형스크린을 통해 참사 당시 영상이 나오자 시민들이 숨 죽인 채 지켜보고 있다.
▲ 숨 죽인 채 참사 당시 영상 보는 시민들 세월호참사 3주기를 하루앞둔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4월 16일의 약속, 함께 여는 봄’ 기억문화제>에서, 대형스크린을 통해 참사 당시 영상이 나오자 시민들이 숨 죽인 채 지켜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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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타투에 관심을 가졌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항상 타투를 가장 '성인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의미있거나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몸에 새겨서 기억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자신이 온전히 책임진다는 점에서 이보다 더 '어른스러운' 일은 없어 보였다. 그래서 언젠가 어른이 되면 꼭 타투를 하리라 다짐했고, 2017년 1월 1일. 나는 스무살이 되었다.

지인들은 타투를 하겠다는 나를 만류했다. 한 번 하면 지우는 게 어렵고, 충동적으로 해서 후회한 사람을 여럿 보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맞는 말이었지만 내가 원하는 도안에서는 적용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나는 노란 리본 타투가 하고 싶었고, 내 몸에서 리본을 지울 일은 영원히 없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1월 5일. 오른쪽 손목에 리본을 새겼다.

시술대에 오르기 전까지 수도없이 찾아본 타투 후기에서는 다들 많이 아프지 않다고 했지만 나는 두려웠다. 이전까지 크게 다쳐본 적이 없었기에 어느 정도의 고통일지 감 잡을 수 없었다.

타투이스트가 위치를 잡은 후 도안에 맞게 라인을 따기 시작했다. 진동하는 칼로 살을 찢는 게 손목 깊은 곳까지 느껴졌다. 라인을 다 따고서는 칼날을 바꿔서 리본에 색을 입혔다. 고통스러웠다. 몸은 저절로 움찔거렸고 입에서는 앓는 소리가 났다. 나도 모르게 발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꿈틀거리는 발가락을 본 타투이스트가 나지막히 말했다.

"애도하는 마음으로 해보자고, 우리."

그들이 겪은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부끄러워 얼굴이 달아올랐다. 내 얼굴을 찌푸리게 만드는 고통이 가라앉는 뱃속에 갇혔던 이들의 것과 비교조차 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물이 차오르면 산소는 점점 줄어들고, 가구는 떠다니며 몸을 멍들게 하고, 가로가 세로가 되고 세로가 가로가 되고. 그들이 겪은 고통에 비하면 타투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날 바닷속에서 꺼져간 영혼을 기억하기 위해서라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아픔이었던 것이다. 그 후 시술이 끝날 때까지 나에게 남아있던 것은 손목의 고통이 아니라 내면의 괴로움이었다. 슬픔이고 아픔이고 분노였다.

열 여덟, 세상을 등지기에는 너무 어리고 찬란한 나이였다. 당시 열일곱이었던 내가 그랬던 것처럼 하고싶은 것 많고 꿈이 전부인 학생들이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당장 하고 싶은 일, 쏟아지는 졸음을 참고 하루의 대부분을 학교와 학원에서 보내는 이들이었다.

국가 내 안전에 대한 민감도가 높고 정권이 조금 더 투명했더라면, 이전까지 학생들이 조금 더 장로운 분위기에서 주체가 되는 교육환경이 조성되어 있었다면 그들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차가운 바다에서 가라앉은 세월호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었고,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청소년은 세월호 속 아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가라앉고 있었고, 그날 우리는 국민을, 자식을, 친구를 잃었다.

지난 9일 오전 육지이동 최종점검을 마친 세월호가 이날 오후 본격적인 육상작업을 위해 반잠수선 위에서 600대의 모듈트랜스포터 위에 실린 채 부두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 육지로 이동하는 세월호 지난 9일 오전 육지이동 최종점검을 마친 세월호가 이날 오후 본격적인 육상작업을 위해 반잠수선 위에서 600대의 모듈트랜스포터 위에 실린 채 부두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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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이 지났다. 세월호는 정부의 부정부패와 무능,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부족함을 여과없이 보여주었다. 남겨진 이들은 국가에 대한 실망, 충격과 300여명을 손 한 번 쓰지 못하고 떠나보낸 상처를 떠안고 광장으로 나갔다. 조금 더 나은 대한민국이 되기를, 다시는 그런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며 촛불을 들었다. 무능한 권력자는 쫓겨났고 세월호는 뭍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대한민국의 성숙이자 촛불 민심의 승리라며 모두가 기뻐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이다. 인양된 선체에 대한 정확한 원인분석과 조사를 통해 진상규명을 해야한다. 지금까지 가장 큰 논란이 되었던 것은 정부의 투명성이다. 따라서 정부는 조사 과정에 있어 투명성을 확보하고 국민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아직 배 안에 있는 아홉명의 시신을 수습해서 유가족들에게 돌려보내는 일 역시 투명하게 진행되어야 마땅하다.

