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강창학종합경기장에서 열린 제주특별자치도 도민체육대회 개회식 중 진행된 'FIFA U-20 월드컵 코리아 2017' 홍보 행사에서 원희룡 제주지사(왼쪽)와 차범근 대회 조직위 부위원장이 트로피가 공개되자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지난 14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강창학종합경기장에서 열린 제주특별자치도 도민체육대회 개회식 중 진행된 'FIFA U-20 월드컵 코리아 2017' 홍보 행사에서 원희룡 제주지사(왼쪽)와 차범근 대회 조직위 부위원장이 트로피가 공개되자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드디어 다가섰다. '손세이셔널' 손흥민이 차범근이 가지고 있었던 아시아 선수 유럽리그 한 시즌 최다골(19골)과 동률을 이루면서 새로운 역사를 썼다. 올 시즌 각종 대회에서 토트넘 유니폼을 입고 19골을 터뜨린 손흥민은 차범근의 19골 기록과 31년 만에 같은 위치에 섰다.

지난 14일 토요일 오후 8시 30분(한국시각)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 열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33라운드 토트넘 홋스퍼와 AFC 본머스와 경기에서 손흥민이 대기록을 작성했다. 손흥민은 전반 18분 헤리 케인의 패스를 받아 팀의 두 번째 골을 성공시켰다. 이 골로 손흥민은 차범근을 잇는 아시아 대표 공격수로 확실하게 도장을 찍었다.

차범근의 위대한 기록은 역사 속에서 곧 한 발짝 물러나겠지만 그의 기록은 여전히 칭송받아 마땅하다. FA컵에서 3부 리그 팀인 밀월에게 해트트릭 등을 성공시킨 손흥민과 다르게 차범근은 19골 중 17골을 리그에만 집중시켰다. 리그 득점 숫자는 공격수의 득점력의 가장 큰 척도라고 여겨지기에 손흥민이 여전히 차범근의 득점력을 넘었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미친 활약'을 이어가는 손흥민에게 아직 뒤쳐지지 않는 1980년대의 '차붐'은 도대체 무슨 활약을 했을까. 과장되지 않은 그의 활약을 객관적으로 짚어보자.

분데스리가는 세계 최고의 리그였다 → △

손흥민의 득점 행진이 찬사를 받는 이유는 무려 프리미어리그에서 득점 행진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손흥민은 세계 최고의 실력과 몸값을 자랑하는 선수들과 매주 치열한 경쟁을 펼친다. 손흥민이 뛰는 프리미어리그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지만 여전히 세계 3대 리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차범근도 다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는 더욱 수준 높은 리그에서 경기장을 누볐다. 차범근은 유럽 커리어 11시즌 동안 독일 분데스리가에서만 뛰었는데, 흔히 당시 분데스리가는 세계 최고의 리그라고 알려져 있다.

사실이다. 리그와 클럽 팀의 경쟁력을 가장 객관적으로 보여준다는 ELO 랭킹에 따르면 차범근이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한 1979-1980 시즌 분데스리가의 리그 점수는 1769점으로 1680점을 기록한 2위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 크게 앞선 최상위 리그였다. 당시 차범근이 뛰었던 프랑크푸르트는 유럽 클럽 전체 랭킹에서 11위를 기록한 강호이기도 했다. 참고로 현재 손흥민이 뛰는 프리미어리그는 프리메라리가와 분데스리가에 밀려 3위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차범근이 보낸 11시즌 동안 분데스리가가 리그 랭킹 1위를 항상 유지한 것은 아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잉글랜드의 노팅엄 포리스트와 리버풀의 약진으로 1983-1984 시즌에는 잉글랜드에게 1위 자리를 내줬다. 이후에는 이탈리아 리그의 성장에 밀려 한동안 1위 자리에 복귀하지 못한 분데스리가였다.

물론 차범근이 뛰던 80년대의 분데스리가의 랭킹은 항상 2위권을 유지했다. 11시즌 동안 분데스리가가 3위로 떨어진 적은 없었다. 당시 분데스리가가 언제나 세계 최고의 리그는 아니였지만, 세계 최고의 리그 중 하나였던 것은 분명하다.

분데스리가 MVP 수상 → X

박지성이 프리미이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던 시절 아시아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지만 2011-2012 시즌은 달랐다. 그 시즌 유럽에서 가장 돋보였던 아시아인은 따로 있었다. 바로 분데스리가의 강팀 도르트문트에서 뛰던 일본의 카가와 신지였다. 그 시즌 카가와는 리그 전반기 동안 17경기에 출장해 8골 1도움을 기록하면서 분데스리가가 선정한 전반기 MVP를 수상했다.

