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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가족협의회는 2017년 4월 16일 기억식으로 많은 국민들이 함께 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안산은 아직 돌아오지 못한 9명의 미수습자를 포함한 304명의 희생자 중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곳입니다. 안산은 우리의 기다림이 시작된 곳이기도 합니다. 안산 합동분향소에서 기다림을 넘어 진짜 시작을 다짐하고자 합니다. - 기자 말

세월호가 본격적인 육상작업을 위해 반잠수선 위에서 600대의 모듈트랜스포터 위에 실린 채 부두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9일 오후 세월호 이송 작업을 지켜보기 위해 목포신항을 찾은 시민들로 부두 입구가 붐비고 있다.
▲ 시민들로 북적이는 목포신항 세월호가 본격적인 육상작업을 위해 반잠수선 위에서 600대의 모듈트랜스포터 위에 실린 채 부두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9일 오후 세월호 이송 작업을 지켜보기 위해 목포신항을 찾은 시민들로 부두 입구가 붐비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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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돌아오지 못한 '금요일'

2014년 4월 15일 화요일 세월호를 타고 출항하여 18일 금요일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있다. 250여 명의 단원고 학생들과 선생님, 탑승객, 선원을 비롯하여 희생된 304명의 사람들이다. 세월호는 출항한 지 1081일 만에 화이트 마린호에 실려 목포신항까지 오게 되었다. 마침 이날이 금요일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금요일엔 돌아오기로 한 약속이 이제 지켜지게 된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온 이는 아직 아무도 없었다. 단원고 희생 학생들과 교사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교실과 교무실마저도 다른 곳으로 임시 이전되어 있는 상태다. 참사는 있었고 304명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린 것도 모두 지켜보았지만 무엇하나 제대로 자리한 것은 없다. 안산 화랑유원지에 정부합동분향소가 3년째 그대로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기억을 위한 흔적과 자리는 임시 가설물로만 존재한다. 즉, 기억조차 허용하지 않는 세상은 아직 바뀌지 않고 있는 것이다.

'기다릴게'

참혹한 봄날, 우리는 간절히 기다렸다. 노란리본을 걸고 잊지 않고 기다리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지 않았다. 기다림은 곧 행동이었다. 미수습자의 수습과 수색, 유실방지, 인양을 요구해야 했고,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찾아내야 했다. 그러나 위정자들은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박근혜의 정치권력 세력은 우리의 기다림을 막았다. 심지어 우리의 기억을 조작하고 지우려고 했다. 언론을 장악하고 통제하며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왜곡하고 국민을 속이려 했다. 증거인멸과 수사 은폐 의혹도 불거졌다. 검찰 수사에 외압을 넣고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 예산 지급을 가로막고 이것도 모자라 세금낭비라고 여론 조작까지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정부가 특조위 조사를 방해하고 결국 없애버렸다는 것이다.

지난 3월 24일 오후 전남 진도군 사고 해역에서 잭킹바지선에 고박된 세월호 선체가 반잠수식 선박의 상부 메인 데크 위로 도킹을 시도하자, 동거차도 언덕에서 세월호참사 유가족이 마음을 졸이며 망원렌즈가 장착된 카메라를 통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 세월호-반잠수식 선박 도킹 지켜보는 유가족 지난 3월 24일 오후 전남 진도군 사고 해역에서 잭킹바지선에 고박된 세월호 선체가 반잠수식 선박의 상부 메인 데크 위로 도킹을 시도하자, 동거차도 언덕에서 세월호참사 유가족이 마음을 졸이며 망원렌즈가 장착된 카메라를 통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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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처 없는 사람들

피해자 가족 역시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피해자 가족들은 동거차도로, 팽목항으로 갔다. 미수습자 수습과 세월호의 온전한 인양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라면 피해자 가족들은 무엇이든 했다. 동거차도의 다 쓰러져가는 움막을 처음 본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 장면은 목포신항에서도 똑같이 반복됐다. 세월호가 드디어 우리 곁으로 오게 된다던 그 첫날 피해자 가족들은 한동안 항구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철망 밖에서, 비에 젖은 아스팔트 위에 앉아서 기다렸다.