지속적인 심리치료가 필요하다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 생존 학생들과 사태 수습에 힘을 쓴 의인들을 보살피는 것 역시 필수적이다. 어떤 이들은 세월호 참사는 단순 사고였다고 말하지만 국정농단사태를 겪으며 세월호가 정부의 무능과 부패로부터 비롯된 인재였음이 명확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우선 참사에 관련된 이들에게 지속적인 심리 치료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 유가족들은 자식이나 형제를 잃은 아픔이 있고, 생존 학생들에게는 눈앞에서 친구와 선생님의 죽음을 목격한 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시신 수습을 위해 투입되었던 민간 잠수사들은 침몰한 배 안에서 떠다니는 아이들의 시신을 온몸으로 끌어안고 나왔고 그 충격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또한 탈출과정에서 생존 학생들은 부상을 당했고, 특히 민간잠수사들은 골 괴사와 근육 파열 등 매우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지속적인 의료지원을 통해 그들이 후유증없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실제로 3년 전 단원고등학교 교감선생님의 자살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심리치료의 적합성 논란, 민간잠수사 김관홍씨의 자살 등을 보면 그들이 겪는 고통이 얼마나 큰지, 정부의 지원이 얼마나 부족한지 알 수 있다. 이에 대한 개선이 시급하다.

최근 단원고등학교의 기간제 교사였던 김초원 교사와 이지혜 교사의 순직 처리가 논란이다. 그들은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가 숨졌지만, 기간제 교사라는 이유로 순직 처리가 불가능했다. 계약직이었지만 일반 교사와 같이 담임을 맡았고, 수업을 진행했으며 마지막 순간까지 제자들을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약직이기 때문에 순직 처리를 할 수 없는 상황은 우리나라의 인간 존엄 의식의 부족과 노동자의 인권 보장의 미흡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재난 상황 속에서 거침없이 자신의 몸을 던져 제자를 구하고자 한 두 '의인'을 그에 맞게 대우해주어야 한다. 또한 노동자 인권 의식의 함양과 법과 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근로자 문제의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3년 전과 달라지지 않은 것들... 부끄럽고 미안하다

"가만히 자리에서 기다리세요."

선장은 선내에 가만히 구조를 기다리라는 내용의 방송을 한 뒤 속옷바람으로 배를 버리고 탈출했다. 학생들은 방송을 따라 구명조끼를 입은 채 그 자리에서 구조대를 기다렸고, 끝내 구조대는 오지 않았다. 학생들이 가만히 있었던 것은 그 때의 방송 때문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한국 학교의 주입식 교육방식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높은 서열의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교과서의 내용을 수동적으로 외우는 교육이 아니라 토론과 글쓰기, 다양한 활동이 주를 이루는 교육을 받았더라면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이 나왔어도 이야기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학생을 획일화된 틀에 맞추는 교육방식을 지양하고 학생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판단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는 방식을 도입할 시점이다.

햇살 따스하고 바람은 싱그럽고, 꽃잎이 날리는 잔인한 4월이다. 울컥울컥 저 밑에서 눈물이 차오른다. 그들이 있는 곳은 여기보다 아름다울까, 그곳은 무능한 어른들없이 평화로울까. 여기에서 못다 이룬 꿈을 그곳에서 싱그럽게 펼치고 있을까. 손목의 리본을 보고 있으면 많은 것이 궁금해지고, 그래서 슬퍼진다. 저 높은 곳에서 이 세상이 변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을 것 같고, 천개의 바람으로 모든 곳에 존재하고 있을 것만 같다. 아직도 그때와 달라지지 않은 것들이 많아 한없이 미안하고 부끄럽다. 가슴 한 구석이 아려온다.

손목의 타투를 내려다본다. 오늘따라 리본이 더 노랗게 느껴진다. 나는 더 슬프고 부끄럽고 가슴이 아리다. 그 슬픔과 부끄러움, 가슴 아린 느낌을 마음 깊숙이 새겨본다. 잊어선 안 될 것들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2017년 1월 5일, 잊지 말고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손목에 새긴 노란 리본 타투.
 2017년 1월 5일, 잊지 말고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손목에 새긴 노란 리본 타투.
ⓒ 가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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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블로그 chaeringles.tistory.com에도 실었던 글을 보강하여 송고하였습니다. 세월호 미수습자들의 조속한 수습과 사건의 진상규명을 염원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태그:#세월호, #세월호3주기, #추모, #타투,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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