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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부터 시작됐던 탄핵국면이 겨울 한 계절을 꼬박 채웠고, 대한민국은 임기 내내 무능과 부패로 점철됐던 대통령을 파면했다. 광화문에서, SNS에서, 직장에서 이 나라의 헌법적 가치를 지켜냈던 주권자들은 차기 대선후보들의 동정과 결과 예측에 몰두하는 뉴스들을 보며 어떤 생각에 잠겨 있을까?

그렇게 망연한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 유력 대선후보 캠프에서 '노조 혐오발언'이 새어나왔다. 삼성 기흥 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의 백혈병 문제와 관련해 500일 째 본관 앞 시위를 하는 노동시민단체 '반올림'에 대해 전문 시위꾼, 귀족 노조 같은 단어로 그들의 싸움을 폄훼하다 못해 '용서가 안 된다'는 말까지 달려 돌아다녔다.

2017년의 대한민국이 중세의 왕국이 아니라는 것만을 증명하기 위해 한 겨울 촛불집회에 주말을 반납했던 것은 아니었을 텐데, 왜 계속해서 헌법에 있는 정당한 권리와 가치들이 법전 밖에는 없는 것처럼 느껴질까? 망각과 혐오 사이에서 '조리 돌림' 당하는 반올림을 보며 얼마 전에야 알 수 있었던 한 노동자의 죽음이 그 위로 겹쳐졌다.

백혈병으로 숨진 열다섯 살 문송면의 영정사진
 백혈병으로 숨진 열다섯 살 문송면의 영정사진
ⓒ 참여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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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송면이 받았던 산재반려사유서
 문송면이 받았던 산재반려사유서
ⓒ 참여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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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살 노동자, 문송면

3년 전 가을, 경기도 마석의 모란공원 묘지를 촬영하다가 만들던 영화와 전혀 관련이 없는 한 묘소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그 묘지 앞에 쓰인 주인의 나이는 '15세'. 73년 2월생이니 나와 동급생이었다. 그의 시간은 1988년 7월 2일에 멈춰 있었다. 1987년 그 많은 사람들이 서울 시내를 가득 채우고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지 1년여 뒤의 일이었다. 온 나라가 민주화와 올림픽 개최로 자신감이 차 있던 시절, 영등포의 협성계공이라는 작은 공장에서 온도계와 압력계를 만들어야 했던 15세 소년 문송면은 남모르는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수은 중독이었다.

충남 서산에서 태어나 태안에서 학교를 다녔던 문송면은 낮에 일하고 밤에는 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말에 87년 12월 5일 영등포의 한 공장으로 상경했다. 그는 수은 수증기가 가득 찬 작업실에서 액체 수은을 온도계에 주입하는 일을 맡았다. 해가 바뀌고, 일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좀 넘었을 뿐인데 잠이 오지 않고, 밥도 넘어가지 않았다. 고열에 두통도 겹쳐왔다.

1988년 1월 20일 15세 소년이 이 사회에 처음 요구했던 것은 몸이 아프니 쉴 수 있도록 휴직계를 내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이에 회사 측은 15세 소년에게 '공장 근무로 인한 상해가 아니'라는 각서를 요구했다. 그는 다시 업무에 복귀 했다. 두 달만 참으면 고등학생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보름 만에 다시 앓아누웠다. 그는 휴직계를 내고 한 달치가 조금 넘는 노동의 대가를 받았다. 의료보험료 1900원과 식대 2만 3850원을 제하니 7만 5050원이 그의 손에 쥐어졌다. 그리고 간호를 받기 위해 귀향한 그의 고향집에서 전신 발작을 일으켰다.

읍내 병원과 서울 병원을 돌아도 알 수 없었던 그의 정확한 병명을 서울대 소아병동에서 들을 수 있었다. 그의 혈액에서는 수은과 구리가 검출되었다. 의사 박희순은 당시 진보적 의료인들이 만든 산재 전문 병원인 구로의원의 상담실장 김은혜에게 문송면의 일을 알렸다. 공장에 항의하고, 정부에 산재를 신청했다. 그의 요구를 받아 주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5월 11일, 그의 일을 최초로 지면에 실은 사람은 <동아일보>의 임재춘 기자였다. 정치인 중에는 당시 평민당 대표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그의 병실을 방문했다. 국회 노동위에서는 국회의원 노무현, 이상수, 이해찬이 이 문제를 제기했다. 고 신영식 만화가도 만화잡지 <보물섬>에 그의 사연을 그림으로 실었다. 88년 6월 29일은 노동부가 그의 산재를 인정한 날이다. 그리고 사흘 뒤, 문송면은 만 15세의 나이에 눈을 감았다.

그의 죽음으로 이 사회는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산업재해 전문 병원인 녹색병원이 세워졌고, 현장에서의 산재 교육을 포함한 산업안전보건 대책의 수립과 직업병 판정위원회 설립 등 법적, 제도적 변화까지 만들어 냈다.

탄핵과 대선 사이 부유하는 또 다른 헌법적 가치, 노동3권

문송면의 묘지 위로 볕이 높게 들던 시간, 필자는 촬영 도중에 삼성전자서비스노조지회를 설립하려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 최종범의 1주기 추모제에 모인 사람들을 마주쳤다. 2014년 그 해 삼성서비스 노조에서는 염호석이라는 또 다른 삼성전자서비스의 노동자가 정동진에서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었다. 엄연히 헌법에 보장된 노조하나 만들어 보겠다고 자신의 숨을 끊어야하는 현실은 얼마나 반복되어야 더 이상 일어나지 않게 될까? 그들을 자신의 사원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삼성의 오너는 지금 구치소에 있다.

반올림이 제기하고 있는 문제는 하물며 노동 3권을 넘어 보편적 생존권에 닿아 있는 것이었다. 산재로 싸우고 있는 노동시민단체를 전문 시위꾼이라고 매도한 말들은 이 사회에서 장애물 없이 배회한다. 노동자를 향한 혐오는 권력자를 향한 숭배보다 노골적으로, 그것도 빈번히 이루어진다.

귀족노조라는 말이 새어 나온 당은 아이러니하게도 문송면의 죽음에 책임을 느꼈던 정치지도자들을 자산으로 삼고 있는 정치세력이었다. 재작년 집회 주최 혐의로 구속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여전히 감옥에 있다. 새로운 대통령을 뽑고, 일 년이 지나면 무엇이 변하고 무엇이 변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권경원님은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독립장편 다큐멘터리 <강기훈 말고 강기타>를 만들고 있다.



태그:#삼성, #백혈병, #수은, #기흥반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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