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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역설이다. 적폐도 청산하기 전에 광장이 청산당할 위기에 놓였다. 국민의 촛불항쟁은 노벨평화상감인데, 정치권의 수준은 여전히 함량미달이다. 촛불혁명의 빛나는 성과 뒤에 온 대선 국면은 한국 정치사의 새로운 획을 긋는 민주주의 학습과 축제의 장이어야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과연 촛불의 명령에 따라 소명과 책임을 다할 정치권력을 수립할 수 있겠는가. 불안감과 위기의식이 증폭되고 있다. 

촛불이 만들어 낸 새로운 국면

100일 넘게 이어진 1600만의 촛불항쟁은 불의한 정치를 준엄하게 심판했다. 적폐로 얼룩진 선출된 권력을 직접 소환함으로써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를 훌륭하게 구현해냈다.

이제 1987년 민주화 항쟁이 남긴 미완의 숙제를 해결하고 한국 민주주의 역사의 새로운 전환을 만들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촛불을 제대로 통찰하는 것이다. 촛불의 의미를 폄하하거나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거나 과대포장해서는 안 된다. 촛불을 통해 드러난 한국정치의 빛과 그림자는 무엇인가? 촛불을 계기로 한국 정치는 무엇이 바뀌었으며,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가?

 <양손잡이 민주주의> 표지.
 <양손잡이 민주주의> 표지.
ⓒ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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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발전소'에서 펴낸 책 <양손잡이 민주주의>는 촛불을 통해 열린 정치 공간의 성격과 본질을 탐구하고 한국 민주주의의 대안을 모색한다. 책의 상당 분량은 현대 민주주의론의 대가인 최장집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와 정치발전소 박상훈 대표와의 대담으로 이루어져 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최대 사건인 이번 촛불항쟁은 소수의 친박세력을 제외하고는 전 세대와 계급 계층을 아우르는 거의 모든 국민이 참여했다는 점에서 놀랄 만한 사건이었다.

촛불에서 제기된 이슈와 쟁점들은 차기 정부하에서도 지속적으로 이어질 과제들이다.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단계에서 실현하지 못했던 밀린 숙제도 풀어야 하고, 한국 민주주의 도약을 위한 새로운 과제도 제기해야 한다.

"민주화 이후 지난 30년간 개선, 해결되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여러 이슈들과 과제들이 - 마치 밀린 빚을 한꺼번에 받아내겠다는 듯이 - 일제히 청구되기에 이르렀던 것도 특별한 일이다. '비선 실세에 의한 국정 농단'을 넘어 존재의 목적을 상실한 정부에 책임성을 묻는 방법을 둘러싼 논란, 광장과 국회, 헌재의 역할을 두고 전개된 민주주의 논쟁, 대통령중심제 등 정부 형태 내지 권력 구조를 바꾸자는 문제 제기, 친박의 정치적 시민권 박탈에서부터 '대연정 제안'에 이르기까지 정당 체계 변화 논쟁, 검찰과 재벌 권력을 민주화하고 나아가 '신자유주의적 발전 국가'로 이야기되는 기존의 발전 모델을 개혁하자는 여러 주장 등 향후 이 모든 의제들은 여야 내지 진보와 보수 사이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질 중대 이슈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서문, 8~9쪽)

촛불은 위기의 민주주의를 구했다. 돌이켜보면 그렇다. 4.19혁명, 5.18광주민중항쟁, 1987년 민주화 항쟁이 그러하듯이, 한국 정치 위기의 순간마다 늘 광장이 있었다. 현실정치가 부패하고 무능하며 민의를 짓밟을 때, 시민들은 광장으로 봉기해 낡은 권력을 심판하고 역사의 반동적 퇴행을 저지했다.

운동에 의한 성취가 여태껏 한국 민주주의를 이끌어왔다는데 재론의 여지는 없다. 제 세력간의 갈등과 대립속에서 우리 정치사의 결정적 장면은 대부분 거리에서, 광장에서 만들어졌다.

"어떻게 보면 주기적이다 싶은 대규모 집회와 그것을 통한 시민의식의 폭발은 한국정치, 한국 민주화 운동의 특징적 측면이기도 하다. 이런 현상은 평상시 제도를 통해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실천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결과물이다. 만약 이런 운동이라도 존재하지 않았다면 한국 민주주의는 이미 권위주의로 퇴행했거나, 지금보다 훨씬 더 나쁜 상태일 것이다. 어쨌든 이런 시민 참여의 공간이 넓어졌을 때 시민들은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이와 더불어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표출돼 왔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부와 통치의 문제이다. 앞에서 이번 촛불시위가 정부의 모멘트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고 말했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우리는 한 세대 동안 민주주의를 경험하면서, 정부의 체제와 정부를 운영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학습할 수 있었다. 직접민주주의냐 아니냐의 문제보다 나는 이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86~87쪽)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해

민주주의는 가치와 이념적 차원에서만 접근한다면 추상적이다. 대의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현대 민주주의에서 그 실현은 실질적으로 민주적인 정부를 구성하는 문제, 통치체계가 민주적으로 작동하느냐의 문제로 표현된다.

최장집 교수는 "운동으로서의 민주주의만이 아니라 정부로서의 민주주의라는 인식의 균형이 필요하다"면서 "그간 전자의 민주주의관이 과도했던 반면 후자의 민주주의관은 거의 부정되다시피 했다. 이제는 민주주의가 하나의 정부형태이자 통치체계라는 인식에 눈을 뜰 필요 있다. 촛불시위가 하나의 역사적인 전환점이 되려면 시민 의식과 시민 참여를 강조하기 전에, 정부 형태이자 통치 체제인 민주주의를 어떻게 잘 제도화하고, 어떻게 잘 운영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89쪽) 강조한다.

