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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고기는 흔하지 않았다. 시골에서 한두 집 건너 몇 마리씩 키우던 닭은 잡아먹기보다는 비싼 달걀을 내서 돈살(돈사다, 팔다의 방언) 수 있는, 재산목록에 들어가는 가축이었다. 큰 제삿날이나 아주 귀한 손님이 와 어쩌다 닭을 잡으면 애들은 그저 노란 기름이 뜬 국물 한그릇 얻어 먹으면 족했다.

그런 시절이 지나고 언감생심 그 귀한 닭을, 그것도 귀했던 기름에 통째로 튀겨먹는 세상이 도래했다. 1970년대가 저물던 즈음이다. 국내 양계축산이 본격화되던 시기이기도 하다.

읍면소재지 전통시장 안에서부터 가마솥을 걸어놓고 석유버너로 기름을 끓여 통닭을 튀겨 내놓는, 진정 회를 동하게 하는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닭껍데기가 노르스름한 색깔이 될 때까지 튀겨낸 통닭을 사료포대로 만든 봉지에 싸서 팔았던 1세대 통닭집이 한동안 성업했다.

그러다가 미국에서 압력 튀김기와 더불어 일명 '켄터키 치킨'이 상륙했고, 처갓집양념통닭에 페리카나가 선보이더니 지금은 BBQ, BHC 등 수십개가 넘는 치킨 브랜드가 시골까지 활보하는 세상이 돼 버렸다.

주택 한 켠을 개조해 문을 연 34년 전통의 사거리닭집.
 주택 한 켠을 개조해 문을 연 34년 전통의 사거리닭집.
ⓒ <무한정보>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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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충남 예산에서 아직도 1세대 가마솥 통닭의 전통을 잇는 집이 있다는 소식이 왔다. 주교사거리에서 예당저수지 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도로 오른편 나지막하게 들어 앉은, 바로 '사거리닭집(충남 에산군 예산읍 역전로 28번길)'이다. 상호가 부르기도, 외우기도 딱 좋다.

지금부터 34년 전 이 작은 함석주택 한 켠에서 석유버너가 새파란 불꽃을 맹렬히 뿜으며 처음 기름 가마솥을 달궜다. 그리고 지금도 석유버너는 꺼지지 않았고, 그 때 그 가마솥 안에 기름을 끓여 고소한 통닭을 튀겨내고 있다.

석유 버너가 새파란 불꽃 뿜는

"저 솥단지는 천안서 사왔는디, 석유버너도 그 때 장만했구…. 이 집도 한 번도 고치지 않고 그대로네유! 나 나이 먹은 거 빼고는 변한 게 없어."

주인 모영옥(64)씨는 "이게 뭐 자랑거리라고 취재를 하냐"며 한참을 거절했다. 물러서지 않고 여러 차례 부탁을 하고 나서야 가게의 역사를 들을 수 있었다.

"당진이 친정인데 시집 와 보니 시어머니에 시동생에 식구는 여럿인데 형편이 넉넉지 않대유. 남편이 공무원인데 그 당시 공무원 월급 갖고는 늘 부족했으니께. 친정으로 달려가 쌀계들은 돈을 빌려 와서 이 집 사고 튀김 닭집을 차린 거유."

오래된 가마솥에 넣은 닭이 튀겨지는 중이다. 신식튀김기는 통째로 튀기면 잘 안 익는단다
 오래된 가마솥에 넣은 닭이 튀겨지는 중이다. 신식튀김기는 통째로 튀기면 잘 안 익는단다
ⓒ <무한정보>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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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사느라 얻은 돈을 하루빨리 갚아야 했기 때문에 하숙생도 들였다. 장날엔 국수도 삶아 팔았다. 인형 눈도 붙였고, 마늘도 까서 팔았다. 끝없는 고생이었지만 힘든 줄 몰랐다고 한다. 젊었으니까.

"라면 끓여서 식구들 퍼주고 나면 나 먹을 게 없어. 그렇기도 살아봤슈. 뭐라도 해야 앞으로 먹고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확 나대유. 마침 읍내에 나갔는데 일흥닭집서 튀김닭을 파는 것을 보니까 저걸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대유. 여기저기 맛있다는 곳 다니며 어깨너머로 배웠쥬. 츰엔 많이 태우기도 했는디…."

배 갈라서 바로 튀겨야 제맛

그렇게 악착 같이 벌어 13년째 되던 해, 집 사느라 빌린 돈을 다 갚아 내 집을 만들었다. 남매를 낳아 대학까지 가르쳐 시집 장가 보냈으니, 지금도 남부러울 게 없다고 한다.

"욕심 안 부리고 살면 그게 부자지."

전날 밤늦게까지 봄놀이 가는 사람들이 주문한 닭 30마리를 튀기느라 한숨도 못잤다는 모씨의 눈이 뻘겋게 충혈돼 있다. 그래도 맛있게 먹었다는 말한마디 들으면 피로가 싹 달아난다며 웃는다.

