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천재감독' 송능한 감독의 데뷔작 '넘버3'는 '조폭 영화의 바이블'이라 불릴 만큼 영화팬들 사이에서 상당한 명작으로 꼽힌다. '넘버3'는 도강파의 두목 강도식(안석환)이 부하의 배신으로 살해 당할 위기에 처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강도식을 죽이기 위해 고용된 킬러는 '무려' 송강호다). 하지만 도강파의 뜨내기 조직원이었던 서태주(한석규)의 도움으로 강도식은 간신히 죽음의 위기를 넘긴다.

목숨을 건진 강도식은 '쿠데타를 진압한다'며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 도강파의 히든카드 재떨이(박상면)를 부른다. 재떨이는 순식간에 쿠데타를 진압했고 다시 보스의 위용을 되찾은 강도식은 오른쪽에 재떨이, 왼쪽에 서태주를 세워놓고 이런 명언을 던진다. "배워둬라, 앞으로 에이스 원페어 받아놓고 포커치면 돈 잃을 일 없을 거다"(물론 현실에서는 애초에 포커를 안 치면 된다).

긴 시즌을 치르면서 믿음직한 두 명의 에이스가 필요한 것은 야구에서도 마찬가지다. 김병현이 활약하던 지난 2001년 43승을 합작하며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를 우승으로 이끌었던 '원투펀치' 랜디 존슨과 커트 실링처럼 말이다. 시즌 초반 6승을 거두며 우승후보로서의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KIA타이거즈에도 믿음직한 원투펀치가 있다. 바로 외국인 투수 헥터 노에시와 토종에이스 양현종이다.

초대 최동원상 수상자와 거물 외국인 투수의 만남

사실 오랜 기간 KIA의 공식적인 에이스는 윤석민이었다. 2008년 평균자책점 1위, 2011년 투수 4관왕과 정규리그 MVP에 빛나는 윤석민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등 국제대회에서도 한국의 우완 에이스로 맹활약했다. 하지만 윤석민은 화려한 이름값에 비해 실적이 다소 부족했다. 실제로 윤석민이 선발 투수로서 두 자리 승수를 올린 시즌은 고작 두 번(2008,2011년)뿐이다.

그 사이 조용하게 내실을 다진 투수가 바로 양현종이었다. 2007년 광주 동성고를 졸업하고 KIA에 입단한 양현종은 입단 3년 만에 10승 투수로 떠올랐고 이듬 해엔 16승을 따내며 류현진(LA다저스), 김광현(SK와이번스)과 함께 KBO리그의 젊은 좌완 에이스 3인방으로 군림했다. 하지만 2011년 이후 3년 동안 각종 부상을 겪으며 단 17승을 보태는데 그치는 등 시련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절치부심한 양현종은 2014년 16승을 거두며 초대 최동원상 수상자가 됐고 작년까지 3년 연속 두 자리 승수를 이어갔다. 특히 2014년 171.1이닝, 2015년 184.1이닝을 던진 데 이어 작년에는 프로 데뷔 후 최초로 200이닝을 돌파하며 에이스로서 진면목을 과시했다. 양현종은 작년 시즌이 끝나고 FA자격을 얻었지만 KIA와 1년 계약을 하며 잔류했을 정도로 팀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양현종이 2014년과 2015년 2년 연속 15승을 거두며 확실한 에이스로 자리를 잡자 KIA에서는 양현종의 파트너로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의 강속구 투수 헥터 노에시를 영입했다. 헥터는 시속 150km를 넘나드는 강속구를 주무기로 각도 큰 커브와 슬라이더, 체인지업 등을 다양하게 구사하는 투수로 2014년에는 시카고 화이트삭스 소속으로 빅리그에서 8승을 올렸던 거물급 외국인 선수다.

헥터는 작년 시즌 31경기에 등판해 리그에서 가장 많은 206.2이닝을 던지며 15승5패 평균자책점3.40이라는 매우 뛰어난 성적을 올렸다. 불펜 평균자책점 5.35, 블론세이브 25개의 KIA가 작년 시즌 가을야구를 할 수 있었던 비결은 역시 양현종과 헥터로 이어지는 원투펀치의 위력 때문이었다. 두 선수는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도 13이닝 무실점을 합작하며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헥터, 양현종에 팻 딘까지 가세한 최강의 선발 트로이카

KIA의 원투 펀치는 작년 시즌 407이닝을 책임지며 최고의 활약을 펼쳤지만 리그 최고의 원투펀치로 인정받지 못했다. 합작 40승을 기록한 두산 베어스의 더스틴 니퍼트와 마이클 보우덴이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 시즌 KIA는 팀 타율 9위(.286)로 두산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득점을 지원하지 못했고 KIA의 원투펀치는 승리에서 다소 손해를 봤다(특히 양현종은 리그에서 가장 많은 22번의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하고도 가까스로 10승을 채웠다).

하지만 올 시즌엔 상황이 다르다. 양현종과 헥터는 올 시즌 각각 두 경기에 등판해 벌써 2승씩을 거두고 있다. 투구 내용도 매우 좋다. 헥터가 1번의 완투승을 포함해 평균자책점 1.69, 양현종은 13.2이닝 동안 12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1.32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 있다. 두 선수가 4경기에서 책임진 이닝은 29.2이닝에 달한다. 원투펀치가 등판하는 날에는 불펜의 부담도 덜 수 있다는 뜻이다.

작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진 타선도 원투펀치의 시즌 행보를 밝게 하는 부분이다. KIA는 FA 최형우의 가세와 군복무를 마친 안치홍, 김선빈의 합류로 강력한 타선을 구축했다. 이범호가 부상으로 빠진 자리는 김주형이 잘 메워주고 있고 나지완의 초반 활약(타율 .346 2홈런7타점)도 상당히 좋은 편이다. 이범호가 돌아오고 시즌 초반 1할대 타율에 허덕이고 있는 김주찬이 슬럼프에서 벗어난다면 KIA 타선은 더욱 위력을 더할 것이다.

지크 스프루일을 포기하고 데려온 좌완 팻 딘의 활약도 기대 이상이다. 당초 양현종의 해외진출에 대비해 영입했던 팻 딘은 양현종이 KIA에 잔류하면서 자연스럽게 3선발로 활약하고 있다. 아직 시즌 첫 승은 챙기지 못했지만 2경기에서 0.71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 있을 정도로 투구 내용이 뛰어나다. 실제로 헥터-양현종-팻 딘으로 이어지는 KIA의 선발 3인방은 시즌 초반 42.1이닝 동안 단 6점 만을 내주고 있다.

아직 각 팀 당 고작 8경기 밖에 치르지 않았다. 144경기의 대장정에서 5.6%를 소화한 셈이다. 앞으로 어떤 변수가 각 구단을 휘몰아 치며 리그의 향방을 흔들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작년에 이어서 올 시즌 초반까지 그 기세를 이어가고 있는 KIA의 원투펀치는 현 시점에서 가장 위력적인 KBO리그 최강의 선발 듀오라 할 수 있다. KIA팬들은 벌써부터 헥터와 양현종이 나란히 가을야구의 1,2차전을 책임지는 장면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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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KIA 타이거즈 양현종 헥터 노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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