피해자 가족들은 사실 기다려도 돌아오지 못하는 희생자들을 기다리는 가장 잔인한 고통 속에 놓여져 있는 이들이다. 차마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그 '뼛조각' 하나, 유해와 유류품 단 한 가지라도 기다려서 그 숨결과 흔적을 느끼고자 하는 이들을 유령처럼 대한 것이다.

광화문 광장, 전국 각지, 그리고 국회 앞과 정부청사 앞과 청와대 앞까지 피해자 가족들은 그곳을 집처럼 노숙하며 살아야 했다. 그곳들이 피해자 가족들의 거처였다. 피해자 가족들의 바람은 어려운 게 아니다. 다시 안산으로 집으로 모두 함께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이 당연한 일은 아직도 가능성이 희박한 희망사항에 불과할 뿐이다.

책임자도 없었다

구조 책임자는 없었다. 진실과 책임자를 규명하기 위해 국민들이 특별조사위원회를 만들었지만 박근혜 세력은 특조위를 아예 제거해 버렸다. 피해자 가족들과 우리의 기다림은 바로 진실에 대한 권리를 말한다. 왜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했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길고 긴 기다림이 비로소 이해될 것이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바로 책임자에 대한 규명이며 처벌이다.

사회적 책임을 물을 때 우리 모두가 잠재적 피해자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을 분명히 말할 수 있고, 국민 모두가 존귀하고 존엄한 존재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 확인의 징표를 영원히 보존하기 위한 자리 역시 최상 최대로 보장받아 내야 한다. 그러나 박근혜 파면 뒤에 숨겨진 혹은 숨은 책임자들은 다시 가면을 쓰고 '재기'를 노리고 있다. 국정원과 해피아 해수부-해경도 그대로 건재하다. 우리는 이러한 무한반복을 이젠 끊어내야 한다. 특별조사위원회도 재건해야 하고 수사와 기소의 권리도 받아내야 한다. 청산 없는 역사는 반복될 것이다.

지난 2014년 4월 20일 저녁 경기 안산시 초지동 화랑유원지 원형 광장에서 안산지역 시민과 학생들이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며 촛불을 밝히고 있다.
▲ 안산 밤하늘 수놓은 '촛불' 지난 2014년 4월 20일 저녁 경기 안산시 초지동 화랑유원지 원형 광장에서 안산지역 시민과 학생들이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며 촛불을 밝히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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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원점에서

우리는 세월호 참사의 비극이 일어나기 전의 출발점이자 지금은 참극의 종착점이 되어버린 합동분향소가 있는 그곳에서 다시 기다려야 한다. 3년 탈상 후 라는 말은 사실 두렵다. 너무 오래 기다리고 정처 없이 떠돌게 되면 그래서 우리가 어디서 출발했고 무엇을 기다려야 하나 그 원점에 대한 기억이 옅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 이후는 반드시 달라져야 한다'고 했다. 처음의 마음, 처음의 다짐이 진짜 시작되어야 하는 곳, 이것은 바로 기다림의 원점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 큰 기적을'이라 하며 노란리본을 달기 시작했던 바로 안산 합동분향소가 있는 곳에서 우리는 새로운 기다림, 희망의 기다림을 시작해야 한다. 여기서 광장의 천만 촛불이 싹트기 시작했고 오늘 세월호를 건져 올려낸 원천도 바로 이곳이었다.

4월 15일 천만촛불의 광장, 광화문과 전국 각지에서 기다림을 온 세상에 알리고, 4월 16일 안산으로 모두 모여 함께 봄을 열어내자.

덧붙이는 글 | 세월호참사 3년, 4월16일의약속 함께여는봄 인터넷 특별페이지 416act.net/sewol3



태그:#세월호, #3주기, #수습, #진상규명, #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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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약칭 4.16연대)는 세월호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생명이 존중받는 안전사회 건설을 위해 세월호 피해자와 시민들이 함께 만든 단체입니다. 홈페이지 : https://416ac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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