'라이벌' 일본의 축구 선수가 분데스리가에서 인정을 받자 한국 팬들 사이에서는 차범근도 MVP를 수상한 경력이 있다는 얘기가 떠돌았다. 아쉽지만 진실이 아니다. 차범근은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한 11시즌 동안 단 한번의 MVP 수상도 하지 못했다.

MVP를 수상하진 못했지만 차범근의 꾸준한 활약상을 MVP급이었다. 차범근은 전성기라 할 수 있었던 1979년부터 1986년까지 일곱 시즌동안 1980-1981 시즌을 제외한 모든 시즌에서 두 자릿수 득점에 성공했다. 1980-1981 시즌 리그 두 자릿수 득점에는 실패했지만 시즌 전체에서는 16골을 성공시켰다. 손흥민도 지난 시즌 통틀어 8골 득점에 그치면서 시즌 두 자릿수 득점 연속 기록이 세 시즌에서 멈춘 것을 감안해 보면, 차범근의 '다섯 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 기록은 쉽게 깨지기 어려워 보인다.

차범근의 활약은 득점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독일 언론 빌트지에 따르면 차범근의 일곱 시즌 평균 평점은 2.87(1점에 가까울수록 높은 평가)이다. 당시 분데스리가 공격수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출중한 기록이다.

1979년부터 1984년까지 다섯 시즌으로 좁히면 차범근의 평점은 2.72로 떨어지는데, 2.72란 평점은 그 기간 동안 분데스리가 공격수 중 두 번째로 높은 평가다. 당시 평점 1위는 독일의 전설적인 공격수 칼 하인츠 루메니게였다. 루메니게는 1980년과 1981년 2년 연속 발롱도르를 수상한 명실상부 유럽 최고의 공격수였다. 분데스리가 공격수 중 유일하게 차범근 위에 있던 선수가 발롱도르 수상자일 정도로 차범근의 전성기 활약상은 압도적이었다.

독일의 차범근 귀화 추진 → X

독일 축구 협회가 차범근의 독일 귀화를 추진했다는 이야기는 보통 당시 독일에서의 차범근의 위상을 가장 단편적으로 드러내는 일화로 소개되곤 한다. 당시 차범근의 활약상을 감안해 봤을 때 충분히 가능했을 법한 일이기에 많은 이들에게 진실처럼 받아 들여졌다.

그러나 사실이 아니다. 당시 독일 축구 협회가 정확히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독일 국가대표 입장에선 굳이 차범근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독일 대표팀은 앞서 언급한 유럽 최고의 공격수 루메니게를 보유하고 있었고, 당시 FC 쾰른의 스타 클라우스 알로프스도 뛰어난 득점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독일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꼽히는 피에르 리트바르스키도 리그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고 있었고,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독일 대표팀 우승의 주역인 루디 펠러도 당시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독일 대표팀은 1982년과 1986년 월드컵에서 두 번 연속 준우승을 차지했고, 1990년에는 우승컵을 들어 올린 당대 세계 최고의 팀이였다. 이미 최고의 공격수들과 팀을 구축한 독일이 무리해서 차범근의 귀화를 시도했을 리 만무하다.

독일 축구 협회의 귀화 시도 진실 여부와는 별개로 한국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차범근의 활약은 대단했다. 1972년 이라크를 상대로 최연소 국가대표 데뷔를 한 차범근은 대한 축구협회가 제공하는 기록에 따르면 1978년까지 7년 동안 133회 A매치에 출장해 58득점을 기록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본선 3경기 출장 이후 국가대표에서 은퇴한 차범근은 최종적으로 136경기에 출장해 58득점을 기록했다. 분데스리가에 진출하지 않았거나 당시 교통이 현재처럼 편리했다면 차범근의 기록은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물론 지금 차범근이 보유한 국가대표 기록은 이미 범접할 수 없는 기록이다. 차범근은 24세 139일의 나이로 A매치 100경기를 소화하면서 '최연소 센추리클럽(A매치 100경기 이상 출장) 가입'이란 세계 축구사의 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현재도 깨지지 않고 있다.

또한 차범근은 1976-1977 시즌동안 나선 A매치에서 19골을 성공시키며 'A매치 한 시즌 최다 득점'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물론 약체인 인도, 싱가포르 등을 상대로 세운 기록이지만, 세계 최고의 기록이란 점에서 충분히 가치가 있다. 축구의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이만한 기록을 세웠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차범근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한국 축구 최고의 영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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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 손흥민 분데스리가 진실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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