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한의 공동묘지>. 공포 영화의 법칙들을 살펴보면 사회적 맥락을 읽을 수 있다.

<원한의 공동묘지>. 공포 영화의 법칙들을 살펴보면 사회적 맥락을 읽을 수 있다. ⓒ 한국영상자료원


'공포' 장르는 문학으로도 영화로도 넓은 층에 흥미로운 주제임과 동시에, 많은 영화학도가 한 번쯤은 달려들게(?) 되는 일종의 관문 같은 분야다. 특히 공포물의 중추인 괴물, 귀신, 유령 혹은 살인마 등 공포의 원천이 되는 주체는 언제나 신비롭고 매력적이다.

그러나 보이는 귀신/괴물의 그로테스크함 이면의 정체성은 다층적이다. 영화학자 로빈 우드(Robin Wood)는 이러한 공포의 대상은 사회에서 가장 억압받는 계층(유색인종, 여성, 하류층, 동성애자 등)이 괴물화 되어 영화로 재현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그는 이 주장을 바탕으로 텍사스 전기톱 살인 사건의 노동 계급 살인마, 프랑켄슈타인 시리즈에서의 외국인 괴물 등을 예로 들었다. 그렇다면, 한국의 수많은 설화와 영화에 출연했던 여자 귀신과 서양 공포 영화에서 등장했던 연쇄 살인마는 어떤 맥락으로 읽어 볼 수 있을까.

죽어서야 권력을 가질 수 있었던 한국의 여자 귀신

<여귀(?鬼)로 읽는 한국 공포 영화사>의 저자 백문임은 여자 귀신이 사또에게 한을 하소연하기 위해 밤마다 등장하는 것은 현생에서는 통제되는 여성들의 입과 귀가 죽어서야 그 기능을 할 수 있음을 시사함으로써 억압된 여성의 삶과 욕망을 재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여귀가 종종 울음소리보다 웃음소리로 공포를 가중화하는 것에 대해서 "평범한 인간들이 지르는 비명과 대조를 이루면서 이제 여귀가 우월하고 능동적인 위치로 옮겨갔음을 공표하는 동시에 공포영화라는 장르가 공공 영역에 청각장을 여성의 웃음소리로 메우는 유일한 장르임을 표명하는 것이다"라고 기술하였다.

상당수의 공포 영화에서 (웃어 젖히는 여귀보다) 흐느끼는 여자 귀신이 더 빈번했던 것을 고려했을 때 반론의 여지가 있으나, 여성의 웃음소리는 전통적으로 '적절치 못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공포의 대상으로나 표현될 수 있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공포 장르는 여성의 능동성을 펼쳐 보일 수 있는 유일한 장이었다. 추억의 프로그램 <전설의 고향>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에피소드 <구미호>(구전 설화로써 여러 차례 극화/영화화되었고 마지막 버전은 고소영과 정우성 주연의 구미호, 1994)를 예로 들어 보자.

 고소영의 <구미호>

고소영의 <구미호>. 이런 작품에서, 여성은 인간이 아니라 인간이 아닌 존재일 때 권력을 가진다. ⓒ 박헌수


구미호는 낮에는 참한 여인으로 분해 살림하며 조용히 살다가, 밤이 되면 꼬리 달린 괴물로 변해 남자를 홀리고 잡아먹는 존재다. 그녀의 이중생활을 비교했을 때, 정작 그녀가 남자들 앞에서 군림할 수 있는 때는 여우로 분해 '웃음'으로 그들을 유혹할 때다. 다시 말해 인간으로서의 삶이 아닌 죽음의 자아를 가지고 있을 때 그녀는 권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죽어야 강해지는 여성'을 주제로 한 공포설화나 구전 동화는 구미호 이외로도 무수히 존재한다(예, <장화 홍련><아랑 설화>).

유색인종과 장애인 없는 미국의 연쇄살인마

서양 공포물, 그중에서도 미국 호러 장르 중 가장 흔한, 연쇄 살인마를 예로 들어 보자. 다수의 미국 호러 물에서 살인마는 성 정체성이 모호한 남성으로 설정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여성스러운 옷차림이나 메이크 업을 하거나(양들의 침묵), 이성에 대한 두려움을 보이지만 어머니와는 집착 혹은 의존적 관계에 있으며(13일의 금요일), 미혼이고, 소년의 모습 즉 성장이 멈춘 듯한 말투나 행동(할로윈)을 보인다. 또한, 그들은 백인인 경우가 많고 그의 희생양 역시 유색 인종보다는 같은 백인, 특히 2차 성징을 막 지난 어린 여성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의 살인 도구를 보면 대부분 긴 칼, 도끼 등 남근 상징적인 무기가 주류이고, 주로 여성의 성감대(목덜미나 가슴 등)을 여러 차례 찔러 죽이는 공통적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살인마들의 경향은 앞서 언급한 로빈 우드의 '억압된 집단의 괴물화'라는 주장의 맥락에서 읽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공통으로 전시하는 여성성 그리고 이를 살인마의 특징으로 설정하는 것은 호모섹슈얼리티에 대한 가부장적 시선의 강한 부정의 방증이자, 성적으로 모호한 살인마가 여성을 남근 상징적인 무기로 처단한다는 설정도 같은 자장 안에서 해석하기에 무리가 없을 듯하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사회적으로 마이너리티 그룹인 유색인종이나 장애인은 왜 기피 대상인 살인자로 자주 등장하지 않는가?

리처드 다이어(Richard Dyer)나 호미 바바(Homi Baba) 같은 학자들은 미디어의 인종 차별이 특정 인종에 대한 부정적인 스테레오 타입으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가장 극단적인 방법은 아예 그 집단은 언급하지 않는 것, 즉, 부정(negation) 혹은 부재화로 나타난다고 지적하였다. 1970~1980년대 미국 호러물의 전성기에 흑인이나 다른 유색 인종들은 범인으로도 희생양으로도 등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은 처녀 귀신처럼 '귀환'하여 하소연조차  할 수 없는 사회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상 흑인 혹은 여타 다른 유색 인종의 캐릭터가 연쇄 살인범, 혹은 희생자 역할로 주류 영화에 등장하게 된 것은 90년대 이후 만들어진 <스크림> (Scream), <무서운 영화>(Scary Movie) 시리즈 등이다.

어떤 특정 그룹이 부정적인 시선으로나마 재현되는 것이 나은지, 그렇게 보여지느니 아예 재현되지 않는 것이 나은지에 관한 이슈는 영화라는 매체가 탄생함과 동시에 수반되었던 딜레마였고, 이 그룹들의 대부분은 유색인종과 동성애자, 여성 그리고 장애인들이었다. 물론 미국의 케이스지만, 한국 역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 할 것이다.

이런 면에서, (공포) 영화는 '보이는 매체(visual medium)'임과 동시에 '보이지 않는, 혹은 보여주지 않는 매체(invisible medium)'이기도 하다. 이 영화들은,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보이는 문제의식들을 시사한 것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승에서 부재해야 한을 풀 수 있었던 여귀 그리고 공포 영화 안에서 존재조차 하지 못했던 유색인종은 왜 그들이 그렇게 없어져야 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관객을 한문으로 쓰면, 볼 관(觀), 손 객(客)이다. 즉 '보는 손님'이라는 뜻이지만, 보이지 않는, 혹은 보여짐을 거부당했을 수많은 영화 속 '그림자들'은 보는 것 이상의 초능력을 발휘하고 싶게 만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문화 블로그 월간 <이리>의 글을 확장·수정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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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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