주인 모씨가 가끔 끓고 있는 닭을 건져 익은 상태를 살피고 있다.
 주인 모씨가 가끔 끓고 있는 닭을 건져 익은 상태를 살피고 있다.
ⓒ <무한정보>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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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니뭐니 해도 닭은 배 갈라서 바로 튀겨 내놔야 맛있지. 츰 시작허구 한참 동안은 집 옆에 닭장에다 산닭 가둬놓고 주문 들어오면 그걸 잡아서 튀겼슈. 냉장고가 있길 하나, 다라에 물담가 놨지. 그러다가 산 닭을 못 잡게 해서 꼼짝없이 사다 쓰는데 우리는 문을 닫으면 닫았지 냉동닭은 안 써유. 산닭 잡아서 하는 것만은 못해두 생닭으로 튀겨내야 닭맛이 나거든.

그리고 튀김옷 입히면 옛날 닭맛이 안 나유. 한동안은 내가 소스를 직접 만들어서 양념도 했는데 소스가 이틀만 지나면 상허더라구요. 그래서 너무 힘들어 사다가 썼는데 이건 1년이 지나도 썩지를 안해유. 야! 이거 먹으면 안되겠구나 생각이 들대유. 그 뒤로는 양념통닭을 권장하지 않았유. 특히 아이들한티는 그냥 튀김닭을 팔었슈. 할아버지들이 정 드시고 싶다면 그냥 (양념통닭) 해줬유. 오래 사셨으니께…"

30년 넘게 닭집을 하며 꼭 지키는 신조가 있다.

첫째, 뭐든지 변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야 맛과 고객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생닭도 국내산으로만 최고를 사오고, 튀김기름도 '해표 식용유'만 고집한다. 그래서인지 주말엔 멀리서까지 일부러 와서 닭을 튀겨간다. 며칠 전에는 평택에서도 와서 4마리를 사갔단다.

"예전엔 주문도 많이 들어 왔는데 이젠 배달은 안 해유. 손님들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닭 한마리에 1만2000원 받고서 배달까지 하면 남는 게 없슈. 농전이 읍내에 있을 땐 한 번에 50마리씩도 주문 받아 튀겨 봤어유. 산닭 잡아서 털 뽑아 튀길라믄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그 땐 동네사람들이 참 많이 도와줬슈. 고마웠지유. 또 정주영이 대통령 나왔을 땐 참 신나게 팔었슈. 튀겨만 놓으면 차로 와서 실어 갔으니까. 그 때 선거 바람에 쪼금 재미봤지유"

이 얘기 저 얘기하는 동안에도 손님들의 발길은 꾸준하다. 계란도 사가고 생닭도 조각을 내 봉지에 담아간다. 모두 오래된 단골들로 언니동생한다. 펄펄 끓는 솥에 생닭 한 마리가 쏙 들어가니 고소한 냄새가 가게 안에 꽉 찬다.

"새 기름 붓고 세 마리째 튀길 때가 가장 맛있슈. 어른들이 드실 건 7분 정도 더 튀겨야 좋고, 젊은이는 조금 덜 튀겨야 좋아해유."

나이따라 달라지는 튀김시간

30년째 한가지 일을 했으니 기름 끓는 소리만 들어도 얼마나 익었는지 훤하다.

사거리닭집 통닭 맛은 한마디로 '닭 맛이 난다'. 튀김옷을 안 입히고 튀겨내 살이 부드럽고 풍미가 있어 일반 브랜드 치킨과는 어떻게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 고객들의 평이다.

모씨는 사거리닭집이야말로 자신만의 역사를 이룬 집이라고 한다. 며느리 말이 이제 그만 하시고 손주들 봐달라고 하는데 싫다고 했단다. 애들 크고 나면 그 때 가서 나는 뭐하냐고. 앞으로 장사가 잘되건 안 되건 70살까지는 가게문을 닫지 않을 계획이다.

1세대 가마솥 통닭을 전통을 잇고 있는 사거리닭집 주인 모영옥씨.
 1세대 가마솥 통닭을 전통을 잇고 있는 사거리닭집 주인 모영옥씨.
ⓒ <무한정보>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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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남들은 돈 벌었으면 건물도 새로 짓고 번듯하게 한 번 해보라고 하지만 옛날 그대로인 이 집이 아직도 좋다.

"제대로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쫓기며 살았어도 형제간 우애있고, 자식들 잘 살고, 신랑 잘하고,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지켜주고, 그만허믄 됐지 뭘 더 바란대유. 이게 행복 아닌감유…. 넘들 말대로 집 고치고 닭값 올리면 뭐헌대유. 사먹는 사람들만 손해지."

긍정의 활기가 넘치는 모씨의 얼굴을 보니, 앞으로도 한참 동안은 가마솥에서 나오는 진짜배기 통닭 맛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와 인터넷신문 <예스무한>에도 실렸습니다.



태그:#통닭집, #가마솥 통닭, #튀김닭, #전통,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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