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pretty much fucked. (아무래도 X 됐다.)"

소설 <마션>의 첫 대사이다. 화성에 홀로 남겨진 주인공이 내뱉는 말이자 영화 <더 플랜>을 보고 나서 내 머리속에 처음으로 떠오른 말이기도 했다.

<더 플랜>은 2012년 대선에서 비롯된 의혹을 집요하게 파들어가는 영화다. 18대 대통령 선거가 부정선거라는 의혹을 숫자로 풀어내는데, 놀랄 정도로 설득력이 있다. 결국, 영화의 끝에는 부정선거라는 의견에 동의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다큐멘터리 영화 <더 플랜> 포스터. 이 영화의 경고가 결코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다큐멘터리 영화 <더 플랜> 포스터. ⓒ 프로젝트 부


예로부터 '숫자'의 명확성은 지독히도 아름다우며 또 냉정했다. 그리고 우리가 믿고 있는 세계를 지금껏 꾸준히 파괴하고 새로운 세상을 그려냈다. 우주의 중심에 멈춰있던 지구를 돌게 하였고, 불변인 줄 알았던 시간의 실체도 까발렸다. <더 플랜>이 제시한 숫자도 그러했다. 설마 대통령 선거에서 부정이 있겠느냐는 그 믿음이 <더 플랜>이 제시한 숫자로, 그리고 그것을 증명한 실제적 실험으로 산산이 깨져버렸다. 그러니 영화 끝에 나오는 말이 "아무래도 X됐다"일 수밖에 없었다.

<더 플랜>이 제시한 부정선거의 증거들이 더 끔찍한 것은 결국 나 자신이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투표는 나의 권리이자, 모든 국민의 권리이다. 다른 다큐멘터리가 다루고 있는 다양한 문제가 사회적일 수는 있지만 동시에 나의 이야기는 아닐 수 있다면, <더 플랜>은 사회적이며, 동시에 나의 이야기이다. <더 플랜>은 피해자이면서도 동시에 전혀 피해받은 지 모르고 살았던 내 앞에 나타나, 내가 어떻게 "X됐는지"를 상세하게 알려준다. 마치 자신이 블랙박스인 양, CCTV인 양 말이다. 그러니 슬프고, 두려우며, 동시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건물이든 억대 계좌든 많은 걸 물려 받은 금수저들과는 달리 그저 딱 하나 물려 받은 그 소중한 투표권을 뺏긴 것 같다는 좌절감에서 헤어나오기가 쉽지 않다.

나는 이 영화를 모든 국민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국민에게는 투표권이 있고, 우리는 민주주의라는 위대한 유산을 함께 공유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에 금수저든 흙수저든, 박근혜를 지지했든 문재인을 지지했든 상관없이 우리의 투표권과 우리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훼손되었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 영화를 보고도 이렇게 판단할 수 있다.

"에이, 이것만 가지고 부정선거를 확신할 수 있어?"

그런 판단 존중한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의 개표제도가 상당히 약점이 많고, 언제든지 우리의 권리를 뺏을 수 있다는 인식은 해야 한다. 영화가 가지고 있는 미덕은 바로 거기에서 나온다. '당신의 투표는 언제든지 조작될 수 있다'는 취약성을 알리는 것이다.

우리는 국민의 힘으로 대통령을 탄핵하고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초유의 사태를 겪고 있다.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것 또한 국민의 힘으로 해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 어느 누구의 의도도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컴퓨터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취약성이 증명된 순간 우리는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19대 대선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목소리를 드높일 당위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민주주의이고 그것이 국민의 뜻을 지켜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영화는 그 해결책까지도 제시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더 플랜>의 한 장면. 19대 대선을 앞두고 급하게 개봉하게 된 이 작품은, 과연 실체적 진실에 접근할 수 있었을까.

ⓒ 프로젝트 부


'수개표를 먼저 하고 전자개표기는 보조 용도로만 사용하는 것.'

<더 플랜>이 제시한 이 해결책에 대해서 지금 대선주자들이 모두 합의하고 관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은 국민의 의사를 투표에 소중히 반영시키는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거부하는 자는 국민의 뜻을 왜곡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는 사람임이 분명하다.

박근혜 국정 농단으로 많은 국민이 실질적인 피해를 봤다. 세금을 도둑맞았고, 정의를 도둑맞았다. 심지어는 투표권을 뺏어간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도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펼쳐지는 대선이다. 적어도 국민의 투표, 나의 한 표는 뺏기지 않고 싶다. 많이 사람들이 보기를, 그리고 우리 모두의 권리인 한 표를 지키기 위해 한목소리를 내주기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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