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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304개의 우주가 소멸했다. 슬픔과 분노가 채 가시기도 전에 혐오와 조롱이 파고들어 생채기를 냈다. 구조할 의지도, 능력도 없었던 국가권력은 진실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탄압하는 데에는 무척이나 유능했다. 조직적 방해와 체계적 은폐 속에 1073일이 지났고, 대통령이 파면되고 나서야 세월호는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추운 겨울부터 봄이 올 때까지 글로는 다 적지 못할 많은 일을 겪으며 분명히 알게 된 것이 두 가지 있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저절로 나아지지는 않는다는 것. 더 나은 삶을 모색한다면 스스로 직접 싸워야 하며 그 시기는 바로 지금이라는 것. 그래서 세월호는 바로 나 자신이다. 남의 일이 아니라, 잊을 수 없고 잊지 말아야 하는 나의 일부이고 기억의 일부이다.

청년들 붓을 들다

 강릉시 내곡동 골목 건물 외벽에 세월호 벽화를 그리는 강릉 청년들
 강릉시 내곡동 골목 건물 외벽에 세월호 벽화를 그리는 강릉 청년들
ⓒ 이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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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8일 오전 10시 강원도 강릉시 용강동 서부시장 입구, 페인트통과 붓을 든 청년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세월호 3주기 추모 벽화 프로젝트 '세월호를 그리다 그리움을 그리다'를 함께 하는 이들이었다.

강릉의 청년들이 처음 모여 세월호 벽화를 그린 것은 2014년 12월이다. 당시 강릉 서부시장 공간 네 곳에 벽화가 그려졌다(관련기사: 강릉 서부시장의 노란 배, 왜 사라졌을까). 이듬해 2월에는 고등학생부터 청년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함께 한 '잊지말자 세월호' 벽화그리기 프로젝트가 열렸다(관련기사: " 세월호 벽화라고? 차라리 단오 그림이나 그려줘").

 지난 달 27일 사전모임에 참석한 청년들이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
 지난 달 27일 사전모임에 참석한 청년들이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
ⓒ 이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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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7일, 강릉 지역 청년단체 '청년나루' 공간에서 사전 모임을 가졌다. 세월호 벽화 프로젝트의 목적과 지향점, 가치를 공유했다. 자기소개를 하고 참여하게 된 계기를 나누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이야기하며 마음을 주고받았다. 2014년과 2015년 벽화 작업에 참여했던 이들도 있었지만, SNS에서 정보를 접했거나 주위 사람을 통해 소식을 듣고 혈혈단신 찾아온 경우가 더 많았다.

4월 1일에는 바탕작업을 했다. 벽화가 그려질 벽면의 낡은 부분, 울퉁불퉁한 부분을 긁어냈다. 코팅액을 바른 뒤 바탕색을 칠했다. 벽의 표면이 매끈하지 않으면 붓자국이 남거나 아예 칠해지지 않는 부분이 생긴다. 바탕색을 꼼꼼하게 칠하지 않거나 충분하게 말리지 않으면 본색을 칠할 때 밑색이 올라와 제 색깔을 내기가 힘들어진다.

4월 8일은 오전에 간단한 회의를 한 후 각자가 맡은 구역으로 흩어졌다. 모둠별로 나뉜 청년들은 담당 벽화의 도안을 들고 곳곳으로 흩어져 작업을 시작했다. 바탕작업을 해둔 벽면에 밑그림을 그리는 일로 작업을 시작했다. 미술전공자도, 벽화를 배운 사람도 없었지만 붓을 쥔 자세는 모두가 진지했다. 이날 그린 벽화의 도안 디자인은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해 안산에서 활동하며 유가족과 연대하고 있는 디자인노동자 김미성님께서 해주셨다.

 낡은 벽의 이물질을 긁어내고 벽화그리기에 필요한 사전 작업을 하는 청년들
 낡은 벽의 이물질을 긁어내고 벽화그리기에 필요한 사전 작업을 하는 청년들
ⓒ 이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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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릉 청년들이 강릉시 용강동 건물 외벽에 두 번째 벽화를 그리고 있다.
 강릉 청년들이 강릉시 용강동 건물 외벽에 두 번째 벽화를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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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추모 벽화에 미수습자를 그려넣고 있다.
 세월호 추모 벽화에 미수습자를 그려넣고 있다.
ⓒ 이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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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릉시 내곡동 골목 외벽에 첫 번째 벽화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강릉시 내곡동 골목 외벽에 첫 번째 벽화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 이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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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를 그리는 동안 사람들이 많이 지나갔다. 연세 지긋한 할머니 할아버지부터 동네 상인들과 일반 주민들까지. 벽화를 보면서 예쁘다, 수고가 많다, 고맙다 하는 격려를 해주셨다. 단순히 동네를 꾸미기 위해 하는 활동은 아니었기에 세월호를 추모하는 뜻을 담아 그리는 그림이라는 말씀을 드렸다. 걱정했던 것이 부끄러울 만큼 대부분 긍정적으로 반응해주셨다.

스무 명 가량의 청년들이 오래된 동네의 낡은 벽에 네 개의 작은 벽화를 그렸다. 옷에, 손에, 얼굴에 페인트를 묻혀가며 그렸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3년이 됐다. 탄핵 정국을 거치며 지금은 세월호가 관심을 받고 있지만 진상규명이 지지부진해질 경우 다시 또 사람들에게 잊혀지지는 않을까, 잊어야 할 것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스럽다. 헬조선에 사는 N포세대이지만, 삶이 치열할수록 같이 행동하고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그려진 벽화들은 강릉 용강동 서부시장 골목과 내곡동 강릉시민행동 골목에서 만날 수 있다. 세월호와 관련해 활동하는 강릉 청년들에 관한 소식 알림은 이번주 토요일(15일)에 강릉 대도호부 앞에서 열리는 명주 프리마켓에 '청년나루' 부스를 설치하여 진행할 예정이다.

 완성된 첫 번째 벽화
 완성된 첫 번째 벽화
ⓒ 이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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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성된 두 번째 벽화
 완성된 두 번째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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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성된 세 번째 벽화
 완성된 세 번째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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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3주기 벽화 프로젝트를 함께 한 강릉 청년들
 세월호 3주기 벽화 프로젝트를 함께 한 강릉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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