촛불항쟁이 박근혜 탄핵으로 일단락되었지만 촛불의 진정한 싸움은 지금부터다. 박정희 패러다임으로 표현되는 구체제를 혁파하고 새로운 정치질서를 세우는 문제는 민주주의를 민주적으로 제도화하고 실행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1987년 민주화 항쟁은 대통령 직선제 실시라는 정치 목표를 달성하는데 그쳤다.

노동자 농민 등 평범한 국민들의 사회경제적 요구에 기반해 정치가 작동하는 민주적 메커니즘을 만드는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한국의 현실정치 구조는 계급, 계층의 요구와 이익이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못하는 취약성을 안고 있다. 게다가 뿌리깊은 반공이데올로기 체제는 진보정당의 확산을 차단하거나, 통합진보당 해산에서도 드러나듯이 진보정당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역할을 해 왔다. 

여러 저작에서 최장집 교수는 이를 '노동없는 민주주의'라고 말해왔다. 그는 이 책에서도 '민생'이나 '경제민주화'라는 언어에는 노동자들의 '산업적 시민권'이 포함되어 있지 않으므로 공허한 레토릭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그것은 아래로부터의 의사가 국가의 정책결정에 구체적으로 반영되는 역할과 구조, 즉 정당의 대표 기능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대리에 의한 대표'는 자신이 속해 있는 정당과 대표하기로 되어 있는 노동자나 농민들의 결정과 의사를 그대로 대변해야 한다. 한국에서 대표의 개념에는 후자의 의미가 없다. 그것은 왜 사회 전체의 이익만을 위해 행위하고, 전체 이익을 구성하는 부분 이익들을 제대로 대표하지 못하는가의 문제와 연결된다. 사회의 엘리트 계층, 지식인, 전문가 집단들은 과다 대표되고, 노동자, 농민, 자영업자 등 사회의 기능적 이익들은 거의 대표되지 못한다는 말이다...(중략)...사회적 기능 이익으로 분화되지 않은, 추상화된 다수를 대표하기 위한 경쟁에 몰입할 수 있다. 그럴 때 경쟁하는 정당과 후보들 간의 정책 공약에서 나타날 가치나 이념의 차이는 레토릭 수준에서는 격렬하고 커보일지 몰라도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레토릭이 듣기는 좋을 수 있어도 사회구조를 실제로 변화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104쪽)

최 교수는 한국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는데 촛불항쟁이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고 본다. 그는 "공사의 기계적 구분, 광장과 생활 영역의 이분법, 광장에 대한 규범적 접근 등을 지양하고 좀 더 많은 사적 부문적 이해가 광장에서 분출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생계와 생활의 문제를 더 이상 사사화하지 말고 '사회화'해야 한다"며 "삶의 변화를 수반하는 정치적 구호를 외치는 세대, 생활의 이슈를 사회적 이슈로 만드는 공적 주체 등은 정치에 대한 규범적 접근에 매여 있는 기성세대와는 다른 주체의 등장을 보여준다. 촛불 시위 광장은 정치적 계기로 열렸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부문 이익들이 광장에서 공적 의제로 제기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촛불시위가 이런 변화를 더욱 촉진하고 확산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217쪽)이라고 내다본다.

1987년 민주화 항쟁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불평등이 과도하게 심화되어 온 것은 한국 정치구조의 특징이 만들어 낸 필연적 과정이다. 민주주의가 어떻게 작동해야 사회를 좀 더 공정하고 자유롭고 평등하게 만드는 힘으로 기능할 수 있을까?

박상훈 정치발전소 대표는 노동의 권리를 강화해 노동과 자본이 힘의 균형을 이루는 사회경제적 조건을 만드는 것, 정당들이 뚜렷한 이념적, 계층적 차이 위에서 공익의 방향을 두고 경쟁하는 정치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와 관련해 그는 "다가올 20대 대선에서 야권 후보들은 '박근혜 체제 극복론'을 외칠 것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정당 체계나 노사 관계의 조건 위에서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지는 솔직히 상상이 안 된다"(279쪽)고 우려를 표한다. 그는 "촛불시위의 중층적 에너지가 정치를 바꾸고 대안적 사회 발전 모델의 구현으로 집약되기 위해서도 이를 이끄는 '민주적으로 강한 정당'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281쪽) 강조한다. 

시대를 선도하려면 광장에 서라

촛불항쟁으로 보수는 내상을 입은 채 분열했고 친박으로 표현되는 극보수는 소수화됐다. 극보수가 도태된 상황에서 기존의 보수세력에 환멸을 느끼는 안정, 보수층은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했다. 보수의 재편은 불가피하고, 보수가 재편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만든 것은 국민이다.

안철수의 부상은 황당한 사건이 아니라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지엽말단적인 문제를 걸고 넘어지며 공격하는 방식으로 선거를 끌고 나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새로운 시대에 낡은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들끓는 분노에도 불구하고 무서우리만치 냉정하고 질서있게 촛불항쟁을 만들어 온 국민이다. 언제라도 정치가 민의를 배반하고 사리사욕을 위한 통치행위로 변질된다면 그들은 다시 광장에 설 것이다.

정치인이라면 마땅히 그 힘을 경외하고 두려워해야 한다. 새 시대를 선도하고 한국 정치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정치 지도자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광장에 서라. 지금이야말로 촛불의 본질에 천착하고 촛불 시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대선의 돌파구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덧붙이는 글 | <양손잡이 민주주의>(최장집,서복경,박찬표,박상훈 지음 / 후마니타스 펴냄 / 2017.2 / 15,000원)
이 기사는 이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yes24.com/xfile340)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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